내가 이바닥에 어떻게 버틴줄 - naega ibadag-e eotteohge beotinj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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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예지동 시계골목에 있는 오래된 콘크리트 맨홀. 동그란 원을 위아래로 ‘뫼 산(山)’자가 감싸고 있는 이 문양이 일제강점기 경성부 휘장이라고 한다.

박혜리의 별별 도시 이야기 (7) 버릴 수 없는 도시계획유산 ‘맨홀뚜껑’

작년 예지동 일명 시계골목길에 있는 낡고 허름한 한 콘크리트 맨홀뚜껑이 SNS를 뜨겁게 달궜다. ‘서울의현대를찾아서’라는 SNS에서 발견한 이 맨홀뚜껑이 두꺼운 면만큼이나 두터운 시간 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맨홀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서울의현대를찾아서’ SNS를 운영하고 있는 김영준 연구원(도쿄대학교 대학원)이다. 그는 맨홀뚜겅에 경성부 2기 휘장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아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도시계획유산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그가 SNS에 올린 이 내용은 일파만파 확장돼 여러 매체에서 다뤄졌다.

2021년 11월 16일자 신동아에 게재된 [문화유산 조선총독부의 ‘맨홀뚜껑’이 사라진다] 기사에서는 경성부 휘장 ‘뫼 산(山)’자가 새겨진 예지동 맨홀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이 경성부시절 맨홀뚜껑은 1920년대 후반부터 급속도로 진행된 청계천 이북 상·하수도 설치 과정에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는 맨홀뚜껑이 도시계획의 유산임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인 연구와 보존은 이뤄지고 있지 않다며, 세운4구역 내 위치한 이 맨홀도 사라질 위기에 있음을 경고했다. 세운4구역은 옛길과 조선시대의 유구를 최대한 보존하는 계획이긴 하지만 이 뚜껑까지 보존될지는 의문이고, 지금까지는 보존대상이라고 여겨지지 않았지만 근대건축물의 문화유산화를 좀 더 확대해 고민해보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다행히 세운4구역 프로젝트는 여느 재개발사업과는 다르다. 2017년 국제공모로 당선된 KCAP의 원안은 유구 보존전시를 포함하고 나아가 일부 한옥 및 근대건축 8개의 건물을 보존·개발하는 계획이었으나, 건축물의 보존상태가 불량하고 보존가치를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계획설계 중 보전계획이 철회됐다.

대신 문화재심의에 제출된 안에는 건축물의 보존이 아닌 대신 건축물과 일부 기억할만한 건축재료를 ‘활용’하기로 했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적응적 재활용(Adaptive Reuse)’이란 건축물 자체로도 해당되지만, 건축자산의 넓은 의미로 건축폐자재(벽돌, 기와 등), 간판, 시설물 등을 창의적으로 재활용해 또 다른 미래가치를 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이 통용되고 있다. 세운4구역은 이러한 적응적 재활용을 대안으로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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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및 전업사 간판의 비슷한 스타일의 붓글씨 간판. 집합되었을 때 그 힘이 더욱 더 강하다.

현재 세운데크에도 있는 고대웅 작가의 벤치 작품은 이미 서울시민들에게 익숙하다. 세운지역기술 지식의 보고였던 서점 간판은 이제는 사라졌지만, 그 간판은 데크 위 시민들에게 새로운 쉼을 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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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웅 작가의 ‘세운기술서적’ 벤치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중앙역은 꽤 긴 시간을 거쳐 신축이 되었는데, 이전 역사의 시계와 간판을 그대로 다시 사용해 시간이 연결된 기차역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미 있었던 조형물도 보존·재배치했고 그 조형물을 패턴화해 로비의 문양으로 쓰기도 했다. 1차적인 재사용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디자인 소스로 재창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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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르담 중앙역의 시계와 간판, ‘CENTRAAL STATION’ 레터링은 신축 전 철거된 역사에 쓰이던 것 그대로 재사용했다.

세운4구역은 철거 중 수집한 건축자산, 특히 선큰부 벽면, 바닥을 활용해 ‘기억의 벽’을 형성하기로 했다. KCAP는 원설계자의 책임을 갖고 이를 2021년 계획 및 중간설계 최종보고서에 위치 및 컨셉계획에 포함시켰고, 이후 철거 전 보존물의 위치 및 활용계획을 좀 더 상세히 계획해 추가 제출했다.

그 사이 주목된 예지동 경성부 맨홀은 이 시점에 다른 건축자산들과 함께 계획서에 포함됐고, 비로소 보존될 예정이다. 이외에도 가치 있는 시대 순의 맨홀뚜껑이 발견돼 함께 보존하고 선큰 바닥 등에 시대의 중첩성을 가지고 재활용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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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순으로 나열된 예지동 맨홀. 윗줄 좌측 첫번째, 두번째 경성부 맨홀(1930년대 추정), 서울시 휘장1기(1947~96), 아랫줄 좌측부터 서울수도맨홀(1962년), 서울시 휘장2기(1996~), 최신 맨홀 디자인순이다.

이 과정에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처음 맨홀을 발견한 김영준 연구원을 비롯해 활용계획을 긍정적으로 받아준 사업자인 SH와 관계자들, KCAP와 설계팀, 함께 발로 뛰어 노력한 안근철 아키비스트, 현재 세운4구역 백서를 제작 중인 구가건축, 그리고 만약 사업자가 보존하지 않으면 수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서울역사박물관과 김재경 학예사 등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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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부 맨홀 현장조사(좌), 1차로 모은 맨홀 뚜껑들(우)

요즘 일부러라도 레트로 분위기를 내는 마당에 가치 있는 것들의 방치나 멸실은 너무나 아까운 일이다. 2004년 처음 시작된 세운4구역 재개발은 2022년 4월 19일 본격적인 철거에 들어갔다. 그 전에 이렇게라도 최소한의 가치를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제 어떻게 다시 살아날지 기대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