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팔이 있고 움직이지만 박수를 칠수없다 나는 누구인가 - naneun pal-i issgo umjig-ijiman bagsuleul chilsueobsda naneun nugu-inga

<1>탈무드란?
[위대한 연구]라는 의미의 <탈무드>는 나라 잃은 유태 민족에게 5000년에 걸쳐 정신적 지주가 되어 온 생활 규범이다. 여기에서는 이 방대
한 성전을 해석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탈무드>의 문을 열수 있는 것은 당신의 마음이며, <탈무드>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에는 당신의 탁월한 두뇌와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탈무드란?

한 젊은이가 유태인에 대하여 연구하려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그는 먼저 구약성서를 공부하고, 이어 유태인에 관한 많은 서적들을 탐독하
였다. 그러나 그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므로,유태인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유태인을 이해하려면 유태인의 생활 규범
인 <탈무드>를 공부해야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젊은이는 어느날 유태교의 승려인 랍비를 찾아갔다. 랍비란 유태인에게는 스승이고,재판관이기도 하며,때로는 어버이가 되기도
하는 매우 존경받는 존재이다. 랍비는 자기를 찾아온 젊은이게 '당신은 <탈무드>를 공부해 보겠다는 결심을 세운 모양이지만 아직 <탈무
드>를 앞에 펼쳐 놓을 자격조차 없는 듯하오'하고 - 한마디로 단정지어 말하였다. 하지만 젊은이는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한테<탈무드>를 공부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한번 시험해 보고 결정해 주십시오.]
젊은이의 간곡한 부탁에 랍비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두 아이들이 집에서 굴뚝 청소를 하게 되었소.그런데 두 아이 중 한 아이는 얼굴에 그
을음을 잔뜩 묻히고 내려 왔는데,다른 아이는 얼굴이 말끔한 채 굴뚝에서 내려 왔소. 이 두 아이 중 누가 얼굴을 닦을 것이라고 생각하시
오?]
젊은이는 너무 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였다. [그야 물론 얼굴이 더러운 아이가 씻겠죠.]
젊은이의 대답을 예상이나 한 듯 랍비는 냉정하게 말하였다. [역시 당신은 <탈무드>를 공부할 자격이 없소.]
[랍비님,그렇다면 맞는 말이 무엇입니까?]
[만일 당신이 <탈무드>를 공부하게 되면, 그 물음에 지혜로운 답을 말할 수 있을 것이오.]
랍비는 친절하게 말해 주었다. [두 아이들이 굴뚝 청소를 마치고 지붕에서 내려 왔소 그런데 한 아이는 말끔한 얼굴이었고, 또 한 아이는 얼
굴에 그을음을 묻히고 있었소, 깨끗한 아이는 얼굴이 검은 아이를 보고는 '내 얼굴도 검을 것'이라 생각할 것이고 ,얼굴이 검어진 아이는 얼
굴이 깨끗한 아이를 보고 내 얼굴도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오.]
이때 젊은이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제 알았습니다. 다시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
랍비는 웃음을 띠면서 앞서와 같은 내용을 다시 물었다. [두 아이들이 굴뚝을 청소했는데, 한 아이는 얼굴이 깨끗하고, 한 아이는 얼굴이 더
러워졌는데,과연 어느 아이가 얼굴을 닦는다고 생각하시오?]
젊은이는 자신있게 대답하였다. [얼굴이 깨끗한 아이가 닦습니다. 그러나 랍비는 이번에도 낭패한 표정을 지으며 차갑게 말하였다. [역시
당신은 <탈무드>를 공부할 만한 자격이 없는 것 같소이다.]
젊은이는 너무도 낙심하여 지친 표정이 되었습니다. [랍비님,도대체 <탈무드>에서는 어떤 대답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랍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두 아이가 똑같이 굴뚝을 청소했는데 어떻게 한 아이는 깨끗하고 한 아이는 더러워질 수가 있겠소? 두 아이가 다 얼굴이 더러워졌을 테니
둘다 씻을 것이오.]
다음 이야기는 최근에 생긴 일인데,어느 날 어떤 이름난 대학 교수가 내게 전화를 했다. 내용인 즉슨 <탈무드>를 연구해 볼 생각인데 하룻
저녁이면 충분할 터이니 책을 좀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쾌히 승낙하고는 그러나 점잖게 한가지 덧붙여 말해 주었다. [빌려 드리는 것
은 어렵지 않으나, 책을 가지러 올 때는 꼭 트럭을 한대끌고 오시기 바랍니다.]
<탈무드>는 권수로 모두 20권이며,12,000페이지에다 단어의 수만도 무려 250여 만개 이상이며, 그 무게가 75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엄청난
분량의 책이기 때문이었다. <탈무드>란 과연 어떤 것이며,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또 어떤 내용의 책인가를 이해시키기란 극히 어려
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너무 간단하게 말해 버리면<탈무드>의 진정한 의미에서 벗어나기 쉽고, 그렇다고 좀 상세하게 설명하게
되면 그야말로 한이 없기 때문이다.
엄격히 말해 <탈무드>란 책이 아니고 문학이다.12,000여 페이지에 이르는 <탈무드>는 기원전 500년부터 시작되어 기원후 500년에 걸쳐
천년 동안이나 구전되어 온 것들을 수많은 학자들이 10여년에 걸쳐 수집 편찬한 것이다 또한 이 <탈무드>는 기원전 500년부터 시작되어
기원후 500년에 걸쳐 천년 동안이나 구전되어 온 것들을 수많은 학자들이 10여년에 걸쳐 수집편찬한 것이다. 또한 이 <탈무드>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생활 속에까지도 깊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이것은 유태인들의 5000년에 걸친 지혜이며,지식의 보고라고까지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탈무드>는 유능한 정치가나 과학자 또는 철학자 ,저명인사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학식 있는 학자들에 의해 문화, 종교,도덕,전통
등이 망라되어 엮어진 것이다.때문에 <탈무드>에는 법전은 아니지만 법률이 있고 역사책이 아니지만 역사의 내용도 들어 있으며, 인명 사
전이 아니지만 많은 인물들이 망라되어 있기도 하여 백과사전 같은 내용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무엇이며, 또한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인가? 행복은 무엇이고,사랑이란 무엇인가? 5000의 기나긴 세월을 살아 온 유태인들의 온갖
지적 재산과 정신적 자양분이 모두 이 <탈무드>한 권에 담겨져 있다.
이렇게 볼때, <탈무드>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값진 문헌이며, 화려하게 꽃피운 문화의 모자이크이다. 서구 문명을 만들어 낸 문화의 양
식이나 서양 문명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 <탈무드>를 공부하지 않으면 안된다.
본 <탈무드>의 원류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구약성서에 이른다.이것은 옛 유태인들의 사상을 모은 것이 아니라, 구약성서를 보완하여 그
지혜를 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탓으로 기독교인들은 예수 출현 이후에 만들어진 유태인들의 문화는 의식적으로 무시하였으며,심지
어는 <탈무드>의 존재조차도 인정하지 않았다. <탈무드>가 책으로 엮어져 정착되기 전에는 선생에서 제자에게로 구전되어 전승되었다.
때문에 내용의 대부분이 질문하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또한 내용의 범위도 광범위하여 모든 테마들이 히브리어나 아랍어로 기록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글로 옮겨질 때도 문장에 필요한 부호나 구둣점같은 것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머리말이나 맺는 말도 없는 그야말
로 자유분방한 체제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탈무드> 만들어지던 그 당시에는 내용이 양적으로 방대하였고,때문에 유태인들은 <탈무드>의 일부분이 잊혀져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전
승자들을 각처에서 두루 모았다.
유태인들은 그때 전승자들 가운데서 머리가 뛰어나게 우수한 사람은 일부러 제외시켰는데,그것은 <탈무드>를 전승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의견이나 소신을 가미시킬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탈무드>가 왜곡되지 않겠는가?
이런 과정을 거쳐 구전되어 오던 <탈무드>의 내용들이 몇 백년 동안 각 도시에서 편찬되기 시작하여 현재에는 [바빌로니아의 탈무드]가
더 비중있는 책으로 그 권위가 인정되어 일반적으로<탈무드>하면 이 [바빌로니아의 탈무드]를 가리키는 것이 되었다.
우리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탈무드>는 독서용이 아니고 배우기 위한 책이다. 우리집의 어린 딸아이는 내가 아침 일찍부터 <탈무드>를 공
부하고 있는 것을 보고 몇 시간 지난 뒤에 다시 와 봐도 겨우 15개 정도의 단어밖에는 공부하지 못한 것을 자주 보게 된다.
하지만 이 15개의 단어만이라도 이해하고 그 진정한 의미를 경험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것이고,사리와 분별력에 대한 사고력을 배양시켜
주는 동시에 나를 만족한 기분으로까지 만들어 주는 것이다. 나는 자신의 사고력을 높이고 정신력을 한층더 단련시키는데 있어 이보다 더
훌륭한 책은 다시 없다고 확신한다.
<탈무드>는 이처럼 유태인에 있어서는 다름아닌 '얼'이다.2000년이란 오랜 세월을 세계 각처에 흩어져 수난 속에 살아야 했던 유태 민족에
게 오직 이 <탈무드>만이 유일하게 이들을 연결해 준 정신적 지주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유태인들 모두가 <탈무드>를 공부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들의 대부분은 정신적 자양분을 이 <탈무드>에서 취하고 있으며, 여개에서 생활 규범을 찾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탈
무드>는 유태인을 유태인답게 만들어 왔고,또한 유태인들이 <탈무드>를 지켜온 것 못지않게 <탈무드>가 유태민족을 지켜왔다고도 할 수
있겠다.
원래 <탈무드>란 말은 "위대한 연구","위대한 학문이나 고전 연구"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탈무드>를 읽지 않았어도 이미 여러
분은 <탈무드>의 연구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남겨진 1페이지는 독자 여러분의 경험을 기록하기 위해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유태인들은 <탈무드>는 끝없이 넓고 커서 모든 것이 다 그 안에 담겨져 있고,또한 그 속에는 무엇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하여 <탈무드>
를 '바다'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탈무드>가 이처럼 광범위한 내용을 다룬 방대한 것이라 하여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다.<탈무드>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두 사
람의 남자가 오랜 여행을 한 탓으로 몹시 배가 고파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어느 방엔가를 들어갔을 때,천장에는 과일 바구니가 매달려 있
다. 이것을 본 한 남자가 말했다.
[저 과일을 먹고는 싶은데, 너무 높이 매달려 있어서 먹을 수가 없군.]
이때 다른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난 저것을 꼭 먹고야 말겠네.아무리 높이 매달려 있다 해도 틀림없이 누군가가 저기에다 걸어 놓은 것이
아닌가.그렇다면 나라고 해서 저기를 올라가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 남자는 어디에선가 사다리를 구해 와 그것을 밟고 올라가 그 과일을 꺼내 먹었다.
<탈무드> 가 아무리 훌륭하고 내용이 심오한 것일지라도 이 또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때문에 사람이 만들어낸 것을 사람이
자기의 것을 만들지 못할 이유 또한 없다. 다만 꾸준히 노력하면서 사다리를 밟고 한걸음한걸음 올라가듯이 쉬지않고 계속해야 한다는 사
실이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을 여러분을 위해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세계적인 명사들을 한 곳에 모아 놓고 명사들이 수백
시간에 걸쳐 토론한 내용들을 녹음했다고 하자.이렇게 만들어진 녹음은 매우 귀한 내용임에 틀림없을 것이다.<탈무드>야말로 이와 같은
녹음에 버금갈 만한 값진 것이다. 여러분들은 <탈무드>의 몇 페이지를 읽는 것만으로도 세계적인 명사들이 수백년 동안 역설해 온 것을 들
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이 책을 통해 그 안내자로서의 충실한 역할을 하고자 한다.

<2>세 사람의 랍비

내가 <탈무드>의 신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면접 시험을 보았다. 그때 '왜 여기에 입학하려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이 학교가 좋아
서'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면접을 맡은 시험관은 '만약 공부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차라리 도서관에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학교는 공부
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한테 '그렇다면 구태여 학교에 입학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시험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학교는 존경받
는 인물을 앞에 모시기 위해서 가는 곳이지,살아 있는 교과서를 통해 모든 것을 배워야 한다네.학생이란 훌륭한 랍비나 교사의 언행을 지켜
봄으로써 스스로 배워가는 것이지."

나는 여기에서 <탈무드>에 등장하는 세 사람의 랍비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랍비 힐레루
랍비 힐레루는 약 2000여년 전 바빌로니아에서 태어나 20세가 되던해 이스라엘로 가 두 사람의 랍비로부터 지도를 받았다.당시의 이스라엘
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어 유태인들의 생활이란 고통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래서 힐레루는 우선 생활하기 위해 돈벌이에 나섰으나,하루
에 동전 한닢 벌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그는 운 좋게 번 동전 한닢의 절반은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는 수업료에 충당하였다.

어떤 때는 그나마 일거리가 없어 단 한닢의 동전도 벌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힐레루는 학교에서 듣는 강의는 빼지 않고 들어야 했다.
그는 생각 끝에 남몰래 학교 지붕으로 올라가 굴뚝에다 귀를 대고 밤늦도록 강의를 들었다. 그러던 중 피곤에 지쳐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추위가 극성스러운 한 겨울이라 때마침 눈이 내려 잠에 빠진 그의 몸을 덮어 버렸다.

다음날 아침 다시 공부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다른 날과는 달리 교실안이 어두웠다. 모두들 천정을 쳐다 보았는데,지붕에 난 창을 누군가가
가리고 있는 것이었다. 서둘러 힐레루를 끌어내려 간호하자 그는 다시 깨어났다. 그때부터 힐레루는 수업료를 면제받고 공부하게 되었고,
또 그것이 계기가 되어 유태인 학교에서 수업료가 없어졌다.

힐레루에 관한 언행은 가장 많은 칭송 속에 전해지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말씀에도 적지 않게 인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힐레루는 천재였고,
거기에다 중후하고 예의바른 인물이었다.

어느날 유태인이 아닌 사람이 찾아와 힐레루에게 강요하듯 말했다. [내가 한쪽 다리로 서 있는 동안에 유태 민족이 배우는 학문을 모두 말
해 보시오]

그러자 힐레루는 태연스럽게 대답하였다. [당신 자신이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시오]

짖궂은 또다른 무리들이 힐레루를 화나게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놓고 내기를 걸었다. 마침 안식일을 앞두고 힐레루가 목욕탕에 들어가 몸
을 청결히 하고 있을 때 한 남자가 찾아왔다. 힐레루는 젖은 몸을 대충 닦고는 그를 만났다. 찾아온 그 남자는 엉뚱한 것을 물어왔다.

[랍비님 인간의 머리는 왜 동그랍게 생겼습니까?]

힐레루는 성의껏 대답해 주고, 다시 목욕탕에 들어왔는데 그 남자가 또 문을 두드렸다. 힐레루가 다시 나오자 "왜 흑인은 피부가 검습니까?"
하고 또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힐레루는 그러나 화를 내지 않고 차근차근 그 이유를 말해 주고는 목욕탕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
렇게 하기를 다섯번이나 계속되었다. 결국 그 남자는 '랍비님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야 좋았을 것이오. 나는 랍비님 때문에 내기에 실
패해 돈을 잃었소?' 하고 속을 털어 놓았다.

힐레루는 '내가 인내심을 잃어 버리는 것보다는 당신이 돈을 손해보는 것이 더 낫지요.' 라고 대답하였다.

어느날 힐레루가 급하게 걸어가고 있을 때 학생들이 달려와 '선생님,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라고 물었다. 그때 힐레루는 '나는 지
금 착한 일을 하기 위해 바쁘게 가고 있단다'하고 대답하였다. 학생들은 이를 궁금히 생각해 힐레루를 따라가 보니, 그는 대중 목욕탕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학생들은 목욕탕에 들어가 몸을 닦는 선생에게 '몸을 닦는 일도 선행 입니까'하고 물었다.

'자기 자신을 깨끗이 하는 일은 아주 값진 선행의 하나이다. 로마 사람들을 보아라. 그들은 거리에 있는 수많은 동상들을 깨끗이 닦아내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란 동상을 닦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을 닦아 깨끗이 하는 것이 선행이지.' 이처럼 힐레루는 음미하면 할 수록 맛이 새로
운 훌륭한 말을 많이 남겼다. 그 가운데 몇 개 간추려 보았다.

* 당신이 지식을 늘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당신의 지식을 줄여가고 있는 결과가 된다.

* 자기의 지위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과시하는 사람을 이미 스스로의 인격에 상처를 입고 있다.

* 상대편의 경우에 서보지 않고는 남을 판단하지 말라.

*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부끄러워 하지 말라.

*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은 스승의 자격이 없다.

* 만약 당신 주변에 뛰어난 인물이 없다면, 당신 스스로가 특출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

* 스스로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누가 자기를 생각해 주겠는가?

* 지금 당장 그것을 서둘러 하지 않으면, 언제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겠는가?

* 인생 최대의 목표는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를 추구해 그것을 가져오는 것이다.

* 자기 자신의 것만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조차 될 자격이 없다.

 랍비 요한나 벤 자카이
랍비 요한나 벤 자카이는 유태 민족이 역사상 최대의 정신적 위기에 처했던 시기에 가장 크게 활약했던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기원후 70
년부터 포악한 로마인들이 유태의 성전을 가리지 않고 파괴시키고 유태족을 멸족시키려고 기도 했을 때,벤 자카이는 비둘기파였다. 그래서
반대파인 매파에서는 벤 자카이의 행동을 항상 감시하는 형편이었다.

벤 자카이는 그때 유태 민족이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살아남는 길을 꼴똘히 생각한 끝에 마침내 로마의 유력한 장군과 협상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 당시 유태인들은 예루살렘성 안에 모두 감금당한 상태였던 탓으로 바깥 출입조차 어려웠다. 그러나 벤 자카이는 환자를 가장하
여 탈출하는데 성공하였다. 벤자카이는 널리 알려진 랍비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문안차 몰려 들었다.

며칠 뒤 벤 자카이는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으며, 그러나 끝내 죽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제자들은 그를 관 속에 넣은
뒤 성밖의 묘지에 매장할 수 있도록 허가를 요청했다. 성 안에는 묘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반대파에서는 벤 자카이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며 칼로 찔러 죽었나를 확인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유태인들은 '그런 짓은 죽은 사람
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크게 반발하였다. 유태인들은 시체를 눈으로 보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가 없었다. 드
디어 제자들은 관을 들고 로마군의 전선을 향해 갔다. 그러나 전선에 당도하자 로마 병사들도 관을 칼로 찔러 보아 확인하겠다는 것이었다.

제자들은 '만일 로마 황제가 죽었다면, 당신들은 그때도 칼로 관을 찌를 것인가?' 하고 항의하였다. 또한 무장도 하지 않았음을 강조하여 마
침내 로마 병사들의 전선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 뒤 벤 자카이는 관 속에서 나와 로마 사령관에게 면담을 요청하였다. 면담이 이루어져 사
령관 앞에 앉게 되자 그는 사령관의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나는 장군에게 로마 황제에게 표하는 경의를 보낸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장군은 황제 폐하를 모독했다고 언성을 높였다. 벤 자카이는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장군은 반드시 로마의 황제가 됩니다]

확신에 찬 랍비의 말에 장군은 얼른 입을 막았다. [그런 얘기는 그만 둡시다. 나를 찾아온 목적이나 말해 보시오]

벤 자카이는 '오직 한가지 소원이 있다'고 했다. 여러분도 그 소원이 무엇인지 짐작해 보십시오.

벤 자카이의 소원이란 이런 것이었다.  [방 한칸의 교실이라도 좋으니 조그만 학교 하나만 지어 주십시오. 그리고 그것만은 없애지 않았으
면 고맙겠습니다.]

벤 자카이는 필경 예루살렘이 로마에 점령되어 곧 파괴되고 말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하지만 학교만 유지하고 있으면 유태 민족
의 전통은 이어져 갈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장군은 랍비의 청이 별로 대단치 않아 좋다고 약속했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 황제가 죽고, 그 장군이 황제의 자리에 앉았다. 그는 '하나의 작은 학교만은 절대로 없애지 말라'고 명을 내렸
다. 바로 그때 그 학교에 있던 학자들이 유태 민족의 지식과 전통,신앙 등 유태의 얼을 지킨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의 유태인들의 생활 규
범도 모두 그 학교에서 앞장서 선도해 나갔다.

벤 자카이는 '항상 선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 최대의 재산'이라고 역설하였다. 유태인들의 제단에는 돌만 사용하고 철을 비롯한 금속은 쓰지
않는다. 금속 종류는 무기를 만드는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제단은 신과 인간에게 평화를 선사하는 것이며,또한 신과 인간
이 가깝도록 연결해 주는 하나의 상징이라 생각하였다.

말이나 감각이 없는 돌까지도 신과 인간 사이를 맺어주는 것으로 여겼다. '우리들은 인간이므로 부부 사이에,또 나라와 나라 사이에 평화로
움을 선사할 수가 있다'라는 명언도 벤 자카이의 말이었다.

 랍비 아키바
랍비 아키바는 <탈무드>에 등장하는 랍비들 중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며,유태 민족의 영웅이다. 한때 그는 큰 부자집에서 양치기의
일을 한 때가 있었다. 그때 그 부자집 딸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고, 그 집 부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했기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아키바는 남의 집에서 일할만큼 생활이 어려워 공부를 못했으므로 글을 읽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의 부인은 '당신이 공부하여 지식을 갖추
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곤 하였다.

그래서 아키바는 나이가 들어 아이들 속에 섞여 공부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나 그가 공부를 마치고 귀가했을 때는 이미 당대의 이
름난 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후 그는 최초의 <탈무드>를 편집한 인물이 되었으며 ,또 의학과 천문학에 조예가 깊었고, 외국어까지
능통해 유태 민족의 사절로 로마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기원후 132년에 로마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유태인들이 난을 일으켰을 때 그
는 유태 민족의 정신적 지도자였다. 이 반란이 가까스로 진정되자.로마인들은 학문하는 유태인은 누구라도 사형에 처할 수 있다고 공포하
게 되었다.

로마인들은, 유태인은 그들이 배우고 있는 전통적인 책으로 인해 참다운 유태인이 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아키바는 여우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어느날 여우가 냇가를 거닐고 있는데, 물 속에서 물고기들이 바쁘게 헤엄쳐 다니고 있는게 보였다. 그래서 여우는 '왜 그렇게 바쁘게 다니
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물고기는 '우리를 낚으러 달려드는 그물이 무서워서 그런다'고 대답하였다. 여우는 친절한 척 '그럼 땅으로 나오렴.내가 너희들을
지켜줄 테니까' 하고 말하였다.

물고기는 여우의 말에 '여우들은 꽤냐 영리하다고 들었는데.이제 보니 그렇지도 않군 우리도 살고 있는 물 속에서도 이렇게 무서워 떨고 있
는데, 땅 위로 올라가 무슨 변을 당할려고 올라가는가?'라고 말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이를테면, 유태인에게는 학문은 물과 물고기의 관계와 같으므로 물고기가 물을 떠나 잠시도 살 수 없듯이 유태인은 어떻게 해서든지 반드
시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그 뒤 아키바는 로마인들에게 붙잡혀 로마로 끌려간 뒤 처형당하게 되었다. 그때 로마 사람들은 아키바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것은 형
벌로는 너무 가볍다 하여 숯불에 달군 인두고 지져 죽이기로 하였다. 아키바를 처형하는 현장에는 유태인의 지도자라는 것 때문에 로마 병
사의 사령관이 나와 있었다.

마침 아침 기도가 시작되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이때 불에 빨갛게 달군 인두가 아키바의 등에 아키바는 아침 기도를 시작하였다. 이 모습을
보고 놀란 사령관은 아키바에게 말했다.

[당신은 이런 참혹한 고통 속에서도 기도를 할 수 있는가?]

아키바의 대답은 담담했다.

[지금과 같이 이렇게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신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나 자신으로부터 진실로 신을 사랑하는 나를 발견하는 기쁨뿐이다.]

아키바가 조용히 말을 마치자 그의 찬연했던 생명의 등불이 서서히 꺼져갔던 것이다.

<3>편 역자의 말

<탈무드>란 히브리 어로 미슈나(Mishnah), 즉 '가르치다'라는 의미에 관련된 교훈이나 설명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탈무드>는 <구약성서>가 씌여진 뒤 유태교의 법률, 전통적 습관, 축제, 민간 전송, 해설 등을 모아 편찬한 것으로 성서 다음으로 유태
인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왔다.

여기에는 유태인들의 종교적 생활만이 아니라 법적 규정이나 판례법 까지도 포함되어 있으며, 당시 유태민족의 생활양식은 물론 기독교와
의 관계를 아는 데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탈무드>는 팔레스타인에서 발견된 것 (약 4세기 말경 편찬)과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견된 것(약 6세기경 편찬)의 두 종류가 있다. 그래서
앞의 것은 <팔레스타인 탈무드>, <예루살렘 탈무드>라고 부르며, 뒤의 것을 <바빌로니아 탈무드>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탈무드>의 주인공인 유태 민족은 수천년에 걸쳐 온갖 박해와 시련 속에서 살아온 불운의 민족이기도 하다. 이 민족의 수난사는 한마디
로 한과 통곡의 역사였다. 이러한 시련의 역사를 이겨내고 오늘의 우수한 유태인으로 살아 남은 데에는 이 <탈무드>라는 정신적 원천이 있
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200년부터 약 700년에 갈쳐 많은 학자들과 랍비들의 연구 결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탈무드>는 수천년 동안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져 냐려온 것들이다.

유태민족 사이에 구전된 이러한 지혜와 가르침이 학자들과 랍비들의 힘에 의해 오늘날의 <탈무드>로 빛을 더하게 되었다. 그런 만큼 <탈
무드>를 절대적 진리로 생각하는 관념을 버리고 보다 더 가깝게 대할 수 있는 삶의 지혜로 이해하여야 좋을 것이다.

여기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탈무드>, <유태인의 유머>, <유태인의 격언>으로 구성하였다. 이 모두가 기존에 편찬된 <탈무드>를
번역 가감한 것이므로 읽기에도 어려움이 없고, 또한 유태인 특유의 유머 감각과 번뜩이는 기지도 함께 맛볼 수 있으리라 본다. 끝으로 여
기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랍비(Rabbi)'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덧붙여 둔다.

'랍비'는 히브리어로 '나의 주인', '나의 스승'이라는 뜻이다. '라바이'라고도 하는데, 원래는 유태인들이 자기들 종교적 지도자에 대한 경칭
으로 쓰던 말이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일반적으로 유태인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교사로서 일정한 의식에 관한 판정과 제사 및 설교
를 맡은 자를 가르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 김상구 -
<4>탈무드의 귀

마법의 사과

어떤 임금님에게 외동딸이 있었는데, 그 따님이 큰 병이나 눕게 되었다. 의사는 세상에 둘도 없는 신통한 약을 먹이지 않는 한 살아날 가망
이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고심하던 임금님은 자기 딸의 병을 고쳐주는 사람을 사위로 삼는 것은 물론 다음번 임금의 자리까지도 물려주겠
다고 포고문을 붙였다.

당시 아주 외딴 시골에 삼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맏이가 망원경으로 그 포고문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삼형제는 그 사정을 딱하
게 여겨 임금님 외동딸의 병을 고쳐보자고 의논하였다.

삼형제 중 둘째는 마법을 쓰는 융단을 가지고 있었고, 막내인 셋째도 마법을 쓰는 사과를 가지고 있었다. 마법 융단은 아무리 먼 곳이라도
주문만 외면 잠깐 사이에 날아갈 수 있었고, 마법 사과도 먹기만 하면 어떤 병이고 감쪽같이 낫게 하는 신통력이 있었다.

이들 삼형제가 서둘러 마법 융단을 타고 궁전에 도착하여 공주한테 마법사과를 먹게 하자 공주의 병은 정말 신통하게도 말끔히 낫게 되었
다. 온 백성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기뻐했으며, 임금님은 큰 잔치를 벌이고 사위이자 다음번 임금이 될 사람을 발표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삼형제들은 서로 의견이 달랐다. 이 중 큰 형이 말하기를 '만일 내 망원경으로 포고문을 보지 못했다면 우리는 공주가 병으로 누운
사실도 몰랐을 게야'라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둘째는 '만일 날아다니는 내 양탄자가 없었다면 이 먼곳까지 어떻게 왔겠느냐?'고 했고, 셋째
는 만약 여러분들이 임금의 입장이라면 과연 삼형제 가운데 누구를 사윗감으로 정하겠는가?

여기에서는 사위이자 다음번 왕위를 이을 사람은 마법 사과를 가진 셋째이다. 왜냐하면 망원경을 가진 첫째는 그 망원경이 그대로 남아있
고, 둘째도 타고 온 융단이 그대로 남아 있으나 셋째의 사과는 공주가 먹어버려 없어졌지 때문이다.

셋째는 임금의 외동딸을 위해 자기가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주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탈무드>에서는 남에게 도움을 줄 때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그릇

매우 총명하다는 소리는 듣지만 얼굴만은 못생긴 어떤 랍비가 어느날 로마 황제의 딸을 만나게 되었다. 황제의 딸은 랍비를 보더니 '그토록
총명한 지혜가 이런 못생긴 그릇 속에 담겨져 있군'하면서 비웃었다. 그러자 랍비는 황제의 딸에게 궁중 안에도 술이 있느냐고 물었다. 물
론 공주는 술이 있다고 대답하였다.

못생긴 랍비가 물었다.

[공주님, 궁중에 있는 술은 무슨 그릇에 담아 둡니까?]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항아리나 술병 같은데 담아 두지요.]

그러자 랍비는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대 로마의 공주같이 높고 훌륭하신 분께서 금이나 은이나 만든 그릇도 많을텐데 그런 싸구려 그릇을 쓰십니까?]

그러자 공주는 과연 랍비의 말이 옳다고 생각해서 지금까지 쓰던 보통 그릇들을 모두 금과 은그릇으로 바꾸었다. 물론 술도 금과 은그릇 속
에다 옮겨 담았다. 그러고 나자 술맛이 옛날과는 달리 아주 이상하게 바뀌었다. [누가 술맛을 이렇게 만들었느냐?]

로마 황제가 크게 화를 내자 공주가 대답했다.

[싸구려 그릇보다 귀한 그릇 속에 술을 담아두는게 낫다고 해서...]

공주는 황제에게 꾸중을 듣고는 랍비를 찾아갔다. [당신은 어째서 나에게 잘못된 일을 하라고 했소?]

[나는 다만 공주님에게 아주 값지고 귀한 것이라 해도 보잘것 없이 헐한 그릇에 두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
입니다.]

세 명의 자매

옛날에 세 자매를 둔 사람이 있었다. 세 자매는 모두 예뻤으나, 그들은 제각기 한가지씩 결점을 가지고 있었다. 큰딸은 게으름뱅이이고, 둘
째달은 훔치는 버릇이 있고, 셋째딸은 험담하는 버릇이 있었다.

한편, 아들 삼형제를 둔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세 딸을 모두 자기네 집으로 결혼시키지 않겠느냐고 청해 왔다. 세 자매의 아버지는 자기 딸
들이 가지고 있는 결점을 그대로 말하자. 부자는 그런 점은 자기가 책임지고 그것을 고쳐가겠다고 장담했다. 이렇게 하여 세 자매는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 시아버지는 게으름뱅이 첫째 며느리에게는 여러 명의 하녀들을 고용해 주었고, 남의 것을 훔치는 버릇이 있는 둘째 며느리
에게는 큰 창고의 열쇠를 주어 무엇이든지 갖도록 해 주었다.

그리고, 남을 헐뜯기를 좋아하는 셋째 며느리에게는 매일같이 오늘은 험담할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어느날 친정 아버지는 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여 사돈집을 찾아갔다. 큰딸은 얼마든지 게으름을 피울 수 있어 즐겁다고 말했고, 둘째딸은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지 가질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셋째딸은 시아버지가 자기에게 남녀 관계를 꼬치꼬치 묻기 때문에 귀찮다는 대답이었다.

그런데 친정 아버지는 자기 셋째딸의 말만은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셋째딸은 시아버지까지도 헐뜯고 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몽땅 삼켜

이 세상의 모든 동물들이 뱀을 앞에 놓고 나무랐다. 한 동물이 말했다. [사자란 놈은 먹이를 쓰러뜨린 다음 먹고, 늑대는 먹이를 찢어내어
먹는다. 그런데 뱀아, 너는 어째서 먹이를 송두리째 삼켜버리느냐 말이다.]

뱀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잔인하게 남을 물어뜯는 놈보다는 낫다고 생각해. 나는 적어도 입으로 상대방을 상처나게 하지는 않거든.]

혀(1)

어떤 장사꾼이 골목을 돌아다니며 외치고 있었다.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팝니다. 싸게 팝니다.]

그러자 눈깜짝할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골목을 메웠다. 그 가운데는 랍비들도 몇 사람 섞여 있었다.

'내게 파시오, 나도 사겠소, 값은 후하게 주겠소'하고 여기저기서 다투며 사람들의 외쳐댔다. 그러자 장사꾼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을 진실로 참되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자기 혀를 조심해 쓰는 것이요.]

혀(2)

어느날 랍비는 자기가 맡아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잔치상에는 소와 양의 혀로 요리한 음식도 나왔다. 그런데 그 가운데는 딱딱한 혀와 부드러운 혀의 요리가 있었다. 학생들은 부드러운 혀의
요리만 골라 먹었는데, 이것을 본 랍비가 말했다.

[너희들도 항상 혀를 부드럽게 간직할 수 있도록 해라. 혀가 딱딱하게 굳은 사람은 남을 노하게 하거나 서로간 불화의 씨를 만드니까.]

혀(3)

어느날 랍비가 자기 하인에게 시장에 가 맛있는 것을 골라 사오라고 시켰다. 그랬더니 하인은 혀를 사 왔다.

며칠 뒤 랍비는 또 하인에게 오늘늘 좀 값이 싼 음식을 사오라고 명했다. 그런데 하인은 또 앞서와 같이 혀를 사왔다.

랍비는 언짢아 그 까닭을 물었다.

[며칠 전 맛있는 것을 사오라 했을 때 혀를 사왔고 오늘은 싼 음식을 사오라 했는데 어째서 또 혀를 사왔느냐?]

그러자 하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좋은 것으로 치면 혀만큼 좋은 게 없고 나쁜 것으로 치면 혀만큼 나쁜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보석

어떤 랍비가 안식일에 예배당에서 설교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의 두 아이가 집에서 죽고 말았다. 아내는 아이들의 시체를 이층으로 옮
긴 뒤 흰 천으로 덮어 주었다.

마침내 랍비가 집에 돌아오자.아내는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어떤 사람이 저에게 귀중한 보석을 잘 보관해 달라고 맡기고 갔는
데, 어느날 갑자기 그 주인이 나타나 맡긴 보석을 돌려 달라고 했어요. 그럴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랍비는 어렵지
않다는 듯이 '말할 것도 없이 맡은 보석은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되겠지.' 그때 아내가 울먹이며 말했다.

[실은 조금 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셨던 귀중한 보석 두개를 찾아가지고 하늘로 돌아갔어요.]

랍비는 아내의 말을 알아 듣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유서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어떤 현명한 유태인이 자기 아들을 예루살렘에 있는 학교에 유학시켰다. 그런데, 아들이 예루살
렘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이에 부친은 중병에 걸려, 죽기 전에는 아들을 못볼 것 같아 유서를 남겼다. 유서의 내용은 자기의 모든 재산
을 한 하인에게 물려주고 아들이 원하는 것 한 가지만은 아들에게 주도록 하라는 내용이었다.

마침내 부친이 세상을 뜨자. 그 집 하인은 자기에게 행운이 돌아왔음을 기뻐하며 예루살렘의 주인 아들에게 달려가 부친이 돌아가셨다고
전하였다. 그리고 유서를 보여주자. 아들은 매우 놀라고 크게 슬퍼하였다.

아버지의 장례를 마친 아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를 곰곰히 생각한 끝에 그는 랍비를 찾아가 전후 사정을 설명하였다.

[아버지는 어째서 재산을 조금도 남겨 주시지 않았을까요?지금껏 나는 아버지를 실망시킨 적이 없는데요.]

아들이 불평을 하면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원망하자 랍비는, [천만에 그렇지 않소.당신 부친께서는 매우 현명한 분으로 당신을 진심으로 사
랑하셨소.이 유서를 살펴보면 부친의 마음을 잘 알 수가 있소.]

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들은 '하인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 주고 자식에게는 아무것도 남겨 주시지 않았습니다. 자식에 대한 애정이라고는 조
금도 없는 분이 한 어리석은 행동으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하고 원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당신도 부친과 같이 현명하게 머리를 써야 하오. 당신이 부친의 참뜻을 이해한다면, 당신에게 훌륭한 유산을 남긴 것을 알 수 있을 것이
요.]

만일 여러분들이 아들의 경우라면 유서의 참뜻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랍비는 이렇게 설명했다.

[당신의 부친은 운명할 때 당신이 집에 있었기 때문에, 하인이 재산을 가지고 도망치거나, 재산을 다 탕진해 버리거나, 심지어는 자기의 죽
음마저도 당신에게 전하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모든 재산을 하인에게 주신다고 한 것이오.

모든 재산을 하인에게 주게 되면, 그는 기뻐서 당신에게 달려가 그런 사실을 알릴 것이고, 재산도 소중하게 간직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오. [하지만 그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들이 묻자, 랍비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역시 젊은이라 지혜가 모자라는군요. 하인의 재산은 전부 주인에게 속한다는 사실을 당신은 모르오? 당신의 부친께서는 당신이 원하는 것
한 가지만은 당신에게 물려 준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소.그러니까 당신이 그 하인을 소유한다고 하면 그것으로 모든 재산은 당신의 것이오.
이 얼마나 현명하고 애정이 깊은 생각이오.]

뒤늦게 아버지의 참뜻을 깨달은 젊은이는 랍비가 가르쳐 준 대로 한다음, 그 하인은 해방시켜 주었다. 그 후 젊은이는 항상 '역시 나이 많은
사람의 지혜는 따라갈 수가 없다'고 말하곤 하였다.

붕 대

법률이란 마치 약(藥)과도 같은 것이다.

옛날에 어느 임금이, 상처를 입은 아들에게 붕대를 감아 주면서 말하기를 [얘야! 앞으로 이 붕대가 풀리지 않도록 조심하라.이 붕대를 감고
있는 동안만은 먹거나 뛰거나 물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붕대를 풀어 버리면 상처가 더 심해질 것이다.]  라고 타일렀
다.

사람도 이와 비슷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악한 쪽으로 치우치려는 성질이 있으나, 법률을 지키고 벗어나려 하지 않는 한 결코 성질
이 나쁘게 바뀌는 일은 없다.

옳은 것의 차이

알렉산더 대왕이 이스라엘에 왔을 때 어떤 유태인이 대왕에게 물었다. [대왕께서는 우리가 가진 금과 은이 갖고 싶지 않으신지요?]

그러자 알렉산더 대왕이 대답하기를, [나는 금과 같은 보화는 많이 가지고 있어, 그런건 조금도 탐나지 않소. 다만 당신들 유태인들의 전통
과 당신들의 정의는 어떤 것인지 알고 싶을 뿐이오.]하고 말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그곳 머물고 있는 동안에 두 명의 사나이가 어떤 일을 상담하기 위하여 랍비를 찾아갔다.

내용인즉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넝마더미를 샀는데, 그 넝마 속에서 많은 금화가 발견되었다. 그래서 그는 넝마를 판 사람에게, [나는
넝마를 산 것이지 금화까지 산것은 아니요. 그러니 이 금화는 마땅히 당신 것이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넝마를 판 사람은 그것을 산 사람에게, [나는 당신에게 넝마더미 전부를 판 것이니, 그 속에 들어 있는 것도 모두 당신 것이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랍비는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 판정을 내렸다.

[당신들에게는 각기 딸과 아들이 있으니, 그 두 사람을 서로 결혼시킨 후, 그 금화를 그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옳은 사리일 것이오.]

그리고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물어보았다. [대왕님, 당신의 나라에서는 이런 경우 어떤 판결을 내리십니까?]

그러자 알렉산더 대왕은 아주 간단하게 답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두 사람을 함께 죽이고 금화는 내가 갖소.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정의
요.]

포도원

한 마리의 여우가 포도밭 주위를 돌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 속으로 숨어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울타리 때문에 도저히 안으로 기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우는 궁리 끝에 사흘을 굶어 몸을 마르게 한 뒤에 가까스로 울타리 틈 사이로 들어가는데 성공하였다.

포도밭 안으로 들어간 여우는 맛있는 포도를 실컷 따 먹고 다시 포도밭에서 나오려고 하니, 배가 불러 몸이 빠져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여
우는 할 수 없이 다시 사흘 동안을 굶어서 몸을 마르게 한 후에야 겨우 바져 나올 수가 있었다.

이때 여우가 '배가 고프기는 들어 갈 때나 나올 때나 매 한가지이군'하고 말했다.

인생도 이와 같아서 사람은 누구나 빈 손으로 태어났다가 죽을 때 역시 빈손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사람이 죽으면 이 세상에 가족과 명성과 선행의 세 가지를 남기게 되는데, 선행 이외의 것은 과히 대단한 것이 못된다.

복수의 증오

어떤 남자가 '자네가 가지고 있는 칼을 좀 빌려 주게'하고 상대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상대는 '싫다'고 한마디로 거절하는 것이었다. 며칠이 지난 뒤 이번에는 반대로 앞서 거절했던 그 남자가 찾아와 [자네의 말을 좀 빌
려 주게]

하고 부탁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가지고 있는 칼을 좀 빌려 주게나]

그러자 상대는 '싫다'고 역시 한마디로 거절하였다. 며칠이 지난 뒤 이번에는 반대로 앞서 거절했던 그 남자가 찾아와 '자네의 말을 좀 빌려
주게나, 하고 부탁하자 먼저 그 남자는 말을 빌려 주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자네는 자네가 가지고 있는 칼을 내게 빌려 주지 않았으나, 나는 자네에게 내 말을 빌려 주겠네.]

이것은 증오인 것이다.

선과 악

지구를 휩쓸었던 대홍수 때, 세상의 갖가지 동물들이 노아의 방주로 몰려 들어 구해 주기를 애원하였다. 이때 善도 급히 방주로 달려 왔으
나, 노아는 <선>이 배에 오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짝을 갖춘 자만을 태운다'고 하며 냉정하게 선을 박대하였다.

그래서 <선>은 다시 숲으로 돌아가 자기의 짝이 될 상대를 찾았다. 마침내 <선>은 <惡>을 데리고 배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 때부터<선
>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악>이 있게 되었다.

나무 열매

어떤 노인이 정원에다 어린 나무를 심고 있었다. 그때 그곳을 지나던 나그네가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장께서는 언제쯤 그 나무에 열매가 열리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70년쯤 후면 열리겠지요'하고 노인이 대답하자. 나그네는 또 '노인장께서는 그때까지 살아 계실수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노
인은 [아니오, 그때까지 살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그런게 아니라오.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집 과수원에는 많은 과일이 열려 있었소.그것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의 부친께서 나를 위해 심어 놓으신 것이었지, 나도 아버님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오.]

장님의 등불

어떤 사람이 캄캄한 밤에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때 맞은편에서 장님이 등불을 들고 걸어왔다.

그 사람이 장님에게 물었다.

[당신은 장님인데, 왜 등불을 들고 다니지요?]

그러자 장님은 '내가 이 등불을 들고 걸어가야 눈 뜬 사람들이 장님이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테니까요.'라고 대답하였다.

일곱 번째의 사람

어떤 랍비가 말하기를 '내일 아침에 여섯 사람이 모여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이 되자 일곱 사람이 모였으니 초청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랍비는 그 불청객을 가려내기 위해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 있으니 그 분은 당장 돌아가시오.'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 중 누가 생각해 보아도 그 자리에 꼭 있어야 할 유능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나가 버렸다.

그 사람은 왜 그렇게 했을까? 그는 초청을 받지 않았는데도 잘못 알고 나와 있던 사람이 굴욕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하여 자신이 나갔던
것이다.

언약

아릿다운 소녀가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소녀는 혼자서 산책하다가 그만 길을 잃고 어느 우물가에 이르게 되었
다.

그녀는 갈증이 심하여 두레박줄을 타고 내려가 물을 마셨는데, 다시 올라가려고 하니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도움을 청하기 위
해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때마침 그곳을 어떤 청년이 지나다가 울음 소리를 듣고 그녀를 구해 주었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곧 사
랑을 맹세하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청년은 다시 길을 떠나게 되어, 소녀와 작별을 하기 위해 만났다. 그들은 서로가 사랑을 성실히 지킬 것을 약속하였고 결
혼할 수 있는 날까지 언제까지라도 기다리자고 굳게 언약했다.

그래서 젊은이는 자기들 약혼의 증인이 되어 줄 누군가를 찾아보자고 이야기하고 있을때 족제비 한 마리가 나타났다가 숲속으로 사라졌다.

[지금 지나간 저 족제비와 우리옆에 있는 이 우물이 증인이예요.]

두 사람은 그렇게 믿고 서로 헤어졌다. 그후 몇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녀는 서로의 약속을 지키며 그 젊은이를 기다렸지만 그녀를 떠난 젊
은이는 딴 여자와 결혼하여 아이도 낳고 약속을 잊은채 즐겁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엔가 아이가 풀밭에서 놀다가 그만 잠이 들었는
데 그때 족제비가 나타나 그 아이의 목을 물어 죽였다.부모들은 매우 슬퍼하였다.

그러나, 그 일이 있은 후 그들 사이에는 또 아이가 태어나 옛날처럼 행복한 나날으 ㄹ보내게 되었다. 아이는 걸어다닐 수 있을 만큼 자랐는
데 우물에 비친 갖가지 그림자들을 들여다보다가 그 아이마저 그만 우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젊은이는 그때서야 문득 옛날 그녀와의 언약이 생각났고, 그때 두 사람의 증인이 족제비와 우물이었다는 사실도 생각해 내었다. 그는 아내
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하고는 헤어지기로 하였다.

그리고 젊은이는 약속한 소녀가 있던 마을로 돌아왔는데, 약혼녀는 그때까지 약속을 지키며 혼자서 그르 ㄹ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두 사
람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

가정과 화평

메이어라는 랍비는 설교를 잘하기로 유명하였다. 그는 매주 금요일 밤이면 예배당에서 어김없이 설교를 했는데, 몇 백 명씩 한꺼번에 몰려
들어 그의 설교를 들었다.

그들 가운데 메이어의 설교듣기를 매우 좋아하는 여인이 있었다. 다른 여자들은 금요일 밤이되면 안식일에 먹을 음식을 만드느라 바쁜데,
그 여자만은 이 랍비의 설교를 들으러 나왔다.

메이어는 긴 시간 동안 설교를 했고 그 여인은 그 설교에 만족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남편이 문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내일이 안식일인데 음식은 장만하지 않고 어디를 쏘다니고 있느냐며 화를 내며 물었다. [도대체 어디를 갔다 왔어!]

[예베서에서 메이어 랍비님의 설교를 듣고 오는 길이예요]

그러자 남편은 몹시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 랍비의 얼굴에다 침을 뱉고 오기전에는 절대로 집에 들어올 생각은 하지도 말어!]

집에서 쫓겨난 아내는 할 수 없이 친구 집에서 머물며 남편과 별거하였다. 이 소문을 들은 메이어는 자기의 설교가 너무 길었기 때문에 한
가정의 평화를 깨뜨렸다고 몹시 후회했다. 그리고는 그 여인을 불러 눈이 몹시 아프다고 호소하면서 '남의 타액으로 씻으면 낫게 된다는데,
당신이 좀 씻어 주시오'하고 간청하였다. 그리하여 여인은 랍비의 눈에다 침을 뱉게 되었다.

제자들은 랍비에게 '선생님께선 덕망이 높으신데, 어째서 여자가 얼굴에 침을 밷도록 허락하셨습니까?'하니 랍비는 이렇게 말했다.

[가정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서는 그 보다도 더한 일이라도 할 수 있다네.]

지도자

뱀의 꼬리는 항상 머리 뒤에 붙어 머리가 가는 대로 따라다니게 마련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꼬리가 화가 나서 머리에게 불만을 터뜨렸다.
[어째서 나는 항상 네 꽁무니만 무조건 따라다녀만 하고 나는 항상 네 마음대로 나를 끌고 다닐 수 있는 거지? 이건 공평하지 못한 일이야.
나도 붕명히 뱀의 한 부분인데도 항상 노예처럼 네게 달라붙어 끌려 다니기만 해야 된다니 이건 너무 부당해.]

그러자 머리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바보같이? 너에게는 앞을 볼 수 있는 눈도 없고, 위험을 알아차릴 귀도 없고, 행동을 결정할 두뇌도 없잖니, 나는 결코
나 자신만을 위해 그렇게 하는게 아니라 너를 생각해서 끌고 다니는 거야. 알겠니?]

꼬리가 큰 소리로 비웃으며 말했다.

[그런 말은 지겹도록 들어 왔어.폭군이나 독재자들도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위하여 일한다는 구실로, 제 마음대로 하고 있는 거야.]

이렇게 응수하자 머리는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정 그렇다면 네가 한번 내가 하는 일을 맡아 볼래.]

그러자 꼬리는 매우 좋아하며, 신이 나서 앞에 나서서 먼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하여 뱀은 곧 도랑으로 떨어졌고, 머
리가 천신만고 끝에 뱀은 간신히 도랑에서 기어 올라올 수 있었다. 또 얼마를 기어다니다가 꼬리는 그만 가시투성이인 덤불속으로 들어가
고 말았다. 그러나 꼬리가 가시덤불을 빠져나오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가시에 점점 더 찔려서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뱀은 머리
의 도움으로 상처 투성이가 되어 간신히 가시덤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또다시 꼬리가 앞장서서 나가다가, 이번에는 불길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몸이 점점 뜨거워지고 갑자기 앞이 캄캄해졌다. 뱀은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머리가 필사적으로 탈출하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몸은 불타고, 머리도 함께 죽어 버렸다.

머리는 결국 맹목적인 꼬리에 의해서 희생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자를 선택할 때에는 항상 머리와 같은 자를 선택해야지 꼬리와 같
은 자를 선택해서는 안된다.

세 가지의 행위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사람이 여행 도중에 병이 들고 말았다. 그는 자기는 이제는 소생할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여관 주인을 불러놓고 말
했다.

[나는 이대로 그만 죽을 것 같소.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내 가족이 찾아오면, 내가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내주시오.그러
나 찾아온 식구들이 세 가지 현명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내 물건들을 절대로 내주지 마시오.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 내 아들에게, 만일 내가
여행 중에 죽게 된다면 내 유산을 물려받기 위해서는 세 가지 현명한 행동을 하도록 일러 두었습니다.]

투숙한 나그네는 죽었고, 여관 주인은 유태인의 의식에 맞게 매장해 주었다. 동시에 마을 사람들에게 그의 죽음이 알려졌고, 물론 예루살렘
에 있는 아들에게도 소식이 전해졌다.

예루살렘에 있는 아들이 부음을 전해 듣고, 서둘러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마을로 찾아왔다. 그러나 그는 부친이 묵었던 여관을 알 수가 없었
다. 왜냐하면 부친이 그 여관을 아들에게 알려 주지 말라고 유언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들은 자신의 지혜로 그 여관을 찾아낼 수 밖에
없었다.

그때, 나무장사가 땔나무를 가득 싣고 지나가고 있었다. 아들은 나무장사를 불러 땔나무를 산 다음, 그 나무를 예루살렘에서 온 나그네가
죽은 여관으로 가져다 달라고 말하곤, 그 나무 장사가 가는대로 따라갔다.

여관 주인이 자기는 땔나무를 산 일이 없노라고 말하자. 나무장사는 '아닙니다.지금 내 뒤를 따라오고 있는 사람이 이 나무를 사서 이리로
가져다 다랄고 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아들의 첫번째 현명한 행동이었다.

여관 주인은 그를 반갑게 맞아들인 다음, 저녁식사를 대접했다. 식탁 위에는 다섯 마리의 비둘기 요리와 한마리의 닭요리가 올라와 있었다.

식탁에는 그 밖에도 주인 부부와 두 아들과 두 딸, 이렇게 모두 일곱 사람이 자리를 같이 했다. 주인이 '이제 음식을 모두에게 나누어 주시
오' 라고 그에게 말하자, 그는 '아닙니다. 주인께서 나누어 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사양하였다.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아닙니다. 당신이 손님이니까, 당신이 좋을 대로 나누어 주시지요.]

그래서 그는 음식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먼저 비둘기 한 마리를 두 아들에게 주고, 또 한 마리는 두 딸에게 그리고 또 한마리는 주인 부
부에게 주고, 나머지는 자기 몫으로 놓았다.

이것이 그 아들의 두 번째 현명한 행동이었다.

주인은 매우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어서 그는 닭 요리를 나누기 시작했다. 먼저 머리는 떼어 주인 부부에
게 주고, 두 다리는 두 아들에게 주고 두 날개는 두 딸에게 준 다음 큰 몸통은 자기 몫으로 놓았다.

이것이 그 아들의 세번째 현명한 행동이었다.

마침내 주인은 화가 치밀어 야단을 쳤다.

[당신네 고장에서는 이렇게 합니까? 당신이 비둘기를 나눌 때에는 참았으나, 닭을 나누는 것을 보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소,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오!]

그러자 젊은이는, [나는 처음부터 음식을 나누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인께서 나에게 간곡히 부탁하시어 최선을 다해 나누
어 드린 것 뿐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나누어 드린 이유를 말씀드리지요.주인과 부인과 비둘기 한 마리를 합하면 셋이고, 두 아드님과 비둘
기 한 마리를 합하면 셋이고, 두 따님과 비둘기 한 마리를 합하면 셋이고, 나와 비둘기 두마리를 합하면 셋이니, 매우 공평하게 나눈 것입니
다. 또 주인 부부께서는 이 집안의 우두머리이므로 닭의 머리를 드렸고, 두 아드님은 이 집안의 기둥이므로 다리를 주었고, 두 따님은 언제
라도 날개가 돋쳐 시집을 갈 것이므로 날개를 준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배를 타고 여기에 왔고, 다시 배를 타고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배처
럼 생긴 몸통을 가진 것입니다.    이제 빨리 우리 아버님의 유산이나 내 주십시오.]

성 윤리

어떤 젊은이가 한 아가씨에 대한 깊은 사랑에 빠져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의사가 젊은이를 진찰해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당신의 소망이 이루어지지 못하며 상사병이 된 것이므로 그 여인과 성관계를 가지면 나을 게요.]

그래서 젊은이는 랍비에게 의사가 이렇게 말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상담했다. 랍비는 절대로 그와 같은 성 관계를 가져서는 안된
다고 말하였다.

젊은이는, 그렇다면 그 여자가 벌거벗은 알몽뚱이로 자기 앞에 서서, 자신의 우울한 마음을 풀어 병을 낫게 할 수 있다면 어떻겠느냐고 물
었다. 랍비는 그것도 역시 안된다고 말했다.

젊은이는 다시, 그렇다면 자기와 그 여자가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서서 이야기라도 하는 것은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나 랍비는 그것조
차도 안된다고 말했다.

물론 <탈무드>에는 그 여인이 결혼한 여인인지 처녀인지는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그 젊은이와 다른 사람들까지도, 어째서 랍비께서는
그 모든 것을 그처럼 강경하게 반대만 하느냐고 묻자 랍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은 마땅히 정숙해야 하므로 순결한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고 하여 성 관계를 가져도 좋다고 한다면, 사회의 규율은 무너지고 말 것이
오.]

재산

항해하던 도중 배 안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배 안의 승객들은 모두가 큰 부자들이었고 랍비 한 사람이 같이타고 랍비는 [나는 내 재산을 당신들에게 보여 줄 수는 없지만 부자로 치면
내가 제일 부자로 생각하오]

하고 말했다.

그때 마침 해적들이 나타나 그 배를 습격했고, 부자들은 금은 보석과 모든 재산을 해적들에게 빼앗겨 버렸다.

해적들이 가버린 뒤, 배는 가까스로 어떤 항구에 다다랐다. 랍비의 높은 교양과 학식은 곧 그 항구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어, 그는 학생
들을 모아놓고 가르쳤다.

얼마 뒤 랍비는 함께 배를 타고 여행했던 부자들을 만났으나, 그들은 모두가 비참한 가난뱅이로 전락해 있었다. 그들은 랍비에게 이렇게 말
했다. [당신의 말이 옳았소,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것과 같소.]

지식은 언제 어느 때라도 누구에도 빼앗기는 일 없이 지닐 수 있기 때문에, 교육이 가장 중요한 재산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천당과 지옥

어떤 사람이 아버지에게 닭을 잡아 극진히 대접하였다.

'이 닭을 어디서 구했느냐'고 아버지가 묻자, 아들은 '아버지, 그런 염려는 하지 마시고 어서 많이 잡수시기나 하세요.'라고 대답했다. 그래
서 아버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또 한 사람은 밀가루를 빻는 방아꾼이었는데, 왕이 나라 안에 있는 방아꾼을 소집한다는 포고령을 내려, 아버지에게 자기 대신 방앗간을 돌
보게 하고 왕이 있는 궁성으로 갔다.

여러분들은 이들 두 아들 가운데 누가 천국으로 가고 누가 지옥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어째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두번째 사람은 왕이 강제로 소집한 사람들을 혹사하고 매질하고 좋은 음식도 주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아버지 대신 자기가 갔던 것
이다. 그래서 그는 죽어서 천국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닭을 잡아 드린 사나이는 아버지가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지옥에 갔다.

부모에게 정성을 다해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일을 하게 하는 편이 낫다

세친구

어느날, 왕이 한 사람에게 전령을 보내어 즉시 대령할 것을 명령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는 세 명의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첫번째 친구를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있어, 그 친구가 자기의 가장 좋은 친구라고 여기고 있었다. 두 번째 친구 역시 사랑하고 있으나 첫번째 친구처럼 소중
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았으며, 세번째 친구도 친구이기는 했지만 별로 큰 관심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왕의 부름을 받자 그는 자기가 어떤 나쁜 짓이라도 하여 벌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하여 무서웠다. 그래서 세 명의 친구들에게 함께 가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는 먼저 제일 소중히 여기고 있는 친구에게 함께 가 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지만, 그 친구는 아무 이유도 말하지 않고 거절했다. 그래서
두번째 친구에게 부탁하였더니, 궁전 문 앞까지는 함께 가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갈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다음 세번째 친구에게 부탁하
자.

[그러지, 내가 함께 가주겠네, 자네는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으니 조금도 두려워할 것이 없네, 내가 함께 가서 임금님께 잘 말씀드려
주겠네.]

하고 쾌히 응해 주었다.

왜 세명의 친구들은 각기 그렇게 말했을까? 첫번째 친구란 곧 재산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돈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더라도 죽을
때에는 그대로 남겨두고 가야하는 것이다. 두번째 친구란 친척을 말하는 것이다. 친척은 무덤까지도 따라가 주지만 그를 그곳에 혼자 남겨
두고 돌아가 버린다.

세번째 친구는 '즉' 선행을 말하는 것이다. 선행은, 평소에는 별로 눈에 띄지 않지만 죽은 뒤에는 영원히 그와 함께 남아 있기 마련이다.

술의 역사

이 세상 최초의 인간이 포도나무를 키우고 있었다. 그때 악마가 찾아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인간이 대답하기를 '지금 근사한 식물을 키우고 있다'고 말하자 악마는 이런 식물은 처음 보는 것이군'하면서 놀라워했다. 그래서 인간은
악마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

'이 식물에는 아주 달콤하고 맛있는 열매가 열리는데, 익은 다음 그 즙을 내어 마시면 아주 행복해진다네.]

악마는 자기도 꼭 한몫 끼워 달라고 애원하고는, 양과 사자와 원숭이와 돼지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 악마는 이 짐승들을 죽여 그 피를 거름
으로 썼다. 포도주는 이렇게 해서 세상에 처음 생겨났다고 한다.

그래서 술을 처음 마시기 시작할 때에는 양같이 온순하고,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납게 되고, 조금 더 마시며 원숭이처럼 춤추거나 노
래부르며, 더 많이 마시게 되면 토하고 뒹굴고 하여 돼지처럼 추하게 되니, 이것은 악마가 인간들에게 준 선물이기 때문이다.

효도

옛날 이스라엘의 다마라는 곳에 유태인이 아닌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금화 3000개의 값이 나가는 다이아몬드 한 개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날, 랍비가 사원을 꾸미는데 쓰려고 금화 3000개를 가지고 그의 집으로 다이아몬드를 사러 갔다. 그때 그 사람의 부친이 다이
아몬드를 넣어 둔 금고의 열쇠를 베게 밑에 넣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난처해진 아들은 '낮잠을 주무시는 아버지를 깨울 수 없으니 다이아
몬드를 팔지 못하겠다'는 대답이었다.

그만큼 막대한 돈벌이가 되는데도 낮잠을 주무시는 아버지를 깨우지 않으려는 것은 대단한 효도라고 감탄하여, 랍비는 널리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알렸다.

어머니

어떤 랍비가 어머니와 단 둘이서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길에 돌이 많고 울퉁불퉁하여 걷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래서 랍비는 어머니가
걸음을 내디닐 때마다 자기의 손을 어머니의 발 밑에 집어 넣었다.

<탈무드>의 내용에는 부모가 등장하면, 늘 아버지를 먼저 앞세우는데, 이것은 유일하게 어머니만이 나오는 이야기이다. 어머니도 아버지
와 마찬가지로 소중한 존재임을 말해 주기 위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같이 물을 마시고 싶어 한다면, 물은 아버지에게 먼저 가져간다. 왜냐하면 어머니도 아버지를 소중히 섬
기므로 어머니에게 먼저 거져갈지라도 어머니는 자기가 먼저 마시지 않고 아버님에게 건네주기 때문이다.

처단

요람이 누워 있는 갓 태어난 아이의 머리통을 쪼아, 어린아이를 죽게 한 닭이 아이를 죽였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증인이 불려 나가 그 사실을 증언했다. 불쌍하게도 닭은 유죄 판결을 받아 죽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아무리 미물인 닭이라 할지라도 살인자로서 유죄가 확정되지 않는 한 경솔히 처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교훈이다.

두 시간의 차

어떤 왕이 가지고 있는 포도원에 많은 일꾼들이 일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한 일꾼은 비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다른 일꾼들보다 유난히 뛰
어났다. 어느 날 왕이 포도원을 찾아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일꾼과 함께 포도원안을 산책하였다.

유태인의 관례대로 일한 댓가는 동전으로 매일 지불되었다. 그 날도 하루의 일이 끝나자, 일꾼들은 돈을 받아 가려고 차례로 줄을 섰다. 일
꾼들은 모드 같은 임금을 받고 있었는데, 능력이 뛰어난 그 일꾼도 같은 금액의 돈을 받자, 다른 일꾼들은 왕에게 항의하였다.

[이 사람은 두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으며, 나머지 시간은 임금님과 함께 지냈다. 그런데도 우리와 똑같은 임금을 받는다는 것은 불공평하
다.]

그러자 왕은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은 두 시간 동안 너희들이 하루 종일 걸려서 한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해냈다.]

26세의 나이에 죽은 랍비도, 다른 사람들이 백 년에 걸쳐 한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을 많이 해냈다. 사람은 얼마 동안을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
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업적을 남겼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거미와 모기와 미치광이

다윗 왕은 거미란 놈은 아무 곳에나 거미줄을 치는 더럽고 아무 쓸모가 없는 벌레라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전쟁터에서 그는 적군에서 포위되어 빠져나갈 길을 잃었다. 왕은 간신히 어느 동굴 속으로 숨어 들게 되었는데, 마침 그 동
굴 입구에는 거미 한 마리가 거미줄을 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곧이어 그를 추격해 온 적군의 병사는 동굴 앞까지 왔으나, 동굴 입구에 거미
줄이 있는 것을 보고 동굴 안에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여 그냥 돌아가 버렸다.

또 다윗 왕은 적장이 잠자고 있는 방에 숨어 들어가 적장의 칼을 훔쳐낸 다음, 이튿날 아침에 '내가 당신이 자고 있을 때 칼을 가져왔을 정
도이니 마음만 먹었다면 당신의 목을 가져오는 것쯤은 간단히 해낼 수 있었소.' 하는말을 전하여, 그의 마음을 변하게 하려는 꾀를 생각하
고 있었다. 그러나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밤 가까스로 적장의 침실에 숨어 들어갔는데, 칼이 적장의 다리 밑에 있어서
꺼낼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윗 왕은 단념하고 돌아가려 했다.

바로 그때 모기 한마리가 날아와 적장의 다리 위에 앉았다. 적장은 무의식중에 다리를 움직였다. 다윗왕은 그틈을 이용해 재빠리 적장의 칼
을 빼낼 수 있었다.

그리고 한번은 다윗 왕의 적군에게 포위되어 위기일발의 순간에 처했을 때 그는 느닷없이 미치광이 흉내를 내었다. 적의 병사들은 미치광
이가 왕은 아니겠지 생각하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

세상의 어떤 것이라도 쓸모 없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아무리 보잘것 없는 것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가치있는 이야기

어떤 배가 항해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높은 파도가 일고 심한 폭풍우가 몰아쳐 뱃길을 잃고 말았다.

아침이 되자 바다는 고요해졌고, 배는 아름다운 항구가 있는 섬에 닿아 있었다. 배는 항구에 닻을 내리고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그 섬에는 가지각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해 있었고, 맛있는 과일들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들이 신선한 녹음을 드리우고 있었다. 또한 온
갖 새들은 즐겁게 지저귀고 있었다.

배를 탄 사람들은 다섯 그룹으로 나뉘었다.

첫째 그룹은, 자기들이 섬에 상륙해 있는 동안에 순풍이 불어와 배가 떠나 벌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리 섬이 아름다워도 빨
리 자기들의 목적지로 갈 생각으로 아예 상륙조차 하지 않고 배에 남아 있었다.

둘째 그룹은, 서둘러 섬에 올라가 향그러운 꽃향기를 맡고 나무그늘 아래에서 맛있는 과일을 따 먹고는 기운을 되찾아 곧 배로 돌아왔다.

셋째 그룹은 섬에 올라가 너무 오래 있다가 순풍이 불어오자 배가 떠나는 줄 알고 당황하여 돌아왔기 때문에, 소지품을 잃어버렸고 자기들
이 앉아 있던 배 안의 좋은 자리마저 빼앗겼다.

넷째 그룹은, 순풍이 불어 선원들이 닻을 올리는 것을 보았지만, 돛을 달려면 아직 시간이 있으며 선장이 자기들을 남겨 두고는 떠나지 않
으리라는 등의 생각으로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정말로 배가 항구를 떠나가자 허겁지겁 헤엄을 쳐서 배에 올라 갈 수 있었다. 그래
서 바위나 뱃전에 부딪쳐 입은 상처는 항해가 끝날때까지도 아물지 않았다.

다섯째 그룹은, 너무 많이 먹고 아름다운 경치에 도취되어, 배의 출항을 알리는 소리조차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숲 속의 맹수들의 밥이
되거나 독이 있는 열매를 먹고 병이 들어 마침내 모두 죽고 말았다.

여러분이라면 이 다섯 그룹 중 어디에 끼이겠는가?

이 이야기에서 나오는 배는 인생에서의 선행을 상징하고 있고 섬은 쾌락을 상징하고 있다.

첫째 그룹은, 인생에서 쾌락을 전혀 맛보려고 하지 않았다.

둘째 그룹은, 쾌락을 조금 맛보았으나 배를 타고 목적지에 가야 하는 의무감을 잊어버리지 않은 가장 현명한 그룹이다.

셋째 그룹은, 쾌락에 지나치게 빠지지 않고 돌아왔으나 역시 고생을 좀 하였다. 넷째 그룹은, 결국 선행으로 돌아오기는 했으나 너무 늦어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그러나 다섯째 그룹은, 인간이 빠지기 쉬운 것으로 일생동안 허영을 위해 살거나 앞날의 일
을 잊어버린채 살고, 달콤한 과일 속에 들어 있는 독을 먹고 죽어간 것이다

애정의 편지

어떤 청년과 아름다운 처녀가 있었는데,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다. 그 청년은 일생 동안 아가씨에게 성실할 것을 맹세하였다. 그들은 얼마
동안 매사가 잘 되어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젊은이는 이 처녀를 남겨 두고 여행길에 나서야만 했다. 처녀는 오랜 동안 젊은
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으나,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 처녀의 다정한 친구들은 그녀를 동정했고, 그녀를 시기하고 있던 여자들은 젊은이가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비웃었다. 처녀는
집으로 돌아가 젊은이가 일생동안 성실한 것을 맹세했던 편지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편지는, 이 처녀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고 그녀
에게 힘이 되었다. 어느날 젊은이가 돌아오자, 처녀는 그 동안의 슬픔을 그에게 호소했다. 젊은이는 '그렇게 괴로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어
떻게 나만을 기다리며 정절을 지킬 수 있었소?' 하고 물었다.그러자 처녀는 이렇게 대답하며 웃었다.

[나는 이스라엘과 같은 몸이에요.]

= 이스라엘이 이민족에게 지배받고 있을 때, 다른 나라 사람들은 모두 유태인을 비웃었고, 이스라엘이 독립한다는 말을 듣자, 그들은 이스
라엘의 현인들을 바보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유태인은 예배당과 학교에서 이스라엘을 굳게 지켜왔다. 유태인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
에 주신 거룩한 약속을 믿고 살아왔다. 하나님이 그 약속을 지켜 주셨으므로 이스라엘은 마침내 독립했다. 이 이야기 속의 처녀도 청년이
맹세한 편지를 읽으면서 청년을 믿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같다고 말했다.

하늘지붕

유태인 사회에는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삼나무 묘목을 심고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소나무 묘목을 심는 풍습이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결혼
할 때, 그 삼나무가 가지와 소나무 가지로 하늘지붕을 만들어 두 사람을 덮어 준다.

신부가 하늘지붕 밑으로 들어가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나, 그 다음에 하늘지붕 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값진 이익

몇 명의 랍비들이 악당의 무리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 악당들은 사람의 피라도 먹어치울 만큼 지독한 인물들이었다. 세상에 그들처럼 잔
인하고 간사한 인간들은 아마 없으리라.

어떤 랍비가, 그와 같은 인간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원망했다. 그러자 그들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랍비가 다음과 같
이 말했다. [아니오, 유태인들로서 그런 생각을 가진다는 것은 잘못이요. 아무리 그 악당들이 죽어 없어지는게 낫다 하더라도, 그러한 기도
를 하는 것은 잘못이오, 악당들이 죽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악당들이 죄를 회개하는 것을 바라야 옳은 일이오.

악당들을 벌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아무 이득도 되지 않는다. 악당들로 하여금 스스로 잘못을 회개하게 하여 좋은 사람이 되어 우리 편이 되
지 않는한 손해가 될 뿐이다.]

남겨 놓은 것

인류 최초의 여성은 아담의 갈비뼈 한 개를 빼내어 만들었다고 구약 성서는 말하고 있다.

어느날 로마 황제가 랍비의 집을 찾아갔다.

[하나님은 도둑이야. 왜 남자가 잠자고 있는 사이에 허락도 없이 남의 갈비뼈를 훔쳐갔소?]

황제가 이렇게 묻자 옆에서 듣고 있던 랍비의 딸이 대화에 끼어 들었다. [황제 폐하, 부하 한 사람만 빌려 주십시오. 좀 난처한 일이 생겨서
그것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건 별로 어렵지 않지만, 그 난처한 일이란 게 무엇이지? 황제가 물었다.]

[사실은 어제밤 집에 도둑이 들어 금고를 하나 훔쳐갔습니다. 그런데, 그 도둑은 금고 대신에 황금 항아리를 두고 갔습니다. 그래서 왜 그랬
는지 조사해 보고 싶습니다.]

하고 랍비의 딸이 대답했다. 그러자 황제는, [그래, 그것 참 부러운 일이군. 그런 도둑이라면 내게도 찾아왔으면 좋겠군.]

황제가 이렇게 부러워하자 랍비의 딸이 말했다.

[그러실 테죠. 그렇지만 그것은 결국 아담의 몸에 일어났던 사건과 같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갈비뼈 하나를 훔쳐갔지만, 그 대신에 이 세상
에 여자를 남기신 것입니다.]

남자의 여자

착하기로 소문난 어떤 부부가 어쩌다가 이혼을 하게 되었다. 그후 남편은 곧 재혼했지만 운이 없어서인지 나쁜 여자를 만난 탓으로 그는 새
로얻은 아내처럼 똑같이 나쁜 남자가 되고 말았다.

아내도 이어 재혼했는데, 그녀 또한 나쁜 남자를 만났다. 그러나 새로 얻은 남편은 아내처럼 어질고 선량한 사람이 되었다. 남자는 이처럼
언제나 여자에 의해서 달라지게 마련이다

유태의 은둔자

만일 유태인이 인간 세상에서 떠나 10년 오직 공부 한가지만 한다면, 그는 10년 후에는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고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훌륭한 공부라 해도 인간 사회로부터 자기 자신을 고립시키는 것은 하나의 죄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유태인의 사회
에는 은둔자라곤 없다.

법률

유태인의 법률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킬 수 없는 부당한 법률은 만들수 없다는 원칙이 있다.

알몽뚱이 임금님

착한 마음씨를 가진 부자가 있었다. 그는 데리고 있던 노예를 기쁘게 해 주려고 많은 물건을 배에 실어 주면서 어디든지 좋은 곳을 찾아가
부디 행복하게 살라고 해방시켜 주었다.

마침내 노예의 배가 넓은 바다로 나아갔을 때 배는 심한 폭풍우를 만나 침몰하고 말았다. 배에 가득 실었던 물건들을 다 잃어버린 노예는,
몸뚱이 하나만 살아남아 가까스로 가까운 섬에 헤엄쳐 도착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은 노예는 몹시 슬픔에 빠져 있었다.

섬 안을 얼마 동안인가 헤매다가 큰 마을을 만났다. 노예는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고 알몸뚱이였다. 하지만 그가 마을에 이르자 마을 사람
들은 모두 환호성을 올리며 그를 맞이하여 '임금님 만세'라고 외쳤다. 그리고 그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노예는 호화스런 궁전에 살고 있는 것이 마치 꿈속에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믿기지 않아서 어떤 사람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말해 주게나?나는 여기에 돈 한푼없이 알몸으로 도착했는데 갑자기 내가 왕이 되다니?]

그러자 그 사람은 [우리는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라 영혼이지요. 그래서 일년에 한번씩 살아있는 인간이 이 섬으로 찾아와 우리들이 왕이
되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심하십시오. 임금님께서는 1년이 지나게 되면 이 섬에서 쫓겨나 생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섬에
혼자 버려질 것입니다.]

왕이 노예는 그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참으로 고맙소.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1년 뒤를 대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겠군.]

그래서 임금이 된 노예는 사막과 같은 섬에 가서, 꽃도 심고 과일나무도 심어 1년 후의 일에 대비하는 일을 시작했다.

1년이 지나자, 노에는 예견한대로 그 행복한 섬에서 쫓겨났다. 지금까지 사치스런 생활을 하던 왕이었지만, 그가 이 섬에 표류해 닿았을 때
와 똑같이 알몸뚱이의 신세가 되어 죽음의 섬으로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사막처럼 황폐했던 섬에 도착하여 보니, 갖가지 꽃이 피고 과일이 열린 살기 좋은 땅이 되어 있었다. 또 일찍이 그 섬으로 쫓겨 온 사람들도
그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가 있었다.

이 이야기는 몇 가지의 상징적인 의미를 시사해 준다. 앞의 마음씨 착한 부자는 하나님이고, 노예는 인간의 영혼이다. 그후 노예가 표류하
다가 상륙한 섬은 지상의 속세이며, 그 섬의 사람들은 인류요.1년 후 쫓겨간 섬은 내세일 것이며, 그곳에 있는 온갖 꽃과 과일을 선행의 결
과였다.

만찬

어떤 왕이 하인들을 위해 만찬을 베풀겠다고 했다. 그러나 만찬이 열리는 시간은 알려 주지 않았다.

현명한 하인은, '임금님께서 하시는 일이니까 만찬은 언제라도 열릴 거야 그 만찬에 참석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지' 이렇게 생각
하고 궁전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어리석은 하인은 만찬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 아직도 시간이 넉넉하다고 생각하여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다. 만찬이
열렸을 때, 현명한 하인은 곧 참석하여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지만, 어리석은 하인은 만찬에 참석하지도 못했다.

여러분들도 언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지 모른다. 하나님으로부터 만찬에 초대받았을 때 당황하지 말고 참석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를 하
여야 한다.

육체의 영혼

왕은 <오차>라고 하는 아주 맛있는 과일이 열리는 과수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두 사람의 경비원을 두어 그 과일나무를 지켰다. 한
사람은 장님이었고, 또 한 사람은 절름발이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흉계를 꾸며 한패가 되어 과일을 따 먹자고 의논하였다. 그리하여 장님이 절름발이를 어깨위에 올려 앉히고 절름발이
는 방향을 가리켜서, 두 사람은 맛있는 과일을 실컷 훔쳐 먹었다.

왕은 몹시 노하여 두 사람을 심문하였다. 장님은 앞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자기는 과일을 따 먹을 수 없다고 변명하였고, 절름발이는 저렇
게 높은 곳에 자기가 어떻게 올라가 과일을 따 먹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것도 그렇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왕은 두 사람의 말을 믿지 않았다. 어떤 일을 처리할 때 둘의 힘은 하나의 힘보다 훨씬 위대하다.

사람은 육체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정신만으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따라서 육체와 정신의 힘이 합쳐져야 비로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해낼 수가 있다.

잃어버린 물건

한 랍비가 로마에 갔을 때 그곳 거리에는 공고문이 나붙어 있었다. 그 공고문에는, '왕비께서 대단히 귀한 보석을 잃어버렸다. 30일 이내에
그것을 찾아 주는 자에게는 많은 상금을 주겠지만, 만일 30일이 지난 후에 그것을 소유한 자가 발견되면 즉시 사형에 처할 것이다.' 라고 씌
어 있었다.

랍비는 우연히 그 보물을 발견하게 되어 31일째 되는 날 그것을 갖고나서 왕비 앞에 바쳤다. 그러자 왕비가, [당신은 한 달 전 공고문을 발
표하였을 때 이곳에 있었나요?]

라고 묻자, 랍비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30일이 지난 후에 이것을 가져오면 당신이 어떤 처벌을 받는지도 알고 있나요?]

왕비의 물음에 랍비는 그것도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왕비는 다시 안타깝게 물었다.

[그러면 어째서 30일이 지나도록 이것을 지니고 있었나요? 만일 어제만 가져왔어도 당신은 많은 상금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오. 당신은 목
숨이 아깝지도 않나요?]

그러자 랍비는 이렇게 대답했다.

[만일 30일 이전에 이 물건을 되돌려 드렸다면, 뭇 사람들은 내가 왕비님을 두려워하거나 존경을 표하기 위하여 가져왔다고 오해할 것입니
다. 내가 오늘까지 기다렸다가 이것을 가져온 것은, 나는 결코 왕비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하나
님뿐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비는 '훌륭하신 하나님을 가진 당신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오.'하며 진정으로 감사해 하였다.

희망

랍비 아키바가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작은 램프를 하나 가지고 있었으며, 나귀와 개가 그의 길동무가 되었다.

날이 저물어 어둠이 깔리자, 아키바는 헛간 한 채를 얻어 그곳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그러나 아직 잠을 자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으므로, 그
는 램프 불을 붙여 놓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바람이 불어 등불이 꺼졌다.

그래서 랍비는 하는 수 없이 잠을 청하였다.

그가 잠을 잔 그날 밤에 여우가 그의 개를 물어가 버렸고, 사자가 그의 나귀마저 죽여 버렸다.

아침이 되자, 그는 할 수 없이 램프만을 가지고 혼자 길을 떠났다. 어떤 마을엔가 도착했을 때, 그 마을엔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가 없었다. 그는 전날 밤 도둑들이 이 마을에 들이닥쳐 집을 파괴하고 마을 사람들을 모두 몰살시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일 램프가 바
람에 꺼지지 않았다면, 그도 도둑들에게 들켰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개가 살아 있었다면, 개가 짖어대어 도둑들이 몰려 왔을 것이고, 또 나
귀도 역시 소란을 피웠을 것이다. 결국 그는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어버린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랍비 아키바는 '아무리 최악의 상황에서라도 인간은 희망을 잃어서는 안된다.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바뀌는 일도 없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反 유태인

로마의 여러 황제 중에서 유태인을 제일 미워한 하드리아누스라는 황제가 있었다.

어떤 유태인이 하드리아누스 황제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폐하, 안녕하셨습니까?]

라고 그가 인사를 하자 황제가 '너는 누구냐?'하고 물었다. 그가 유태인이라고 대답하자 황제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당장 저 놈의 목을
베어라.]

이튿날 또 다른 유태인 하나가 황제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는 황제에게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지나쳤다. 그러자 황제가 명령했다.

[로마 황제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 저 불경한 놈의 목을 쳐라.]

그러자 옆에 있던 신하들이 황제에게 물었다.

[폐하께서는 어제는 인사한 사람을 죽이셨는데, 오늘은 인사를 하지 않은 사람을 또 죽이셨습니다. 도대체 어찌된 연유입니까?]

황제가 대답했다.

[내가 한 일은 양쪽이 다 옳다. 그대들은 잘 모르는 일이지만, 나는 유태인을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지.]

아무튼 유태인이 어떤 행동을 하든지 반유태인이었던 황제 하드리이누스는, 유태인이란 이유만으로 유태인을 죽였다는 가슴아픈 이야기이
다.

암시

어떤 로마의 장교가 랍비를 만났다.

[유태인은 매우 현명하다는 말을 들었소. 오늘 밤에 내가 무슨 꿈을 꾸게 될지 알려줄 수는 없겠소.]

하고 장교가 말했다. 당시 로마의 가장 큰 적은 페르시아였다.

[페르시아군이 로마를 습격하여 로마 군을 대파하고 로마를 지배하여, 로마 사람들을 노에로 삼아 로마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일을 시키
는 꿈을 꿀 것이오.]

이튿날 로마의 장교가 다시 랍비를 찾아와서 [어떻게 당신은 내가 꾸게 될 꿈을 미리 예언할 수 있었소?] 하고 물었다.

꿈이란 암시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그 장교는 몰랐고, 자기가 암시에 걸려 있었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모놀로그

로마의 황제가 제일 위대한 랍비와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의 생일이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두 나라의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을 때에도, 두 사람은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황제가 랍비와 절친하다는 사실은 두 나라의
관계로 보아 과히 좋은 일은 아니었으므로, 황제가 랍비에게 무엇을 물으려 할 때에는 사람을 보내어 제3자를 통해 그의 의견을 물어야 했
다.

어느날 황제는 랍비에게 사자를 통해 편지로 자기 생각을 물었다.

[나는 성취하고 싶은 것이 두가지 있는데, 첫째는 내가 죽은 뒤 내 아들을 왕위에 오르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스라엘의 태베리아스라는
도시를 자유 관세 도시로 만드는 것이오. 나는 이 가운데 하나밖에 성취할 자신이 없는데 이 두가지를 모두 이룰 수 있는 길은 없겠소?]

그 당시는 두 나라의 관계가 악화 일로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황제의 물음에 랍비가 대답을 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국민들에게 큰 악영
향을 끼칠 것을 자명한 일이었다. 그래서, 랍비는 황제의 물음에 대답을 보낼 수가 없었다.

사자가 돌아오자, 황제는 다급하게 물었다.

[그래, 랍비가 보고 뭐라고 하였느냐?]

사자가 대답했다.

[랍비는 편지를 잃어 본 후, 자기의 아들을 무등을 태워 아들로 하여금 비둘기를 하늘로 날려 보내게 했습니다. 그 밖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황제는, 먼저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아들로 하여금 자유 관계 도시를 만들게 하면 된다는 랍비의 뜻을 알 수 있었다.

황제로부터 또 사자가 찾아왔다.

'나라의 신하들이 내 마음을 괴롭히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소?'라는 질문이었다.

랍비는 역시 아무 말도 않고 밭으로 나가 채소 한 포기를 뽑아 왔다.

잠시 후 다시 밭에 나가 한 포기를 뽑아 오고, 잠시 후에 또한 포기를 뽑아 오는 것이었다. 황제는 랍비가 말하려는 뜻을 알 수 있었다. 황제
로부터 또 사자가 찾아왔다.

'나라의 신하들이 내 마음을 괴롭히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소?'라는 질문이었다.

랍비는 역시 아무 말도 않고 밭으로 나가 채소 한 포기를 뽑아 왔다. 잠시후에 다시 밭에 나가 한 포기를 뽑아 오고, 잠시 후에 또한 포기를
뽑아 오는 것이었다. 황제는 랍비가 말하려는 뜻을 알 수 있었다.

그 뜻은 이러하였다. 적들을 한번에 일망타진시키려하지 말고 몇 번에 나누어 한 사람 한 사람 제거하라는 것이었다. 인간의 의사는 이처럼
말이나 글에 의존하지 않아도 충분히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암시장

어떤 현명한 재판관이 있었다. 어느날 시장 거리를 거닐던 그는 많은 장물들이 그 곳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는 많은 사
람들과 도둑들에게 경종을 올려주기 위해서는 어떤 시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족제비 한 마리에게 작은 고깃덩이 하나를 주었다. 그러자 족제비는 고깃덩이를 물고 곧 자기의 작은 굴로 물고 가 감추었다. 사람들
은 족제비가 고깃덩이를 감춘 것을 쉽게 알 수가 있었다. 재판관은 족제비의 작은 굴을 막아 버린 다음, 이번에는 더 큰 고깃덩이를 족제비
에게 주었다. 그러자 족제비는 고깃덩이를 문 채 재판관 앞으로 돌아왔다. 족제비는 자기가 갖고 있는 고깃덩이를 처치할 수 없자 그 고기
를 주었던 사람에게 다시 가지고 돌아온 것이다.

족제비와 재판관의 이 일을 지켜본 사람들은 시장으로 달려가 자신들이 도둑맞은 물건들이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다
시 찾아갈 수 있었다.

시집가는 딸에게 현명한 어머니가

사랑하는 딸아, 네가 만일 남편을 왕처럼 받든다면, 너의 남편은 너를 여왕처럼 모실 것이다. 그러나 너의 행동거지가 마치 하녀같으면 너
의 남편은 너를 하녀처럼 다룰 것이다. 만일 네가 너무 자존심을 내세워 남편에게 봉사하기를 꺼려 한다면, 남편은 힘으로 너를 하녀로 만
들고 말 것이다.

네 남편이 자기 친구를 방문하게 될 때는 반드시 목욕을 하고 옷차림을 단정하게 하여 나가게 도와라, 그리고 남편의 친구가 집에 찾아 오
거든, 갖은 정성을 다하여 극진히 대접하여라.그렇게 하면 남편은 너를 아주 소중하게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항상 가정을 위해 마음을 쓰고, 특히 남편의 소지품을 소중하게 다루어라.그리하면 남편은 네 머리 위에 왕관을 기쁜마음으로 바칠 것이다.

열이란 숫자

내가 어떤 사람을 놓고 일부러 모함의 말을 하여 그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고 가정하자. 그런 다음에 그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지난번
에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지나친 말을 하여, 본의 아니게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려서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할 수는 있다. 그래도
상대편이 용서해 주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이런 경우를 당하면 유태인들은 '나는 며칠전에 어떤 사람에 대해서 도리에 어긋나는 말을 하여 그의 체면을 손상시켰기 때문에, 그에게 사
과하러 찾아갔으나 그는 나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잘못을 후회하고 있는데, 여러분은 나의 잘못을 용서해 줄 수 있겠습니까?
하고 열 사람에게 물어서, 그 열 사람이 모두 용서해 준다고 하면 용서를 빌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10'이란 숫자가 나온 이유는 유태교의 예배당에서는 기도드릴 때 열명 이상의 사람이 있어야 기도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아홉명 이
하의 수는 개인이고, 열 명이 되어야 비로소 집단이 되는 것이다.

정치적 결단이 아닌 종교적인 결정도 역시 열 사람 이상이어야 한다. 결혼식에서도 공적인 결혼식은 열 사람 이상이 되지 않으면 거행하지
못한다. 그밖에 특별히 꺼리는 숫자는 달리 없다.

사랑

솔로몬 왕에게는 매우 아름답고 현명한 딸이 하나 있었다. 왕은, 어느날 꿈을 꾸고 장래 딸의 신랑될 사람이 딸과는 어울리지 않는 못된 사
람이란 것을 짐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왕은 신의 뜻을 알아보기 위해 딸을 작은 섬으로 옮기게 하여 별궁에 감금시켜 놓았다. 별궁의 주변에는 높은 담을 둘러치고 경비병
까지 많이 배치해 놓고는 열쇠를 가지고 돌아왔다.

한편, 왕이 꿈속에서 보았던 녀석은 어느 황야에서 홀로 헤매고 있었다. 밤이 되자 몹시 추웠기 때문에, 그는 죽은 사자의 시체 속에 들어가
잠을 잤다. 그때 큰 새가 날아와서 사자의 털가죽과 함께 그 녀석을 물어올려, 공주가 숨겨져 있는 별궁 안에 떨어뜨렸다. 그래서, 그 녀석
은 공주를 만나게 되었고, 두 사람은 곧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먼 섬으로 데려가서 숨겨 놓았더라도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비유태인

어떤 왕이 많은 양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양치기를 시켜 그 양들을 매일 방목하게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양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생긴 동물 한 마리가 양떼속에 끼어들었다. 양치기는 왕에게 고했다.

[이상한 동물 한 마리가 양떼속에 끼어들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자 왕은 '그 동물은 각별히 잘 보살펴 주어라.'하고 일렀다. 양치기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짖자, 왕이 말했다.

[내 양들은 처음부터 내 양으로 자랐으므로 별 걱정할 것이 없지만, 그 짐승은 지금까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랐을 텐데도 이렇게 내 양들
과 똑같이 어울려 행동하고 있으니, 그 얼마나 기쁜 일이냐?]

유태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유태인의 전통 속에서 성장해 왔다. 그래서, 유태의 전통이 아닌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이 유태 문화를 이해
하고 유태화한 경우에는, 원래 유태인보다 더 존경을 받게 된다.

[탈무드]에는 온 세상 사람들이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던 선한 사람이 구태어 그들을 유태화시키려고 애쓰지는 않는다고 적혀져 있다.

어떤 사람이 이웃집 여인을 짝사랑하여 한번 성 관계를 갖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꿈에, 그는 드디어 그 여인과 성 관계를 맺
는데 성공하였다.

[탈무드]에 의하면 그것은 좋은 조짐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꿈이란 간절한 소망의 한 표현이므로, 실제로 성 관계를 가졌다면 그런 꿈을
꿀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그 만큼 자제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매우 좋은 일인 것이다.

어버이는 바보

어떤 사람이 아들에게 유서를 남겼다.

'나의 전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줄 것인지만, 아들이 정말 바보가 되기 전에는 유산을 물려줄 수 없다.' 이 소식을 들은 랍비가 그 사람에게
이유를 물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유언을 남겼군요.당신의 아들이 정말 바보가 되지 않는 한 재산을 물려줄 수 없다니, 도대체 무슨 까닭입니까?]

그러자, 그 사람은 아무 말없이 갈대를 입에다 물고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마루 위를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것이었다. 그의 행동은 자기
아들이 아이를 낳아 그 자식을 귀여워하면 자기의 전 재산을 상속시켜 준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자식이 태어나면 인간은 바보가 된다'는 속담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태인에게는 자식은 매우 소중한 존재로서, 부모들은 자식을 위
하여 모든 것을 희생한다. 하나님의 유태 민족에게 천주의 십계명을 내리실 때, 유태민족은 반드시 그것을 지킬 것이라는 맹세를 그들로부
터 받으려고 하였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그들의 위대한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십계명을 지키겠노라고 맹세했지만, 하나님은 허
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앞으로 손에 넣게 될 모든 부귀를 걸고 맹세했지만 하나님은 역시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끝에 가서, 유태인들은 자식들에게 반드시 십계명을 전하겠노라고 자식들을 앞세워 맹세하자 비로소 하나님은 좋다고 허락하여 주었
다.

교육

가장 이름난 랍비가 북쪽 마을을 돌아보기 위하여 두 사람의 랍비를 시찰관으로 보냈다.

두 사람의 랍비는 그 마을에 도착하여 '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 좀 알아볼 것이 있다'고 하자 치한 책임자가 나왔다. 두 랍비
는 '아니오, 우리는 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입니다.' 라고 하자. 이번에는 마을의 수비대장이 나왔다. 그러자, 두 랍비
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만나려는 사람은, 치안 책임자나 수비대장이 아니라 학교의 선생님이란 말이오. 경찰이나 군인은 마을을 파괴할 뿐이고, 진정 마을
을 지키는 사람은 교육을 맡고 있는 선생님이란 말이오.]

공로자

어떤 왕이 병이 들었다. 의사는, 세상에서 보기 드문 병이어서 왕은 암사자의 젖을 먹어야만 낫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떻게 암사자의 젖
을 구하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그런데, 어떤 영리한 사람이 사자가 있는 동굴 가까이에 가서 사자 새끼를 한 마리씩 어미 사자에게 넣어 주었다. 열흘쯤 지나자, 그 사람은
어미사자와 친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왕의 병에 쓸 사자의 젖을 조금씩이나마 짜낼 수가 있었다.

왕궁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자기 몸의 각 부분이 서로 말다툼을 하고 있는 꿈을 꾸었다. 그것은 몸안에서 어느 부분이 가장 중요한 일을
맡고 있는가에 대한 언쟁이었다.

발은, 자기 아니었더라면 사자가 있는 동굴까지 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눈은, 자기가 아니었다면 볼 수가 없어서 그 곳까지 가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고, 심장은 자기가 아니었다면 감히 사자 가까이에 가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혀가 하는 말이 '만약 내가 말을 할 수 없었다면 너희들은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몸 안의 각 부분들이 모
두 나서며 '뼈도 없고 아무 소용도 없는 조그만 것이 건방지게 굴지마'하고 욱박지르자 혀는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런 가운데 젖을 구한 그 사람이 궁전에 도착하자 혀는 이렇게 말했다. [누가 제일 중요한가 너희들에게 알려 주마.]

그 사람이 왕 앞에 엎드려 젖을 내 놓자 왕이 '이것이 무슨 젖이냐?' 하고 묻자, 그 사람은 느닷없이 '네 개의 젖이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일하고 혀를 윽박지르던 몸속의 각 부분들은 그제서야 혀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깨닫고, 혀에게 잘못을 빌었다.

사과를 받아낸 혀는 말했다.

'아니오, 내가 잘못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자의 젖이 옵니다.' 중요한 대목에서 자제력을 잃게 되면 엉뚱한 잘못을 저지르게 된
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이다.

감사함

이 세상 최초의 인간은 빵을 먹기 위하여 얼마나 많이 일을 해야 했을까. 먼저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그런 뒤 그것을 가꾸어 거두어드려서
빵아 가루로 만들고, 반죽하고, 굽는 등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돈만 있으면 빵집에서 만들어
놓은 빵을 손쉽게 살 수 있다.

옛날에는 혼자서 모두 해야 했던 일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빵을 먹을 때는 많은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으면 안된다.

최초의 인간은 입을 옷 하나를 만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 했을까. 들에 가서 양을 사로잡아 그것을 키워, 털을 깎고, 그 털로 실
을 만들어 옷감을 짜고, 그것으로 다시 옷을 지어 입기까지는 많은 수고가 필요했다.

그런데 지금은 돈만 있으면 양복점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사 입을 수 있다. 옛날에는 한 사람이 해야 했던 많은 일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하
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옷을 입을 때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병문안

환자를 찾아가 위로하면, 그 환자의 병은 60분쯤은 낫는다. 그렇다고 60명이 일시에 병 문안을 간다고 해서 환자의 병이 단번에 완쾌되는
것은 아니다.

죽은 사람의 무덤을 찾는 것은 가장 고상한 행위이다. 병 문안은 환자가 나으면 그 사람으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받을 수 있지만 죽은 사람
은 아무런 인사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감사를 바라지 않고 하는 행위야말로 진정으로 아름다운 행위인 것이다.

결론

[탈무드]에는 4개월이나 6개월, 때로는 7년이란 오랜 시간 동안에 걸쳐 어떤 문제에 관하여 사람들의 논의를 제기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
어 있다. 그래도 그 가운데 더러는 결론이 나지 않은 것들도 있다.

이런 논제의 말미에는 '모른다'라고 되어 있는데, '알 수 없을 때에는 모른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교훈이기도 한 것이다.

또 [탈무드]에는 어떤 문제에 관하여 갖가지의 결정을 내린 것들도 있는데, 그곳에는 반드시 소수의 의견도 같이 소개되어 있다. 소수의 의
견은 적어 두지 않으면 곧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강한 자와 약한 자

이 세상에는 약하면서도 강자에게 공포감을 느끼게하는 것이 네가지가 있다.

모기는 사자에게 공포감을 주고, 거머리는 코끼리에 공포감을 주고, 파리는 전갈에게 공포감을 주고, 거미는 매에게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아무리 크고 힘이 센 자라도, 항상 막강한 것은 아니다. 또 아무리 약한 것이라도, 어떤 조건만 갖추어지면 강한 자를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일곱 가지 계율

[탈무드]시대의 유태인들은 흔히 비유태인들과 함께 일과 평소 생활을 함께 하기도 하였다.

유태인에게는 천사가 당부한 603가지의 계율이 있으나 유태교에서는 굳이 비유태인을 유태화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선교사를
보내는 일은 하지 않았다. 다만 서로 간의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비유태인들에게는 일곱가지 계율만을 당부하였다.

첫째, 살아 있는 동물을 죽여서 바로 날고기로 먹지 말것.

둘째, 남을 욕하지 말것.

셋째, 도둑질하지 말것.

넷째, 법을 어기지 말것.

다섯째, 살인을 하지 말것.

여섯째, 근친 상간을 하지 말것.

하나님

어떤 로마인이 랍비를 찾아 와서 '당신들은 하나님 이야기만 하고 있는데, 도대체 그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주시오'라고 말하며
가르쳐 주면 자기도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였다.

랍비는 물론 이 심술궃은 질문을 못들은 척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랍비는 그 로마인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태양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태양을 똑바로 쳐다보시오.]

그러자 로마인은 태양을 잠깐 쳐다보고는 소리쳤다. [엉터리 같은 소리는 집어치우시오! 어떻게 태양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단 말이오.]

그러자, 랍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많은 것들 가운데 하나인 태양조차 바로 볼 수가 없다면 어떻게 위대하신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있겠소.]

고별인사

어떤 사람이 긴 여행을 계속한 탓으로 몹시 지쳐있었고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사막을 한참 걸은 후, 간신히 나무가
자라고 있는 오아시스에 이르렀다.

그는 나무 그늘에서 지친 몸을 쉬며 굶주린 배를 과일로 채우고 시원한 물로 갈증을 푼다음 안도와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는 여행을 계
속하기 위하여 다시 길을 떠나야만 했다. 그는 그늘을 준 나무에게 감사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나무야, 정말 고맙구나, 나는 무엇이라고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의 과일이 맛있게 되기를 빌고 싶지만, 네 그늘은 이미
충분히 시원하고, 네가 더욱 잘 자라도록 충분한 물이 있기를 빌고 싶지만, 너에게는 이미 충분한 물이 있구나.그러나, 내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네가 더욱 많은 열매를 맺게 되어, 그 열매가 많은 나무들이 되어 너와 똑같이 아름답고 훌륭한 나무로 자라게 되기를 비
는 것밖에 없단다.]

여러분들이 작별하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기원하고 싶을 때, 그 사 이 더욱 현명해지기를 빌고 싶어도 이미 현명하고, 부자가 되기를 빌
고 싶어도 이미 가진 것이 넉넉한 부자이고, 남들로부터 사랑받는 선량한 사람이 되기를 빌고 깊어도 이미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선
량한 사람일 때, 여러분은 작별 인사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

'부다 선생의 자녀들이 선생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빕니다.'라고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작별 인사이다.

6일째

성서에 의하면, 이 세계는 엿새째 되는 날에 완성되었는데 그 마지막 날인 여섯째 되는 날에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인간이다.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탈무드]에 의하면, 한 마리의 파리조차도 인간보다 먼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인간은 결코 오만해 질 수가 없다. 이것은, 인간
이야 말로 자연에 대하여 정말로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향료

어느 안식일에 오후에, 로마의 황제가 친분이 있는 랍비의 집을 찾아갔다. 그는 미리 연락도 하지 않은 채 갑자기 찾아갔으나, 그곳에서 매
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음식은 매우 맛이 좋았고, 식탁 둘레에서는 사람들이 소리를 맞추어 노래부르며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
기로 꽃을 피웠다.

황제는 대단히 즐거워 하며, 다음 수요일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고 돌아갔다.

다음 수요일이 되어 황제가 찾아오자. 사람들은 미리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가장 좋은 그릇에 음식을 차려 놓았고, 지난번에는 안
식일이라 쉬었던 하인들까지도 줄을 지어 영접하였다. 요리사가 없어 찬 음식만을 내놓았던 지난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따뜻하고 기름진 요
리가 많이 나왔다. 그런데도 황제는 '음식은 역시 지난 토요일에 먹은 것이 맛있었네. 지난번 요리에는 어떤 향료를 넣어 만들었는가?'라고
물었다.

'황제께서는 그 향료를 구하실 수 없습니다.라고 랍비가 대답하자. '아닐세, 로마 황제는 어떤 향료라도 구할 수가 있다네'하며 황제는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자, 랍비는 이렇게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는 아무리 노력하셔도 '안식'이라는 향료를 구하시지는 못합니다. 유태인의 '안식일'이라는 향료입니다]

은화가 든 지갑

어떤 장사꾼이 도시에 물건을 사러 갔을 때 며칠후에 염가 판매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물건을 사기로 하였다. 그러
나 그는 많은 현금을 몸에 지니고 있었으므로 몹시 불안했다. 그래서 그는 조용한 곳으로 가서 가지고 있던 돈을 전부 땅에 파묻었다.

그런데, 다음 날 그곳에 가 보았더니 돈이 없어졌다. 여러모로 생각을 해 보았지만, 자기가 돈을 땅에 묻은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므
로, 그는 돈이 없어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는 집이 한 채 있었었는데, 그는 그 집 벽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 내었다. 그래서 그는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자기가 돈을 묻는 것을 그 구멍을 통해 보고 있다가 나중에 꺼내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장사꾼은 그 집에 살고 있는 늙
은 영감에게 말했다.

[노인장은 도시에 살고 있으니 머리라 좋으시겠군요.제게 지혜를 좀 빌려 주십시오. 저는 이 도시에 물건을 사려고 지갑 두개를 가지고 왔
습니다. 하나는 은화 500개나, 다른 지갑에는 은화 800개가 들어 있습니다. 저는 작은 지갑을 아무도 모르게 어떤 곳에 묻어 두었는데, 나머
지 큰 지갑도 땅 속에 묻어 두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겨두는 것이 좋을지요?]

늙은 영감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만일 젊은이라면, 다른 사람은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오. 먼저 지갑을 묻어 둔 곳에다 큰 지갑도 묻어 두겠소.]

장사꾼이 돌아가자, 욕심장이 영감은 자기가 훔쳐 온 지갑을 그곳에다 다시 묻어 놓았다. 장사꾼은 그것을 숨어서 보고 있다가 지갑을 무사
히 찾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솔로몬의 재판

솔로몬왕은 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안식일에 세 사람의 유태인이 예루살렘에 찾아왔다. 당시에는 은행이란 것이 없어서 세사람은 가지고 있던 돈을 함께 땅에 묻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몰래 땅 속에 묻어 놓은 돈을 몽땅 꺼내갔다.

이튿날 세 사람은 지혜로운 왕으로 널리 알려진 솔로몬을 찾아가 세 사람 가운데 누가 그 돈을 훔쳐 갔는지를 가려내 달라고 했다.

그러자, 솔로몬 왕은 '너희들 세 사람은 아주 현명하니, 우선 내가 판결에 곤란을 겪고 있는 어려운 문제를 먼저 풀어주면 너희들의 문제는
내가 해결해 주겠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처녀가 한 젊은이와 혼인하기로 약속을 하였다네. 그런데 그 처여는 얼마 후 다른 남자와 사랑하게 되어 약혼자를 찾아 헤어지자고
했다네. 그 처녀는 약혼자에게 위자료를 지불하겠다고 자청했는데, 젊은이는 위자료는 필요 없다면서 처녀와의 약혼을 즉시 취소해 주었다
네, 그런데, 그 아가씨는 남보다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던 탓으로 어떤 노인한테 유괴당했지.처녀는 노인에게, '나는 약혼했던 남자한테 파
혼을 요청하자 그 남자는 위자료도 받지 않고 나의 부탁을 들어 주었어오. 노인장께서도 그 사람처럼 나를 자유롭게 풀어 주세요. 라고 말
을 했다네.

그랬더니 노인은 그녀의 말대로 몸값을 받지 않고 처녀를 풀어 주었지. 이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칭찬받을 만한 행동을 한 사람은 누구이겠
는가?]

첫째 사나이가 대답했다.

[처녀가 약혼까지 했으면서도 파혼을 허락해 주고 위자료도 받지 않은 남자가 칭찬을 받아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처녀의 의사를무시
하면서까지 결혼하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게다가 위자료도 받지 않은 남자가 칭찬을 받아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처녀의 의사를 무시하
면서까지 결혼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게다가 위자려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사나이가 말했다.

[아닙니다. 그 처녀야말로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약혼자에게 파혼을 요구했고,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남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칭찬을 받아 마땅합니다.]

[이야기가 너무 뒤죽박죽이어서, 저는 통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먼저 처녀를 납치한 노인은 돈 때문에 그 처녀를 납치했는데 , 돈도 받지
않고서 풀어 주다니, 이야기의 줄거리를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솔로몬 왕은 갑자기 호통을 치며 말했다.

[이놈! 네가 바로 돈을 훔친 놈이다. 다른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듣고, 사랑이나 처녀와 약혼자 사이의 인간 관게와 그 사이에 얽혀진 긴장
된 감정에 마음을 쏟았는데 네 놈은 돈밖에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틀림없이 네가 범인이다!]

중용

군대가 행진하고 있었는데 길의 오른쪽은 눈이 내려 얼음이 얼어 있었다. 그리고 길의 왼쪽은 불바다였다. 이 군대가 길 오른쪽으로 가면
얼어죽고, 길 왼쪽으로 가면 불에 타 버린다.

하지만 가운데의 길은 적당히 따뜻함과 시원함에 조화된 길이었다.

답례

나치의 수용소에서 6백만이나 되는 엄청난 유태인들이 학살되고 나머지 사람들이 구출되었다. 살아남은 유태인들은 미국의 트로먼 대통령
에게 답례로 [탈무드]를 선사했다. 그런데 그 [탈무드]는 제2차 세계 대전 후 독일에서 인쇄된 책이었다.

그만큼 철저하게 유태인들을 전멸시키려고 애썼던 독일에서조차 [탈무드]가 발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탈무드]의 위대함을 입증해 주는
증거가 되고 있다.

사업

유태인의 역사는 대단히 길고 오래 되었다. 성서 시대의 유태인들은 농경 생활을 하였다. 그러므로 교역은 별반 이루어지지 않았고, 상인이
라는 말은 곧 비유태인들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 즉, 유태인들은 자기들의 생활주변에서는 좀체 물건을 사고 파는 매매 행위를 하지
않았다. 다만 '유태인으로서 장사를 할 경우에는 계량을 정직하게 하고, 물건을 속이지 말라'는 평범한 도덕성이 강조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탈무드]시대에 접어들면서 교역이나 장사가 점차 발달하여, [탈무드]에서도 사업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탈무
드]를 쓴 사람들은 세계는 점점 진보해 간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이 진보된 세게의 모습을 교역이 크게 발달할 세계로서 표현하고 있다.
때문에 그들은 교역을 행함에 있어 지켜야 할 도덕에 관하여 특히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필자는 [탈무드]를 편찬한 사람들이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서 비지네스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견한 것은 대단한 선견
지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벌써 2000년 전에 앞으로 그러한 세계가 이루어진 것을 예견하고 이에 대비한 여러 측면의 준비 작업을 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사업이라는 전제조건이 원칙이 되고, 따라서 그 사업의 규칙은 일상의 테두리밖에서 찾을 수 있는 특별한 규칙이 정해져
야 한다고 생각되었다.그러므로 사업의 세계는 결코 탈무드적인 생각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신앙적인 사람이라도 사업은
사업으로서 행하여도 괜찮다고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무드]는 어떻게 처신해야 도덕인지 사업가가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한 것이지, 어떻게 해야 능력 있는 사업가가 될 수 있는가에 대
해 규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탈무드]에서는 자유 방임주의적인 사업에는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물건을 사는 사람의 한 권리로서 아무런 보증이 없다해도 사는 물건이 좋은 품질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
다. 물건을 산다는 것은, 곧 결함이 없는 것을 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령 물건을 파는 사람이 그 상품에 결함이 발견되어더
반환할 수 없다는 조건을 붙였다고 하더라도, 그 상품에 결함이 발견되면 물건을 사는 사람에게는 그 상품을 반환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예외는 물건을 사는 사람이 그 상품의 결함을 행위 전에 인정하고도 샀을 경우이다.예를들면, 자동차를 팔 때 애초에 그 자
동차에 엔진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팔았다면 구매한 사람은 그 자동차를 엔진이 없다는 이유로 무효할 수가 없다.

[탈무드]에는 물건을 파는 사람도, 만일 잘못 만들어진 물건을 팔 경우에는 반드시 그 결함을 구체적으로 구입 희망자에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고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물건을 사는 사람은 우선 상품의 결함이나 눈가림, 그리고 물건을 파는 사람이 미쳐 알지 못할 실수나 잘못
에 대해서도 보호받게 되는 것이다.

물건을 사고 판다는 것은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그 물건 값을 지불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 물건이 사는 사람에게로 그 소유가
바뀐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물건을 판 사람은 그 물건을 안전하게 산 사람한테 넘겨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탈무드]에서는 어디까지나 물건을 판 사람보다는 물건을 구입한 사람의 권리를 더 생각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은 반드시 파는 상품의 소유권이 자기에게 있어야 한다.그것은 혹시라도 남의 물건을 파는 절도 행위가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토지

두 사람의 랍비가 같은 땅을 사기 위해 흥정하고 있었는데, 한 랍비가 먼저 그 땅값을 정했다. 그러자 다른 랍비가 서둘러 그 땅을 계약해
버렸다. [어떤 사람이 과자를 사려고 제과점에 왔는데, 벌써 다른 사람이 와서 그 과자를 사기 위해 살펴보고 있었소. 그런데 나중에 온 사
람이 그 과자를 사기 위해 돈을 냈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겠소?]

하고 물었다. 그러자 랍비는 대답했다.

[그 사람은 옳지 않지요.]

[그러자 물어본 사람이 말했다]

[랍비님이 이번에 그 땅을 계약했지만 다른 사람이 랍비님보다 먼저 그 땅의 값을 흥정해 결정했는데, 랍비님이 그 땅을 산거요. 그래도 됩
니까?]

그래서,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은 방법인가가 문제가 되었다. 한가지 방법으로 제시된 것은, 계약한 랍비가 그 땅을 흥정한 첫번째 랍비
에게 되파는 것이었는데, 두 번째 랍비는 물건을 사자마자 파는 것이 싫다는 것이었다.

두번째의 방법은 땅을 사들인 랍비가 첫번째 랍비에게 그 땅을 선물로 주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첫번째 랍비가 남의 물건
을 거저 선물로 받는 것은 양심상 싫다고 하였다. 그래서 결국 땅을 계약한 두번째의 랍비는 학교에 그 땅을 기부하였다.

<5>탈무드의 눈

인간
인간은 심장(마음) 가까이에 젖이 있으나 동물들은 비교적 심장에서 떨어진 곳에 젖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베풀어 준 깊은 배려의 덕이
라 할 수 있다.
스스로 반성하는 사람이 서 있는 곳은 가장 고매한 랍비가 서 잇는 곳보다도 더욱 성스럽고 가치가 있다.

이 세상은 진실과 도덕과 평화의 세가지 근본 위에 서 있다.

휴일이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지 인간이 휴일 앞에 주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백성의 소리는 곧 하나님의 소리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말하였다.

[내게 넷의 아이가 있듯이 너희들도 넷의 아이를 가지고 있다. 너희들의 네 아이는 과부, 고아, 이방인, 승려이다. 내가 너희들의 아이들을
보살펴 주고 있듯이, 너희들도 나의 아이들을 보살펴 주어야 한다.

사람들은 남들의 가벼운 피부병은 걱정하면서도 자기 자신의 깊은 병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거짓말장이가 받는 최대의 형벌은 그가 진실로 말하고 있어도 남들이 그것을 믿어 주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20년에 걸쳐 배운 것이라도 단 2년만에 잊어버릴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고 세 종류의 이름을 갖는다. 태어났을 때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과 친구들이 붙여준 우정어린 이름, 그리고 생애를 끝맞혔을 때
받는 명성이 그것이다.

평가
유태인들이 다른 민족을 평가하는 세가지 기준은 이렇다.

첫째, 키소(돈지갑을 넣는 주머니)
둘째, 코소(술잔)
셋째, 카소(분노를 나타내는 정도)
유태인들은 돈을 어떻게 쓰는가. 술은 어떻게 마시는가. 인내력은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한다.

인간의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첫째, 내 것은 내 것이고, 너의 것은 물론 너의 것이다(일반적인 유형).
둘째, 내 것은 너의 것이고, 너의 것은 나의 것이라는 사람(별난 유형)
셋째, 내 것은 너의 것이고, 너의 것도 물론 너의 것이라는 사람(정의감에 불타는 유형).
넷째, 내 것은 내것이고, 너의 것도 또한 내것이라는 이기적인 사람(무경우의 유형).

현인 앞에 앉게 되는 사람에는 3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스폰지형이다. 아무것이고 옳다하며 흡수하려고 한다.
둘째, 터널형이다.이 귀로 듣고 저쪽 귀로 흘려 버리며 무관심하다.
셋째, 선택형이다.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체로 쳐서 걸러내듯 유익한 것만을 선택한다.

현인이 되기 위한 7가지 조건이다.

첫째, 현명한 사람 앞에는 침묵을 지킨다.
둘째, 상대의 말을 중간에서 끊지 않는다.
셋째, 대답을 침착하게 한다.
넷째, 항상 핵심만 뽑아 질문하고, 대답을 조리있게 한다.
다섯째, 먼저 해야할 것과 나중에 할 것을 구분해 한다.
여섯째, 모든 것은 스스로 솔직하게 인정한다.
일곱째, 진실은 망설이지 않고 인정한다.

인간은 세 부류의 벗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자식과 부유함과 선행이다.

 친구
아내를 선택할 때는 한 계단 낮추어 선택하고 친구를 고를 때는 한 계단 올려 선택한다.
벗이 화가 나 격해 있을 때에는 달래져 하지 말고, 슬픔에 잠겨 있을 때도 위로하지 말라.

우정
만약 벗이 싱싱한 채소를 가지고 있으면 거기에 필요한 고기를 보내 주어라.
설령 벗이 너에게 꿀처럼 달게 대하여도 너는 그것을 모두 핥아먹어서는 안된다.

여자

어떤 남자이고 여성의 빼어난 아름다움에는 오래 버틸 수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여자가 가지고 있는 질투심에는 한가지 원인밖에 없다.
여자는 자기의 외모를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한다.
여자는 특히 남자보다도 육감에 뛰어나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 정이 많다.
여자는 불합리적인 신앙에도 잘 빠진다.
순수하지 못한 동기에서 시작된 사랑은 그 동기가 사라짐과 함께 소멸해버린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여자가 한 잔의 술을 마시는 것은 좋은 일이나, 두 잔을 마시게 되면 품위를 잃는다. 그리고 석 잔을 마시면 부도덕해 지고, 넉 잔을 마시면
마침내 자멸하고 만다.
사람은 정열 때문에 결혼하지만 그러나 그 정열이란 결혼보다는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처음 창조한 남자는 남녀의 성을 같이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남자의 몸에 여성 호르몬이, 여자의 몸에 남성 호르몬이 있는 것이
다.

 남자가 특히 여자에게 잘 유혹되는 것은, 하나님이 남자? 틈募歐藪?바쁠 때는 술을 대신 보낸다.

 포도주는 처음엔 포도와 같은 맛을 내지만 오래되면 될수록 맛이 좋아진다. 지혜도 이와같이 해가 지날수록 갈고 닦여진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낮에는 술에 취해 있으며, 저녁에 쓸데 없는 잡담으로 하루를 보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일생 모두를 헛되게 만들고
만다.

 포도주는 금, 은 그릇에서는 잘 담가지지 않지만, 지혜로 만든 그릇에 담그면 아주 잘 만들어진다.

가정

진정 서로 사랑하고 있는 부부라면 칼날만한 좁은 침대에서도 함께 휴식할 수 있지만, 서로 증요하고 있는 부부라면 폭이 10미터나 침대라
도 좁다.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은 현명한 부인을 가진 남자이다.

 남자가 결혼을 하게 되면 그 때부터 죄가 늘어난다.

 이유없이 아내를 학대하지 말라.하나님은 지금도 당신 아내의 눈물 방울을 빠짐없이 세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병마 중에서도 마음 속에 병만큼 더 괴로운 것은 없다. 또한 갖은 죄악 중에서도 악처만큼 더 나쁜 것도 없다.

 이 세상에서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은 젊어서 결혼하여 함께 고생해온 늙은 아내이다.

 남자에게 있어서의 집은 아내이다.

 아내를 선택할 때는 겁장이가 되어야 한다.

 여자와 서로 말을 나누어 보지 않고 결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아이들을 키울 때 차별을 두어 가르치는 것은 안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엄하게 꾸짖어 가르치고, 다 자란 뒤에는 작은 일로 꾸짖지 말라.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엄하게 가르쳐야 하지만, 두려워하게 하는것은 잘못된 것이다.

 아이들을 나무랄 때는 한번만 호되게 꾸짖어야 한다. 잔소리처럼 계속 나무라면 좋지 않다.

 아이들은 부모의 언행을 흉내내게 마련이다. 성격은 그래서 말투로 알수 있다.

 아이들과 어떤 약속을 하였다면 반드시 그 약속은 지켜야 한다. 만약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당신은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치고 있는 셈
이다.

 가정 안에서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것은 마치 과일에 벌레가 생기는 것과 똑같다. 어느 사이인게 잘못이 번져나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자기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이들이 아버지가 앉는 자리에 앉는 것은 옳지 못하다.

 아버지가 다른 어떤 사람과 언쟁을 벌이고 있을 때, 자식들은 다른 사람의 편에 서서는 안된다.

 자식들이 아버지를 존경하고 순종하는 것은 아버지가 자식들을 위해 의식주를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세가지는 번민과 불화와 비어 있는 돈 지갑이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큰 상처를 내는 것은 빈 돈지갑이다.

몸이란 마음에 의존하게 마련이고, 마음은 돈지갑에 의존하게 마련이다.

 무릇 돈이란 상업에 이용되어야지 술을 마시는 데에 허비되어서는 안된다.

 돈은 악도 저주도 아니다. 돈은 인간을 축복해 주는 고마운 것이다.

 돈이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선물을 살 수 있게 기회를 안겨 준다. v 돈을 차용해 준 사람에게는 화를 내지 말고 참는 사람이 되어
야 한다.

 부유함은 견고한 요새이고 빈곤은 폐허와 같다.

 돈과 물건은 거저 주는 것보다는 빌려주는 편이 더 낫다. 돈이나 물건을 거저 얻으면 얻은 사람이 준 사람보다 아래의 입장이 되지만, 빌려
주면 서로 동등한 입장에 서기 때문이다.

섹스

'야다(YADA), 라는 말은 히브리어에서는 '섹스'또는 '상대를 알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성서에서의 예를 보면, 아담은 이브를 알고 난 후에
아이를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안다'는 말은 성관계를 맺었다는 뜻도 포함되어있는 것이다.

'사랑은 곧 아는 것'이라는 말도 자주 사용되고 있는데, 사랑하는 것은 함께 잠자리를 하는 것으로 풀이해도 무방할 것이다.

 야다 즉 섹스는 창조의 행위이므로 이것 없이는 결코 자기 완성을 이룰 수 없다.

 섹스는 평생 동안 오직 한 사람의 상대에게만 쓰여지지 않으면 안된다.

 섹스는 자연의 한 부분이므로 성 행위 자체가 원칙적인 측면에서 부자연스러울 것은 없다.

 섹스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관계에서 맺어여쟈 하며, 친숙한 분위기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자신을 억제할 수 없는 곳에서는 섹스를 하지
말아야 한다.

 아내의 허락없이 강제로 아내와 섹스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아내가 거절하는데도 힘으로 강요하는 것은 금하게 되어 있다.

가르침

향수를 팔고 있는 상점에 들어가면 향수를 사지 않아도 몸에서 향기가 난다.

가족 공장에 들어가면 가죽으로 만든 물건을 사지 않아도 역한 냄새 난다. 칼을 품고 있는 사람은 책을 들고 서지 못하며, 책을 지닌 사람은
또한 카를 품고 서지 못한다.

 자신을 아는 것이 곧 지혜이다.

 의사로부터 충고를 받았다 하여 의사에게 댓가를 치룰 필요는 없다.

 값비싼 귀한 진주를 잃어버렸을 때,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값싼 양초가 쓰인다.

 빈한한 집안의 아들은 칭송받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지혜를 주는 것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기억력을 증징시켜 주는 최선의 약은 감탄이다.

 학교가 없는 곳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다.

 고양이에게서는 겸손함을 배우고, 개미에게서는 정직함을 배우고, 비둘기에서는 정절을 배우며, 수탉으로부터는 재산을 지키는 권리를 배
울 수 있다.

 여름이 널리 팔리면 곧 잊혀지게 된다.그러나 지식 또한 얕으면 곧 잃어 버린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행위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백지 위에 무엇인가 그리거나 쓰는 일과 같다. 노인을 가르치는 것은 글자가 가득 적힌
종이에서 빈 곳을 찾아내 무엇인가 써 넣는 행위와 같다.

악함

악함에 대한 충동은 마치 구리와 같은 것이어서 불속에서는 어떤 모앙이든 생각대로 만들 수 있다.

만약 인간이 악에 대한 충동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집도 만들지 않고, 아내도 구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으며,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악에 대한 충동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것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배우는데 열심이어야 한다.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월등한 사람은 그만큼 악에 대한 충동도 강력하다.

 이 세상에는 올바른 일만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이든 반드시 악한 일도 저지르게 된다.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악의 충동은 열세상에 접어들면 점점 선의 충동을 누르고 강해져 간다.

 죄악은 태아날 때부터 이미 인간의 마음에 싹터, 인간이 성장함에 따라 점차 강해진다.

 죄는 미워하더라도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

 죄악이란 처음엔 여자처럼 연약하지만 그대로 두면 힘쎈 남자처럼 강해지고 만다.

 죄악이란 처음엔 거미줄처럼 가늘지만 나중에는 배를 묶어두는 밧줄 처럼 굻어진다.

 죄악은 처음엔 손님처럼 겸손하지만 그대로 두면 대신 주인 행세를 한다.

중상

남을 나쁘게 험담하는 것은 살인보다는 더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살인은 한 사람만을 죽이지만,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이는 일이 되기 때
문이다.

험담을 한 자와 그 험담을 막지 않고 들은 자, 또 이 험담으로 피해를 보는 자이다.

 남을 모략하고 중상하는 자는 차라리 흉기로 사람을 해치는 것보다도 죄가 더 크다. 흉기란 몸에 지니지 않으면 상대를 해칠 수 없지만, 중
상은 멀리에서도 사람을 해치기 때문이다.

 불속의 장작더미는 물을 끼얹어 속까지 식힐 수 있지만 중상으로 피해를 본 사람한테는 아무리 잘못을 빌어도 마음 속의 불은 꺼지지 않는
다.

 마음이 고운 사람이라 해도 평소 입버릇이 나쁜 사람은 훌륭한 궁전 옆의 냄새나는 가죽 공장과 같다.

 사람은 입이 하나이고 귀가 둘이다. 이것은 말보다는 듣는 것은 두 배로 더 힘쓰라는 뜻이다.

 우리가 손가락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남들의 험담을 듣지 않기 위해서이다. 험담의 들려오면 재빠르게 귀를 막아야 한다.

 언제이고 물고기의 입에 낚시 바늘이 걸리듯이 인간 또한 입에 의해 걸려든다.

 판사

판사가 되려면 항상 겸손하고 언제나 선행만을 행하며, 정확한 판별력과 위엄을 갖추고, 지금까지의 이력이 깨끗해야 한다.

판사는 반드시 진실함과 평화를 모두 구하여야 한다. 만일 진실만을 추종한다면 평화는 잃고 만다.그러므로 진실함과 평화로움을 함께 지
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타협이다.

동물

먹이가 된 고기를 함께 먹고 있는 고양이와 쥐는 먹는 동안에는 싸우지 않는다.

여우의 머리가 되기 보다는 차라리 사자의 꼬리가 되라.

 한 마리의 개가 짖으면 동시에 많은 개들이 따라 짖는다.

 짐승들은 같은 부류의 짐승들끼리 어울려 살아간다. 늑대는 결코 양과 어울릴 수 없다. 하이에나와 개도 절대로 같이 살아가지 못한다. 부
자와 가난한 사람의 생활도 이와 같다

처신

선행을 외면하고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은 곧 의사를 향해 문을 열게 된다.

좋은 항아리를 얻으면 바로 그날부터 사용하라. 내일이면 깨져 못쓰게 될지도 모른다.

 옳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욕망에 지배당하고 올바른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지배할 수 있다.

 남들의 자선에 의해 살아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가난한 생활을 하는 것이 더 낫다.

 남들 앞에서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과 자기 앞에서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 세상에는 너무 지나치면 안될 여덞가지가 있다. 여행, 여자, 돈, 일, 술잠, 약, 향료가 그것이다.

 이 세상에는 너무 과하게 사용해서는 안되는 세 가지가 있다. 빵에 넣는 이스트와 소금과 망설임이다.

 몇닢의 동전이 들어 있는 항아리는 그 소리가 시끄럽지만, 동전으로 가득찬 항아리는 오히려 조용하다.

 전당포는 과부와 어린 아이들의 물건을 맡아서는 안된다.

 명성을 얻으려 쫓가가는 사람은 명성을 붙잡지 못하지만, 명성을 피하는 사람은 오히려 명성에 잡히고 만다.

 남의 것을 훔치지 않은 도둑은 자기가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결혼하는 목적은 기쁨에 있고, 장례식 조문객의 목적은 침묵이며, 강의하는 목적은 듣는 것에 의해 또한 방문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
는 것이고, 가르침에는 집중이 그리고 단식의 목적은 아낀 돈으로 자선을 베푸는 것이다.

 사람의 몸속에는 여섯 개의 가치 있는 부분이 있다. 이 가운데에서 세개는 스스로 조절할 수 없지만, 나머지 세 개는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앞의 것은 눈과 귀와 코이고, 뒤의 것은 입고 손과 발이다.

 당신은 당신의 혀에게 '나는 모른다'라는 말을 열심히 가르쳐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장미꽃은 가시와 가시 사이에서 자란다.

 처방을 무료로 해주는 의사의 충고는 듣지 않는 것이 좋다.

 항아리의 겉모양만 보지 말고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를 살펴 보아라.

 나무는 열매로 평가되고 사람은 그가 이룩한 업적에 의해 평가된다.

 이제 막 맺히기 시작한 오이를 보고는 앞으로 맛있는 오이가 될지 어떨지 말할 수 없다.

 행동은 말보다도 오히려 목소리가 크다.

 남들로 하여금 자기를 칭찬하게 하는 것은 좋으나 자기가 자기를 칭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아랫 사람의 말을 듣는 훌륭한 사람이 있고 젊은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노인이 있는 세상은 축복받는다.

 사람을 쉽게 늙게 하는 4가지 원인은 공포, 분노, 자녀, 악처이다.

 명곡과 조용한 풍경, 그리고 좋은 향기는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요소이다.

 좋은 가정, 좋은 아내, 좋은 의복은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안겨주는 세가지 요소이다.

 자선을 베풀줄 모르는 사람은 맛있는 요리가 가득한 식탁에 소금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이 자선에 관해 가지고 있는 태도에는 4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스스로는 돈이나 물건을 남에게 내주면서도 다른 사람이 돈이나 물건을 내놓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둘째, 다른 사람이 자선을 베푸는 것은 바라면서도 자기는 자선을 베풀지 않는다.

 셋째, 스스로 아낌없이 자선을 베푸는 동시에 남들도 또한 자선을 베푸는 것을 바란다.

 넷째, 스스로 베푸는 자선도 싫어 하고, 다른 사람이 베푸는 자선도 또한 싫어한다.

 여러분은 이 4가지 유형 가운데 어디에 속하는가?

 첫번째는 질투심이 강한 사람이고, 두번째는 자기를 비하시키는 사람이며, 세번째는 선한 사람, 네번째는 완전한 악인의 유형이다.

 한개의 촛불로 많은 양초에 불을 붙여도 그 촛불의 빛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세 가지 일이 있다.

 첫째, 가난한 사람이 물건을 습득해 그 주인을 찾아 돌려주는 일

 둘째, 부자가 자기 수입의 10%를 아무도 모르게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일.

 셋째, 변화한 도시에 살고 있는 독신자가 죄악을 범하지 않는 일.

 이 세상에 살고는 있으나 쓸모가 없느 남자는 식사할 수 있는 내 집이 없고 언제나 마누라 엉덩이에 눌려 지내고, 몸이 아파서 늘 괴로워하
는 사람이다.

 일생에 한번 맛있는 요리를 실컷 먹고 다른 날에는 굶는 것보다는 평생 양파만 먹고 사는게 더 낫다.

 자신을 보존하는 데는 다음 3가지 경우 외에는 어떤 것에고 앞선다. 다만 다음 세 경우에는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 낫다.

 첫째, 남을 죽일 때

둘째, 불순한 성 관계를 맺을 때

셋째, 근친 상간을 할 때

 장사꾼이 해서는 안되는 세가지 일이 있다.

 첫째, 과대나 허위 선전을 하는 일

둘째, 돈벌이를 해 매점 매석하는 일

셋째, 계량을 속이는 일

 맛있는 과일에 벌레가 더 많이 꼬이듯 재산이 많으면 그만큼 근심도 ㅁ낳고, 여자가 많으면 또한 투정도 많다. 하녀가 많으면 풍기 또한 문
란해지고 하인이 많으면 집안의 물건도 많이 없어진다.

 스승보다 더 배우면 인생이 더욱 풍요해지고, 사색을 많이 하면 그만큼 지혜도 더 쌓여 간다.

 사람들과 만나 이로운 이야기를 나누면 큰 길이 열리고, 자선을 많이 베풀면 따사로은 평화가 깃든다.

 남들이 모두 옷을 입고 있을 때에는 벌거숭이가 되지 말라.

남들이 모두 벌거숭이일 때는 옷을 입지 말라.

남들이 모두 앉아 있을 때에는 서 있지 말라.

남들이 모두 서 있을 때에는 앉아 있지 말라.

남들이 모두 울고 있을 때에는 웃지 말라.

남들이 모두 웃고 있을 때에는 울고 있지 말라.

<6>탈무드의 머리
애정의 힘
세상에는 열두가지 종류의 강력한 것들이 있다. 먼저 돌을 강한 것으로 꼽을 수 있으나 그 돌은 쇠에 깎이고 만다. 그러나 이 쇠도 불에 녹
고, 불은 또한 물로 꺼버려 그 힘을 누를 수 있다. 하지만 이 막강한 물은 구름에 흡수되며, 물을 흡수한 구름은 바람이 불면 흩어지거나 날
라 사라진다.
그러나 이 바람도 인간만은 흩어지게도 날라 없어지게도 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공포나 괴로움에는 비참하게 깨지고 만다.

이때 이 공포감을 없애기 위해 술을 마시지만, 술은 잠을 자면 해결된다. 이 잠도 죽음을 꺾을 수는 없으며, 그러나 이 죽음은 애정을 눌러
이기 ㄹ수가 없다.

 죽음
화물을 가득 실은 두 척의 배가 바다에 떠 있었다. 그 중 한 척은 이제 막 출항 차비를 하고 있었고, 또 한척은 항구에 입항한 상태였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가 출항할 때는 떠들석하게 환송을 하지만, 반대로 배가 입항할 때는 환송 때와는 달리 별다른 환영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탈무드]에서는 이러한 것을 대단히 그릇된 습관으로 지적하고 있다. 출항한 배의 앞날은 풍랑을 만나 어떤 고난을 당할 지도 모른다.그런
데도 떠들석하게 환송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오랜 항해의 길을 끝내고 무사히 귀항한 배한테는 진정으로 기쁘게 영접해 주어야 한다. 이 배야말로 어려운 역경을 뚫고 맡은 바
책임을 완수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길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갓 태어난 아이에게 많은 축복을 보낸다. 이 아이야말로 앞으로 어떠한 고난
의 길을 걸어갈지 , 도중에 그만 죽을지, 아니면 흉포한 살인범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제 막 항해를 떠난 한 척의 배와는 같은 아기에게
축복을 보내는 모순이 있다.

그러나 진정한 축복은 사람이 죽음이란 영원한 잠에 들어갔을 때 보내야 한다. 그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많이 사람들이 알고 있으
므로, 이 때에야말로 진정한 축복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진실'이란 말
히브리어의 알파베트는 어린 아이들에게 가르쳐줄 때에는 그 한자한자의 알파베트에 의미를 갖게 한다. 히브리어로<진실>이란 말을 히브
리어에서의 알파베트 첫글자와 맽 끝글자의 꼭 중간에 있는 글자를 사용한다.
이것은 유태인에게 있어 <진실>이란 것이 왼쪽도 오른쪽도 다 올바르며, 중간의 것도 역시 바르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맥주
<탈무드>에 의하면 하인이나 노예에게도 주인이 먹는 것과 똑같은 것을 먹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가령 주인이 편한 의자에
앉으면 하인에게도 편한 의자를 내어주라는 것이다. 지위가 남보다 낫다고 해서 반드시 높은 데에 앉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필자가 이스라엘에 갔을 때, 일선 부대장의 초대를 받아 식사를 같이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장병이 맥주를 가져왔는데 그것을 본 부대장
이 사병들이 마실 맥주도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사병은 오늘은 맥주가 부족해서 이 자리에만 가져왔다고 대답하였다. 사병의 말을 들은 부대장은 '그렇다면 오늘은 맥주를 마시지
말자'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유태인들의 전통적인 사고 방식인 것이다.

 죄악
인간이라면 누구이고 죄를 저지르게 마련이다.
동양적인 철저한 도덕관에서처럼 엄격하고 짜여진 분위기는 적어도 유태인 사회에는 없다.
유태인이 죄를 범했어도 역시 유태인 것이다.
유태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죄에 대한 관념은 이렇다. 가령 화살을 표적에 명중시키는 능력이 있지만, 공교롭게도 맞히지 못한 경우와 같이,
원래는 죄를 지을 생각이 없었는데 어쩌다 실수를 한 것이라고 마음편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유태인이 자기가 범한 죄에 대해 용서를 빌 때
에는 '나'라고 하지 않고 반드시 '우리들'이라고 표현한다. 자기 혼자서 지은 죄인데도 반드시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말
한다. 왜냐하면, 유태인은 모두가 한 가족이라서 혼자서 죄를 범해도 이것은 여러 사람이 함께 죄를 지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 자신은 남의 것을 훔치지 않았는데, 누군가에 의해 절도 행위가 이루어져 있다면 나는 하나님께 잘못을 빌어야 한다. 이것은
내 자신의 자선 행위가 부족한 탓으로 누군가 다른 사람이 절도 행위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손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는 두 손을 꼭 쥐고 태어나지만, 죽을 때에는 이와는 반대로 두 손을 펴고 죽는다.
왜 그럴까?이것은 태어날 때는 세상 모든 것을 움켜잡아 가지고 싶기 때문이고, 죽을 때에는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내주어 빈 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사
유태인들의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자기 아들에게 <탈무드>를 가르치게 된다. 그러나 이때 아버지가 자주 화를 내거나 지나치게 엄하게 다
루면 아이들은 아버지가 무서워 배울 마음을 상실하고 만다.
히브리어에서 '화더'는 <교사>의 의미가 있는데, 영어에서 기독교 신부를 '화더'라고 하는 까닭도 히브리어에서의 <교사>의 개념을 지니
고 있기 때문이다. 유태 사회에서는 자신의 부친에 앞서 먼저 <교사>를 생각한다. 가령 아버지와 교사가 함께 감옥에 있을 때 이중 한 사람
만 구해야 한다면 아이들은 아버지보다 <교사>를 먼저 구한다.

유태인들은 지혜와 지식을 가르쳐 주는 <교사>를 생각한다. 가령 아버지와 교사가 함께 감옥이 있을 때 이중 한 사람만 구해야 한다면 아
이들은 아버지보다 <교사>를 먼저 구한다.

유태인들은 지혜와 지식을 가르쳐 주는 <교사>를 무엇보다도 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진정 거룩한 것
우리 인간 사회에는 동물에서부터 천사에 이르기까지 여러 계층의 차가 이는데, 이때 천사에 가까워질수록 성스러운 것에 접근하게 된다는
관념이 흐르고 있다.
랍비가 학생들에게 '거룩한 것이란 과연 무엇인가'라고 묻자 많은 학생들은 하나님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것이라 했고, 몇몇은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학생들의 대답이 각각 다르자 랍비는 '무엇을 먹을 것이며, 또 섹스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그
렇다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던가, 어떤 때 어떤 장소에서는 섹스를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 과연 거룩한 것인가'라고 물었다. 랍비가 일
러주는 이유는 이러했다.

우리가 안식일을 정숙하게 보내는 것은 누구이고 쉽게 알 수 있으며,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도 금방 세방에 알려지고 만다. 하지
만 자기 자신이 집에서 무엇을 먹는지 밖의 사람은 모른다.

가령 유태인이 남의 집을 방문했거나 번화한 도시에 있을 때 유태인의 계율에 따른 식사를 한다해도, 그들이 집에 돌아갔을 때는 무엇을 어
떻게 먹는지 아무도 알

                                                                                                                                                                                                                                                                                                                                                            맛?동족이 비참하게 학살당했
으나, 이를 저주하는 반독일이나 독일 민족을 원망하는 책도 없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아랍민족과 전쟁을 하면서 그들에 대한 증오심은 가
지고 있지 않다. 기독교인들로부터 모진 박해를 받은 유태인들이지만 기독교인들을 증오하지 않는다.

세익스피어가 쓴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유태인 샤일록이 증오심에 불타, 돈을 갚지 못하면 그 대신 상대방의 심장을 도려내라고 했
다는 것은 적어도 유태인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전혀 사실과 다른 표현이라는 것이다.

바울에 대한 베드로의 말은, 바울의 인물 됨됨이에 대한 것보다는 베드로가 어떠한 인물인가에 대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세
익스피어는 기독교인이었으므로, 기독교인으로서의 생각을 표현한 것에 불과하며 결코 유태인과는 상관없는 것이라는 점이다.

가령 유태 민족이 탐욕스럽고 교활하고 부정직하고 증오심이 많은 잔인한 민족이라면 카톨릭협회가 기독교인이 아닌 유태인에게 자금을
융통해 가겠는가? 이를 보아도 유태인이 동정심이 많고 신뢰할 수 있는 민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태인은 언제이고 온화한 마음을 지
지고 있어 만약 유태인에게 슬픈 사정을 말하면 반드시 동정의 마음을 베풀어 줄 것이다.

유태인들은 가지고 있던 돈을 강탈당해도 그를 벌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범인을 찾아 벌하기보다는 그로부터 돈을 되돌려받는 것에 더
마음을 쓴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돈 대신에 자동차, 시게와 같은 물건을 저당으로 잡지 심장을 도려내라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탈무드>에서는, 인간은 모두가 한 가족이며 더 나아가 커다란 한 덩어리임을 강조했다. 그래서 자신이 오른손으로 무엇인가 만들고 있을
때 왼손을 잘라 냈다고 해서 보복하기 위해 오른손을 잘라내는 따위의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탈무드> 시대에는 유태인 사회에 고리대금 업자는 없었다. 그 때는 농경이 주업인 사회였으므로 대부분 어려운 생활에 허덕이었다. 그러
므로 세익스피어 작품을 읽을 때는 먼저 기독교인들이 유태인을 얼마나 증요하고 천대하였는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신약성서를 보
면 예루살렘의 환전상은 대부분 유태인들이 운영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돈'이란 것을 '악'의 근원으로 보고 있지만 유태인
들은 돈을 악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돈을 차용했을 경우, 그 돈을 정확하게 환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탈무드>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
도 있다.

가령 옷을 담보로 하여 돈을 빌려 주었을 때, 돈을 빌려 간 사람이 그 옷 한벌밖에 달리 가진 것이 없다면, 돈을 빌려준 사람은 그것을 자기
것으로 할 수가 없다.

집을 담보로 하여 돈을 빌려주었다 해도 채무자가 그 집이 없을 때 만약 길거리에 나앉을 형편이면 채권자라 해도 그 집을 자기 소유로 바
꿀 수가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단 하나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라 해도 이것이 사치를 위한 소유물일 경우에는 앞서의 경우와는 다르다. 다만 살기 위해서는 반
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물건일 때 이것을 채권자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먹고 살기 위해 당나귀 한마리를 가지고 있을때, 아무
리 채권자라 해도 이 당나귀는 빼앗아 갈 수 없다. 하지만 당나귀를 이용하지 않는 밤에는 끌어갈 수 있다.

만약 의복을 저당으로 잡았을 경우, 추운 밤이면 그 옷을 되돌려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돈을 빙자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마
는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담벽
유태인은 인간은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녀원이나 결혼하지 않는 승려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는다.
<탈무드>에는 '1미터의 담이 100미터의 담벽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즉, 1미터의 담벽은 오랫동안 똑바로 서 있을 수 있지만, 100미터의 담
벽은 쉽게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평생을 성 행위를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므로, 이것을 100미터의 담벽에 비
유한 것이다.

아내가 없는 유태인은 생활 속에 행복도 없고, 하나님의 축복도 받지 못하고, 선행도 많이 쌓지 못한다. 남자는 18세에 결혼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탈무드>는 말하고 있다.

 학자
유태인은 모든 재산을 팔아서라도 딸을 학자와 혼인시키는 것은 좋은 일이고, 학자의 딸을 맞기 위해서는 모든 재산을 잃어도 좋다고 생각
하였다.

'7'의 숫자
유태인에게 '7'이라는 숫자는 매우 중요하다. 첫째, 1주일 중에는 7일째에 안식일이 온다.
또한 7년째 해에는 밭을 갈지 않고 묵혀 쉬게 한다. 그리고 49년째 되는 해는 대단히 경사스런 해로, 이 해에는 밭을 갈지 않고 묵히며, 남에
게 빌린 돈도 채무가 소멸된다.

일년에 두번 있는 대축제인 패스오버(출애굽 기념)와 스코트(수확제)는각각 7일동안이나 계속된다.

유태의 달력은 세게에서 가장 정확하다. 지난달 모두가 노예였던 유태인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하던 날, 이것은 유태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
한 일이니만큼, 그것을 첫번째 달로 삼고, 그때부터 7개월 후에 신년을 맞이한다. 미국의 신년은 1월 1일이지만,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첫달
은 미국이 독립한 7월이다. 회계년도나 학교의 연도도 모두 7월에 시작된다. 그외 마찬가지로, 유태인들도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자유를 얻
은 때를 첫달로 삼는다. 그래서, 이 첫달에 패스오버 축제를 열고, 7개월째에 새해를 맞아 스코트를 축제를 갖는다.

 먹을 수 없는 것
유태인들은, 고기에서 피가 전부 빠져나갔을 때 비로소 고기를 먹는다. 피는 곧 생명이다. 그래서, 물고기나 짐승의 고기를 먹을 때 그 피를
모두 제거하므로 유태인들이 먹는 고기는 매우 건조되어 있고 깨끗하다. 동물을 때려서 잡으면 피가 굳어 버리기 때문에, 유태인들은 그런
방법으로는 절대 짐승을 죽이지 않는다. 또한 전기로 죽이는 방법도 마찬가지이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유태인들은 오래 전부터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서 피를 모두 빼내는 방법을 실험해 왔다. 먼저 동물을 죽여서 30분 동안 물에 담갔다
가, 굵은 소금을 뿌려서 그 소금이 피를 흡수하게 한다.

굵은 소금을 뿌리면 소금 주변에 피가 흡수되어 붉은 피의 테가 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생긴다. 이때 흡수된 피는 물로 씻는다. 고기 중에
서 간장이나 심장과 같이 특히 피가 많은 부분은 피를 모두 증발시키기 위해 불에 구워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피가 더럽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닭이나 소를 도살하는 사람은 전문가이기 때문에 랍비처럼 특별한 훈련을 받은 해부학의 권위자들이며, 그들은 신앙심도 대단히 두터워 사
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유태인들은 이미 4천년 전부터 해부학에는 특히 조예가 깊었다.<탈무드>에도 랍비가 인체 해부까지 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인데, 당시
는 이미 해부의 지식은 완전히 알았던 것으로 추축되고 있다.

짐승을 도살하거나 해부할 때는 매우 잘 듣는 칼을 사용하는데, 칼은 쓸 때마다 숫돌에 갈아 날을 세운다. 그리고 도살할 짐승을 거꾸로 매
달아 놓고 목을 잘라 피가 콸콸 쏟아져 나오게한다.

짐승을 죽인 사람은 그 짐승을 자세하게 조사하는데, 그것은 어느 나라의 식욕 검사보다도 철저하다. 다른 나라의 검사에서는 먹어도 좋다
고 판정한 것도, 먹지 못한다고 판정하는 경우가 많다. 유태인들에게는 피를 기피하는 관념은 없다. 제단에 양을 제물로 바칠 때에도 피를
더러운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또 <탈무드>, 는 다른 사람은 새우를 먹고 있는데 유태인들은 새우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유태인들이 더 위생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가령, 유태인들이 새우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새우가 좋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어떤 이유도 없으며, 다만 하나님이
유태인들에게 새우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먹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또 유태인들은 네 발을 가진 동물 중에서도 두 개 이상의
위를 가지고 있는 발굽이 두 개로 갈라진 동물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

돼지는 위가 하나뿐이고, 말은 발굽이 갈라져 있지 않기 때문에 식용으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물고기도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으면 먹지 않기 때문에, 미꾸라지와 뱀장어도 먹지 않는다.또 고기를 먹고 사는 새 종류도 먹지 않는
다. 그래서 독수리나 매 같은 새도 먹을 수 없다.

 거짓말
어느 경우에 한해 거짓말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을까? <탈무드>는 두가지 경우에 한해서는 거짓말을 해도 좋다고 되어 있다.
첫째, 누가 이미 물건을 산 후 어떠냐고 의견을 물으면, 설령 그것이 좋지 않아도 좋은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라.

둘째, 찬구가 결혼을 했을 때에는 반드시 부인이 정말 미인이니, 행복하게 살라고 거짓말을 하라.

 착한 자
세상에는 네 가지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을 금.은, 철, 구리인데, 그러나 이것들은 그 대용품을 구할 수가 있다. 정말로 다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으로서 필요한 것은
착한 사라이다.
<탈무드>에 의하면, 착한 사람은 큰 야자나무처럼 무성하게 마련이고 레바논의 큰 삼나무처럼 늠름하게 하늘높이 치솟아 있는 것이라고
한다. 야자나무는 한번 잘라 버리면 다음에 싹이 터 자랄 때까지 4년이란 세월이 걸리고, 레바논의 삼나무는 아주 멀리에서도 볼 수 있을 만
큼 크게 자란다.

 동전(주즈)
<탈무드> 시대의 유태인 가정에서는 안식일 전날인 금요일 저녁에, 어머니는 반드시 촛불을 켠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이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을 드린다.
유태인 가정에는 촛불을 켤 때, <유태 민족 기금(Jewish National Fund)>이라고 쓴 상자를 준비한다. 이때 아이들에게는 미리 동전이 주어
지고, 어머니가 불을 붙이면, 아이들은 그 돈을 상자에 넣는다. 이런 방법으로 유태인들은 자선 행위를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있다. 금요일
오후가 되면 가난한 사람들은 도움을 받기 위해 부자집들을 돈단. 그러면 그 집의 부모는 자기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접 돈을 건네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아이들에게 상자 속의 돈을 꺼내어 주도록 시킨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마음을 심어 주기 위해서이다.

지금도 유태인들은 세계에서 자선을 위해 가장 많은 돈을 쓰는 민족으로 인정받고 있다.

 두개의 머리
<탈무드>에는 어떤 사고법을 단련시키기 위해 현실성이 부족한 원리와 같은 이야기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 한 가지 예를 들어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자.
현실과 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다음과 같은 가설적인 질문이 있다고 하자. [만일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어린아이가 태어났다면, 이 아이를 한
사람으로 대우해야 하는가. 아니면 두 사람으로 대우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얼핏 생각하기에는 터무니없는 것 같지만, 예를 들어, '인간
은 설령 머리가 둘이더라도 몸통이 하나이면 한 사람이다'라든지 '머리 하나를 한 사람으로 취급해야 한다'라는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어린아이가 태어나 한 달이 지나면 예배당으로 데리고 가서 축복을 받는다. 그런데 이 때 머리가 둘이면 두 번 축복을 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몸통이 하나이니까 한번만 받아도 되는가?
또, 기도할 때는 작은 주발을 머리 위에 얹는데 이 때 머리가 둘이니까 두 개의 주발을 얹어야 하는가? 혹은 몸통이 하나이니까 한 개의 주
바를 얹어야 하는가?

여러분은 이 가설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리겠는가? <탈무드> 의 답은 아주 명쾌하다. 한쪽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 다른쪽 머리도 뜨겁다
고 비명을 지르면 한 사람이고, 만일 다른쪽 머리가 무표정하게 있으면 두 사람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나는 유태인들이 어떤 민족인가를 이야기할 경우, 이 이야기를 곧잘 인용한다. 결국, 이스라엘에 있는 유태인들이 박해를 받거나, 러시아에
있는 유태인들이 박해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고통을 느끼고 비명을 지른다면 그는 유태인이고,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고 하면
그는 유태인이 아닌 것이다.

<탈무드>에는 이와 같이 응용 범위가 넓은 우화들이 매우 많다. 왜 랍비들은 설교를 할 때, 이와 같이 어려운 우화를 인용했을까? 그것은,
사람들이 설교는 곧 잊기 쉽지만, 우화의 교훈은 오래도록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유태인에게는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죄이므로, 남편은 아
내를 용서해줄 수 있는 권리조차 없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유태인에게 내리신 율법에 도전한 범죄이다. 그래서 이것은 인간에 대한 죄가 아
니라, 하나님에 대한 죄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자백
유태인의 법에서는 자기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것은 무효이므로 자백이란 인정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랜 경험에 의해서 고문으로 자백을 받아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서는 지금도 자백
에 의한 죄는 무효이다.

 성에 대하여
성 관계는 올바르고 깨끗하게 행하면 기쁨이 된다. 성에 대하여 추하다거나 부끄러다는 말을 써서는 안된다. <탈무드>에 보면 '모든 교사
는 아내를 얻지 않으면 안되며, 모든 랍비는 결혼한 사람이어야만 된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아내가 없는 사람은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사상에서 유래한 것이다. <탈무드>에서는 성을 일컬어 '생명의 강'이라고 한다. 강
물은 때로는 홍수를 일으키고 온갖 것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갖가지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여 세상을 유익하게 만들기도 한다.

남자의 성적 흥분은 시각을 통해서 일어나고, 여자는 성적 흥분이며 피부의 감각을 통해 일어난다.

<탈무드>에는 남자들에게 '여자와 몸이 닿을 때 주의하라'고 했고, 여자들에게는 '특히 옷 입은 법에 주의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계엄이 엄격한 유태인 사회에서는 상인이 거스름 돈을 줄 때에도 여자 손님에게는 결코 손으로 직접 건네주지 않는다. 그들은 반드시 거스
름 돈을 어딘가에 놓아서 손님이 가져가게 하낟. 또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는 이스라엘의 여성들은 미니스커트 따위는 결코 입지 않고, 긴
소매에 긴 스커트를 입는다.

랍비는, 성 행위 때 남성이 절정에 이를 때와 여성이 절정에 이를 때에 시간적 차이가 있음을 알고 있다. 즉, 여성이 절정에 도달하기도 전
에 남성은 행위를 끝낼 수도 있다.

남편이 아내의 허락 없이 일방적으로 아내를 끌어 안는 것은 강간이나 다르없기 때문에, 남편이 아내와 성관계를 맺을 때에는 아내를 반드
시 설득하여야 한다.

상냥하게 말을 걸고 사랑이 넘치는 애무를 해주는 시간을 충분히 갖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월경 중에는 아내를 멀리해야 한다. 월경 후에도 7일간은 금지되어 있다. 아무리 부부 사이라 해도 이 며칠 동안에는 절대로 관게를 가질 수
없으므로, 이 동안 아내에 대한 남편의 그리움이 깊어져서 계율의 날짜가 지나면, 부부는 항상 신혼 때와 같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결혼한 여자는 절대로 외간 남자와 성 관계를 맺어서는 안된다. 그러나<탈무드> 시대의 남자에게는 두 사람 이상의 아내를 얻는 일이 허용
되었지만, 일부일처 제도가 확립된 이후부터는 누구나 아내를 한 사람 이상은 갖지 않았다.

아내 이외에 다른 여자를 갖는 것은 성실성이 없는 남편이라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무드>에는 매춘부를 사는 얘기가 기록되어 있다. 자위 행위를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매춘부를 사는 것이 낫고, 아내가 계속 거
절할 때 매춘부를 찾아가는 것은 기혼자라 해도 부득이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유태인 사회는 학문을 중하게 여기고 계율을 존중하고
종교를 존중하기 때문에 매춘 행위가 성행할 요소는 별로 없었다.

<탈무드> 시대부터 랍비들은 피임법에 정통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어떤 피임법을 쓸 것인가는 모두 랍비가 지도하였는데, 피임법은
여자만이 사용하였다.

<탈무드>에는 피임법을 써도 좋은 세가지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임신한 여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여자, 그리고 어린 여자의 경우였다.

임신한 여자에게 피임법을 써야 하는 이유는, 그 당시 랍비들의 지식으로는 임신 중에도 또 임신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
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여자의 경우에는, 어린아이가 네 살이 될 때까지는 보살펴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여 이
기간에 또 임신하는 것은 별로 장려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린 여자의 경우는, 아무리 결혼한 사이라 하더라도 해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밖에는 흉년이 들었을 경우, 전염병이 퍼지고 있을
경우 등에도 피임법을 쓰도록 장려했다.

 동성애
랍비들에게 있어서 동성애는 용서할 수 없는 행위였다. 유태인들 사이에는 동성애의 예가 극히 적었다.
왜냐하면 아주 강한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 이것이 유태인 남녀의 이상형이었기 때문이다.

 사형
법원에서 사령의 판결을 내릴 경우 판결이 판사들의 전원 일치로 이루어지면 그 판결은 무효이다. 그것은 재판에서는 항상 두 가지 견해가
존재하기 마련인데, 한 가지 견해밖에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재판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형이라는 극형을 결정할 때에도 판사 전원의 의견 일치로 이루어지면 그 사형판결은 무효라는 규정이 있었다.

 물레방아
갑과 을, 두 사람이 있었다.그런데 갑은 을에게 물레방아를 질려 주었다. 그 조건은, 을이 갑의 곡식을 모두 찧어 주고 그 대신 을이 갑의 물
레방아를 사용한다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갑은 많은 돈을 벌어서 다른 물레방아를 몇개 더 샀기 때문에 , 곡식찧는 일을 을
에게 맡길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날 갑은 을에게 가서 임대료를 돈으로 달라고 했다. 그러나 을은 임대료 대신 갑의 곡식을 찧고
싶었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면 좋을까?

<탈무드> 의 판결은 이러하였다. 만일 을이 갑의 곡식을 찧어주지 않고는임대료를 지불할 능력이 없다면, 계약대로 임대료 대신 갑의 곡식
을 게속 찧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갑이 아닌 제3자의 곡식을 찧어서 돈으로 임대료를 지불할 수 있다면, 돈으로 지불해야 한다.

 고용계약
고용주와 종업원 사이에 계약을 맺었다. 종업원은 고용주를 위해 일을 하고 1주일마다 임금을 받기로 하였다. 그런데 현금이 아니라 근처의
상점에서 그 금액에 상당하는 물건을 사면, 상점에서는 고용주로부터 대금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계약한 것이다.
1주일이 지나자 종업원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고용주에게 찾아와서 말했다. [상점에서는 현금이 아니면 물건을 팔지 않겠다고 하니 현금을
지불해 주십시오.]
그런데 느닷없이 상점 주인이 찾아와서 말하는 것이었다.

[댁의 종업원이 물건을 이만큼 가지고 가서 대금을 받으러 왔습니다.]
이 경우에 고용주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어서, 아무리 조사를 해 보아도 종업원이나 상점 주인에 대한 사실을 증명할 만한 것이 없었다.<탈무드>에서
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신의 이름으로 선서까지 했고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으므로 <탈무드>는 고용주에
게 양쪽 모두에게 지불하라고 했다.

왜냐하면 종업원은 상점 주인의 청구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며, 상점 주인도 종업원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다.그러나 고용주는 양쪽
에 다같이 관계가 있으므로, 그런 관계를 가진 이상 양쪽 모두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에 양쪽 모두에게 지불하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탈무드>안에서도 오랫동안 토의되어 온 항목이지만 이 의견이 가장 타당하다. 어느 한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들은 선서를 했고, 고용주는 양쪽 모두에 관련되어 있으므로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이것은 경솔한 계약 행위를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암시해주는 교훈이다.

 광고
현대 사회는 광고를 할 때에 지나친 과장이나 허위로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자동차, 맥주, 전자제품 등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
고 있는 광고를 보면, 광고가 반드시 올바른 정보만을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어떤 회사의 상품이 다른 회사
의 상품보다 특별하게 우수하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반대로 다른 회사의 상품 광고를 보면, 역시 그들도 똑같은 선전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
이다.
그리고 상품과는 관계없는 포장이나 디자인도 많이 이용되고 있는데, 오늘날에는 그와 같은 일이 관습이 되어, 오히려 좋은 판매 방법이라
고 까지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담배 광고에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승용차 안에서 담배를 맛있게 피우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이 광고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이 아름다운 아가씨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탈무드>는 이와 같은 판매 방법을 금지하고 있다.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탈무드>는 이와같은 판매 방법을 금지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탈무드>는 소를 팔 경우 다른 색을 칠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고, 또 여러 가지 도구에 색깔을 칠하여 새것으로 보이게 위장하는 것도 금하
고 있다. 결국, 소비자를 속일 목적으로 상품에 색깔을 칠하는 것은 금하고 있는 것이다.

<탈무드>에는, 어떤 늙은 노예가 머리에 염색을 하고 얼굴에 화장을 해서 자신을 젊어 보이게 하여 사는 사람을 속였다는 얘기가 실려 있
다.

또 과일가게에서는 신성한 과일을 오래된 과일 위에 올려 놓고 ?

                                                                                                                                                                                                                                                                                                                                                                                                                     '풀야드'니 하는 과장된 말들이 사용되고 있다. '풀 야드'라고 해야 사실은 1야드에 지나지 않으므로, <탈무드>에서는 일찍이 이
런 말을 사용하는 것이 금해져 있었던 것이다.

 소유권
현대 사회는 광고를 할 때에 지나친 과장이나 허위로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자동차, 맥주, 전자제품 등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
고 있는 광고를 보면, 광고가 반드시 올바른 정보만을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어떤 회사의 상품이 다른 회사
의 상품보다 특별하게 우수하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반대로 다른 회사의 상품 광고를 보면, 역시 그들도 똑같은 선전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
이다.
그리고 상품과는 관계없는 포장이나 디자인도 많이 이용되고 있는데, 오늘날에는 그와 같은 일이 관습이 되어, 오히려 좋은 판매 방법이라
고 까지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담배 광고에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승용차 안에서 담배를 맛있게 피우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이 광고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이 아름다운 아가씨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탈무드>는 이와 같은 판매 방법을 금지하고 있다.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탈무드>는 이와같은 판매 방법을 금지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탈무드>는 소를 팔 경우 다른 색을 칠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고, 또 여러 가지 도구에 색깔을 칠하여 새것으로 보이게 위장하는 것도 금하
고 있다. 결국, 소비자를 속일 목적으로 상품에 색깔을 칠하는 것은 금하고 있는 것이다.

<탈무드>에는, 어떤 늙은 노예가 머리에 염색을 하고 얼굴에 화장을 해서 자신을 젊어 보이게 하여 사는 사람을 속였다는 얘기가 실려 있
다.

또 과일가게에서는 신성한 과일을 오래된 과일 위에 올려 놓고 파는 것도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또 <탈무드>에는 건물의 안전 규정에 대
해서도 차양 길이의 제한이나 발코니 기둥의 굵기 등에 이르기까지 아주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 시간에 대해서는 그 지방의
상식적으로 통하는 관례이상으로 이를 시켜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고, 과일을 따는 노동자를 고용했을 경우, 그 노동자가 일하는 동안 어
느 정도의 과일을 따먹는 것은 금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탈무드>에서는 상품을 팔때 그 물건과 성질이 다른 상붙이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광고에서는 '킹 사이즈'니 '풀야드'니
하는 과장된 말들이 사용되고 있다. '풀 야드'라고 해야 사실은 1야드에 지나지 않으므로, <탈무드>에서는 일찍이 이런 말을 사용하는 것이
금해져 있었던 것이다

 두 세계
어떤 두 사람에게 랍비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랍비이므로, 사람들은 나를 전적으로 믿고 있다. 나는 두 사람중 한 사람에게 만원을 빌렸고, 다른 한 사람으로부터는 2만원을 빌렸
다. 그런데 어느날 두 사람이 와서, 나에게 다같이 2만원씩을 갚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누구에게서 만원을 빌렸는지 기억할 수가 없다.
나는 과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에 대하여 <탈무드>에는 두 견해가 있다.
[누구에게 2만원을 빌렸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두 사람에게 다 만원씩 빌린 것만을 틀림이 없다. 그러니까 우선 두 사람에게 각각 만원
씩은 갚아주고 나머지 만원은 증거가 나올 때까지 법정에 맡겨 두도록 한다.]
이러한 의견에 어떤 랍비가 이렇게 말하였다.

[두 사람중 한 명은 도둑이다. 만원밖에 빌려 주지 않고서 만원을 더 받아내려고 한다. 그런데 만원씩을 돌려 준다면, 그 도둑에게는 아무런
손해가 없다. 이래 가지고는 사회의 정의가 바로 서지 못한다. 도둑이나 나쁜 사람이 이득을 보거나 벌을 받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사회정
의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두 사람에게 한 푼도 갚지 말고 법정에 예치해 두어야 한다.]
그러면 도둑 쪽에서는 만원마저 돌려 받지 못하면 손해가 되니까, 집에 가서 장부를 다시 살려보니 2만원이 아니라 만원이었다고 말하면 만
원을 찾으러 올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앞에서 예를 든 극장 이야기로 돌아가서, 극장의 경우도 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을 발견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틀림없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거짓말을 한 사람이 그 돈의 절반을 차지한다면, 거짓말을 하고도 이득을 보게되는 것
이므로, 이것은 사회정의에서 어긋난다. 그러므로, 확실한 증거가나올 때까지 그 돈을 법정에 보관해야 두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극장의 경우는 두 사람이 정말로 동시에 그것을 발견할 수도 있으므로, 그들에게 선서를 시켜도 괜찮다. 그러나 만원과 2만원의 경
우는 어느 한족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므로, 그들에게 선서를 시킨다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선서를 허위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십계명 중의 하나로, 선서를 허위로 하면 39번 채찍으로 맞는벌을 받는다. 선서를 하고도 거
짓말을 한다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탈무드>에서는 극장의 경우 한 사람이 'ㅇ것은 내가 발견했기 때문에 전부 내 것이다'라고 말하고, 또 한 사람도 '이것은 전부 내
것이다'라고 말하며, 선서를 하고서도 자기의 주장을 계속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탈무드>가 아무리 많은 내용을 담은 책이라 해도, 기나긴 역사를 한정된 지면에 담고 있기 때문에, 한 가지 테마에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
할 수 없는데도 이 논쟁에서는 반복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것은 <탈무드>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이다. 그러나, 조금더 깊이 보면 이것은 두
가지의 모순되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세상의 모든 일에는 두 가지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7>탈무드의 손
형제애
두 형제가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두 사람중 어느쪽 의견이 옳고 그른가를 따지는 다툼이 아니라,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언 때문에 일어난
싸움이었다. 어머니의 유언을 해석해 보면 제각기 일리가 있었다.
두 형제는 어릴 때부터 전쟁 때문에 독일, 러시아, 시베리아, 만주 등 이곳저곳을 정처없이 숨어다닌 탓으로 형제애가 남달리 두터웠다. 그
런데 이 유언을 놓고 다투면서 서로 중상하고 반목하였으므로, 형은 동생을 잃게 되고 동생은 형을 잃게 된 처지가 되고 말았다. 두 형제는
서로 말도 끊은 데다다 한방에 있는 것조차 싫어하였다.

어느날 두 형제는 따로 나를 찾아와 형은 동생을 잃었음을, 동생은 아끼던 형을 잃었음을 크게 한탄하였다. 이것을 보면, 이 두 형제는 애초
부터 다툴 마음은 없었던 것이다.

필자가 아메리칸 클럽의 강사로 초빙된 기회가 생겨, 나눈 주최측에 부탁하여 두 형제가 서로 모르게 참석할 수 있도록 특별히 부탁하였다.
서로가 불편한 평소였으면 얼굴을 마주치면 이내 헤어져 돌아갔겠지만, 이날만은 초청자의 체면을 생각해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필자는 형
식적인 인사말을 끝내고 한편의 <탈무드>이야기를 하였다. 어느 때인가 이스라엘에 두 형제가 살고 있었다.

형은 나이가 들어 결혼하였으므로 아내와 자식까지 두었고, 동생은 아직 미혼자였다.

두형제는 하나같이 아주 부지런한 농군이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물려받은 재산을 똑같이 분배하였다.

형제는 수확한 사과와 옥수수를 똑같이 나누어 각각 자기 몫을 각자의 곳간에 저장하였다. 그러나 밤이 이슥해지자 동생은 '형님은 딸린 식
구가 많아 식량이 부족할 터이니, 내 몫을 좀 덜어 드려야지"하고 형님 곳간으로 많은 양을 옮겨 놓았다.

그런데 형은 형대로 '나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으니 늙어서도 별 걱정이 없겠지만 동생은 혼자몸이니 미리 저축해 놓아야 할 거야' 이렇게
생각하고는 자기 몫을 떼어 동생 곳간에다 옮겨 놓았다.

날이 밝아 형제는 각기 자기 곳간을 가 보니 웬일인지 자기 몫들이 조금도 줄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런 일은 다음날 밤에도 또 그
다음날 밤에도 반복되어 사흘 밤이나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밤, 두 형제는 전날 밤과 같이 자기 몫을 떼어 상대방의 곳간으로
나르다가 그만 중간에서 서로 부딪쳤다. 그래 두 형제는 얼마나 서로를 아끼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두 형제는 뜨거운 형제
애에 그만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울었는데, 이 울었던 곳이 예루살렘의 가장 고귀한 장소로 지금도 알려지고 있다.

필자는 이 강연회를 통해 한 가족의 사랑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것인가에 대해 몇 번이고 강조하였다. 그 결과 다투었던 두 형제는 그동
안 반목을 풀고 다시 옛날과 같은 사이로 돌아갔던 것이다.

 개와 우유
개를 기르고 있는 어떤 집이 있었다. 개는 이 집 식구들과 오랜 동안 함께 생활하여 식구들도 이 개를 아주 귀여워 했다. 특히 식구 중에서
도 어린 아들 하나가 개를 더욱 좋아했다. 아들은 잠잘 때까지도 침대 밑에다 재우는 등 개와는 한마음이 되어 생활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날 그 개가 그만 죽고 말았다.
아버지는 슬퍼하는 아들에게 개는 언젠가는 꼭 죽게 됨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달랬다.

아들은 제 형제처럼 가깝게 지냈던 아주 충직한 친구를 잃어 슬퍼하면서 집 뒷뜰에 묻겠다고 말했다. 물론 아들도 개와 사람은 서로 다르다
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 개를 아무곳에나 내다 버리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개를 집안에다 묻는 것을 반대하여 식구들 사이에 말다툼이 일어났다. 이렇게 되자 아버지는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 유태
전통에 개를 묻어주는 의식도 있는가를 물었다.

필자는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지금까지 숱한 상담을 해 왔지만, 개에 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
던 것이다. 그러나 얼핏 머리에 떠오른 것은 개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을 어린 아들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그 집을 한번 찾아가 보겠다고 약속했다. 랍비는 관례상 그런 상담을 전화로 하지 않는다. 본인과 직접 만나 의견을 나누
는 것이 통상적인 자세이다.

필자는 그 집을 찾아가기 전에 <탈무드>에 개에 관한 어떤 이야기가 있는가 찾아보았다. 그런데 <탈무드>엔 마침 다음과 같은 좋은 이야
기가 있었다. 집 안에 우유가 있었는데 뱀 한마리가 마침 그 우유 속으로 들어갔다. 옛날 이스라엘의 농촌에는 뱀이 자주 많았다. 그런데 그
뱀이 독사였으므로, 우유에는 뱀의 독이 녹아들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집에 있던 개뿐이었다. 그뒤 식구들이 우유를 꺼내 먹으
려하자 개가 몹시 짖어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식구들은 그 개가 왜 그렇게 심하게 짖어 대는지 알지 못하였다.

그때 식구 중 한 사람이 그 우유를 마시려하자 개가 갑자기 덤벼드는 바람에 우유가 엎질러지고 말았다.개는 그것을 핥아 먹고는 곧 죽었
다. 그제서야 식구들은 그 우유에 독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죽은 개는 랍비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필자는 그 집을 찾아가 식구들에게 <탈무드>에 있는 이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제서야 아버지의 마음도 풀어졌고, 어린 아들의 희망대로
그 개는 집안 뒷뜰에 묻혀졌다.

 나귀와 다이아몬드
어떤 유태 부인이 백화점에 들려 물건을 샀다. 집에 돌아와 집꾸러미를 풀어보니, 짐 속에는 자기가 사지 않은 것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보
석이어서 매우 값이 비싼듯 보였다.부인이 백화점에서 구입한 것은 양복과 외투였다. 부인은 아들과 단 둘이 살고 있어 생활의 여유같은 것
은 없었지만, 보석 이야기를 어린 아들에게 말해 주고, 둘이 랍비인 필자를 찾아와 의논하였다. 그래서 나는 <탈무드>의 이야기를 해 주었
다.
어떤 랍비 한 사람이 나무장사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그는 산에서 나무를 해 시내로 져다 팔았다. 그는 나무를 팔기 위해 오고가는 시
간을 절약하여 그 시간에 <탈무드>공부를 할 생각으로 당나귀를 사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는 시내 장터의 한 아랍인으로부터 당나귀를 사들였다. 랍비의 제자들은 랍비가 당나귀를 산 것을 기뻐하며, 냇가에서 당나귀를
물로 씻어 주었다. 그러자 당나귀의 목에서 다이아몬드 한 개가 떨어졌다. 제자들은 크게 기뻐하면서, 이제 랍비는 가난을 면하고 자기들을
가르칠 시간이 많아지겠다고 즐거워했다.

그러나 랍비는 당나귀를 판 아랍인에게 얻은 다이아몬드를 즉시 돌려 주라고 제자에게 명하였다. 그러자 제자가 '선생님이 산 당나귀가 아
닙니까?'하고 묻자 랍비는 '내가 산 것은 당나귀이지 다이아몬드는 산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돈으로 주고 산 것만 가지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였다.

그래서 랍비는 아랍인에게 다이아몬드를 돌려주었다. 그러자 아랍인은 '당신은 이 당나귀를 삿고 다이아몬드도 이 당나귀에서 나왔는데,
왜 그것을 내게 돌려주는 것이오'하고 물었다.

랍비가 대답하기를 '유태의 전통은 돈을 내고 산 물건 이외에 더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돌려 주는 것입니다'했다. 이에 아랍인은 '유태
인들의 신은 참으로 훌륭한 신이군요' 하며 칭송하였다. 여기까지 말을 들은 부인은, 곧 돌려주러 갈 생각인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묻는 것이었다.

필자는 '그 보석은 백화점이 주인인지 물건을 팔던 점원이 주인인지 알 수는 없으나, 왜 돌려주느냐고 물으면 유태인이기 때문이라고만 말
하시오. 그리고 돌려주려고 갈 때에는 아들을 데리고 가 그 모습을 보여주시오. 아들은 어머니의 정직함을 영원힌 잊지 않을 테니까요?'하
고 말하였다.

 벌금의 규칙
어떤 유태인 회사에서 유태인 사원이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사원이 회사 공급을 가지고 달아나 버렸다. 사장은 크게 화가 나서
경찰에 신고하려 했는데, 회사 책임자가 필자를 찾아와 처리 문제를 의논하였다.
그래서 나는 신고하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이 정말 돈을 가지고 달아났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일러주었다. 만일 그 사람이 공금을
가지고 도망했다 하여 경찰에 고발하면 그가 감옥에 들어갈 것이 틀림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것은 유태인이 취할 현명한 태도가 아니라
고 일러주었다.

왜냐하면, 그 절도범이 감옥에 갇히면 공금을 받기가 어렵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먼저 가져간 돈을 돌려받고, 거기에 덧붙여 벌
금을 물게 하는게 낫겠다고 하였다.

공금을 갖고 달아난 사람을 찾아내어 그 말을 전하자. 그는 가지고 있는 돈이 전혀 없다는 대답이었다. 그래서 그를 경찰에 고발하지 않고
내방에서 재판을 받았다.

감옥에 가 갇혀 있는 것보다는 그 시간에 일을 해 버는 돈 중에서 조금씩 나누어 갚기로 합의하였고, 동시에 벌금을 물게하여 그 벌금의 금
액은 자선 행사에 쓰기로 하였다.

유태인의 사회에서, 이틀레면 A는 사람이 백만원을 훔쳤기 때문에 랍비에게 재판을 받고 벌금까지 백십만원을 갚으면, 그때부터 그는 전과
가 없어지고 결백한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때 돈을 잃었던 사람이 '저 녀석은 훔친 놈이다'라고 말하면, 오히려 욕을 한 사람이 나쁜
사람으로 취급된다.

대개 이런 경우 벌금이 약 20%이상이 되는데, 이때에는 엄격한 규칙이 적용된다. 예를들면 무엇을 언제 훔쳤는가, 그것으로 돈을 벌였는가
를 따져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벌금이 정해지는 것이다.

<탈무드>에서는 말을 훔쳤을 때 가장 많은 벌금을 문다. 왜냐하면, 훔친 말로 돈을 벌 수도 있으며, 반대로 말을 잃은 사람은 그만큼 어려
움을 겪기 때문이다. 오늘날엔 말과 같은 것이 있다면 화물차가 되겠지만, 이 경우엔 400%이상의 벌금을 물게 된다. 그리고 보통 당나귀가
말보다는 벌금이 적다.이것은 말이 순하고 훔치기도 용이해서이다.

남의 것을 훔친 사람도 앞의 경우와 같다.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이면 20% 정도의 비교적 적은 벌금이 부과된다.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벌
금이나 이자를 물지 않으면 관청에서 대신 지불하도록 되어 있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감옥에 가두기도 하는데, 그러나 감옥에 감금하는 것
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 유태인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이다.

 아기와 산모 중 누구를?
어느 유태인 산모가 심한 난산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나는 한밤중에 산모 남편의 부름을 받고 병원에 갔다. 산모는 출혈이 심해 몹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 산모는 처음 낳는 아기였다. 검진을 마친 의사는 산모의 목숨을 건지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뱃속의 아기는 어떠냐고 물었다. 잘 알 수 없다는 의사의 대답이었다. 결국 산모와 아기 중 누구를 구하느냐 하는 심각한 순간
에 서게 되었다.

두 부부는 이 첫아기를 몹시 기다리고 있었다. 산모는 자기가 죽더라도 아기만은 살려달라고 부탁했다.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으나 결론이
나지 앉자 결국 나에게 결정권이 주어졌다.

나는 먼저 내가 내리는 결정은 내 개인 생각에 의한 결정이 아니고, <탈무드>와 유태인의 오랜 전통에 입각한 결정임으로 이에 반드시 따
르겠는가를 다짐하였다. 두 부부는 유태인의 전통이라면 결정에 따르겠다고 동의하였다.

나는 곧 산모를 살리고 아기를 포기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러자 산모는 그것은 살인 행위라고 반대하였다.하지만 유태인의 전통에 의하면
태어나기 전의 아기는 생명이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뱃속의 태아는 산모의 몸 일부분인 것이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몸의 일부분 즉
팔이나 다리를 잘라내는 일도 있다. 유태의 전통에는 만약 이러한 경우엔 반드시 산모의 생명을 구하도로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는 카톨릭 신부도 있었는데 그는 아기를 구하고 산모가 희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카톨릭에서는 임신이 되면 이미 새 생명
이 이루어진 것으로 여김으로, 카톨릭측 입장에서 보면 산모는 이미 세례를 받아 구원되었으나 뱃속의 태아는 아직 세례를 받지 못할 경우
가 되는 것이다. 유태인들의 결정은 수긍이 되지 않는다고 의아해 했다. 그러나 두 부부는 나의 결정에 따랐기 때문에 산모는 생명을 구했
고, 그뒤 곧 두번째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

 불공정 거래
어느날 한 상인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다른 상점에서 물건들을 터무니없이 싸게 팔고 있어 자기집 단골 손님이 줄어들고 있다고 호소하였
다. <탈무드>에는 부당한 경쟁에 대한 언급이 상당히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크게다루고 있다.그러나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탈
무드>에 그런 기록이 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나는 일주일 동안의 말미를 얻어 <탈무드>를 공부한 다음에 이 일에 당한 판단을 내려 주기
로 하였다.
<탈무드>에는 다음과 같이 훈계하고 있었다.

물건을 팔고 있는 상점의 옆에다 똑같은 물건을 파는 가게를 열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가령 두 상점 가운데 한 상점에서 아이들에게 팝콘같
은 하찮은 경품을 붙여 팔았다고 하자. 그래서 아이들이 어머니를 끌고 와 그 물건 사가게 된다면, 그럴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의
견이 엇갈렸다. 값을 내려가며 서로 경쟁하는 것은, 물건을 사가는 손님쪽에는 이익이 됨으로 좋은 일이 아닌가 하는 랍비들도 있었다. 그
러나 다른 랍비는 손님을 끌기 위해 제값을 받지 않고는 경품을 붙여파는 것은 부당한 경쟁이라 주장했다. vㅍ 하지만 대다수의 랍비들은
경품을 붙여 파는 것은 불공정한 것이 아니라고 결정을 내렸다. 물건을 사는 손님쪽에 이익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
들이었다.

다음날 또다시 찾아온 그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남의 것을 훔치는 행위는 분명히 금해져 있으나, 물건값을 경우에 따라 다소간 내려 파는 것은 정당한 행위입니다.

지금과 같이 자유 경쟁의 원리에 따라 소비자가 이익을 보는 경우에는 그것은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아내도 언제나 물건값이
비싸다고 불평하고 있다.

 위기를 면한 부부
결혼 10년을 맞이한 부부가 있었다. 이들은 부부 사이가 매우 좋아서 겉으로는 퍽 행복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되는 사람이 나를 찾
아와 이혼을 허락해 달라고 요구했다. 나도 그 부부들을 이미 알고 있었던터라, 설마 부부 사이가 불편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다.
사정인즉, 부부 사이에 아이가 없어 그들은 친척들로부터 이혼할 것을 강요 받아왔다는 것이다. 유태의 전통에 의하면, 결혼한지 10년이 되
어서도 아이를 얻지 못하면 이혼 조건이 성립된다. 그러나 이들 부부들은 헤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들과 친척들이 강력하
게 요구하고 있어, 남편은 어쩔 수 없이 랍비인 나를 찾아와 의논하게 되었다.

두 부부가 함께 나를 찾아왔을 때도 나는 두 사람의 진정한 사랑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랍비들은 이혼건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인 것이다. 왜냐하면, 한 번 결혼에 실패한 사람은 다시 재혼하여도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와 이혼을 하더라도 아내에게만은 굴욕감을 주지 않고 평온한 가운데 헤어지기를 바랬다. 그래서 나는 <탈무드>에서
의 요령을 쓰기로 하였다.

먼저 아내를 위한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거기에서 지금까지 함께 살아오면서 보여준 아내의 훌륭했던 점을 자랑하고, 아내로 하여금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직접 인사말을 하도록 하였다. 이들 부부는 서로 싫어서 헤어지는 ?

                                                                                                                                                                                                                                                                                                                                                                                                                                              퓸駭? 아내는 곧 '남편'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헤어지지 않았고, 그후 아이까
지도 낳게 되었다.

 남아 있는 양심
어느날 두 남자가 나를 찾아왔다. 사정을 들어보니, 친구가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빌려주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갚을 기일이 돌아오자 빌려
준 사람은 5백만원이라 하는데 빌린 사람은 2백만원밖에 빌리지 않았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를 판단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먼저 나는 두 사람을 각각 만나 이야기를 들은 뒤, 이번에는
두 사람을 함께 불러 셋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다음날 다시 만날 때까지는 결정을 내려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두 사람을 돌려보낸 뒤 나는 서재에서 이에 관한 책들을 찾아보았다. 틀림없이 5백만원을 차용해 주었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2백만원밖에는
빌려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심리적 상태는 어떠한가를 연구해본 것이다.

물론 돈을 주고받을 때 증서가 만들어지면 간단하지만, 유태인 사회에서는 친구 사이의 돈거래에는 증서 같은 것들을 만들지 않는 것이 관
례이다. 가령 2백만원밖에 빌려가지 않았다는 사람은, 가령 단 한푼도 빌린 일이 없다고 시치미를 떼어도 결과는 지금과 같지 않겠는가? 그
리고 5백만원을 빌려주지 않았는데도 빌려주었다고 주장한다는 것도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탈무드>에는 이에 관한 내용에 대해 다음과
같은 교훈을 주고 있다.

위선자가 거짓말을 할 때에는 철저하게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거짓말이라고 자신에게 불리한 것을 조금이라도 말할 때에는, 그의 말은
믿기가 쉽다. 왜냐8하면 그에게는 아직 조금 양심이란게 있으니까. 당사자 두 사람이 함께 만나면 거짓말의 정도가 가벼울 수 밖에 없다.

나는 가령 5백만원을 약속한 날에 꼭 갚겠다고 생각했다가 날짜가 되었을 때, 빌린 사람은 2백만원을 빌려갔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5백만원을 빌려준 사람도 잘못 기억한 탓으로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5백만원씩이나 남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은 큰 부자이므로 평소에 돈이 별로 부족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만약 또 다른 사람이 갑자기
돈이 필요하여서 그에게 돈을 빌리러 갔다면, 남에게 빌려준 돈을 깨끗하게 받지 못한 그 사람은 결코 또 돈을 빌려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태인 사회에서는 돈이란 항상 회전하고 있어야만 한다. 어쨌든 빌려간 사람은 2백만원밖에 빌려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나는 예배소에서 그에게 구약성경에 손을 얹게 하고 틀림없는 사실임을 서약할 수 있는가를 다짐하였다.그때서야 그는 잘못을 뉘우
쳤고, 틀림없이 5백만원을 차용하였다고 말했다.

이런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은 상상하기가 어렵겠지만, 유태인들은 예배소에서 구약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하는 일은 대단히 엄숙한 행위이
다. 구약성경에 손을 얹고도 거짓말을 하는 자는 범죄를 직업으로 갖고 있는 자가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따라서 성서는 가장 소중한 것이므로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일에는 이런 절차가 없다. 성서에 손을 얹으면 99.8%의 사람은 절대로 허위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만큼 서약은 중대한 일이며, 모두들 이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이나 유럽의 크리스도교 예식에서 성
경에 손을 얹고 맹세하는 것도 이런 풍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직 유일한 길
한 유태인 남자가 어떤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는 항상 자기는 회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경영
자인 사장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회사를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일해 왔는데, 회사는 그만한 대우를 해 주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일할 생각이 없으니 퇴직금이
나 계산해 주십시오.]
이 말에 회사의 사장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자네, 말 잘 하였네. 그렇지 않아도 자네의 근무 자세가 좋지 않아 파면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네. 퇴직금은 줄 수 없네.]
이렇게 서로가 맞서 결론이 나지 않자. 사원은 어느날 회사의 공금과 중요 서류를 훔쳐 가지고 외국으로 달아나 버렸다. 그후로는 그를 찾
을 수가 없었다. 그런지 한달이 지난 뒤 외국의 어느 거리에서 우연히 그를 만난 사람이 사장에게 알려줘 사장은 그를 찾아와 부탁하였다.
매우 먼곳이기는 했으나 나는 그를 만나보기로 하였다.

내가 그곳에 도착한지 이틀 뒤에야 겨우 그 사원을 만났는데, 그는 예상한대로 나를 보고 무척 놀라는 것이었다. 회사의 공금과 함께 회사
의 중요 서류까지 가지고 도망했으니 자기의 양심에도 가책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와 3일 동안이나 그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의논하였다. 비교적 사소한 작은 문제들은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그것들은 모두 법률로도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직 내가 관심을 둔 것은 유태인과 유태인간에 생긴 일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유태인끼리 서로 다투는 것은 용납되지 않
는다. 나는 <탈무드>의 이야기를 인용하였다. [유태인들은 모두가 가족이며 가까운 형제다. 우리는 유태인이 아닌 다른 민족들과 상대하
고 있으므로, 유태인끼리는 절대적으로 화평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나의 이런 설명에 그는 그래도 자기의 행동이 옳다고 주장하였다. [내 행동은 모두 내 자유입니다.]
[당신 말이 옳을 수도 있소. 나도 잘은 모르지만, 그러나 자기 생각대로만 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일이오.]
나는 이어서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를 예로 들려주었다.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함께 배를 타고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자기가 앉아 있는 배 밑바닥을 끌로 파는 것이었다. 놀란 사람들이 그를 나
무라자, 그는 [여기는 내가 앉아있는 자리니 내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지 않소.]
라고 대답하였다. 많은 사람이 타고 있던 배는 곧 가라 앉았던 것이다."

어떤 유태인이 자기 회사의 공금을 가지고 달아났을 때, 과연 주위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말하겠는가? 유태인은 정말 도덕심이 있는 민족이
라고 할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유태인의 큰 오점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이런 충고에 그는 마침내 자기 잘못을 깨닫고 나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가지고 있던 회사 공금과 서류를 내 놓았다.

나는 귀국해서 사장을 만나 원만한 해결을 보았다. 그가 원한 만큼의 성과는 아니었지만 적당한 금액의 퇴직금도 받아 주었다.

 개 무리의 힘
JCC(유태인 공동체 센터)는 유태인 사회에서는 보기드문 단체 가운데 하나이다. 이 단체는 순수한 유태인들만으로 만들어진 단체가 아니
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러시아,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미국계 등 여러 계통의 유태인들이 작은 단위로 소그룹을 이루고 있다. 그렇기 때
문에 유태 계율을 지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키지 않은 사람, 또 자선에 힘쓰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등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제각
각 개성을 보이고 있는 관계로 아주 통일성이 없는 단체인 것이다.
이러한 무리를 이룬 사회에서는 긴장감 같은 상태가 항상 존재한다. 그러던 중 어느 작은 단체에서 서로 반목하는 두 그룹으로 분열되는 위
기를 맞게 되었다. 나는 위기의 단체에게 <탈무드>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주었다.

"갈대가 하나로서 있을 때 쉽게 부러지지만, 갈대가 백개의 한묶음으로 있을 땐 몹시 단단하다. 개들만 떼로 한데 모아 놓으면 서로 싸우지
만, 그러나 늑대가 나타나면 싸움을 그치고 힘을 합친다.

유태 민족의 오늘은 아직도 안전이 보장받지 못한 상태이다. 게다가 아랍, 러시아, 그리고 반유태주의자들에게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유태
인끼리의 싸움을 무조건 피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러한 기본적인 인식 아래에서 지금은 별다든 충돌없이 서로 도우며 살아가고 있다.

 부부간의 싸움
수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문제들을 안고 와 나에게 판단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문제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 난 한가지도 같은 것이
없다. 같은 점이 있다면 어느 사람이 허위로 말하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조차도 거짓이라는 것을 모르고 말하고 있는지를 어떻게 분별해야
좋은가라는 문제이다.
무엇이 진실한 것이고 무엇이 허위인지를 분별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탈무드>에는 이 두가지를 분별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가
르치고 있다.

"솔로몬은 매우 현명한 왕으로 정평이 있었다. 어느날 두 부인이 아이 하나를 데리고 와 서로 자기의 아이임을 주장하며, 솔로몬에게 판단
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솔로몬왕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진실을 조사해 보았으나, 왕 자신도 누가 진짜 아이의 엄마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유태인 사회에서는
그 소유가 분명하지 않을 때는 공평하게 양분해 나누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솔로몬왕은 관례대로 이 아이를 두 토막으로 잘라 나누라고
명령하였다. 그러자 한 부인이 갑자기 울부짖으며 만약 그렇게 판단한다면 차라리 상대편 여자에게 아이를 넘겨 주겠다고 하였다. 그 모습
을 바라보고 있던 왕이 '당신이야말로 아이의 진짜 어머니요!'하고 판단하고 아이를 넘겨 주었다."

"두 아이를 가지고 있는 부부가 있었다. 두 아이 모두 남자였는데, 그 중 한 사내아이는 부인이 다른 남자와 불의의 관계를 맺어 난 아이였
다. 남편은 어느날 부인이 다른 사람에게 한 아이에 대한 비밀을 얘기하고 있는 것을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하지만 남편은 누가 자기의 진
짜 아들인지를 가려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남편이 중병에 걸렸다.남편은 죽기 전에 유언장을 써서 자기 피를 물려받은 아들한테 재산을 물려주겠다고 말했다. 남
편이 죽자 그 유언장이 랍비한테 넘겨져, 랍비는 두 아이 중 죽은 남자의 진짜 아들을 가려내야만 했다.

랍비는 두 아들을 죽은 아버지 무덤앞에 불러 놓고는 큰 막대로 무덤을 파 헤치라고 명했다. 그러자 한 아들이 '나는 아버지의 무덤을 헤쳐
돌아가신 분을 모독할 수 없다'고 울음을 터쳤다. 그래서 랍비는 아버지의 무덤을 파 헤치지 못한 아이가 진짜 아들이라고 판단하였다."

짐승들은 같은 부류의 짐승들끼리 어울려 살아간다. 늑대는 결코 양과 어울릴 수 없다. 하이에나와 개도 절대로 같이 살아가지 못한다. 부
자와 가난한 사람의 생활도 이와 같다.

 진실과 허위
수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문제들을 안고 와 나에게 판단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문제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 난 한가지도 같은 것이
없다. 같은 점이 있다면 어느 사람이 허위로 말하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조차도 거짓이라는 것을 모르고 말하고 있는지를 어떻게 분별해야
좋은가라는 문제이다.
무엇이 진실한 것이고 무엇이 허위인지를 분별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탈무드>에는 이 두가지를 분별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가
르치고 있다.

"솔로몬은 매우 현명한 왕으로 정평이 있었다. 어느날 두 부인이 아이 하나를 데리고 와 서로 자기의 아이임을 주장하며, 솔로몬에게 판단
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솔로몬왕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진실을 조사해 보았으나, 왕 자신도 누가 진짜 아이의 엄마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유태인 사회에서는
그 소유가 분명하지 않을 때는 공평하게 양분해 나누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솔로몬왕은 관례대로 이 아이를 두 토막으로 잘라 나누라고
명령하였다. 그러자 한 부인이 갑자기 울부짖으며 만약 그렇게 판단한다면 차라리 상대편 여자에게 아이를 넘겨 주겠다고 하였다. 그 모습
을 바라보고 있던 왕이 '당신이야말로 아이의 진짜 어머니요!'하고 판단하고 아이를 넘겨 주었다."

"두 아이를 가지고 있는 부부가 있었다. 두 아이 모두 남자였는데, 그 중 한 사내아이는 부인이 다른 남자와 불의의 관계를 맺어 난 아이였
다. 남편은 어느날 부인이 다른 사람에게 한 아이에 대한 비밀을 얘기하고 있는 것을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하지만 남편은 누가 자기의 진
짜 아들인지를 가려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남편이 중병에 걸렸다.남편은 죽기 전에 유언장을 써서 자기 피를 물려받은 아들한테 재산을 물려주겠다고 말했다. 남
편이 죽자 그 유언장이 랍비한테 넘겨져, 랍비는 두 아이 중 죽은 남자의 진짜 아들을 가려내야만 했다.

랍비는 두 아들을 죽은 아버지 무덤앞에 불러 놓고는 큰 막대로 무덤을 파 헤치라고 명했다. 그러자 한 아들이 '나는 아버지의 무덤을 헤쳐
돌아가신 분을 모독할 수 없다'고 울음을 터쳤다. 그래서 랍비는 아버지의 무덤을 파 헤치지 못한 아이가 진짜 아들이라고 판단하였다."

짐승들은 같은 부류의 짐승들끼리 어울려 살아간다. 늑대는 결코 양과 어울릴 수 없다. 하이에나와 개도 절대로 같이 살아가지 못한다. 부
자와 가난한 사람의 생활도 이와 같다.

 새로운 약
나의 친구 가운데 한 사람이 심한 병에 걸려 어떤 새로운 약을 구해 먹지 않으면 치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약은 좀처럼
구하기가 어려운 약이었다. 너무 수요가 늘어 미처 생산해 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사정이 다급해지자 환자의 가족이 나를 찾아와
내가 알고 있는 이름있는 교수가 의사를 통해 그 약을 구해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었다. 나는 곧 몇몇 의사에게 부탁하면서 나의 친구를 살
려 줄 수 없느냐고 진심으로 부탁을 했다.
나의 부탁을 받은 의사 친구는 이런 말을 내게 하였다.
[만약 자네 부탁대로 그 약을 구해 준다면 또 누군가는 그 약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생길 것인데, 그러면 그 사람도 죽어갈 지 모르지 않
겠나.

그렇게 해서라도 자네는 꼭 약을 구해 자네 친구에게 주겠는가?]
나는 이 말에 잠깐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 대답을 미루고 <탈무드>를 찾아 보았다.

"만약 어떤 사람을 죽여야만 자기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남을 죽여서는 안된다.
어떻게 자기의 피가 상대편의 피보다 더 붉다고 할 수 있는가? 어느 누구의 피도 다른 사람의 피보다 더 붉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말을 음미해 보면, 나의 친구의 피가 누군가 그 새로운 약을 구하지 못해 죽어갈지도 모를 사람의 피보다 더 붉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
다. 그래서 나는 친구의 식구들에게 이런 사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해졌다. 내가 맡고 있는 지역 교우의 가족이 목숨까지 위태로
운 지경인데도<탈무드>의 가르침에 따르면, 나는 그 친구의 죽음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한다. 나는 끝내 약을 구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
에 그 친구는 죽고 말았다.

 세명의 경영자
두 사람이 동업자가 있었는데, 이들은 무에서 시작해 작은 임대 빌딩을 지었고,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는 사업가로서 성공한 사
람들이었다.
두 사람 다 별다른 경험은 없었지만 매우 부지런한 성격 때문에 사업은 날로 발전해 크게 성공을 거둔 경우였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두 사람은 자기들이 너무도 크게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지만 두 동업자 사이에는 아무런 계약도 맺은 것
이 없었다. 이들이 모두 건강하게 사업에 열중할 때는 별 문제가 없겠으나, 앞으로 자식들을 낳아 대를 잇게 되면 자연 충돌이 생길 것같아
이를 방지하기 위해 계약을 맺기로 하였다. 그런데 정식으로 계약이 끝나자, 두 사람 사이에는 사소한 일에도 충돌이 일어났다. 이를테면
너는 현장의 책임자이고, 나는 본사의 책임자를 한다는 사소한 사항까지 정하려고 했기 때문에 서로 상대방보다 유리한 입장을 차치하려는
욕심이 생겨서였다.

처음 함께 사업을 시작할 때는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충돌도 시비도 없었던 이들은 지금의 문제가 생기자 나에게 풀어달라고 요청해 왔다.
이들의 문제는 누가 옳고 그르고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서 나로서도 결론짓기가 쉽지가 않았다. 한 사람은 주로 영업을 맡고 있고 또 한
사람은 생산쪽을 맡고 있었는데, 이들은 '내가 만약 생산하지 않는다면 회사는 존재할 수 없다'는 식으로 다투고 있었다.

나는 별로 확신은 없었지만 다음과 같은 말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계약을 맺기 전의 두 사람의 사업은 아주 순조롭게 잘 되어 갔소. 그런데 이제 성공한 터에 서로 반목하는 탓으로 회사를 쓰러뜨리는 것은
참으로 우매한 것이오.]
지금 이대로는 더 이상 사업을 계속할 수 없겠다는 말도 하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해 <탈무드>에서 간단한 이야기를 찾아 내었다.

'한 아이가 이 세상에서 태어날 때에는 그 아이는 부모와 하나님에 의해서 생명이 주어졌다. 그리고 점차 성장해가면서 그 아이에게는 또다
른 한 사람 생명을 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바로 교사이다." 나는 두 사람에게 '당신들 회사의 경영자는 누구요?하고 물으니 그들은 두 사
람 모두라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권하였다. [그렇다면 하나님도 당신들 회사의 경영자로 참여시키면 어떻겠소? 하나
님은 이 세상 어디의 무슨 일에고 모두 참여하고 계시오 자기만의 주장이 옳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행위는 하나님이 주관
하는 일이므로 하나님을 경영자로 넣어도 괜찮을 것 같소.]
지금까지 이들의 회사는 두 사람이 다 대표자여서, 사실상 회사의 사장은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대표자가 되고 싶어하였다.

[두 사람의 회사인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회사라고도 할 수 있소. 두 사람은 유태인 사회를 위해서, 더 나아가 유태인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소.그러므로 너무 내것이라는 생각만 하지 말고, 우리들은 책임진 의무를 다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누가 사장이
되건 크게 마음쓸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오. 그러므로 생산을 맡은 사람은 공장 책임자로, 영업을 맡은 사람은 회사의 업무 책임
자로 노력하면 좋은 것이오.]
나는 이렇게 충고해 주었다.이후부터 두사람의 회사는 별 잡음없이 발전하였고, 자선 사업에도 수익금의 일부를 내놓았으며, 누가 사장을
한다는 사소한 문제거리도 풀려서 크게 번창하였다.

 보트의 구멍
어느 직장에서와 고용하고 있는 종업원을 해고시키는 일은 자주 있다.그러나 이런 일은 참으로 마음아픈 일이며, 때로는 사회 문제로도 크
게 비화되는 것이다.
어느 회사에서 유태인을 많이 고용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 유태인 종업원을 해고시키는 일은 아주 난감한 일 가운데 하나이다. 왜냐하면 이
들에게는 부인과 아이들이 달려 있음은 물론 유태인이라는 이름때문에 다른 직장을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자기 조국이 아닌 외국에서 살아가는 것은 특히 힘들다. 외국 사람을 채용하는 데는 적고, 그렇다고 다른 나라나 조국으로 돌아가는 문제도
돈과 관계된 일이라 어렵다. 그러므로 이유가 어떠하든 유태인 종업원을 해고시킨다는 것은 아주 힘들고 드문 일이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이 어느날 일어났다. 어떤 회사의 사장이 나를 찾아왔다.

[종업원 중 한 사람을 감원해야 하는데, 그 상대는 내가 해고시키지 않아도 누군가는 그를 쫓아내야할 만큼 바보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
는 바보니 다른 직장에 가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러나 나의 속 마음은 그를 해고 시키지 않고도 내가 손해보지 않는 방법이 없을까, 하
고 궁리중입니다. 랍비님께서 그 방법을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나는 <탈무드>에 있는 얘기를 들려 주었다. "어떤 사람이 작은 보트 한척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여름이면 가족과 함께 보트 놀이를
하거나 낙시로 소일하였다.그는 여름이 지나자 보트를 땅으로 끌어올려 보관해 두려했는데, 그때 보니까 배 밑바닥에 작은 구멍이 하나 있
었다. 그래서 그는 겨울을 지난 뒤 다시 쓰게 될 여름에 고칠 생각으로 그대로 두었다, 겨울 동안에는 보트에 페인트 칠만 해 두었다. 다음
해 봄이 되자, 아이들은 보트를 호수에 띄웠다. 그 사람도 보트에 난 구멍을 까맣게 잊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보트놀이를 허락해 주
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2시간 가량 지난 뒤 아버지는 보트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는 생각이 떠 올랐다. 아이들은 헤엄도 잘 할 줄 몰랐다. 그는 당황하
여 호숫가로 뛰어갔는데, 그때 아이들이 보트를 땅으로 끌어올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무사한 아이들을 보고 안심한 그 사람은 배를 살펴보니 누군가가 보트에 난 구멍을 막아 놓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지난 겨울 보트에 페
인트 칠을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곧 선물을 사가지고 페인트공을 방문하였다. 페인트공은, [나는 보트를 칠한 댓가는 받았습니다.
웬 선물을 주십니까?]
하면서 선물을 사영하였다.

[당신이 보트에 뚫린 구멍을 막아주었기 때문에 아이들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당신이 얼마 안되는 시간을 내어 구멍을 막아준 것이 얼마나
큰 결과를 낳았습니까? 감사할 뿐입니다.]

이렇듯 아무리 하찮은 착한 일이라도 이것은 남에게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은 보통 사람은 좀처럼 하기 힘든 일이다.
나는 사장에게 이런 말을 하고는, 그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축복의 말
의사와 환자,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병실에 같이 있게 된 기회가 있었다. 그 환자는 중상자였는데, 매우 심한 내출혈로 큰 고통을 받았
다. 병실은 악취로 가득했고, 환자는 의식불명인 채였다.
의사는 환자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고심하면서 많은 량의 수혈을 하였다. 만약 이 수혈이 중단되면 환자는 죽게 되므로 의사의 표정도 절망
적이었다. 의사는 답답한 마음으로 랍비에게 물었다.

[지금 이 순간 랍비님이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지금 나는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가느다란 혈관에서 붉은 액체를 흘러냄으로써 인간의 생명이 위태롭
게 되어 간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혈이 멈춰지자 그 환자는 죽고 말았다. 의사는 기운이 다 빠진 몰골로 내게 구원을 청했다. 나는 <탈무드>의 이야기를 그에게 해 주었다.

"유태인은 왕을 만날 때나, 식사를 할 때나, 일출 광경을 볼 때나, 그밖에 어느 경우에도 축복의 말을 한 마디씩 한다.이를테면, 화장실에 갈
때에도 축복의 말이 있다."

의사는 나의 얘기를 듣고 있다가 물었다.
[랍비님은 화장실에 갈 때 뭐라고 말합니까?]
우리 인체는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몸속에 갇혀 있어야 할 것은 갇혀있고, 열려져 있어야 할 것은 열려 있어
야 합니다. 만약 이것이 반대 현상으로 이루어지면 큰일이므로, 나는 언제나 열릴 것은 순조롭게 열리고, 닫힐 것은 순조롭게 닫혀 있게 해
달라고 기원합니다.]

이렇게 대답하자 의사는 감탄하듯 말하는 것이었다.

[랍비님의 기도는 의학에서 해부학에 정통한 사람의 말과 너무도 같습니다.]

 위생관념
<탈무드> 에 의하면 유태인들은 특히 보건 위생에 대해서는 아주 엄격하다. 몇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 물을 마실 때에는 사용 전에 컵을 닦고, 사용한 뒤에도 또 닦아라.

* 자기가 먹은 컵을 닦지 않은채 남에게 주어서는 안된다.

* 안약을 눈에 넣기 보다는 아침, 저녁에 물로 눈을 씻는 것이 더 낫다.

* 의사가 없는 곳에서는 살지 말라.

*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에도 잠시도 참지 말라.

 우는 까닭은 ?
외국에 살고 있는 한 유태인이 있었는데 그는 남을 돕고 예의바른 사람으로 매우 좋은 평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유태인 사회에서는
아무활동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느날 나는 그 사람과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유태인 사회에서는 사업하는 사람을 만날 때 '어떻습니까? 잘 되어 갑니까?'하고 인사하
는 관례가 있고, 랍비에게는 '유익한 책을 많이 읽었습니까?'라든지 '뭐 재미있고 유익한 일을 생각해 냈습니까?'하고 인사하는 습관이 있
다.

늘 공부해야 하는 랍비는 무엇이고 언제 어디에서나 이야기할 수 있게, 주머니 속에 이야깃거리를 넣고 다녀야 한다. 그날 내가 만난 그 사
람은 내게 '재미있는 책을 많이 읽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탈무드>에서 발견했소.당신도 <탈무드>를 공부할 때에는 바로 그 부분을 읽어 보십시오.]
그리고는 그 내용을 이야기해 주었다. 널리 이름이 난 랍비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말할 것도 없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고결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마음이 원래 자애롭고 또한 하나님 에 대한 공경도 아주 지극하였다.

그는 길가의 벌레 한 마리라도 밟지 않으려고 애썼고, 하나님이 내려 주신 물건들도 훼손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생활하였다. 그는 많은 제자
들로부터도 존경받는 사람이었다.

어느덧 80세가 된 그는 갑자기 자기 몸이 쇠약해져 있음을 깨닫고 머지않아 죽음이 닥쳐오리라는 것을 짐작하였다. 많은 제자들이 모여들
자, 그는 갑자기 울기 시작하였다.

[선생님, 어찌해서 눈물을 보이십니까?]
제자들은 안타까운 마음에서 물었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간의 선생이 베푼 일들을 회상했다.

[선생님은 잠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또 저희들을 생각없이 아무렇게 가르친 일도 없습니다. 남을 돕는 일에도 누구보다도 앞
장섰습니다. 선생님이야말로 이 나라에서 가장 추앙받는 훌륭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공경심도 누구보다도 간절하십니다. 선생님은
어느 한때도 정치같은 때묻은 세상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우셔야할 일은 없지 않습니까?]
제자들이 이렇게 묻자 그 랍비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래, 그래서 울고 있단다. 나는 죽음을 앞에 놓은 이 순간에 내 자신에게 '늘 공부했느냐, 자선에 힘썼느냐, 하나님께 기도했느냐, 옳게 살
아 왔느냐'고 물으면 전부 '예'라고 말할 수 있다.그러나 '너는 우리 이웃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본 일이 있느냐'고 물으면 '아니요'라고 밖에
는 대답할 수가 없단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고 있지.]
나는 자기 혼자만의 사업에 성공한 그 사람에게 유태인 사회에서도 되도록 참여하여 보람있는 일을 하도록 <탈무드>의 이야기를 해 주었
다.

 살아 숨쉬는 바다
유태인은 이 세상 어느 민족보다도 불우이웃을 위한 자선을 가장 중요시하는 민족이다. 그렇다고 해도 오늘날의 유태인중 일부는 자선사업
에 힘쓰라고 권하던가, 또는 다른 사람에게 강요받지 않으면 자선에 조금도 애쓰지 않는 유태인도 있다.
이런 경우를 만나면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해 준다. "이스라엘의 요단강 근처에는 두 곳에 큰 호수가 있다. 그 하나가 사해이고, 다른 하나
는 히브리어로 '살아 숨쉬는 바다'라고 불려지는 호수이다. 사해는 다른 바다에서 물이 흘러들지만 아무 곳으로나 흘러나가지 않는다. 그러
나 "살아 숨쉬는 바다'는 물이 들어오면 대신에 물이 나간다."

 사자의 목의 뼈
나는 어느날 중국을 거쳐 일본에 건너 온 유태인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 이런 부류의 유태인들은 중국편에서 중국을 비난하
거나 그것도 아니면 일본과 중국을 다 싫어하던가 다 좋아한다던가 하는 여러 유형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내가 만난 이 사람은 전쟁 중
일본이 상해를 점령했을 때 유태인들을 학대한 일본을 좋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일본이 중국 상해를 점령하고 있을 때, 일본군은 유태인을 지정된 지역에만 있도록 경비병을 두어 감시하였다. 이때 유태인들은 억울하게
학대받았고, 전염병에 무더기로 죽기도 했으며, 식량 사정까지 겹쳐 생각하기조차 싫은 추억들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말했
다.

[유럽 지역에서는 무려 1백만 명이나 되는 엄청난 유태인들이 학살되었습니다. 전쟁 때 유럽에 살던 유태인들만큼 비참했던 사람들도 아마
없을 것이다. 당신은 1970년 지금 이렇게 상해 시절의 고통스러웠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것만 보아도 당신은 지금 살아있다는 증거입
니다.<탈무드>에는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그러고는 나는 목구멍에 뼈가 걸린 사자 이야기를 해 주었다.

"사자 목구멍에 뼈가 걸렸다. 사자는 누구라도 자기 목구멍에서 뼈를 빼주는 자에게 상을 주겠노라고 외쳤다. 그때 한마리의 학이 날아와
사자를 구해 주겠다고 말하고는 사자보고 입을 크게 벌리라고 하였다.

학은 사자 입안에 긴 부리를 집어넣고는 걸린 뼈를 간단히 꺼냈다. 그리고는 '무슨 상을 주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사자는 학이 무엇을 주
겠느냐고 묻는 말투에 그만 울화가 치밀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 입안에 머리를 넣고도 살아날 수 있었다는게 바로 내가 주는 선물이다.
그렇게 몹시 위험한 상태에서도 살아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평생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그 이상은 없다.]
지난날 중국에서 가혹한 고통을 당했다고 해서 그것을 이유로 불평해서는안된다는 것이 내 말의 요지였다.

<8>탈무드의 발
수난의 탈무드  
<탈무드>의 편찬은 바빌로니아에서 기원후 500년부터 시작되었다. 그후 1334년에 손으로 직접 쓴<탈무드>가 나왔는데, 이것이 현존하고
있는 것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리고 처음 인쇄된 <탈무드>는 1520년 베니스에서 나왔다.
1244년엔느 파리에 있던 모든 <탈무드>가 기독교인들에 의해 몰수되어 24대의 수레에 실린 채 불태워 없어졌다.1263년에는 기독교와 유
태인 대표들이 자리를 같이 하고<탈무드>과연 기독교의 교리에 상반되는 것인가에 대해토론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후 1415년에 이르러 유
태인들의 <탈무드>를 법령으로 금지하였고, 1520년에는 로마에서 또한번 <탈무드>가 불태워 없어졌다.

<탈무드>를 읽어보지 못한 기독교인들은 그것에 대해 무지때문에 <탈무드>를 까닭없이 혐오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연유에서 그후에도 <
탈무드>의 소각은 수없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1562년에는 기독교의 교회측이<탈무드>를 검열하여 부분부분을 삭제해 버렸기 때문에
오늘의 <탈무드>는 완전한 내용의 것이 아니다.

<탈무드>를 마이크로필름에 보관해 두기 위해 찍을 때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에서 다른 페이지의 내용이 나오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
서 수백년 동안이나 묻혀 있던 새로운 <탈무드>가 발견된 것이다.

그러므로 <탈무드>를 읽다보면, 중간중간 이야기의 연결이 애매한 곳이 간혹 있다. 이것은 행한 교회측의 검열 과정에서 부분부분을 잘라
내 버렸기 때문이다.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를 비난한 것으로 생각되는 곳은 가차없이 잘라 버렸다. 하지만 현재의 <탈무드>는 세계 각국
의 말로 옮겨져 읽히고 있어 <탈무드>에 대한 관심은 점차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탈무드>는 일종의 연구서이다. 특히 유태인에게 있어서 공부는 인생 최대의 목표이다. 그러므로 유태인을 이해하려면 , <탈무드>가 유태
인에게 있어 얼마나 소중하게 다루어지고 있는가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유태인들은 신의 뜻을 몸소 실천에 옮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엇으므로 <탈무드>를 공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러
나 <탈무드>에 대한 공부는 지적인 공부라기 보다는 종교적인 공부이고 연구였다.

유태인들에 있어 신을 찬양하는 최대의 행위는 공부하는 일이다. '공부와 연구가 옳바른 행동을 만든다'는 말이 유태 민족의 오랜 금언으로
간직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다.

고대 유태의 도시나 고장은 그곳에 세워진 학교의 이름에 의하여 알려졌다. 예배를 보는 곳은 곧 공부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로마인들은 유태인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유태인들의 <탈무드>에 대한 공부를 엄격하게 금했다. 그들에게서 배우는 일을 빼앗아 버리면
유태인은 이미 진정한 유태인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신의 뜻이라고 믿는 '공부'를 지키기 위하여 수없이 죽어갔다. 그러나 지
식은 끝내 모든 것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마련이다.

나도 유태인으로서, 아침 일찍 일터에 나가기 전에 일어나 <탈무드>에 대한 공부를 진정한 유태인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신
의 뜻이라고 이미 진정한 유태인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그들은 신의 뜻이라고 믿는 '공부'를 지키기 위하여 수없이 죽어갔다. 그러나
지식은 끝내모든 것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마련이다.

나도 유태인으로서, 아침 일찍 일터에 나가기 전에 일어나 <탈무드>를 공부하는 많은 유태인을 보았다. 점심이나 저녁 식사 때, 또는 버스
나 지하철 속에서도 유태인들은 쉬지 않고 공부한다. 그리고 안식일에는 어김없이 몇 시간이고 공부에 열중한다. 20권의 <탈무드>중 한 권
의 공부만 마쳐도 대단한 경사로 여겨 이웃과 친지들을 모아 놓고 성대한 축하연을 베풀기도 한다.

유태인들에게 기독교의 로마 교황과 같은 절대 권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최고 권위자는 바로 <탈무드>일 뿐이다. 그래서
<탈무드>에 대한 공부가 권위의 척도로 측정되고 있다. <탈무드>에 대한 지식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랍비'이며, 그래서
랍비가 유태인들의 존경을 받는 권위자가 된 것이다.

 탈무드의 내용
<탈무드>는 모두 6개의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농업, 제사, 여자, 민법과 형법, 사원, 순결과 불순 등이다. <탈무드>는 반드시 '미슈나
(mishna)'라 하는 부분에서부터 시작되는 규칙이 있다. 이 미시나는 유태 민족에 있어 오랜 전통의 가르침과 약속이 구전에 의해 전해지고
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기원후 200년경에 이르서야 체계적으로 모아져 빛을 보게 되었는데, 500그램에 불과한 가벼운 책이다.

이 미시나에 대한 별다른 이견은 없다. 이러한 미시나를 중심으로 더욱 발전된 토론과 논의가 바로 <탈무드>이다. 이 토론은 둘로 나뉘어
져 있는데, 하나는 '하라카'라고 하는 토론이고, 또 하나는 '아카타'라고 하는 토론이다.

유태인은 세계의 많은 민족 중에서 종교에 대한 계율을 가장 엄격하게 지키는 동시에 그만큼 종교에 심취해 있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하
지만 그들의 언어에는 종교라는 말이 없다. 왜냐하면, 유태인들의 평소의 생활 그자체가 종교이기 때문에, 종교라는 말을 특별하게 사용하
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라카'라는 말은 유태인적인 생활 방법이라고나 할까, 인간들의 모든 행위를 숭고한 것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사, 건
강, 예술, 식사, 언어, 대화, 대인관계 등 평소 생활에서의 일체의 행위가 이 '하라카'에 합당하지 않으면 안된다.

기독교의 교인은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이미 교인이 되지만, 유태인은 그렇지가 않다. 유태인에 있어서는 오직 행위만이 유태인으로 인정되
는 것이다. 또한 '아카타'는 <탈무드>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철학, 신학, 역사, 도덕, 시, 속담, 성서 해석, 과학, 의학, 수학,
천문학, 심리학, 형이상학 등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지혜가 담겨져 있다.

 랍비의 직업
과거 로마인들이 유태민족을 억압하던 시절, 그들은 유태인을 말살하기 위한 갖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이를테면, 유태인 학교를 폐쇄시
키고, 예배와 민족적인 축제를 금하고, 유태인의 지혜를 깨우쳐 주는 책을 불태우고, 랍비의 교육까지도 금하였다.
랍비가 정해진 교육을 마치면, 졸업식과 같은 랍비의 임명식이 있는데, 이때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은 랍비를 임명한 사람이나 가리지 않고
사형에 처하였다. 그리고 이런 일이 발생한 지역은 없애버린다는 령을 내렸다. 이러한 탄압은 로마인들의 탄압 중 가장 현명했다고 할 만큼
효과적인 조치였다. 왜냐하면, 도시나 마을을 멸망시킨 원인이 된 랍비는 그만큼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유태 민족에 있어 랍비가 없어
지면 유태 사회가 정지되고 말기 때문이다.

랍비는 정신적 지도자임은 물론 의사요, 변호사이며, 유태인들의 모든 권위의 대변자이기도 했다. 로마인들은 바로 랍비의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앞에서와 같은 현명한(?)조치를 취했다.

이러한 때에 어떤 랍비가 로마인들의 숨은 계략을 눈치채고, 아끼는 제자 5명을 데리고 빠져나가 산속에 숨었다. 행여 거기에서 붙잡혀 죽
는다해도 아무 상관없는 도시의 멸망만은 막아보자는 생각에서였다.

랍비가 숨은 곳은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도 2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외진 곳이었다. 그곳에서 랍비는 5명의 제자를 랍비로 임명했는데, 결국
로마인들의 눈에 띄고야 말았다.

걱정이 된 제자들이, [랍비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묻자, 랍비는 동요하지 않고 신념에 찬 얼굴로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 늙었으니 별걱정 없지만, 너희들은 앞으로 랍비로서의 할일이
많으므로 서둘러 피하도록 하여라.]
제자들은 명령대로 피했으나, 늙은 랍비는 붙잡혀 3백번의 칼질을 당하는 무참한 죽음을 당하였다.

내가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까닭은 유태인들의 사회에서 랍비라는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주기 위함이다. 랍비는 일종의 상징
이라고나 할까.

<탈무드>가 그들 사이에서 얼마나 막중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유태인들의 문화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원칙적인 면에서 보면, 모든 유태인들은 <탈무드>의 모든 것을 통하여 그 속에 담겨져 있는 가르침과 이치를 통달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다.

하루라도 <탈무드>에 대한 공부를 빠뜨리지 않아야 할 만큼 이것은 당순한 학문 연구에서만이 아니라 종교적 의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는 유태인들에게 있어 신을 모시고 신을 예배하는 것 자체가 공부하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어누 누구이건 <탈무드>를
공부하는 유태인이라면 하나의 깨달음과 같은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마련이다.

랍비 가운데는 지위에 있어서 상하나 정해진 서열은 없다. 또한 랍비들끼리 어떤 종류의 단체를 만들지도 않는다. 그러나 어떤 랍비가 다른
랍비에 비해 더 지혜롭다고 인정되면, 자연히 그 랍비가 많은 유태인들의 어려운 질문이나 복잡한 의식을 주재하게 마련이다.

오늘날의 이스라엘의 종교 학교에서는 9세가 되면 <탈무드>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다. 그후 고등학교의 과정까지 마치게 되는데, 이 과정
에서 <탈무드>에 대한 공부밖에는 하지 않기 때문에 보통 10년 내지 15년 동안을 <탈무드>의 공부만 하는 셈이 된다.

랍비를 교육하는 미국의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일반 대학에서 학사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것은 랍비를 교육하는 학교가 대학원
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랍비가 되기 위해서는 매우 엄격한 시험을 거친 뒤, 4년에서 6년 동안에 <탈무드>를 공부하는데, 처음부터가 아니
라 중간 정도에서부터 배우게 된다.

그것은 이미 입학하기 전에 <탈무드>에 대한 것을 많이 배웠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입학시험은 그만큼 어렵고 까다롭다.

입시 과목을 보면 성서.히브리어, 아랍어, 역사(4000여 년에 걸친 유테인 역사이기 때문에 대단한 분량이다) 유태문학, 법률, 심리학, 설교
학, 교육학, 처세철학, 철학등이 있으며, 이것 외에도 몇 편의 논문도 써야 한다. 이러한 과목들은 어느 것이고 매우 어려운 시험이다. 게다
가 졸업할 때는 4년에서 6년에 걸쳐 배운 것에 대한 최종 시험을 또 치루어야 한다.

이 모든 과목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고 동시에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물론<탈무드>이다.탈무드 이외의 과목에 대한 공부는 일반 교수
에 의한 강의로 메워지지만, 강의의 대부분 시간을 차지하는 <탈무드>의 공부만은 탁월한 지혜의 인격자가 맡게 된다.

학교에서 <탈무드>를 교육할 수 있는 교수는 현인으로서 지성을 갖춘 인격자이어야 하기 때문이다.이러한 것을 <탈무드>적인 말로 표현
해 보면 왼쪽손으로는 학생을 냉정하게 몰아치고, 오른쪽손으로는 학생을 따뜻하게 포용할 수 있는 능력있는 인격자인 것이다. 따라서 배
우는 학생들도 <탈무드>를 가르치는 선생과 일반 과목을 맡고 있는 선생을 대하는 자세에 차이가 있다.

<탈무드>의 공부는 혼자보다는 두 사람씩 짝이 되어 공부한다. 이를 테면,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읽고 다른 학생이 따라 읽는 방법 같은 것
이다. 어쨋든 두 사람이 조를 이루고 3년 동안이나 한 자리에서 <탈무드>를 공부하는 것이다.<탈무드>의 선생은 공부하는 요령 같은 것을
가리켜 주지 않기 때문에, 학생은 스스로 생각하고 터득해 가며 배운다. 이렇게 혼자 공부한 뒤 두 사람씩 짝이 되어 있는 교실로 나간다.

<탈무드>에 대한 공부는 다만 소리내어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그속에 담긴 참다운 진리를 파악해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1
시간의 수업을 위해 4, 5시간의 예복습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도 졸업을 앞둔 고학년이 되면 1시간의 수업에 무려 20여 시간의 준비 학습
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탈무드>의 내용 공부는 선생이 하나하나 일일이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다만 대강의 줄거리만 말해 주고, 그에 따른 방향만 제시해 주는
것으로 그친다.

낮은 학년의 학생들은 빙 둘러앉아 공부하는데, 그때 선생은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잠자코 듣고만 있다. 물론 수업 준비에 대한 의문
점은 선생에게 수시로 물어볼 수 있다.

<탈무드>를 배우는 반은 반드시 그리스와 라틴어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적인 생활에도 익숙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랍비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학생이 독신일 때는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 있다.대개 약 100여명의 학생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기숙사는 마치 학
생사회와 같은 것이 형성된다. 하지만 수도원에서 볼 수 있는 엄격한 분위기는 아니다. 휴식할 수 있는 밤에는 운동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사회와 접촉이 없는 수도원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학교의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사람은 2년 동안 학교를 위한 봉사에 임해야 하는데, 그 길은 종군 랍비나 랍비가 없는 마을에서 봉사하는
것이다. 나느 종군 랍비가 되어 2년간 공군에서 봉사하였다.

일단 이 2년간의 봉사 생활이 끝나면 두 길 중 한가지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 나는 학교의 선생과 사회에서의 랍비의 일 가운데 유태 사회의
랍비로서의 일을 택하였다.

각 교구는 모두 따로따로 독립되어 있기때문에 기독교예서와 같이 랍비가 교단의 지시대로 각지로 전근되어 다니는 일은 없다. 그렇기 때
문에 유태인 지역에서 랍비를 교육하는 학교에 보수에 맞는 랍비를 신청하면 된다. 그러면 학교의 사무국에서 신청 조건에 응해 오는 랍비
를 지역에 보내 면접을 거치게 한다. 각 지역사회나 이에 봉사하는 랍비는 각각 자기에 맞는 조건으로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러므로 지역
사회나 랍비는 많은 랍비의 후보자 중에서 고를 수 있고, 반대로 랍비도 이곳저곳을 다녀본 뒤 자기에 맞는 지역을 선택하면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지역사회의 예배를 주재하게 되는데, 보통 봉사 기간은 2년이 한 기간으로 되어 있다. 이때 물론 보수나 그밖의 생활에 필
요한 조건은 쌍방의 합의에 의해 맺어진다. 유태인 사회에서의 예배당과 교구는 수시로 생겨나는 것이어서, 유태인이 많이 모여사는 도시
에는 여러 곳의 예배당이 생겨난다. 반대로 예배당이 없는 곳에는 유태인이 살 수가 없다. 유태인들에게는 매일 마침 일어나 세수하고 아침
식사를 하는 것과 같이 또한 예배당이 없으면 안된다. 이것은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서도 학교인 예배당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보면, 유태인이 20여가구만 되면 1개의 예배당을 만들어 이를 맡을 랍비를 모시게 된다. 물론 한 지역사회에 여러 명의 랍비가
있어도 좋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지역에 얼마나 많으니 유태인이 살고 있는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지역사회에 필요한 재원은 지역내에 거주하는 유태인 가족을 단위로 하여 각각 분담하게 되며, 여유가 있는 사람은 1년에 한번씩 기
부금을 희사할 수 있다.

오늘날 랍비가 맡고 있는 역할은 유태인 학교의 선생으로서의 책임과 예배당의 관리와 설교를 맡는 것이다. 랍비는 4000년 유태의 전통을
유태인들을 대신하여 연구하고, 태어나 죽을 때까지의 유태인 사회의 크고작은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능력자이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면 랍비를 초빙하고, 결혼하거나 죽었을 때도 랍비를 모셔다 조언을 듣게 된다. 유태인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랍비는 참여하여 개입함으로써 그는 학자이며, 선생이며, 존경받는 인물인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15세기까지의 랍비는 무보수의 봉사자였
다. 그래서 대부분의 랍비는 다른 직업을 가져야 했다. 그러나 15세기 이후부트는 지역사회가 이들의 생활을 책임지게 되었다. 1세기경부터
쓰이기 시작한 '랍비'라는 용어는 히브리어에서 '교사'라는 뜻을 가지고 잇으며, 영어로는 '라바이'라고 말한다.

유태교에서는 특히 시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에 반해 어떠한 장소나 지역은 별로 중요시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기독교에서 볼
수 잇는 성역이란 말은 쓰이지 않지만 랍비를 '성인'이라고 존경하고 있다.

 유태인의 생활
해가 뜨는 시간에 맞추어 일어나면, 먼저 씻고 그리고 식사전 30분정도를 기도로 보낸다. 이때는 팔과 머리 위에 성스런 상자를 매어달고
몸에는 목띠를 감는다. 집에서 기도를 해도 되지만, 대부분의 유태인은 근처에 있는 예배당에 가서 기도한다.
이들의 기도문은 어디에서고 같다. 집에서보다는 예배당에 가면 많이 모여함께 기도할 수 있다는 좋은 점이 있다. 게다가 집에서 혼자서 기
도할 때는 대개 자기 중심의 이기적인 기도가 되기 쉽지만 모두 모여 함께 기도하면 이런 폐단을 막을 수도 있다.

이렇게 아침 기도가 끝나면 아침 식사를 한다. 그때도 역시 손을 씻은 뒤 간단한 기도를 드린다.그리고 식사를 시작한다. 만약 가족이나 친
구들과 같이 식사를 하게 되면 반드시<탈무드>에 관한 얘기를 화제로 삼는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뒤에도 간단한 기도를 하는데, 역시 가족이나 친구들과 같이 한자리일 때는 함께 입을 맞추어 낮은 소리로 기도한다.
이일이 끝난 뒤에 각자 자기의 일터로 향한다.

오후가 되면 정오에서부터 해가 지는 시간의 중간에 5분여 정도의 간략한 기도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밤이 되어 집에 돌아온 뒤에는 근
처의 학교에 가서 공부한다. 왜냐하면, 유태인은 하루 일과중 어떻게 틈을 내든 반드시 <탈무드>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
이다.

 유태인의 장례
유태인들은 죽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경의를 표하여야 하고, 그리고 죽은 사람은 항상 지켜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먼저 죽은 이의 몸을 깨끗이 한다. 그 일은 그 지역사회에서 가장 교양이 있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는 사람이 맡아 한다. 이러한
일은 유태인 사회에서 매우 영예로운 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가능한한 빠른 시간 안에 매장하는데 화장이 아니라 매장한다. 원칙적으로는 죽은 다음날에 매장하는게 관례이다.
죽은 사람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장례식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참석한 사람 중에서, 이를테면, 랍비가 추도사를 읽고 상주가 기도문을
읽는다.이들은 같은 예배당에서 같은 내용의 기도를 1년동안 매일 반복한다.

일단 매장이 끝나면 가족은 집으로 돌아온 뒤 일주일간 같은 일을 반복한다. 1개의 촛불을 켜놓고 10명의 친지가 마루에 모여 앉아 기도문
을 외우는데. 이때는 집안의 있는 거울을 모두 덮어야한다.

그리고 상주는 일주일 동안 집밖의 출입을 삼가한다. 예배당에 가는 일도 이 일주일이 지나야 가기 시작한다. 상주가 집에 있는 일주일 동
안에 그 가족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조문을 하게 된다. 이러한 일주일의 의식이 끝나면 상주 가족은 집밖에 나와 자기 집 둘레를 한 바퀴 돌
게 된다. 죽은 뒤 한달 동안에는 얼굴을 씻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죽은 뒤 1년 동안에는 화려하고 즐거움이 넘치는 장소에는 출입하지 않는
다. 그후 해마다 죽은 사람의 기일이 되면 반드시 상복을 입어야 한다.

가족들이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면 달걀을 먹는다. 죽은 사람에 대한 유태인들의 사고 방식은 사람은 누구나 가족이 죽으면 슬퍼한다고
여긴다. 그리고 일주일간 추모하고 집밖을 나간다는 것은 그 이상 슬픔에 잠겨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이다. 이것은 사람이 슬픔을 너
무 오래 간직하고 있는 것은 불건강한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일주일 뒤 집밖에 나가 집 둘레를 한바퀴 도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렇게 달걀을 먹고 집의 둘레를 한바퀴 도는 것은, 둥근 원이 끝도 시작도 없는 거와 같이 인간의 생명도 끝이 없는 원과 같이 언제이고 돌
고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음을 뜻한다.

이들이 가장 깊은 슬픔에 잠기는 것은 일주일 동안이다. 그 뒤의 한달동안은 추모 기간이 있지만, 이 기일에는 일주일이 슬픔과는 같지 않
다. 뒤의 1년 동안도 역시 슬픔이 덜한 기간이다.

죽은 뒤 1년 후부터는 기일을 빼고는 상복을 입지 않는다. 1년 동안 상복을 입어 추모하는 대상은 부모의 경우일 뿐이고 다른 사람의 경우
엔 1일주일과 1개월에 추모의 기간이 끝난다.

나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도 나는 슬픔에 싸여 식사마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달걀을 먹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것은 의무적인 일이었기 때
문이다. 죽은 사람만이 현재 살아있는 사람을 지배하고 있어서는 안되며, 죽지 않고 살아 남은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야만 한다는 중
요성을 유태인들은 가르치고 있다 이들에 있어 자살은 큰 죄악이다.

유태인들의 장례식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 구별이 없고, 학자와 무식한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똑같은 관과 옷을 입혀 행한다.인간들의 지
위나 부위 영화에 따라 장례식이 달라지는 경우는 없다. 이들은 인간 평등을 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배당에서 같은 모습, 같은 모자를
쓰고 함께 모여 앉아 기도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9>유태인의 격언-돈의 가치
두툼한 돈지갑이 반드시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빈지갑이 좋은 것도 아니다.
텅비어 있는 것인데도 이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것은 무엇인가?그것은 빈 돈지갑이다.

물건이 가득 들어 있는 주머니는 무겁다. 그러나 비어 있는 주머니가 더 무겁다는 속담도 있다. 유태인들 사회에는 돈(금전)에 관한 속담이
나 격언이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만 해도 헤아일 수 없을 정도이다.

돈, 돈, 돈, 돈이 없이는 우리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돈, 돈, 돈, 성서는 우리에게 빛을 주고 돈은 우리에게 따뜻함을 안겨준다. 이렇게 표현
하면 어떨까?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중대사가 있는데, 그 첫째가 돈, 둘째도 돈, 셋째 또한 돈이다. 돈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돈이란 어떠
한 더러움도 씻어내 주는 비누와 같다.

돈의 힘은 막강하다. 돈 앞에는 욕설도 잠잠해 진다. 돈은 가벼운 것이다. 아무리 무거운 돈지갑이라도 이것을 무겁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

유태인들은 마음이 흡족해 있을 때에는 '아이, 이, 이'하고 소리치며, 고통에 빠져 있을 때에는 '오이, 오이, 오이'하고 외친다. 그렇다고 해
서 돈이 많을 때는 언제나 '아이, 이, 이'라고만 외친다는 말은 아니다. 또 반대로 돈이 없을 때는 언제나 '오이, 오이, 오이'라고 외친다.

어쨋든 유태인에 있어 돈은 위대한 것이다. 인격자인양 돈이 인생을 더럽혔다고 비난하지는 말자. 돈보다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훨씬 위에
자리잡고 있다. 돈 때문에 인간이 인간다운 생활을 잃을 수는 없지 않은가?

 돈은 벌기는 쉽다. 하지만 돈을 쓰기는 더 어렵다.  
어는 누구이든 자기 나름대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하지만 돈을 옳게 쓰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있겠는가?
돈의 주인은 인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돈을 불가사의한 마력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물건들을 써 본 뒤
에는 그 가치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돈은 스스로 만들어 보지 않고는 그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없다.

'쓸수 있는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바르게 쓰는 법까지 알고 있으면 더욱 좋다'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돈이 우리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렇게 표현하지 않는다면 우리 인간이 돈보다 우월하다는
감정을 지닐 수가 있겠는가?

'돈은 모든 것들을 소유할 수 있다. 값지고 알찬 취미 말고는...'이라든가' 어진 사람에게 있어서의 돈은 미녀에게 아름다운 옷을 안겨주는
정도밖에는 소용이 없다'라는 속담도 있다.

유태인들은 돈을 나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여긴다. 그것은 모든 책임을 돈에게 떠맡기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돈을 좋지도 나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는 만능의 것도 아니다. 돈이 좋게 되고 나쁘게 되고는 돈을 소유한 인간에
게 달려 있다. 여기에서 내가 자주 되풀이하는 것이지만, 유태인들은 중용 즉 생활에서 균형을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도 인간에게 중요하다
고 믿고 있다. 특히 이중에서도 돈에 대한 균형 감각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나 돈을 벌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돈을 벌기는 쉽다, 하지만 그것을 소중히 간직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많은 나라 사람들은 돈을 말할 때 동그라미 모양으로 나타낸다. 유태인의 속담 가운데에도 이와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은화는 둥글기 때문에 이쪽으로 저쪽으로도 구할 수 있다'와 같은 것이다.

우리들은 매일 이러한 은화를 쫓아다니며 바쁘게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평생 동안 이 밖에도 쫓아다녀야 할 것이 더 많다

 돈은 기회를 만들어 준다.
유태인들은 돈을 좋은 것이라고 주장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나쁜 것으로비평하지도 않는다.
돈이 있으면 인생살이에 다양한 것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이름을 얻게 된 것이 그것이다. 유태인들이 이름과 성을 갖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이다. 그 이전에는 아무개의 아들
누구라든가 가수, 거울집, 꼬마등으로 사는 곳이나 직업 그리고 외견상 특징을 따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18세기 이후부터 오스트리아의 요셉 2세에 이어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와 프러시아 정부가 잇달아 유태인을 통치하기 위해 유태
인 등록장부를 만들면서 이들에게 성을 만들도록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고 마음대로 이름과 성을 가질 수는 없었다.

이들을 지배한 지배국들은 유태인들을 약탈하기 위해 좋은 이름은 비싼 값에, 나쁜 이름은 싼 값으로 붙여 장미(로젠탈), 철(아이젠버그)와
같은 이름을 붙여 주었다. 반대로 싼값의 이름에는 늑대와 같은 동물 이름을 붙여 주었다.

아예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에게는 이름이라고도 할 수 없는 지방 궁둥이와 같은 천박한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지금은 모두 이름을 고쳐
이런 종류의 이름은 없다.

이 세상 어느 나라이고 이름을 돈으로 사서 붙이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돈이 우리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다는 것은 확
실한 사실이다.

 가난하기 때문에 바르고, 부자이기 때문에 옳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미드라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어떤 두 사람이 찾아와 서로 다른 말들을 했다고 가정하자.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이고 한 사람은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
람이라고 할 때 당신은 과연 어느 편의 말을 진실한 말로 믿을 것인가?

답변은 이렇다. 부자라고 해서 언제나 거짓말만 할 수는 없을 것이고,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올바르게 살아간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이와 반대의 답변도 물론 가능하다.

 돈이라 악함도 저주도 아니며, 인간을 축복하는 것이다.  
'부자와 현자 가운데 어느쪽이 더 위대할까'하고 랍비의 제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랍비에게 물었다.
[그거야 현자가 더 위대하겠지.]
랍비가 대답하자, 제자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왜 부자집에는 현자고 학자고 모두 출입하는데, 현자의 집에는 부자들은 찾아들지 않을
까요?]
랍비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현자나 학자는 현명하므로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부자는 단지 돈만 가지고 있을 뿐 현자로부터 지혜를 배워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기 때문이지.]

 돈이란 결코 모든 것을 좋게 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들을 썩게 하지도 않는다.
돈이란 도구의 일종이다. 모든 것을 좋게 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들을 썩게 하지도 않는다.
돈이란 도구의 일종이다. 그러므로 돈이 인간 생활에서의 모든 것들을 밝헤 또는 빛을 내게 한다는 생각이나 혹은 돈이 모든 악의 근원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돈은 하나의 수단일 뿐이지 목적일 수는 없다. 진실로 인간다운 것은 돈의 노예가 아니라 돈을 지배하는 것이다. 지상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이다.

<성서>의 창세기편을 보면,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 세상을 지배하게 하는 동시에 보다 좋은 대상으로 만들게 하기 위해 이 지상을
인간에게 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돈이란 어쨋든 사람보다는 아래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잊고 있다. 반면에 돈을 천시하는 사람들도 없
지 않다. 이 또한 옳지 않다. 돈이란 그 쓰기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그 밖에 다른 문제는 없다.

우리는 돈을 소홀하게 여기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돈은 추악한 것이다 하여 관심조차 없는 체 돈을 소홀하게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지
만 그것은돈을 두려워하는 행위일 뿐이다.

 돈이란 인정없는 주인이기도 하지만, 반면 유익한 심부름꾼일 수도 있다.  
많은 민족들이 나라를 세우고 그들의 역사를 창조해 가고 있는 동안에 유태인들은 어둠 속에서 끊임없는 박해를 받아 왔다.
유태인은 유태인들만이 살 수 있는 제한된 지역으로 밀려났고, 땅을 가지는거나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조차 법률에 저촉되어 금지당했다.
게다가 살고 있는 지역으로부터도 언제 쫓겨날지 알 수 없는 불안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조국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라면 자기들이 살고 있는 땅의 나무, 돌, 시냇물 같은 것들을 가깝게 느낄 수가 있으리라. 하지만 오늘날의 유태
인들도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정말로 오랜 슬픔의 역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있어 과연 무엇이
힘이 되고, 무엇이 그들을 지탱하게 해 주는 기둥이 되겠는가? 그것은 돈뿐이다.

특히 유태인들은 기독교 사회에서처럼 돈을 천시하거나 돈이 죄를 낳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돈은 쓰기에 따라서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돈 그 자치에는 아무런 책임이 없으며, 오히려 돈은 우리에게 갖가지의 온갖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돌처럼 굳어진 마음은 황금망치로만 풀 수 있다.
돈이 가지고 있는 막강한 힘에 대한 속담이다.인정하기에 마음 아픈 일이지만 우리 인간 생할에서 돈의 힘이란 실로 막강한 것이다.
'돈은 닫혀 있는 모든 문을 열수 있다'라고도 한다. 가정에 돈이 넉넉하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가정에 넉넉한 돈이 있으면 평화로움이 깃
든다'고 한다. 사실이다.

집안에 여유있는 돈이 있으면 가정의 화평이 보장될 가능성이 크며, 돈이 없는 가정에서 불편함과 잦은 불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은 어느 사회에서고 마찬가지이다.

<유태인의 율령집(1565년 출간)>에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부유함을 원하고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러한 표현은 <국부론>보다도 앞선
기록이다. 유태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돈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살아온 만큼 돈은 인간 생활의 최대 문제의 하나일 수 밖에 없다.

유태인들은 길가에서 듣는 랍비의 설교 한마디보다는 단돈 10달러의 돈을 더 귀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특별히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낫다
고 생각하는 것은 돈에 대한 걱정을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파는 것은 상술이 아니다. 진정한 상술이란 자기가 갖고 있지 않은 물건을 그것이 필요치 않은 사람에게 파는 것이
다.
엽총이 필요한 에스키모에게 자기의 엽총을 파는 것은 상술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한 행위는 누구이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상술이란 당신에게도 없는 제빙기를 그것이 전혀 필요하지도 않은 에스키모에게 팔아 먹는 것이다. 그리고 물건을 사들인 상대편도
자기의 구매 행위에 만족감을 가지게 되어야 한다.

장사의 도리는 매우 철저한 것이다. 유태인들은 특히 중세부터 오랜기간 동안을 압박 속에 살아온 탓으로 정당한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유태인 지역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중개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철저한 장사꾼으로 길들여져 갔다. 지역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애써 팔고 나서는 곧 똑같은 물건을 찾아 헤맨다는 웃지못할
이야기도있다. 대부분의 유능한 장사꾼들은 모두 이런 방법에 의해 단련되어졌다.

 부자를 칭송하는 사람은 그 부자보다는 돈을 칭송하는 것이다.
인간이 권력자를 공경하는 것은 그 권력자가 자신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권력 자치에 대한 공경일 뿐이다. 어느날 랍비
를 찾아온 두 사람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그 지역에서 손꼽는 부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몹시 가난한 사람이었다. 이 두 사람은 대기실
에서 기다리도록 되어 있었는데, 좀 일찍 도착한 부자가 먼저 랍비의 방에 들어간 뒤 한 시간만에 나왔다.
그 다음 가난한 사람이 들어가 그는 5분만에 랍비의 방을 나왔다. 가난한 사람이 항의하였다.

[부자와의 상담은 한 시간이고, 왜 나와는 단 5분에 끝나야 합니까? 이래도 공평하다고 할 수 있나요.]
랍비는 자상한 얼굴에 웃음을 띠며 대답하였다.

[오해를 푸시오. 당신은 자기 스스로 가난하다는 사실을 곧 알았지만, 부자는 자기의 마음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1시간이나 걸렸
기 때문이오.]

 필요한 돈을 빌리는 것은 마치 가려운 곳을 긁는 것과 같다.
우리가 피부병에 걸려 무엇이 몹시 가렵다. 이때 손으로 긁어 가려움을 없앤다고 하여 근본적으로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일시적인
변통은 될지 몰라도 병은 더 도지게 된다.

손으로 긁으면 물론 잠시 동안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빚을 지는 것도 이와 같다 하여 여기에 대한 경계의 격언이다. 모든 것의 근본부터
치유해야만 옳은 것이다.

 많은 것을 가진 부자에게는 자식은 없고 상속인만이 있다.
돈이란 오랜 세월 동안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져 왔기 때문에 찬 느낌을 받게 된다. 한 여름에 동전에 손을 대어보면 역시 차다는 느낌을 받
는다. 하지만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은 이 귀한 금전을 손에 움켜쥐어 거기에 따뜻한 온기를 넣어준다.
부자들은 돈을 대부분 궤짝이나 은행에 모아 두기 때문에 사람과의 접촉이 없어 금속만의 싸늘함을 늘 간직하고 있다. 이렇듯 돈이란 그것
을 소유한 사람에 따라 따뜻하게도 할 수 있고 본래의 차디찬 대로 만들 수도 있다. 이 모두가 사람에 달려 있다.

부자들은 항상 돈 속에 묻혀 있기 때문에 금전의 싸늘함이 자신이나 자기 가족들에게 전해져 피와 마음까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음을 모
른다. 그러므로 가진 것이 많은 부자는 자식이 있어도, 그는 진정한 의미의 자식이 아니라 오직 재산을 물려받는 상속인에 그칠 수 밖에 없
다.

 돈이란 선인에게는 좋은 것을, 악인에게는 나쁜 것을 안겨 준다.  
유태인들은 기독교의 교인들처럼 인간의 몸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주지 않는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몸이란 모든 욕망의 원천이므로 인간
의 육체에는 죄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유태인들은 이와 반대로 사람의 몸은 맑은 정신이 담긴 그릇이므로 이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하여 육체 자체가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돈에 대한 유태인들의 생각도 이와 같다. 돈 그 자체에서는 좋은 일이고 나쁜 일이고 생겨나지않는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돈은 악의 원천
이고 죄악의 하나라고 생각하여 왔다.

이러한 기독교인들의 생각을 유태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돈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지 못한 탓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육체나 돈이 인간
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아 그것이 우리 인간을 지배한다고 여긴 탓으로 돈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재물이 많으면 그만큼 걱정거리도 늘어나지만, 재물이 전혀 없으면 걱정거리가 더 많다.
기독교에서는 흔히 돈을 비롯한 물질들을 비천한 것으로 여겨 소홀히 한다. 카톨릭의 신부는 검은 옷에다 흰 칼라를 달아 입어 청빈을 표시
하고 있다.
이처럼 기독교에서는 큰 재물을 소유하는 것을 죄악으로 보고 있지만, 로마의 법왕청은 청빈보다는 재물이 적지 않은 우리들과 같은 생활
을 영위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기독교에서는 재물을 멀리하고 있는가? 기독교에서는 청빈이 미덕이며, 돈이나 여자 관계의 유혹을 물리치는 것이 자랑이 될
수가 있다. 이것을 거꾸로 말하면 물질의 풍요와 쾌락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풍요와 쾌락에 빠지면 자기 스스로가 그 물질에 지배를 받는다는 생각에서이다. 하지만 유태인들은 항상 지나쳐서는 안된다는 율
법에 따라 스스로 규율을 지키고 있으며, 그 믿음에 따라 어떠한 풍요나 쾌락도 무서워하지 않는다.자신들의 율법을 지키며 스스로 규ㅇ을
확립하므로 어떠한 부나 쾌락도 쉽게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닷가에서 발을 굳건하게 딛고 서 있으면 흔들림이 없지만, 불안정하게 서 있으면 파도에 발을 빼앗기고'고 <탈무드>는 적고 있다. 우리
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물과 여자의 유혹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인생의 풍요와 즐거움을 잃어버린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를 볼 수 있다. 이
러한 모든 것은 모두 스스로 자기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돈이란 옷이 우리에게 베푸는 역할 밖에는 해 주지 못한다.  
돈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만능의 것이라면 의복도 또한 만능이다. 돈이 많이 있다고 해도, 그 돈으로 인간의 본질을 바꾸어 놓을 순느 없
다. 이것은 마치 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고 있어도 옷 속의 묻힌 인간까지 변화시킬 수 없는 거와 같다.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다름아닌 그 사람 자신뿐이다. 하지만 돈이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좋다. 몬에 잘 맞는 좋은 옷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풍요로운 물질만을 숭배하고 따라서는 안된다. 이러한 사람이 우습게 보이는 것은 물질만을 따라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
신의 숭배물에 가깝게 하고 싶어하며, 또 그것에 쉽게 물들어 간다.

그러므로 물질에 빠진 사람은 그 자신마저도 물질이 되고 만다. 우리 인간이 옷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인간은 돈이나 물질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반대의 경우가 된다면 인간은 한낱 옷걸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가난함은 수치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명예로움도 아니다.
유태인 사회에는 청빈에 대한 관념이 기독교나 동양처럼 강력하지가 않다. 그들은 돈을 선이라고는 주장하지 않지만 '돈은 우리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 생활에서는 돈의 힘으로 많은 것들을 실현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가난은 문학 속에서는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가정에서는 고통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또한 가난함을 설교를 통해 들으면
한없이 맑고 깨끗한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의 우리 생활에서는 비참할 뿐이나, 유태교에서는 가난함을 찬양하는 설교같은건 아예 없다.

우리는 돈에 굴복하여 찬양하는 것도 옳지 않지만 그렇다고 돈을 추하게 여겨서도 안된다. 유태인들은 기독교인들이 금전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돈은 추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오히려 우리 인간 생활에 필요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어쨋든 돈은 우리에게 유용한 것이므로 가능하다면 많이 가지는 것이 좋다. 그 뒤에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문제도 돈을 소유한 사
람의 지혜에 달려 있다. 돈이 없는 가난함을 청빈으로 찬양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가난한 사람에게서 돈을 차용하는 것은 마치 추녀에게 키스하는 것과 같다.
유태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가난함 속에 살아왔으므로 서로간 돈을 융통해 썼다. 그 때문에 돈을 빌려 주고 꾸는 것에 관련된 속담이 특히
많다.
이러한 속담에 특별한 설명을 덧붙일 것은 없다. 그러나 돈을 차용하는 행위에 관련된 속담에는 빌려주는 법과 빌리는 법을 말하기에 앞서
남에게 돈을 빌리는 그 자체를 훈계하는 내용들이 많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유태인들이 돈을 천대시했거나 돈을 남에게 빌려주고 그 댓가
로 금리를 받는 일을 죄악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자주 유태인과 기독교인들이 돈과 여자를 대하는 태도를 비교해 보지만, 결론은 돈이고 여자이고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아주 유용한 것이라는 것이다. 알다시피 유태인들은 인간에게 유용한 것이라면 악하지도 죄악도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중세 유럽에서 유태인들에게만은 돈을 빌려주는 일이 많았던 사실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을 수 없는 기독교인들과의 교제가 막혔기 때
문이었다. 돈을 융통해주거나 차용하는 일이 결코 도덕 생활에 어긋나는 행위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렇다고 그것이 유쾌한 일도 아니다.

'친구를 원수로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돈을 빌려주는 일이다.' 이 속담은 유태인 사회의 전형적인 것이다.

 매춘부의 얼굴에 침을 뱉으면 그녀는 비가 온다고 말한다.  
매춘부란 직업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직업'으로알려져 있다. 성서에도 매춘부가 등장하며, 실제로 중세 유태인들의 생활
지역에는 매춘부의 직업을 가진 여자가 많았다. 지금의 유태인은 모두 열심히 살아온 보람으로 풍족한 생활을 하게 되어 유태인 매춘부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가령 매춘부의 얼굴에다 대고 침을 뱉았을 경우 그 여자가 '어머나 비가 오네요!' 하고 딴청을 부린다는 뜻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매춘부란
돈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고 가리지 않는사람이 어디 매춘부뿐이겠는가? 좀 우스운 예를 들어보면, 가령 누구에게 1000원을 주고 그의 얼
굴에 침을 뱉는다면 '비가 오는군'하고 대답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1000원이 아니라 돈의 액수가 몇 천만원, 몇 억원이라면 아마 그 결
과는 바뀌지 않을까?

 남에게 돈을 빌려줄 때에는 증인을 세우고, 적선할 때는 아무도 보지 않는 데서 하라.
<탈무드>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떤 랍비가 자기 친구로부터 돈을 빌릴 형편이 되었다. 그러나 친구는 차용증서는 물론 증인까지 입회시키라는 것이었다. 랍비는 친구의
우정이 의심스러워 물었다.

[자네는 나를 믿지 못한단 말이군, 나는 율법 연구의 권위자가 아닌가?]
[바로 그 점이 걱정일세, 자네는 율법 연구에만 몰두하여 마음이 율법에만 차 있으므로 남에게 진 빚같은 건 잊어버릴 테니까.]
어떤 랍비가 큰길에서 거지에게 돈을 주어 적선하자 다른 랍비가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적선하려면 차라리 안 하는 것이 좋
을 것이요.]
또 <탈무드>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적선하는 사람은 모세보다도 위대하다.]

 금전과 속담  
* 현금은 가장 능력있는 중개인이다.

* 좋은 수입만큼 좋은 약은 없다.

* 지식을 지나치게 많이 쌓은 사람은 늙지만, 돈을 지나치게 많이 가진 사람은 젊어진다.

* 돈을 갖지 못한 사람은 그 돈이 매우 귀중해 보인다.

* 돈은 어떤 닫힌 문이라도 척척 열 수 있는 황금열쇠이다.

*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의.식.주와 돈이다.

* 돈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 돈이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

* 자기가 지금 가지고 있는 현금을 벌 수 있는 방법은?쓰지 않는 것이 곧 버는 것이다.

* 부자가 되는 유일한 방법, 그것은 내일 할 일을 오늘 해 치우고, 오늘 먹어야 할 것을 내일 먹는 일이다.

* 겨울 땔감에 필요한 돈을 여름철 한가한 때 놀면서 낭비하지 마라.

* 누구이고 개처럼 가난해 질 수도 없고, 돼지처럼 부자가 될 수도 없다.

* 부자도 굶주림에 고통받을 때가 있다. 굶으라는 의사의 지시를 받았을 때다.

* 가난한 사람은 적이 많지 않고 부자는 친구가 많지 않다.

* 돈이면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살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 살 수 없는 것은 상식이다.

* 만일 부자가 대신 죽어 줄 사람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가난한 사람은 풍족하게 살 수 있으리라.

* 절약할줄 모르는 상인은 털이 나지 않은 양과 같다.

* 아직 숲속에 있는 곰의 가죽을 팔아 먹어서는 안된다.

* 빌린 돈을 약속대로 갚은 자는 신용을 곱으로 늘인다.

* 남에게 꾼돈을 갚지 않는 사람은 도둑질을 하는 것과 다를게 없다.

* 빌린돈은 어떠한 돈이건 입구는 넓고 출구는 좁게 마련이다.

* 요리를 먹고 피해 다니는 것보다는 차라리 배추국을 먹고 떳떳하게 활보하는 게 낫다.

* 어려워 빌릴 때 웃지 말라. 갚을 때가 되면 울게 된다.

* 돈을 빌려간 사람이 돈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그의 근처럴 배회하지 말라.

* 가난한 사람은 네 계절밖에는 고생하지 않는다. 봄, 여름, 가울, 겨울이다.

* 의학은 가난의 고통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치료한다.

* 가난함을 이겨 낼 아름다움은 없다.

*밭에다 돈을 뿌리면 어리석은 자를 거두어 들인다.

 <10>유태인의 격언-마음의 양식
하늘과 땅을 웃기려면 먼저 고아를 웃겨라, 고아가 웃으면 하늘과 땅도 모두 웃을 것이다.
히브리어에 '훗파'라고 하는 말이 있다. 이 말을 한마디로 명료하게 번역하여 표현하기는 어렵다.'몹시 무례하다'혹은 '사람을 더 이상 우롱
할 수 없다'라는 의미의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어떤 사내아이가 부모를 살해한 죄로 재판에 회부되었다고 하자. 이때 사내아이는 재판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재판장님!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가엾은 고아입니다.]
물론 이것은 우스개 소리이다.
어느 때인가 로드 공항에서 총기 사건으로 소동을 일으켰던 오카모드란 자가 재판정에서 '나는 스타가 되고 싶다'라고 떠들었을 때 이스라
엘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훗파'라고 비웃었다.

하늘과 땅을 웃기고 싶거든 먼저 고아를 웃겨라고 하는 말이 결코 '훗파'의의미를 띤 행동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늘지고 비참한 어떤 곳
이고 간에 웃음은 반드시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말하는 고아란 의지할 데 없는 가엾고 불행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고아처럼 가엾고 불행한 사람을 웃게 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 어
디이고 밝아지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별로 눈길을 끌지 않는 대수롭지 않은 따뜻한 웃음이 이 세상 모두를 밝게 해 준다는 말이다.

유태인들은 부모의 상을 당해도 한달 이상 슬픔에만 잠겨 있어서는 안된다. 유태인이 존경하는 하나님은 태양처럼 밝고 즐거우며 게다가
아주 웃음을 즐기는 분이기 때문이다.

'언제까지고 직책에만 빠져 있었서는 안된다. 우울한 기분으로 하나님을 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죄를 지었으면,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앞으로는 다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뒤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존경해야 한다.' 이러한 경구말고도 <탈무드>에는 사람
은 쾌활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많다. 한가지 더 인용하여 보면, '잘못 때문에 법정에서 벌긂을 냈으면 신나게 휘파람을 불면서 나오라.'이러
한 일 때문에 유태인들은 다른 민족들로부터 뻔뻔스럽다는 조롱을 당하기도한다.하지만 이들의 생활 이면에는 앞에서와 같은 생활 철학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한 불행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하라.  
가난하기로 소문난 남자가 어느날 랍비를 찾아와 눈물 을 흘리며 호소했다. [랍비님! 저의 집은 성냥곽만한 데다가 새끼들은 주렁주렁 딸렸
고, 게다가 마누라는 이 세상 둘도 없는 포악스러운 여편네입니다. 랍비님! 이 가엾은 저는 어쩌면 좋겠습니까?]
유태인 사회에는 기독교와는 달리 부부지간의 이혼이 허용되고 있다. 이때는 랍비의 허락만 받으면 되는 것이다.
남자의 눈물어린 호소를 들은 랍비가 물었다. [당신은 염소를 기르고 있소?]
[예, 있고말고요. 유태인인데 염소를 기르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러면 앞으로는 염소를 집 안에 가둬 놓고 기르도록 하시오.]
남자는 이해가 되지 않아 의아한 얼굴로 돌아간 뒤, 다음날 다시 랍비를 찾아왔다.

[랍비님!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못된 여편네 등살에다가 염소까지 한군데에서 딩구니 말입니다.]
다시 랍비가 남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닭을 기르고 있소?]
[기르고 말고요. 닭을 안 기르는 유태인이 어디 있습니까?]
닭은 유태인들이 즐겨 기르는 동물이다. 랍비가 다시 일렀다. [오늘부터 닭을 모두 집 앞에 가둬 놓고 기르도록 하시오.]
집으로 돌아갔던 남자가 다음날 또다시 찾아왔다.

[랍비님! 정말 이젠 끝장입니다.]
[그렇게도 고통스러운가?]
[말도 마십시오. 여편네 등살에다 염소에다 닭까지... 아이구 맙소사.]
랍비가 이 남자에게 다시 명령하듯 일렀다.

[오늘 돌아가서는 염소와 닭을 예전처럼 밖으로 내놓고 그리고 내일 다시 오시오.]
다음날 그 남자가 다시 찾아왔는데, 얼굴에는 환하게 기쁨이 넘쳤고, 마치 황금덩이라도 얻은 듯 밝아 보였다.

[랍비님! 말씀하신대로 염소와 닭을 내 놓았습니다. 이제 우리집은 대궐같이 넓습니다. 랍비님, 부디 큰 축복있으시길 빕니다.]

 일생동안 울고 허송해서도 안 되고, 웃고만 보내서도 안된다.  
이 말은 앞에서 보아온 격언과는 상치되는 말이다. 격언이란 불변의 진리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며, 인생에 대한 하나의 암시적인 말이기
도 하다. 나 역시 여기에서 '~ 을 하시오'라고 단정짓듯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우리가 함께 음미해 볼만한 것들을 보여 주고자 힘쓸 뿐
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좌우를 서로 대칭이 되도록 만들었듯이 동물이나 물고기도 이처럼 만들었다.
<탈무드>에 의하면 인간의 절반은 하늘에,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땅에 속해 있다하여, 인간에게는 천성과 수성이 함께 담겨져 있다는 것이
다. 이렇듯 인간은 갖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희로애락 가운데 어느 한가지 감정에만 빠져 치우칠 수는 없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인생이란 균형이다. 우리는 하루 온종일 울거나 화를 내거나 웃거나 하는 일로 보낼 수는 없다. 여기에도 균형이 있어야 한다. 유태인들은
어느 한쪽에만 빠져 있는 맹신자들을 싫어한다. 비록 정의로운 일이라 해도 맹목적인 행위자를 보면 행복하지도 인간답지도 않다고 여긴
다. 매사에 있어 균형, 균형... 일생 동안 잠시도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미 끝나버린 일을 후회하기 보다는 하고 깊었던 일을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라.
이미 해 치워버린 일에 대해 아쉬워하는 것과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후회하는 일 가운데 어느쪽이 더 후회가 남을
까? 나이 많은 노인들에게는 묻는다면 대부분 후자의 일에 대해 큰 후회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이란 실패때문에 소중하고 큰것을 잃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잃은 것 못지 않은 만큼 값진 교훈도 얻게 된다. 하지만 꼭 하고 싶었던 일
을 놓칠 때에는 교훈같은걸 얻을 기회가 없다.

실패라고 하는 것은 유한한 것이지만,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믿는 낙관적인 인간의 본성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든
것에 대하여 너무 낙관하고 있는가? 하지만 인간들의 이러한 낙관적 자세에서 진보는 이루어져 왔다.

우리가 실패한 일, 이 실패가 곧 경험이 되었다. 실패는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은 실패에 의해 좌절하기
도 하지만, 이때 경험과 값진 교훈을 얻기 때문에 가능성에 희망을 걸게 되고 그 좌절을 가볍게 뛰어넘게 되는 것이다.

실패는 곧 성공을 위한 비옥한 토양을 만드는데 유익하지만, 일 그 저차에 힘쓰지 않았다는 것은 가능성의 토양을 모두 잃어버리는 꼴이 된
다.

 하나님은 밝은 사람을 축복해 준다. 낙관하는 마음은 자기 뿐만 아니라 남들까지도 밝헤 해 준다.
유태인들은 얼핏 보기에 슬픈 눈을 갖고 있는 듯하지만 그러나 한없이 밝다. 이들은 진정한 슬픔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밝음이 또한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며, 어두운 밤을 알기 때문에 그만큼 밝은 태양의 감사함을 기쁜 마음으로 즐길 수가 있다.

'비관의 길을 좁지만 낙관의 길은 넓다.' 낙관은 모든 것들을 포용해 받아들이지만 비관으로 모든 것들을 물리쳐 버리고 만다.

어느 마을의 랍비에게, 매일 노름으로 밤샘을 하는 자가 있다는 진정이 들어왔다. 이 말을 들은 랍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잘하는 일이군. 한번 밤샘을 하게 되면<탈무드> 공부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도 밤샘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낙관이란 이렇게 관용의 자세이기도 하며 포용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낙관은 자기 자신에게도 착한 사람에게도 악한 사람에게도 나설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이다. 유태인들이 그동안 당해온 가혹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굳굳하게 살아온 것도 이들의 낙관하는
마음가짐 때문이리라.

 행복을 얻으려면 만족하게 멀어져야 한다.  
인간이란 행복하지 않으면 만족할 줄 모른다. 이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그러면 행복이란 무엇이며, 어떠한 상태의 것인가? 도대체 행복
의 크기는 어떻게 잴 수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사람마다의 대답은 각기 다른 것이고, 또한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물론당연한 일이다. 인간이란 평생을 이 문제의 답을 얻기 위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 자신이나 당신 그리고 어느 누구이고 모르는 일
이다. 행복을 어떤 방법으로 잴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 암시해 보겠다. 그 하나는 우리의 행복은 얻음으로써 그 얻음에 의해 잴 수 있는 방
법이 있다. 이렇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얻은 것에 따라 행복의 크기를 잰다.

다른 하나의 방법은 잃는 것에 따라 행복을 측정하는 방법이다. 우리들은 건강과 질병에서 보듯이, 평소 건강할 때에는 건강에 대한 행복감
을 모른다. 건강을 잃고 병마에 시달릴 때 비로소 건강을 되찾고자 몸부림친다.

병마는 몸으로 하여금 고통과 외로움을 안겨 준다. 하지만 우리가 건강할 때는 아무 이상도 느끼지 못한다. 행복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우
리가 행복에 취해 있을 때에는 느끼지 못하던 것을 이것을 잃었을 때 비로소 고통에 의해 그 소중함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가지고 있던 것을 잃고 나서야 '나는 행복했었는데...' 하고 후회하는 것이다.

 어차피 같은 햄을 먹는 것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먹어라.  
이미 앞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했듯이, 유태인들은 계율에 의해 금지되고 있는 음식이 많다. 돼지고기로 만든 햄도 그 중의 하나이다.
유태인들의 특성이라면 이 책에서도 여러번 말했듯이 아주 낙관적인 성품이라는 점이다. 경우에 따라 일시적으로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끝
도 없이 낙관적이기만 하다. 이들은 어차피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라면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지니고 살아가자는 마음가짐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만들어 준 세상을 축복 속에 즐기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존경하지 않는 죄악이 된다는 것이다.

말할것도 없이 유태인들에게는 햄을 먹지 못하게 엄격하게 금지되어있다.이러한 금지 속에서도 만약 햄을 먹어야 할 경우가 생긴다면 죄의
식을 갖기 보다는 차라리 즐거운 마음으로 먹으라는 것이다.정말로 유태인적인 성품을 보여주는 속담이다.

 남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마치 향수를 뿌리는 일과도 같다. 이 때는 당신에게도 몇 방울 정도는 묻는다.
유태인들은 특히 선물 주기를 즐기는데, 이것은 자선하는 것을 의무시하는 유태인 사회이기 때문이리라.

히브리어에서는 '자선'과'정의'가 '체다카'라고 하는 같은 말로 쓰이는데, 영어에서 자선을 뜻하는 '체리티'의 어원을 보면 라틴어의 '기독
교인이 사랑'이라는 말이며, '남에게 베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태인들의 의식으로는 자선이란 남에게 베푼다는 뜻이 아니라 해야
할 당연한 행위로 되어 있다. 유태인의 어떤 가정에서고 아이가 어릴 때부터 저금통을 갖게 하는데, 이 저금통이 바로 자선에 쓰이는 것이
다. 저금통이 가득 채워지면 '시나고케'를 통해 자선에 쓰이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자선에도 일정한 제한이 있다. 자기 수입의 어느 일정한도 이상을 자선에 내놓는 일은 계율로 금지되어 있다. 부자로 사는
여유있는 사람의 경우 5분의 1정도가 허용되고, 보통 가정의 경우 10분의 1까지 허용된다. 물론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받게 된다.

오늘날 우리 세대에서 볼 수 있는 복지제도의 바탕이 된 구민법이 영국에서 시작된 것이 17세기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이미 유태교
의 계율에서는 복지제도가 확립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의 '제다카'정신이 얼마나 강렬했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 일이다.

유태인 사회는 동족끼리는 마치 친형제와 같이 가깝게 지낸다. 그러므로 자기 형제가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면 기쁘게 돕는 것이 당연하
다. 그러나 <탈무드>는 남의 힘에 의해 살아가서는 안된다고 훈계하고 있지만, 지금도 유태인 지역에 생활이 어려운 동족이 있으면 서로
수입금의 일부를 내 놔 어려운 동족을 돕고 있는 현실이다. 친절과 선행을 베풀어 남을 기쁘게 해 주는 일은 물론 자기 자신도 함께 즐거움
을 갖게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남의 강요에 의해 베푼 자선은 스스로 한 자선의 절반의 가치밖에 없다.
<미드라시>라는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어느 거리의 모퉁에에서 눈이 먼 거지가 구걸하고 있는 데 두사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동전 한닢을 적선했지만, 다른 사람
은 그냥 지나쳤다. 이때 사신이 나타나 두 사람에게 말했다.

[가엾은 거지에게 적선을 한 사람은 앞으로 50년 동안 더 살 수 있다. 하지만 적선을 외면한 자는 곧 세상을 하직해야 할 것이다.]
사신의 말을 들은 사람은 얼굴이 창백해지면 말했다. [지금 곧 거지에게 최선을 베풀겠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아닐세,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간 뒤에 그 배 밑에 구멍이 났는지 아닌지를 찾아보아 무엇하겠는가?]

 모르는 사람에게 베푸는 친절은 천사에게 베푸는 친절과 같다.

 어느 유태인 지역에 이름난 랍비가 살고 있었는데, 그의 아들 또한 아버지 못지 않게 정직하고 경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날 아들
이 랍비인 아버지에게 간절한 소원을 호소하였다.
[아버지, 성서에 등장하는 성인들을 만날 수는 없을까요?]
우리가 흔히 듣고 있는 전설같은 것을 보면, 죽은 자들도 일년에 몇차례씩 이 땅 위에 내려온다고 들어온 것처럼 이 아들도 그런 얘기를 믿
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네게 달려 있다. 항상 바르고 경건하게 생활에 충실하면 성인들도 만날 수 있지.]
아버지의 이같은 대답을 믿은 아들은 더욱 경건한 생활이 되도록 노력하였다. 그러나 반년이 지나도 아버지는 아들에게 약속한 대로 성인
들을 만나게 해줄 기색이 보이지 않아 아들이 물으면 '인내를 갖고 좀더 기다려 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오늘 착한 일을 했다고 하여 내일 당장 모세를 만날 수 있겠느냐?]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그리고 나서 또 1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아버지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다.그러던 어느날 예배소에 남루한 거지가 찾
아와 하루 저녁만 자고 가자고 하였다. 아들은 거지의 청을 냉정하게 거절하고 쫓아내었다. [여기는 잠을 자는 여관이 아니고 경건한 예배
소요. 어서 나가시오.]
아무 생각없이 거지를 쫓아낸 아들이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물었다. [그래 오늘도 후회없는 하루를 보냈느냐?]
아들은 저녁때 있었던 거지와의 일을 숨김없이 말했다. 아들의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 랍비는 하늘을 쳐다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기회를 놓쳤구나. 바로 그 사람이 네가 기다리던 성서 속의 현자였단다.]
아들은 너무도 기가 막히고 안타까워 다시 애원하였다. [아버지, 그렇다면 저는 평생 이 일을 후회하며 살아야 합니까? 돌이킬 수 있는 길
은 없나요?]
[또 기회는 있다. 하지만 그 기회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너를 찾아올지는 알 수 없다.]

 가장 훌륭한 지혜는 친절함과 겸허함이다.

 남달리 믿음이 좋은 어떤 사람이 랍비에게 불만스럽게 말했다. [나는 지금껏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온 정성을 다 해 왔습니다. 하지만 아
무런 발전이 없습니다. 나는 역시 무식하고 재주없는 시시한 놈일 뿐입니다.]
이 말을 들은 랍비는 기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큰 축복을 받을 것이오. 자기 스스로 자신이 어떻다는 지혜를 배웠소. 당신의 겸허한 태도가 바로 그것이오.]
여기서 말하는 겸허란 무엇인가?그것은 다름아닌 상대방을 인정하는 일이다. 자기만을 내세우지 않고 상대의 의견과 뜻을 인정하려고 노
력한 태도이다. 친절함과 겸허는 한 형제와 같다. 결코 겸허해지지 않고 친절할 수 없으며, 친절하지 않고는 겸허해 질 수가 없다.

 만약 손님이 기침을 하면 수저를 내 놓아라.  
어느 집에고 초대를 받은 손님은 항상 예의에 신경을 쓰게 된다. 그래서 식탁에 만약 수저가 없더라도 '여기 수저좀 주시오'하고 말하기가
여간 쑥스러워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 손님은 기침소리를 몇 번내서 주인에게 눈치를 채도록 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평생 동안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손님이다. 이 격언에서 말하는 손님은 바로 우리가 일생 동안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다. 자기가 늘 주변에서 만나고 있는 이웃들에게 주의깊
게 마음쓰라는 교훈이 담겨 있는 속담이다.

 자신의 결점을 찾아내는데 힘쓰는 사람은 남의 결점을 찾지 않으며, 남의 결점만 찾아내는 사람은 자기 결점은 찾지 못한다.
<탈무드>에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가엾고 불행한 사람은 자신에 취해 자기만 의식하는 사람이라고 적혀 있다. 자기 잘못을 너무 지나치
게 의식하고 있는 사람은, 온종일 남들이 자기만을 주시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자신을 갖지 못한 사람은 지나치게 자신을 과신하는 자와 똑
같다.
이런 사람은 매사에 있어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이며 오만하다. 이것은 자기과신에서 오는 잘못된 생각이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의 반대도
진실일 수 없다.

 강철보다도 강한 반면 파리보다도 약한 것이 인간이다.  
맨허턴에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나 도쿄의 고 층 빌딩을 보면 인간의 힘이 실로 강철보다도 강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갗
철을 녹이고 늘이고 하는 강한 인간도 하찮은 파리나 모기에 물려 고통을 받기도 하며, 때로는 이것들이 옮기는 전염병에 걸려 생명을 잃기
도 한다.
이 격언을 통해, 유태인 자녀들에게 만능의 힘을 가진 인간도 작은 벌레에 물릴만큼 아주 약하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인간보다 약한 것
에도 항상 두려움을 갖고 오만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교훈을 가르치고 있다.

이를테면, 겸허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모두 위험한 것뿐이라는 경계이다.

인간이란 재물을 모으고 명성을 얻으면 오만해 진다. 오늘의 인간도 우리가 만든 문명에 의해 얼마나 성공적인 생활을 꾸려가고 있는다? 하
지만 한편으로는 또 얼마나 작은 것에도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 그러므로 인간은 성공하였다해도 좀더 겸허한 자세로 생활하여야 할
것이다.

 마음을 가는 것은 두뇌를 가는 것보다 더 소중하다.  
이 속담은 '옳은 것을 배우기보다 옳은 것을 행하 는 것이 더 낫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명망있는 랍비가 제자 한 사람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였다. 그리고는 포도주를 먹기 전에 외우는 기도를 올리라고 했으나 제자는 몇 줄밖에
외우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기도문도 다 외우지 못했고, 지금까지 자기가 가르친 내용도 충분히 익히지 못하고 있었다. 랍비에게
꾸중을 들은 제자는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고개를 들지못하고 돌아갔다.

며칠 뒤 랍비는, 지난번 제자가 앓고 있는 병자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일해 번 수입으로 돕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랍비는
자기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는 선행의 주인공인 제자를 다시 불렀다.

[마음속에 작정한 것은 즉시 행동으로 실천되어 나타나는 것이다.비록 많은 책을 읽어 지식이 쌓았다 해도 마음을 갈지 않으면 그것은 알고
있는 것에 그치고 만다.]

 무거운 포도송이일수록 아래로 늘어진다.  
이 격언은, 인간은 겸손할수록 허리를 굽힌다는 뜻이 다. 유태에는 다음과 같은 옛날 이야기가 있다.
솔로몬왕은 하나님으로부터 아주 굉장한 선물을 받았다. 이 선물은 비단으로 짠 융단이었는데, 이것을 타면 하늘을 날아 어느 곳이고 갈수
가 있었다. 그래서 솔로몬왕은 다메섹에서 아침을 먹고 메데에서 저녁을 먹는 마치 꿈과 같은 생활을 하였다.

어느날, 솔로몬왕이 이 융단을 타고 하늘을 날고 있는데, 어디선가 개미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여왕개미가 부하 개
미들에게, 하늘에 솔로몬왕이 날아가고 있으니 보이지 않도록 숨으라는 명령이었다. 이 말을 들은 솔로몬왕은 땅으로 내려와 여왕개미에게
물었다.

[왜 나를 피해 숨으라고 했느냐?]
[폐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분이니까요. 훌륭한 분들은 아주 무섭거든요.]
[너는 아주 작은 벌레다. 내가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듯이 너는 높이 날 수도 없지 않느냐?]
솔로몬왕이 웃으며 이렇게 말하자 여왕개미가 곧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페하의 융단에 저도 좀 태워 주십시오.]
솔로몬왕은 여왕개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고 융단에 함께 탄 뒤 하늘을 날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여왕개미는 솔로뫈의 머리 위로 날아
오르며 말했다.

[자 보세요. 내가 폐하보다 더 높이 날 수도 있지요.]

 신의 천지 창조의 마지막 날 인간을 만드신 것은 인간의 오만함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성서에 의하면, 하나님은 광명과 암흑, 하늘과 땅, 물, 그리고 모든 생물을 만드신 뒤 비로소 최초의 인간인 아담을 창조하시었다. 하나님은
여섯번째 날에 인간을 만드시고 다음날인 7일째 쉬었으므로, 이 날이 안식일의 유래가 되었다.

필자는 여러분들 한테 성서를 반드시 읽도록 권하고 싶다. 방대한 양의 성서를 모두 읽기가 힘들면, 일부만이라도 읽어 많은 교훈을 얻었으
면 싶다. 왜 하나님은 인간을 마지막 날에 만드셨는가에 대해 고대의 랍비들은 생각하였다.

우리가 지금 열중하고 있는 <탈무드>가 이에 대한 <논의집>이라고나할까.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의 마지막 날에 만드신 것은 인간에게 겸손함을 가르치기 위하여 였다고 믿고 있다. 인간
을 다른 생물보다 늦게 창조함으로써 그러한 생물에 대해 우월과 자만심을 갖지 않고 자연에 겸손하게 순응하는 지혜를 터득하게 하였다.

 몬을 닦는 것은 비누고, 마음을 닦아내는 것은 눈물이다.  
인간들의 몸을 씻어주는 것은 비누이고, 마음의 때를 닦아주는 것은 마음이다. 이런 아름다운 속담도 있다.
'천당 한쪽에는 기도가 무엇인지 모른 사람이었지만, 평소 올 줄 알았던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있다.' '기쁨, 슬픔, 노함, 즐거움, 울음을 모
르는 사람은 즐거움도 모른다. 밤이 없으면 밝은 낮도 없듯이.' '감정대로 우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기쁨을 나타낼 때도 진정 기뻐하
지 않고, 기쁜척하는 것이다.'

'우리는 마음껏 울고 나면 마음이 맑아진다. 마치 목욕을 한 뒤 상괘해지는 기분처럼, 신은 인간의 메마른 영혼에 단비를 내리듯이 눈물을
내려주셨다. 감정대로 울고나면 기다렸던 비가 내려 가문 밭을 적셔주듯이 우리 마음에도 움이 트고 신록의 싱그러움이 만들어 진다.'

문명이 발달한 오늘날과 같이 사회가 기계의 노에가 되어 위험 상태에 빠진 것은 눈물을 부끄럽고 무익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인간은 울고 싶은때 감정대로 울어야 한다. 자기자신과 자기의 이웃을 위해서도 말이다.

 사람들은 길에서 넘어지면 먼저 돌을 탓한다. 만약 돌이 없으면 언덕을, 언덕이 없으면 자기의 구두를 탓한다. 이렇듯 사람은 좀처럼 자기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는다.
항상 자기만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겸손함이 없기 때문이다. 하기야 자기 스스로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인금
이라 해도 이 세상 모두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함께 어울려 사는 공동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서로서로 양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기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피한다면, 다른 누군가가 대신 잘못했다고 조작되어야 한다. 나는 항상 옮기만 하고 다른 사람이 언제
나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공동 생활의 이 사회는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위험한 생각에 우리 인간들은 쉽게 빠진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이러한 위험한 생각을 극복하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공동 사회의 일원인 우리는 서로서로 겸손해 하고, 스스로의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
는다.

 이미 행해진 행동은 변하지 않고 남게 되지만, 그러나 인간은 날마다 변해 간다.
<탈무드>에 있는 말이다. 성서에 있는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결코 미워해서는 안된다'는 말과 같이 잘못되어진 행위는 지탄해도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잘못은 인간은 나날이 변화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림 인간은 개선되어 간다. 성경은 노력하는대로 발전하는 것이 인간이
라고, 인간에 대한 믿음과 낙관을 가르치고 있다.

'날이 날마다 새로운 일이 생긴다. 이것은 신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인간은 매일새로 태어나므로 , 결코 좌절해서는 안된다.'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신은 인간의 마음을 먼저 보고, 그 다음 그의 두뇌를 본다.  
참된 인간은 그가 지닌 마음에서 좌우되므로 먼저 착 한 마음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지식이란 그 다음의 것이다.
남다르게 많은 학문을 닦은 학자라 해도 그가 지닌 마음이 가난하고 어두우면 마음이 고운 가난한 농군만도 못하다.

시설이 훌륭한 대학도 이런 경우 가난하지만 화목한 작은 가정만도 못하다고 할 것이다. 신은 인간이 지닌 지성보다는 그가 지닌 마음을 본
다.<탈무드>의 가르침은 이렇다. '<탈무드>의 내용 모두를 외우는 것보다는 작은 덕행이라도 한가지 몸소 익히는 것이 낫다'고 하였고,
'인간의 지성이 마음에서 행해지는 덕행 보다도 낫다고 믿는 자는 끝내는 그 지성마저도 잃어 버린다'고 가르치고 있다.

 내일 일어날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말라. 오늘 현재의 앞일도 모르면서..
인간이란 앞날을 미리 알 수 있을 만큼 위대하지 못하므로 인생살이에 대해 너무 걱정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앞날에 대해 지나치게 비관한
다거나 또는 지나치게 낙관하는 것은 스스로가 위대하다고 착각하는 것에 불과하다. 인간은 결코 앞날을 점칠 만큼 위대한 동물은 아니다.

운이 좋다든가 운이 나쁘다고 해서 웃고 우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앞날에 일어날 일들을 모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우리가 속단하는
낙관이나 비관은 인간의 힘이 그만큼 앞날에 미치고 있지 않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내일이란 것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도 비관도 하지 말
라. 앞날에 생기는 일에 대해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탓에 우리들 인간은 그나마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매일매일 자기 자신을 죽여가는 자는 이승도 저승도 갈 곳이 없다.  
매일매일 스스로를 죽여간다는 표현이 좀 어색하기는 하지만, 이 말은 다음과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스스로를 매일매일 죽이고 있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비관하고 있거나 학대함으로써 삶에 의욕을 잃고, 이 때문에 몸과 마음
의 건강을 해쳐 끝내는 인생 모두가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만다는 말이다. 유태인들은 하루하루의 생활을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배운다. 사
람이란 매일 새로운 일을 만나게 되고, 이렇게 됨으로써 새로운 일에도전해 승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이렇듯 우리의 하루는 각각 다르
게 펼쳐진다. 때문에 지나친 비관도 후회도 낙관도 금물인 것이다.

하지만 하루하루를 스스로 비관하고 후회하는 사람은 이러한 경우와는 반대의 생활에 젖어 있다. 유태인 사회에서는 자살이 가장 큰 죄악
이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자살한 사람은 장사를 지내주지 않으므로써, 그를 유태인 사회에서 아주 추방해 버렸다.

하루하루 스스로가 죽어가는 자는 인생의 참생활을 즐기지 못하고 있으므로 세상을 사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자살한 자는 유태인 사회에서 영원히 말살되었으므로, 이들은 이승에도 저승에도 갈 곳이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유태
인들은 자살하지 않는다.

 행복에서 불행으로 바뀌는 것은 순간적인 일이나, 반대로 불행을 행복으로 가꾸는 데는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가장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 해도 그가 가장 불행한 고통의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은 순간의 일이다. 하지만 반대로 불행한 늪에서
하우적이던 사람이 행복의 정상을 얻기까지는 실로 오랜 세월, 아니 평생의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인간이란 본래부터 지나친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므로,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기가 살고 있는 환경에 적응하고 만족할 수 없으
므로 평생동안 행복감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필자에게도 가끔 불화 때문에 상담하러 오는 부부가 있다.그 가운데는 이혼까지도 생각하는 부부도 없지 않다. 그 때마다 나는 며칠이 아니
고 3년간 깊이 생각해 보고 다시 찾아오라고 일러보낸다.

왜냐하면, 불행을 딛고 행복의 정상을 차지하는 데는 아주 오랜 세월 즉 평생을 보낸 끝에 그 방법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신은 바르게 사는 자를 시험해 본다.  
성서에는 이런 격언도 있다.
랍비 요나단이 말하기를, '도공은 이미 망가진 그릇을 손가락으로 두드려 시험해 보지 않는다. 그러나 잘 만들어진 그릇은 손가락으로 이리
저리 두드려 보면서 시험해 본다. 이와같이 신도 이미 잘못된 악한자는 시험하지 않고 바르게 살아가는 착한 사람을 시험해 부는 것이
다.'라고 했다.

그리고 랍비 벤 허니나는, '자기가 팔고 있는 베가 좋다고 생각한 삼베 장사가 있다면 그는 그 삼베를 계속 다듬이질하여 윤기를 낼 것이다.
그러나 그 베가 나쁜 품질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자꾸 두드리면 곧 헤어져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도 바르게 사는 자만
을 골라 시험해 본다.'고 말하고 있다.

랍비 에레아잘도, '한 마리는 건강하고 다른 것은 좀 약한 두 마리의 소를 가지고 있는 농군이 있다면, 그 농군은 건강한 소에게 멍에를 지
게할 것이다. 이처럼 신은 건강하고 바르게 사는 자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마음의 양식에 관한 격언  
* 마음에서의 문은 입.마음에서의 창은 귀이다.

* 마음에 바를 수 있는 약은 없다.

* 인류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쉽지만, 인간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 원한을 풀고 난 뒤의 당신의 마음은 개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용서해 준 뒤의 마음은 시원하고 맑다.

* 사람의 자신을 해하는 자는 사람의 몸을 해하는 자보다 더 죄가 크다.

*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자보다 스스로 악인이라고 생각하는 자가 더 귀한 존재다.

* 남을 속이는 일보다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이 더 어렵다.

* 인간에게 있어 가장 가까운 벗은 지성이며, 가장 무서운 적은 욕망이다

* 인간이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은 소홀히 생각하고 자기에게 없는 것은 탐을 낸다.

* 악한 것은 처음엔 달콤하지만 나중에 쓰다. 그러나 선한 것은 처음은 쓰지만 나중엔 달다.

* 천국의 출입구는 기도에는 닫혀 있을 수 있는 눈물에는 열린다.

* 병자가 병자를 위해 기도할 때, 그 병자의 기도는 두 배의 힘을 가진다.

* 만일 한쪽 다리를 잃는다면 다른 한 다리가 남아 있는 것을 신께 감사해라. 만일 두 다리를 모두 잃게 되면 아직 목이 남아 있음을 감사해
라. 또 목이 부러진다면 그 뒤엔 걱정이 없다.

* 많이 가진 자는 신을 주머니 속에 모셔 두지만, 가난한 자는 마음속에다 신을 모셔 둔다.

* 포도주를 마시는 시간을 아깝게 생각하지 말라. 그 시간에 당신의 마음은 편하게 쉬고 있다.

*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마치 가려운 곳을 긁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가령누 곳은 긁으면 긁을수록 더 가려워지고, 미운 사람은 생각할수록
더 미워지기 때문이다.

* 누구나 거울을 통해 좋아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 자기의 피부병은 불결하다고 생각지 않지만, 남의 병은 불결하다고 생각한다.

* 사람의 얼굴이 각자 다르듯이 각자가 가지고 있는 비밀도 다르다.

* 어떤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라고 칭찬받지만 그는 남의 것을 훔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듣는 칭찬일 뿐이다.

* 착한 사람의 나쁜 점이 악한 사람의 좋은 점보다 낫다.

* 누구이고 어딘가에 잘못된 곳이 있다.

* 벌레는 과일의 썩지 않으면 속으로 파고 들지 않는다.

* 영웅의 첫발은 용기를 갖는 일이다.

* 아무 방법도 없을 때, 오직 한 가지 방법은 용기를 갖는 일이다.

* 노예라도 현실에 만족하면 자유롭고, 자유스러운 인간도 현실에 불만이 있으면 바로 노예이다.

* 돈이 없는 것은 인생에서의 절반을 잃은 것이고, 용기가 없는 것은 인생 모두를 잃은 것이다.

* 너무 지나치게 후회하지 말자.그것은 옳을 일에 나설 용기를 해치기 때문이다.

*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실패한 일보다 더 나쁘다.

* 당신은 의지에는 주인이 되고 양심에는 노예가 되라.

* 지나친 겸손은 거만함과 다를 게 없다.

*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왕이 있다. 하나는 땅을 지배하는 왕이고, 하나는 마음을 지배하는 왕이다.

 <11>유태인의 격언-교육의 길
이상이 없는 교육은 미래가 없는 현재와 같다.  
마르크스, 프로이트와 같이 세계에 크게 영향을 미친 유태인을 찾아 보면, 그 가운데는 특히 개혁자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중에는
과학의 정설을 크게 바꾸어 놓은 사람과 개혁자가 많다.
그렇다면 유태인이 가지고 있는 이상은 무엇일까?
유태인들은 성서의 <창세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처음 인간을 만들어 이 세상을 맡길 때, 유태인에게 이 세상을 보다 살기 좋게 만들라는
책임을 지웠다고 배우고 있다.

바로 이 성서에서 말하고 있는 세상은 정의가 바르게 실현되는 것을 말한다.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은 풍족함 속에 평등과 평화를 누리
고, 하나님을 믿는 세상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은 곧 정의라는 것이다.

유태인들은 이러한 가르침을 아주 어릴 때부터 배우고 있어 점점 커가면서 강한 소망으로 자리잡게 된다. 대부분의 종교는 거의 다 보수적
인 경향이지만, 유태교에서는 성서의 가르침만 지키는 것은 부족하다고 여긴다. 유태인들은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지 않으면 안된다.

더욱이나 세계 각처에 흩어져 유태인만이 살아가야 하는 한정된 지역에 묶이고, 인간으로서의 대우보다는 멸시와 천대 속에 살면서, 이러
한 강한 전통에 힘입어 정의의 실현과 평등 사회를 간절하게 소망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때문인지 유태인 가운데는 사회 개혁자
가 많이 나왔다. 아우스비추 수용소에 갇힌 많은 수감들이 만들어 부른 '나는 믿는다, 영원한 평화의 그 때가 오리라는 것을...'라는 노래가
있는데, 모르긴 해도 유태 민족이 아니고는 이런 노래를 지어 부르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태 민족의 본질이다.

 금전의 차용은 거절해도 좋으나 책을 빌려 달랠때 거절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이 말은 <탈무드> 에 있는 율법 가운데 하나이다. 예로부터 유태인들은 '학문과 책의 민족'이라 불릴 만큼 배움을 중시하였다. 유태 민족에
있어서의 배움이란 인간에서의 피와 같다고 여긴다.
인간의 몸 속에 피가 흐르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없듯이, 배움이 없는 유태인들은 생각할 수 없다.이렇듯 배움이라는 것을 종교적인 측면에
서 지켜가는 의무로 삼고 있는 민족은 유태 민족뿐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 자라는 성장기에 말을 배운다. 하지만 각 나라의 많은 민족들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소수를 제외하고는 읽고 쓰는 것
을 모르는 민족이 많았다.

그러나 유태 민족만은 태어나면서부터 성서와 <탈무드>를 배우면서 쓰고 읽는 공부를 한다. 이들은 이때부터 배움이란 곧 신의 가르침이
므로 모든 사람이 함께 해야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유태 민족에게는 오늘날에도 이러한 강한 전통 의식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책으로부터 지식을 배우고, 인생에서 지혜를 배운다.  
오늘날의 우리들은 지식과 지혜의 차이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몇 백년 전과 비교해 생각하여 보면, 우리 인간이 알고 있는 지식이란 실로
엄청난 것이며, 또한 계속 그 양이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탈무드>를 비롯한 유태인들이 배우고 있는 많은 고전들을 보면, 인생을 통한 지
혜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유태인들 가정에서는 주일마다 돌아오는 안식일에는 모든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아버지가 <탈무드>에 대해 가르쳐 준다. 이처럼 유
태인들에게는 안식일이 곧 가족의 날이다. 이러한 탓에서인지 오늘날의 유태인들도 안식일에는 여행을 삼가고 장사고 쉬는 것이 보통이다.

유태인들에 있어 교육이라면, 시설이 잘 갖추어진 학교보다는 각 가정을 얼핏 생각하게 된다. 그만큼 가정에서 배우는 교육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유태인 자녀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지식에 그치지만, 가정에서는 온갖 지혜를 배우게 되며, 또한 그 아이들의 생활이 가정에
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랍에 파견되었던 어느 일본인이 많은 사람이 붐비는 공항에서 총기사고를 냈을 때 대부분의 유태인들은 그 일본인을 가리켜 '학교에서
지식만 배운 녀석'이라고 비웃었다.

인간의 지혜가 <탈무드>라는 경전을 낳았고'인간의 지식이 <대륙간 탄도탄>을 만들어 냈다. 지식은 날마다 새롭게 발전해가지만 지혜만
은 옛날과 차이가 없다고 유태인들은 믿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태인들은 수천년 전에 만들어진 성서와 <탈무드>를 믿는 것이다.
이들은 지식이 기록된 책과 지혜가 기록된 책을 구별하고 있으며, 지식의 책 못지 않게 지혜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유태 민족의 고전을 보면, 책을 통해 배우는 지혜보다는 부모를 통해 배우는 지헤가 가장 소중하고 훌륭한 것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을 피하고 도망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탈무드>에 있는 이런 경구가 이미 수천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다.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가장 교육열이 높은 유태 민족을 '책의 민족'이라고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책이란 것이 귀하
였다. 하지만 유태인들은 앞의 경구가 쓰일 만큼 책을 많이 읽었다.단순히 책을 읽는 것과 책을 통해 배우는 것은 차이가 있다. 우리는 <성
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배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수만 종이나 되는 많은 책 속에 파묻혀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람들은 책을 다만 읽는 것으로 그치고 생각하
지는 않는다.

'책을 읽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많은 책을 읽는다 해도 마치 나귀가 책을 싣고 돌아다니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탈무드>는
가르치고 있다.

 지식이란 흐르는 물과 같다  
<탈무드>에는 하 니와 이디라는 랍비에 관한 얘기가 있다.
'성경의 이사야편에는 [목마른 자는 모두 물가로 오라]
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성경에서의 가르침이 물로 표현하고 있는가? 물이란 높은 지대에 낮은 지대로 흐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지식
이란 것도 있는 곳에서 없는 곳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아울러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은 겸손해 진다.따라서 지식은 흐르는 물과도 같다.' 이
밖에도 <탈무드>에서는 지식을 포도주나 우유에까지도 비유하고 있다. 오사와라는 랍비의 얘기를 들어보자.

'성서에는 [포도주와 우유를 구하라.그리하면 그대들은 살 수 있다]
고 하였다. 왜 포도주와 우유를 예로 들었을까?그것은 바로 그릇 속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속에만 진정한 가르침
이 깃든다는 말이기도 하다.'

 기도 시간은 짧게 하고, 학문에는 오랜 시간을 보내라.  
이 말은 유태인들이 학문 즉 배움에 대한 생각을 신 을 찬양하는 것과 같이 생각한 데서 연유한 말이다. 그렇다면 '가장 위대한 것은 신'이
라고 믿고 있는 그들이 어째서 기도 시간을 짧게 하라고 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이 기도하는 것은 인간이 신에게는 하는 일방적인 말이고, 배움이란 것은 신이 인간에게 베푸는 진리의 이야기이
기 때문이다.

때문에 신에게 하는 기도는 맑은 정신으로 짧게 하는 것이 옳으며, 배움은 오랜 시간에 걸쳐 신의 진리를 배운다는 것이다. 이처럼 유태인
들은 진리를 연구하는 것 자체를 신을 찬양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지식과 지혜를 존중하는 것은 이것이 곧 신을 찬양하는 일로 여겼다.

간혹 신을 찬양하지 않는 유태인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인생에 있어 학문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유태인들의 이와 같은 전통
에 의한 것이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잘못된 교육 때문이다.  
유태 민족들은 시도했던 일이 실패로 끝나면 먼저 자 기들의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배움 바체가 곧 신을 찬양하는 일이었
고, 그래서 배움에 의해 신을 존경하고 신에게 가까와진다고 여겼다.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의해 멸망되었을 때 유태인들은 로마의 힘이 아니라 잘못된 교육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탈무드>에 있는 얘기를 들어보자. 널리 이름난 랍비가 어느 마을을 찾아왔다. 마을의 책임자는 랍비를 안내하여 마을의 이곳저곳을 보여
주었다. 가는 곳마다 작은 진지에 병사들이 차 있었고, 어느 곳에는 울타리로 방어망을 치고 있었다.

숙사로 들어온 랍비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마을이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지 아직 알 수가 없어요. 마을을 지키는 것은 병사나 울타리가 아니고 학교입니다. 왜 나를 학교로 먼
저 안내하지 않았습니까?]
학교란 방비의 목적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만약 학교가 없어 유태민족에게 배움과 전통 사상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강한 군대를
만든다 해도 그 군대가 지킬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지킬 것을 만드는 것이 가장 훌륭한 방비이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빼앗을 수 없는 것은 지식이다.  
유태 민족은 오랜 세월 동안 집과 땅을 잃고, 이 나 라 저 나라로 옮겨 다녀야 하는 수모와 고통을 받아왔다. 그래서 유태인의 아이들은 지
금까지도 부모로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이고 , 남들이 너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돈'이라고
대답하면, '아니란다. 그것은 지식이다.'라고 배워오고 있다.
필자 또한 어릴 때 부모로부터 그렇게 배웠다. 유태민족은 나라를 잃고 이리저리 정처없이 떠돌아 다닐 때에도 '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지식'이라는 생각을 가슴에 새기고 다녔다.

<탈무드>에 있는 이야기이다. 어떤 학자가 같은 배를 타고 가는 상인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무슨 물건을 팔러 다니시오?]
학자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였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을 팝니다]
학자의 말에 궁금해진 상인은 학자가 잠이 들자 그의 짐보따리를 풀어보았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항해중에 풍랑을 만나 배를 난파
되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어느 해안에 닿았다.

학자는 그 마을 예배당에서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학자의 이야기를 들은 마을 사람들은 그 사람이 매우 훌륭한 학자라고 칭찬하
게 되었고 그는 많은 재물을 모으게 되었다. 상인들은 이를 보고 감탄하였다.

[과연 당신 말이 옳았소.우리는 팔 물건을 모두 잃어버렸지만, 당신은 살아 있는 동안은 잃어버리지 않는 물건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오.]

 신은 인간이 만든 마을과 탑을 보기 위해 왔다.  
성서의 <창세기>편에 나오는 말로, 여기서의 탑은 바벨탑을 이르는 것이다.
옛날의 여러 랍비들은 왜 신이 땅으로 내려와 바벨탑을 보려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 토론하였다. 성경에 의하면 그후 신은 바벨탑을 불태
워 파괴하였다. 이에 대해 랍비들은 이렇게 의견을 모았다.

'신은 우리 인간들에게 어떤 일을 시도하려면 반드시 여러 조건을 직접 확인된 뒤에 생각한 일을 하도록 가르쳐 주기 위해 이 땅에 내려왔
다.'

 자기 혀한테 '모른다'는 말을 열심히 가르쳐라.  
스스로 많이 아는 체하는 사람은, 헤엄을 모르면서 물에 뛰어드는 것 만큼 어리석은 사람이다.
인간이란 태어나면서부터 배움에 의해 정신적으로 성장하는데, 배운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모름지
기 인간이란 자신의 무식을 인정하지 않고는 발전할 수 없다. 모른다는 것을 스스로인정하는 것은 지성적인 일이다.

 옳은 것을 배워 아는 것보다는 옳은 일을 몸소 행하는 것이 더 낫다.  
'행동은 말보다도 더 웅변적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여러가지 논리나 학문이란 것은 이를 바탕으로 한 행동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리라.
'가장 훌륭한 지혜는 친절함과 겸손함이다'라든가 '영리함보다는 친절함이 앞선다'는 격언도 '행동'이 말에 우선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
다. 유태 사회의 옛 이야기를 통해 실제와 이론이 크게 다름을 알아보자.

옛날 어떤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물었다.
[1/2에 1/2를 더하면 얼마인가?]
먼저 손을 든 학생은 그 학급에서 성적이 제일 나은 아이였는데, '1/2이라고 대답하였다.

[1/2에 1/2을 더했는데, 어째서 1/2인가?반쪽에다 반쪽을 보태면 어떻게 되는지 잘 생각해 보아라.]
선생님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설명해 주자 학생은 잠시 생각하더니 역시 같은 말을 하였다.

[역시1/2입니다.]
선생님은 화가 나서 종이 한장을 학생에게 주며 직접 계산해 보라고 명령했다. 학생은 여전히 '1/2+1/2=1/2'이라고 계산하였다.

[왜 그렇게 되는지 다시 설명해 봐라]
선생님의 꾸중에 학생이 설명하였다.

[분수에서 분자의 1과 1을 더하면 2가 되고, 분모의 2와 2를 더하면 4가 되므로 이를 약분하면 1/2이 됩니다.]
선생님은 그야 물론 1 됩니다.]
[그렇다면 반으로 나눈 사과 1개가 되었으니, 계산에서도 '1/2+1/2=1'란게 증명되지 않았느냐?]
학생은 그러나 여전히 상반된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반으로 나눈 사과처럼 실제로는 1이 되지만, 계산으로 하는 이론적으로는 1/2밖에 안 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이론과 실제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실제의 것이 소중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자기 결점을 쉽게 고치지 못하더라도 자기 향상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유태 민족이 즐겨 읽는 고전 가운데 하나인 <미드라쉬>에 보면, "선한 곳에는 반드시 조그마한 악이 있다'는 말이 있다. 인간이란 신이 아
니기 때문에 완벽한 현자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를 발전시켜 가는 일을 포기할 수도 없다. 인간이란 누구이고 단점과 부족함
이 있으므로, 이 단점을 고치기 부단한 위한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노력이 어렵긴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된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단점을 지니고 있는 반면 남과 다른 장점도 지니고 있다. 이를테면, 완벽한 현자가 없듯이 철저하게 무지몽매한 사
람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단점보다도 장점을 더 많이 개발함으로써, 단점은 별것 아닌 사소한 것으로 제쳐버리도록 해야 한다. 장점을 보다 많
이 늘어가는 것이 자기 단점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다.

 생물 가운데 웃는 것은 인간뿐이다. 그 중에서도 영리한 사람이 웃는다.  
유태 민족만큼 생활에서 유머를 즐기는 민족도 없다. 고통 받을 때 웃음을 선사하는 것은 물론, 그러한 웃음을 통해서도 많은 교훈을 얻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일에 성실한 것은 물론 좋다.그러나 이러한 것이 지나치면 너무 굳어지게 되고, 한쪽으로 치우쳐 생각도 좁아지고 만다. 하지만 유머
와 기지, 해학은 사물에 대한 고정된 관념에서 약간 벗어나 신선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자연과학, 사회과학할 것 없이 진보라는 것은 언제나 연상에 의해 만들어진다. 어떤 한 가지의 사실에서 남이 생각해 내지 못할 것들을 연
상해 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아인시타인의 말이다. 유머와 기지에는 남달리 빠른 두뇌의 반사작용 즉 연상 능력과 폭넓은 지식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쉬임없는 자기 발전의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우리 생활에서 유머는 천시되거나 사라져서는안된다.

 세 종류의 어리석은 사람이 있다. 첫째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고 있는 사람, 둘째는 자기가 슬기롭다고 자신하는 사람,  
셋째는 자기도 남도 모두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
유태 민족은 지식이 많고 적고보다는 현명한가 아니면 어리석은가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 이들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조상들
의 가르침을 잘 익혀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슬기로움이 있는 사람도 영리하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리하면서도 어리석은 사람이 있다. 슬기롭고 현명하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의 힘으로 어떤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일들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탈무드>를 독파하고 나면, 앞의 세 종류의 사람 가운데,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고 있는 사람은 끝내는 슬기로운 사람들 속에 끼인다
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적당히 어리석은 자가 완전히 어리석은 자보다 더 어리석다.  
<탈무드>에는 이런 비유가 있다.
'바다 속에 완전히 가라앉아 버린 배는 항해하는 다른 배에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그러나 절반쯤 물에 잠긴 배는 다른 배에 장애가 된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사람치고 완전히 어리석은 자는 있을 수 없다. 자기 스스로 그렇다고 인정할 사람도 없을 것이
고, 자기 존재를 부정할 만큼 자존심까지 버릴 사람이 있겠는가? 누구나 자신은 소중하니까.

여기에서의 격언은 정확하지 않은 어설픈 지식을 함부로 쓰면, 자신은 물론 남들까지도 다치게 된다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인간들은 많
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정확하지도 않은 지식을 함부로 남발한다. 이러한 본능적 유혹은 생각보다도 강력하다. 이럴 때 우리는 스
스로가 충분하지 못한 지식의 소유자임을 잘 알고 있음은 물론이다.

'가득 들어있는 항아리가 반쯤 들었는 항아리보다 움직이기가 쉽다'는 격언도 음매해 볼 만한 것이다.

 산양이 수염이 있다하여 랍비가 될 수는 없다.  
필자도 수염을 기르고 있듯이 랍비들은 대부분 수염 을 기른다. 왜냐하면 성서에서 보면 얼굴을 비롯한 전신에 상처를 입는 것을 피하고 있
기 때문이다. 그렇개 생각한 랍비들은 자연히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을 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기 면도기가 생겨 얼굴에 칼
을 대지 않고 면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전기 면도기 때문에 얼굴에 상처가 나는 것을 본 사람이 있는가?
히브리어에서의 랍비는 '우리 선생님'이라 하는데, 이 말은 곧 유태인 지역의 지도자이며 지식을 갖춘 현자이다. 그러므로 '산양이 수염이
있다 하여 랍비가 될 수는 없다.'는 속담도 겉모양을 아무리 똑같게 꾸며도 속이 다르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경구인 것이
다.

'만약 수염의 모양으로만 평한다면 모르긴 해도 산양이 이 세상 제일의 현자일 것이다.'또한 반대로 필자 자신이 수염을 길렀다 하여 내가
산양이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당나귀가 예루살렘에 가도 역시 당나귀인 것이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이며 또한 이름난 성도이 다. 지금의 뉴욕이나 파리처럼 옛날의 예루살렘은 모든 분야에 걸쳐 중심지였고 아울
러 유행의 발상지이기도 했다.
당나귀라는 동물은 중동 지역에서는 가장 오랫동안 운송을 위한 가축인 동시에 보통 우매하고 어리석은 자를 지칭하는 대명사였다. 그래서
'당나귀가 예루살렘가도 나귀는 역시 나귀'라는 말은 어리석은 자는 뉴욕과 도쿄를 드나들어도 역시 어리석다는 뜻이다.

당나귀한테 대학모를 씌우고, 가슴에 훈장에 달고, 큰 귀에 황금 귀고기를 매어단다 해도 역시 당나귀일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도 속
에든 것은 없는 자가 겉치레만 힘쓰는 경우가 많다. 값진 보석들을 치렁치렁 매달고, 무슨무슨 직함을 문패처럼 새겨가지고 다니며 뽑내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 말을 바뀌어 말하면 좋은 금고는 항상 속이 비어 있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바로 당나귀와 인간이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은 예루살렘을
다녀오면 한 두가지도 배워 온다는 점이다.

 자녀를 가르치는 최선의 교육은 자기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유태 현자 중의 한 사람인 야라쉬닐은 말했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기 아이들이 많은 교양을 쌓으면서 신앙에 충실한 경건한 유태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자녀가 자라서
또 부모가 되면 역시 자기 아들이 경건한 유태인이 되기를 빈다. 하지만 부모 가운데는 자기 자신이 많은 교양을 쌓아 경건한 유태인이 되
려고 애쓰는 사람은 자기 아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부모들보다도 훨씬 적은 것이다.

아들에게 근면함을 가르치지 않는 부모는 아들에게 절도를 가르치는 거와 다를 게 없다.
<탈무드>에 있는 격언이다. 어느날 학생이 랍비한테 물었다. [어째서 아들에게 부지런함을 가르치지 않는 부모는 아들을 절도로 만드는
것과 같다고 합니까?]
랍비는 곧 대답하였다.
[자기 자식에게 부지런히 일하는 것을 가르치는 부모는 자식에게 포도밭을 물려주는 것과 같다. 울타리가 쳐진 포도밭에는 여우같은 동물
이 들어가지 못하듯이 잘못된 생각이 자식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신은 항상 어느 곳에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신은 어머니를 창조하셨다.  
<탈무드>에 보면 랍비 요셉이 어머니가 가깝게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인사하기 위해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거룩하신 성령이 오고 있다. 나는 일어나 경의를 표해야만 한다.]
자식에게 있어서의 부모 특히 어머니는 존재 가치의 전부이다. 물론 유태인 가정에서도 남자인 아버지가 호주로서 모든 책임과 위엄을 갖
추고 있다. 하지만 자식에 있어 어머니의 역할은 매우 막중하고 너무나도 큰 것이다.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애정은 바닥이 없을 만큼 무한정이다. '어머니, 어머니', 이 말은 얼마나 위대하고 훌륭한 것인가?그래서인지 어머니
에 대한 격언은 많다.

[어머니를 잃은 아이는 문고리가 없는 문과 같다.' 이 격언을 내가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어머니가 없는 아이들에겐 너무도 가혹하기 때문
이다.

어느 어머니이고 자기 자식이 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잘나 보인다. 그래서인지 이런 속담도 있다.

'어머니의 눈은 유리눈이다. 그래서 자기 자식의 잘못이나 결점은 보이지 않는다.'라든지 '어머니가 두르고 있는 앞치마는 자기 아들의 잘
못을 감싸줄 만큼 크다', '어머니는 아들의 잘못이나 결점을 숨겨주는 베일이다' 이런 종류의 격언은 누구나 어릴 때 많이 들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른이 되지 않는다. 다만 아이로서 나이를 한살씩 먹을 뿐이다.  
30, 40세의 아이, 아니 60세의 아이, 사람은 누구이고 아이일 뿐이므로, 아이들과 같이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기분대로 행동하는 성질이 있
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성장 과정에서 귀하게 컸는가, 가난하였는가, 부모의 교육을 받았는가 하는 것이 늘 따라다니게 된다. 가령 어떤 사람의
성격을 알아보고 싶다면, 그의 어렸을 때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 된다.

인간은 어릴 때 이미 인격이 완성된다는 말과 같이 아이들한테 온갖 정성을 다쏟아 바르게 교육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아이들이다. 수염이 있는 아이, 주름이 잡힌 아이, 허리가 굽은 지팡이 짚은 아이... 오직 아이들이 어른으로서, 노인
으로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어린 아이일 때는 두통을 안겨 주지만, 크면 심통을 안겨준다.  
어렸을 때의 아이들을 잘 운다. 하지만 자기의 자식 이기 때문에 즐겁고 기쁜 두통거리일 뿐이다.
어린 아이가 한살 한살 먹어가면서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어지럽히고, 형제끼리 다투고, 호기심에 차 무엇이고 묻고 하여 부모에게 두통을
안겨 준다. 그러나 즐겁고 기쁘다. 누구고 자식을 길러본 부모는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날 두통에서 해방되는데, 그때는 아이가 튼
튼한 청년으로 성장해 준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성장한 뒤에는 부모에게 심통(마음의 고통)을 안겨 준다.이것이 인생이 아니겠는가?

'인생, 인생...', '어린아이들은 부모를 잠들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이들이 다 크면 부모는 살아갈 수가 없다'는 속담도 있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의 노년은 겨울이지만, 현자의 노년은 황금기이다.  
인간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나이를 먹는다. 그렇다면 젊은 시절에 무엇에 힘써야 할 것인가? 옛날 랍비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기 스스로 나이를 먹어가면서 노년기에 대비한 준비를 해간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노년기를 맞이하기 위한 자기 창조를 시작하고, 그렇
게 함으로써 젊어서부터 노인을 공경하게 된다.

인간이란 모름지기 '무슨 일을 하느냐'하는 것보다는 '어던 모습의 인간이냐'하는 것이 더 소중하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물질 만능과 소
비 문화가 조장된 사회에서는 '어떤 모습이 인간'보다는 '무슨 일을 하는 인간'이 더 강조되고 있다. 그래서 자연히 활동적인 인간이 더 성
공한 인물로 칭송받는다.

각종 매스컴의 광고에서 보아도 젊음의 매력과 활기찬 의욕에 지나친 박수를 보내고 있을 만큼 젊음이 강조되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비록 나이를 먹오 장년이 되고, 이어 노년기에 접어들어서도 끊임없이 활동적인 모습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의 노년은 바로 실
패의 모습이며, 게절로 보면 겨울철인 것이다. 실패와 패배만이 기다리고 있는 사회는 우리 인간에게 있어 얼마나 가혹한 미래인가? 이 격
언이 틀림없는 인간 사회의 현실이라면 우리들은 얼마나 어리석고 가혹한 사회에 살고 있단 말인가?

 노인을 공경하지 않는 젊은이의 노후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주위사람들로부터 '나이보다 젊은데요'하는 말 을 듣기 시작하며, 벌써 논년기에 접어든 것이다. 그런 뒤 좀더 나이를 먹게 되면, 화장실에
서 나올 때 바지의 단추 잠그는 것을 자주 잊게되고, 더 늙게 되면 바지의 단추 여는 것을 잊게 된다.이것은 유태인들의 유머이다.
나이 먹은 사람이 존경받는 사회는 안정과 평화가 있다. 나이 먹은 노인의 잔소리는 아무리 많아도 조용하며, 게다가 젊은이게 선행을 하도
록 권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노인들이 특히 선행을 강조하는 것은, 자신들이 이미 나쁜 행위를 했거나 그런 일들을 보여줄 만한 힘이 없어서이다. 어쨌든 악행을
모르는 사람들이 존경받는 사회는 밝은 사회임이 틀림없는 것이다.

어느 사회이고 노인들은 두려움이 대상이 아니다. 젊은 시절에 노인을 공경한 자만이 자신이 나이 먹어 노년이 되었을 때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의 노년기가 비참해지지 않으려면 노인을 공경해야 한다. 노인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벌을 받게 되리라. 경로 사상의 아름다운
윤리는 이렇듯 동서와 고금에 통하는 근본적인 인륜이다.

 교육에 관한 격언  
* 체중은 그 무게를 잴 수 있으나, 지성의 무게는 잴 수가 없다. 지성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 어떤 현인이 '어떻게 현인이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대답하기를 '식용유에 보다도 등유에다 더 많은 돈을 썼기 때문'이라고 답하였다.

* 사람은 책을 통해 가장 많은 지헤를 얻게 된다.

* 사람에 따라서는 학문에만 너무 시간을 소비하는 탓으로 진실을 알 여유가 없다.

* 사람에 따라서는 학문에만 너무 시간을 소비하는 탓으로 진실을 알 여유가 없다.

* 선생으로부터 배우는 것보다도 친구에게서, 그리고 학생에게서 배우는 게 더 많다.

* 스스로 세워지지 않은 마을은 없어져야 한다.

* 비만함과 돈과 오만은 기억력을 해친다.

* 글을 읽을 줄 아는 귀머거리는 진짜 귀머거리가 아니다. 진짜 귀머거리는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자이다.

* 학자 중에는 당나귀와 같은 학자가 많다. 그들은 오직 책만 나귀 등에 싣고 다닌다.

* 학자 중에는 값비싼 비단을 싣고 있는 낙타에 비유되는 학자가 있다. 낙타와 비단은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말이다.

*나태한 자의 좋은 두뇌는 마치 눈면 사람이 등불을 가지고 있는 거와 같다. 쓸모없는 짐일 뿐이다.

* 글을 쓰는 것은 수표를 발행하는 거와 같다.

* 뱀에 물린 사람은 새끼줄에도 놀란다.

* 속에 넣는 물건보다도 더 비싼 상자를 만들지 말라.

* 물에 빠진 자는 칼끝이라도 잡으려 한다.

* 임금은 나라를 다스리지만, 현인은 임금을 다스린다.

* 현인은 돈의 위력을 알지만, 부자는 지혜의 위력을 모른다. 때문에 현인이 더 위대하다.

* 5명의 지혜로운 자가 500명의 무식한 자들보다 낫다.

* 지혜로운 자는 빵을 나눌 때 열 번씩이나 생각하고 나누지만, 우매한 자는 열 번을 나누어도 한 번도 생각하지 않는다.

* 열매가 탐스럽게 열린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 빈 독에 동전 한닢을 넣으면 소리가 요란하지만, 동전이 가득찬 독에는 소리가 없다.

* 금화는 흙속에서도 빛이 난다.

* 오래된 고목은 바람이 불면 소리를 낸다.

* 우유 나무에서 사과를 따려 하지 말라.

* 강아지가 의자에 오르는 것을 놓아두면 나중엔 식탁에까지 오른다.

* 인간에 따라서는 구두와 같은 인간이 있다.값이 헐한 것일수록 삐걱 거린다.

* 동물은 생겨나면서부터 완성물이다. 그러나 갓 태어난 사람은 원료를 이용해 어떤 모습의 인간을 만들어가느냐 하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
다.

* 자녀가 성장해 가면서 부모를 잊는 것은 부모의 교육이 나빴기 때문이다.

* 자녀들은 부모의 언행을 따라 한다.

* 부모의 말을 어기는 자는, 그가 자라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이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

* 한 사람의 아버지는 열 자녀라도 양육할 수 있으나, 열 자녀는 한 아버지를 봉양할 수 없다.

* 나태한 젊은이는 나중에 불평만 하는 부모가 될 뿐이다.

* 지혜로운 아들은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우매한 아들은 어머니를 슬프게 한다.

* 자식이란 학자 앞에서는 어리석지만, 그의 아버지 앞에서는 현명하다.

* 사람이 바꾸고 싶어도 안 되는 것은 자기의 부모이다.

* 많은 지식을 쌓은 사람도 어린 아이에게서 배울 게 있다.

* 아이들이 누구나 다 좋아하는 것은 그들의 단점을 지적하지 않기 때문이다.

* 아이들은 자기 자신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성장하지 않은 어른도 마찬가지이다.

* 서로 적이 된 형제는 다른 어떤 것 보다도 나쁘다.

* 한명의 손자가 세 명의 아들보다 귀엽다.

* 나이 먹는게 싫다면 차라리 목을 매어라.

* 유연성이 있는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역시 젊다.

* 노인은 자기 자신이 다시는 젊어질 수 없음을 알지만, 젊은이는 자기가 늙어간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 할아버지가 집안에 있는 것은 짐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보물이다.

* 마소에게는 밭갈고 짐나르는 것을 어렸을 때 가르쳐야 한다. 짐승이 나이가 들면 가르칠 수 없다. 이것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 어린나무는 바람을 이겨내기만 오래 된 나무는 곧 꺽인다.

* 일곱살은 일곱살답게, 일흔살은 일흔살답게 행동하라.

* 인간은 아이가 태어나면 기뻐하고, 사람이 죽으면 슬퍼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바꾸어 해야 한다. 태어난 아이의 앞에는 어떤 일들이 일
어날지 모르지만, 사람이 죽으면 이미 그가 이루어 놓은 것들을 알게 되니까.

 <12>유태인의 격언-남녀간의 교제
사랑이 아무리 멋저도 테니스에는 무용지물이다.  
연애, 즉 사랑이란 멋진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 - 특히 청춘을 구가하는 청춘 남녀 여러분! 연애라는 것은 골프, 낚시, 야구경기, 시험, 저축, 스케이트 같은 것에 직접 도움
을 주지 못함은 물론 우리 일상 생활에 보탬이 되는 것이 아니다.
연애가 인생의 모든 것은 아니다. 사랑이 생활의 모든 것을 채워 준다고? 그럴 수는 없다. 만약 연애 즉 사랑이란 것이 인생의 모두라면, 비
가 올때 천정이 없으면 지붕이 되어주고, 추운 날에는 털외투가 되어 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서로 사랑하고 있는 에스키모들은 털가죽이
나 얼음집이 없이도 에덴의 아담과 이브처럼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는 빵, 생선, 채소, 구두, 전화, 칫솔, 월급봉투와 같은 많은 종류의 것들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 격언은 연애 즉 사랑이
무엇이든 해결해 주는 만능의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을 경계하고 있다.

유태인들은 건전한 상식을 바탕으로 하여 사고하는 민족이므로, 연애 지상주의자는 없으며, 더구나 정사같은 것을 하는 유태인은 없다.

 신은 새 부부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말을 해 준다.  
'두 사람의 남녀가 서로 결합하면, 그때부터 지금 까지 없었던 새로운 세게가 하나 더 만들어진다'는 격언이 있다. 이 새 세계에는 처음 만
난 이 두 남녀만의 새로운 말이 생겨난다는 뜻이다.
결혼을 하고 나면 남자는 잃어버리는 것이 있다. 물론 여자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탈무드>에는 특히 남자쪽이 높이 존중되어 왔으므로
여자가 잃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로마 황제가 어느 랍비를 불러 물었다.
[남자에게 있어 여자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유태의 신은 아담을 잠재우고 그의 갈빗대를 빼 여자를 만들었다는데, 그렇다면 유태의
신은 도둑이 아니겠는가?]
성서에 보면, 분명 이브는 아담의 갈빗대로 만들어졌다고 되어 있다. 랍비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 현장에 누가 있었다면 경찰에 고발했겠지요. 그런데 어젯밤 우리 집에 도둑이 들어 은수저 대신에 금으로 된 술잔을 놓고 갔습니다.]
[오. 그래. 그거 아주 횡재하였군.]
황제는 창세기편에서 보듯 처음 태양이 솟아오르는 듯 눈빛을 반짝였다.

[예, 그렇습니다. 신께서 이 세상에 여자를 내려주신 것도 똑같은 경우일것입니다.]
남자가 여자와 함께 살게 되면 물론 잃는 것이 있다 수입과 자기만의 자유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 잃는 것 대신에 금으로 만든 황금잔과 같
은 평생의 동반자를 얻은 것이다.

 금과 은은 불에 달궈진 다음에야 빛을 낸다.  
이 말은 '뜨거운 정열 때문에 결혼한다 하여도 정 열이란 결혼만큼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는 경우를 좀더 보충 설명해 주는데 흔히 인용되
고 있다.
확실히 금과 은은 일단 정열이라고 하는 뜨거운 불에 의해 달구어지지 않고는 빛이 찬란한 금과 은그릇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
서 항상 뜨겁게 달궈지고 녹아 있는 상태에서는 우리 실제 생활에 소용이 되지 않는다.

남녀가 결합하고 난 뒤에는 뜨거운 정열보다는 이미 만들어져 냉각된 금.은 그릇처럼 냉정한 마음자세에서 생활 전선에 임하는 편이 보다
즐겁고 안정된 결혼 생활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뜨거운 정열로 결합하지만, 정열이란 결혼만큼 오래 가지 않는다.  
유태인들의 결혼관을 보면, 그들은 결코 과격한 연 애는 하지 않는다. 성서의 창세기에 보면, '낳고, 번성하고, 이 땅에 충만하라'하고 신이
인간에게 명령하였는데. 유태교에서는 이에 따라 결혼은 성스러운 인간의 의무로 여기게 되었다. '결혼'을 히브리어에서 찾아보면 '기드
신'이라 하는데, 이 뜻은 '성스러운 것'이라는 말이다.
또한 <탈무드>에는 '신의 은혜는 아내를 가진 자에게만 내려진다'고 되어 있다. 이 말을 다시 풀어보면 독신자는 인간의 반쪽에 지나지 않
으므로 이 말을 다시 풀어보면 독신자는 인간의 반쪽에 지나지 않으므로 신의 혜택을 못받는다는 말이 된다.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고 한다면, 유태교는 '율법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비행기와 기차가 모두 정해진 규칙에 의해 운행되듯이, 인간
도 모두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이상 비행기나 기차의 경우와 같다.

생각해 볼 때, 사랑과 율법 중 어느 것이 우리 인간 생활에서의 실패와 좌절의 아픔을 피하게 해줄 것인가?

유태인들은 조상들이 남겨준 교훈을 받아 일정한 규율속에서 생활하는 것이 살아가기 쉽고 평안하다고 대답하고 있다. 유태인들의 지헤와
기본적인 생활 자세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인생 어느 분야이고 이러한 지혜를 앞세워 살려고 한다.

결혼을 기념한 반지는 처음 유태인들이 생각해 내었다. 원 즉 둥근 것은 시작도 끝이 없는 것이므로 결혼도 반지처럼 영원을 상징하는 것이
다. 유태인들의 결혼식에서는 신부가 신랑 주위를 일곱번 도는데, 이것도 역시 반지의 의미처럼 영원한 인연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유태인 사회의 속담에는 '결혼은 연애의 자명종 시계'라는 것이 있다. 결혼이란 기독교에서 표방하는 바와 같이 두 남녀가 하나로 합
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동생활을 꾸려가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결혼 당사자인 두 사람 모두 이러한 현실을 바로 보는 것이 옳은 것이다.

 결혼식의 연주 음악은 군악대의 음악처럼 활기차다.  
결혼식에 초대받아 갔을 때 주의깊게 귀를 기울여 보 라. 웨딩마치가 울리면 자신의 결혼식 때를 떠올려 보자.
결혼식은 마치 두 사람의 전사가 전쟁터를 향해 나가는 것과 같다. 이 시간 이후부터 두 남녀는 서로 싸우고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게 되면 두 사람은 부상병의 심정으로 서로를 위로할 것이다.

그 때문인지 결혼식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활기차고 웅장하여 군악대의 음악과 같으며, 마치 결혼식은 두 사람이 전쟁터로 나근 것처럼 보
인다.

 정열은 불이다. 그래서 없어서는 안되지만, 또 그만큼 위험하다.  
불이란 원시 시대부터 인간을 추위로부터 막아주고 음 식을 익혀주고, 생활에 유용한 도구를 만드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전기가 발명
되기 전에는 불이 없었으므로 낮에만 책을 읽었다.
그러나 불이란 것은 재산을 태워버리고, 전쟁과 같이 파괴에도 이용된다. 사람, 분노, 일-창조의 생활에서 정열이란 불과 같이 빼 놓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정열은 자기 자신은 물론 가정과 사회를 파괴해 버리기도 한다. 정열은 '또 하나의 다른 불'인 것이다. 그러나 이 불이 없다면 우리
는 살아갈 수 없다. 이처럼 정열은 인생에서 분명 중요한 역할을 맞고 있다. 하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화상을 입고 몸을 망칠 수도 있는 것이
다. 옛날에는 동서를 막론하고 밤이 되면 골목길에 '불조심, 불조심'외치며 다니는 야경꾼이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정열이란 불을 자신의 가슴 속에 태우고 있다. 그러므로 야경꾼처럼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불조심'을 외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사람은 쨈과 같이 달지만, 빵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유태인 사회에는 결혼 전에 먼저 자기집을 마련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물론 처음에는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특히 유태인들은 실제 생활을 중요하게 여긴다. 창세기에서 볼 수 있듯이, 신이 매일매일 하늘과 땅, 하늘과 바다와 같은 서로 대립되는 것
들을 창조한 것은 이들 모두가 다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기독교와 같이 정신적인 생활은 그다지 중하
게 여기지 않는다.

인간이 빵이 없이 쨈만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쨈이 없는 빵은 맛이 없다. 이런 말도 있다. '연애는 버터와 같아 빵에 바르면 한결 맛있
다.' 누구이고 간에 버터만 먹고는 살 수 없으리라.

 질투는 천개의 눈을 가지고 있지만, 그 가운데 한 개의 눈도 올바로 보이지 않는다.
<탈무드>는 율법서이면서도 성경의 해설집이다. 아니 해설집이라기 보다 해석집이라고 하는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
여러 랍비들이 모여 성서에 관해 토론한 것을 녹음한 것과 같은 것인데, 5세기에는 녹음 테이프가 없었으므로 물론 종이에 기록한 내용들이
다.

이때 랍비들은 질투에 대해 토론을 많이 했는데, 창세기가 자주 떠올려 졌다. '질투 없는 사랑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니다'라고 <탈무
드>에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는 오직 한 남자와 한 여자뿐이었는데, 그들은 어떠했는가?

'이브도 아담에게 질투심을 가졌을까?'하는 문제에 대해 랍비들은 오래동안 토론을 벌인 끝에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이브도 아담에 대해 질투심을 가지고 있었다.질투가 없는 사랑은 있을 수 없으며, 질투를 모르는 여자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이브
는 아담이 나갔다 돌아오면 항상 그의 갈빗대를 세어 보았을 것이다.]

 보드라운 흙으로 빚은 남자를 기쁘게 하는 것이 딱딱한 뼈로 빚은 여자를 기쁘게 하는 것보다 쉽다.
이 말 역시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다. 창세기에 보면,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은 흙으로 빚어 만들어졌고, 그 아담의 갈빗대로 빚어진 것
이 이브였다.

여자를 기쁘게 해 주는 것이 어렵다는 말은, 여자를 기쁘게 하는 것이 남자보다도 더 어렵다는 뜻이다. 이것은 여자가 남자보다 더 솔직하
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잠자리에서의 남녀가 절정에 이르는데 필요한 시간의 차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유태인들은 안식일이 가장 좋은 섹스의 날로 생각하고 있다. 섹스의 적은 긴장감이기 때문이다.

 결혼이란 굴레는 무척 무겁다. 부부뿐만 아니라 자식까지도 함께 운반해야 하니까.
많은 사람을 상대로 한 교제는 쉽다.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은 피하면 되고, 보기싫은 사람이 있다 해도 몇 백, 몇 십명에 불과할 테니까 큰
문제가 없다.
미국 '피넛'이란 만화는 어린이들만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어른들이 보는 만화이다. 이 만화에서 작가는 스누피의 주인공을 통해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나는 인류를 사랑하지만, 인간은 싫다.' 우리 사회의 인간 관계에서는 1대1의 교제가 제일 어렵다. 아무리 막역한 사이의 친분을 가지고 있
어도 함께 살게 되면 자연히 상대의 결점이 나타나게 된다.

결혼이란 남녀가 함께 꾸려가는 공동 생활이므로, 상대의 장단점이 1분지 1.즉 있는 그대로 나타난다. 물론 자기의 추한 면도 있는 그대로
나타나 보여진다.

우리에게 결혼만큼 아름답게 포장되어 전해지는 것도 없을 것이다. 만약 사실대로 전해지면 결혼을 기피하여 결혼하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
그랬을까?

설마 그럴 리야 있겠는가? 두 사람의 남남이 만나 함께 공동 생활을 꾸려가는 것은 인생에서의 실로 중대사이다. 자식은 부부를 결합시켜
준다. 자식을 양육하는 것이 부모로서의 성스러운 의무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부모는 또한 자식에게 함께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므로 자식이 태어나므로써 부부라는 1대 1의 관게가 복수의 관게가 된다. 자식들이 '결혼이란 황금 쇠사슬'을 함께 운반해 주고 있는
것이다.

 좋은 말에 채찍이 있고, 현자에게는 충고가 있다. 곱고 명석한 여자도 남자가 없으면 제 역할을 다할 수 없다.
왕에게는 왕관, 개미한테는 사탕, 여치에게는 오이처럼 세상에는 서로 짝을 이루는 것이 있다. 이 격언은 어울리는 짝에 대한 설명이다. 그
러나 속담이나 격언에 대한 설명이란 것이 그다지 좋은 짝맞춤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속담이나 격언은 일종의 암시이다.그러므로 너무 장황한 풀이는 '지금부터 한가지만 힌트로 주겠다'고 하고서는 한 시간씩이나 연설하는
것과 다를게 없다.

유태인 사회에서는 남녀가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반드시 결혼해야만 비로소 한 몫을 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특히 여성을 놓고 그렇게 생각
하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이고 비슷한 것 같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다음 속담으로 이 질문의 답을 대신하기로 하자.

'여자가 남자보다 젊었을 때 결혼해야 하는 것은 여자가 잘못하면 두드러지게 눈에 띄기 때문이다.'

 자식이 결혼할 때는 신부에게 혼인 증서를 주고, 어머니에게는 이연장 을 주어야만 한다.  
유태인의 지혜가 오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때문인지 , 유태인을 가리켜 공리적인 민족이라고 한다.
유태인은 결혼하면 가족이 한 집에서 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부모들은 신혼부부가 새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한 지붕 밑에서
사는 것은 좋지 않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잘 화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한편이 나쁘고 옳고가 아니라, 그저 잘 화합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이다.

이 세상사에는 '왜?'하고 반문해서 안 되는 일도 많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따위의 관습과 같은 것이다.

'한 집안에서 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사는 것은 한 자루 속에 두 마리의 고양이를 넣은 것과 같다'는 속담도 있다. 물론 이것은 남자의 경
우에서 본 시각이지만, 웃음을 금할 수가 없다. '아담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운아였다. 시어머니가 없었기 때문이다'라는 속담도 있는 것이
다.

 결혼할 때는 이혼까지도 예상해야 한다.  
이 말은 두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는 앞에서도 이미 말했듯이 '자식이 결혼하면 먼저 어머니에게 이연장을 내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였다. 이 말의 뜻은, 결혼을 할 때는
자기 어머니와의 인연까지도 끊어가면서 이 여자를 아내로 삼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는 이 여자와 살아가다 보면 앞으로 이혼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결혼이란 항상 이혼의 원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계에
의하면 유태인들의 이혼율은 매우 낮다. 이것은 결혼에 대한 그들의 타당하고 현실적인 경계가 많아서이다. 필자는 랍비로서 오랜동안 부
부 사이의 여러가지 갈등을 들어왔는데, 그중 이혼의 원인은 크게 두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시어머니 때문에 이혼까지 하는 경우였다. 그 다음은 두 사람이 아직 성숙하지 못하다고나 할까, 너무 어설픈 상태에서 결혼한 경우
였다. 어설프다고 하는 것은 서로 상대에게 기대할 뿐 자기가 할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결혼한 당사자들은 앞서
의 두 가지 사실을 잘 새겨두어야 할 것이다.

 초혼은 하늘에 의해서, 재혼은 인간에 의해 맺어진다.  
유태교에서는 이혼을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 물론 이 혼이란 바람직한 일이 못 된다. 그래도 이혼해야만 할 부부가 있다면 랍비를 찾아가
아무래도 원망할 수가 없다고 하여 랍비가 인정하면 이혼이 이루어진다.
결혼 - 정말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불행한 결혼이라고 단정되면 더 계속할 것이 못된다. 성공적인 결혼을 남자에게는 날개를 달아주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사람
이 진정 잘 어울리는 상대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직 고독감을 떨쳐내기 위한 동반자를 구하기위해 결혼하고 있다.

유태인 남녀는 20대의 중반이 되면 결혼해야 한다고 배운다. 이것은 성경에 '낳고, 충만하게 하라'는 명령에 따르는 것이다. 결혼은 하나의
의무이다. 여섯 가지의 요소로 성립된 결혼은 첫째가 '애정'이고 나머지 다섯가지가 '신뢰'라고 한다. 결혼한 처음 3주일간은 서로 관찰하는
시기이고, 다음 3개월은 서로를 사랑하는 때이며, 다음 3년간은 싸움으로 보내며, 그 다음 30년은 서로 용서하며 보내는 시기라고 한다.

결혼을 더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혼자 사는 독신자는 마치 공작같이 보이고, 약혼한 사람은 사자의 행동같고, 결혼하고 나면 우마가 된다
고 한다. 그러므로 일단 결혼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결혼을 위해서는 걷고, 이혼을 위해서는 달려라.  
'결혼은 인생의 공동 묘지'라고 하는 말은 유 태인의 속담이 아니지만, '결혼은 연애의 자명종 시계'라는 속담은 있다. 또 이런 말도 있다.
'결혼이란 상표가 붙어 있는 술을 먹어본 사람이 그 맛에 반해 그 술을 만드는 양조잠에 취직하는 것과 같다'고 .
누구나 결혼 상대자를 선택할 때는 몇 번이고 신중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무리 신중에 신중을 기해도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결코 결혼을 위해서 달려가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금을 통해 결혼을 향해 마구 달려가는 남녀가 많음에도 변함이 없다. 특히 현실에 충실한 유태인들은 기독교인들처럼 이혼을 금
하거나 나쁘게 여기지는 않는다. 물론 이혼이 불행임은 사실이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부부가 끝까지 노력해서도 원만할 수 없을 때는 이혼
하라고 한다.

불행한 결합이라는 결론이 내려지면 서둘러 그 불행을 떨쳐버리라는 것이다. 결혼을 향해서는 마구 달려가지만, 이혼을 향해서는 남의 일
처럼 느긋한 마음이 든다.

 섹스는 냇물과 같다.과하면 넘쳐 생명을 파괴하고 적당하면 생명을 왕성하게 한다.  
이 말도<탈무드> 에 있는 것인데, 유태인의 격언 중에는 특히 냇물에 비유된 것이 많다. 유태인들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을 앞세
우는데, 냇물은 알맞은 양으로 잘 흐르고 있어야 한다.
<탈무드>에서 섹스만 아니라 우리 인생 자체도 흐르는 냇물에 비유하였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이 잘 이루어진 것이 섹스나 인생
에서 모두 성공하는 비결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중용을 지키는 것은 극히 현실적인 자세이며 얼핏 보기엔 교활한 면도 있다고 보여 진
다.

 이상적인 남자는 남자의 강인함과 여자의 부드러움을 함께 갖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유태인들은 한쪽의 극단으로 치우 치는 것을 싫어한다. 신이 세상을 차조할 때, 하늘과 땅이라든지 빛과 어둠같이 서로
대립되는 것을 만든 것은 인간 또한 서로 맞서 대립하게 되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여긴다.
인간이란 모든 것들이 서로 맞서 대립된 사이에서 살면서, 또한 두개의 대립된 것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
감각이 요구되는 것이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이런 말을 수없이 되풀이 하고 있다.

이를테면, 남자라 해도 그 속에는 남자의 강인함과 여자 특유의 부드러움이 함께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때문이다.

 남자는 두 볼 사이와 두 다리 사이에서 명성이 결정된다.  
두 볼 사이에는 입이 있고, 두 다리 사이에는 말할 것도 없이 짐작이 갈 것이다. 말이 많으면 몸을 망치므로 조심하여야 한다. 두 다리 사이
에 있는 것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으리라.
성서에 보면, 인류 최초의 남자와 여자가 처음으로 맺었을 때 '아담이 이브를 알았다'고 되어 있다. 히브리어에서는 '섹스'와 '안다'는 말이
같은 뜻으로 쓰이며, '야다'라고 한다. 즉 섹스를 하는 것과 상대를 안다는 것은 같은 의미의 말이다. 이야기하는 것이나 아는 것은 모두 지
성을 필요로 한다.

 여자와 싸우는 것은 우산을 받쳐들고 샤워하는 것과 같다.  
심리학자인 프로이트도 유태인인데, 그는 이렇게 말 하고 있다.
[나는 30년 동안이나 여자의 마음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러나 아직 아무런 결과도 얻어내지 못했다. 내게 있어 최대의 의문은 '대체 여자란
사람은 무엇을 찾고 있을까.']
다시 몇 만년 전으로 돌아가보다. 창세기에는 신은 아담이 잠든 사이에 그의 갈빗대를 하나 빼내 이브를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옛날 랍비
들은 이에 대해 토론하였다.

그들은 논쟁에서 아담이 잠든 사이에 갈빗대를 빼낸 것은 도둑 행위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왜 신이 도둑질을 했을까? 성서에는 신의 도둑질
은 이 한번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다른 랍비가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었다.

'그것을 통하여 신의 도둑 행위의 결과도 대단할 것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여성들에게는 크게 실례가 되는 말
이지만.

 남녀 교제에 관한 격언  
* 첫사랑의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만큼 행운아는 없 다.

* 인생에서 늦어도 괜찮은 것은 두 가지가 있다.그것은 결혼과 죽음이다.

* 미인은 바라보는 것이지 결혼 상대는 아니다.

* 그렇다고 모든 결혼이 다 아름답고 모든 죽음이 다 경건한 것은 아니다.

* 남자는 먼저 집을 짓고 들에 포도를 심어 포도원을 만들고 그런 다음에 여자를 맞이하라 .이 순서를 어겨서는 안된다.

* 아내는 남편을 상대로 신혼 때에는 창부처럼, 다음엔 비서처럼, 그 다음엔 간호원처럼 처신하여야 한다.

* 신은 아내의 눈물을 헤아리고 있다.

* 남자가 여자와 관계하여 기쁨과 슬픔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젊었다는 증거이다. 나이가 들면 어떤 여자와도 기쁘게 만난다. 그러나
여자를 만나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게 되면 이미 늙었다는 증거다.

* 열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자기 아내에 대해 아는 것보다 더 쉽다.

* 남자를 늙게하는 네가지 요소는 불안, 노여움 그리고 아이들과 악처다.

* 아무리 사랑이 소중해도 사랑하는 상대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 한창 연애에 빠져 있을 때에는 자신과 연애하고 있는지, 상대와 연애하고 있는지 생각하여라.

* 연애하고 있는 사람은 유리눈을 가지고 있다.

* 연애에 빠진 딸을 집에 붙잡아 두는 것은 백 마리의 벼룩을 울타리 안에 가두기보다도 어렵다.

* 여자는 여섯살이거나 예순살이거나 웨딩마치가 울리면 춤을 춘다.

* 딸을 학자에게 결혼시키기 위해서 모든 재산을 소비하여라.

* 여자를 재는 세가지 척도는 요리, 복장, 남편인데, 이 모두는 여자가 만드는 것이다.

 <13>유태인의 격언-입과 혀의 재앙
입을 다물 줄 모르는 사람은 대문이 닫히지 않는 집과 같다.  
[유태인 두 사람이 모이면 세 사 람 몫의 의견이 나온다]
는 속담이 있다. 유태인은 호기심이 대단히 강하다. 그래서 어떤 질문을 하면, 그것은 다시 질문이 되어 돌아오기기 십중 팔구이다. 아무튼
유태인처럼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이 경구는 <탈무드>에 실려 있으며 유태인들의 강한 호기심으로 인해 혼자서는 평생을 걸려도 읽을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양의 성전이 되어
버렸다. 이 성전은 기원전 500년 전부터 기원후 500년까지의 연 수만 명의 랍비들이 토의한 과정이나 결과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래서 <탈
무드>에는 특히 입에 관한 경구가 많이 있다. '말을 삼가하라', '비밀은 누설하지 말라', '상대의 말에 주의를 기울여라'등등이다.

유럽의 어느 유태인 지역에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나이가 살고 있었다.

그는 막힘없이 쉴새없이 떠들어 대어 상대방에게는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하루는 이 사나이가 이웃 마을의 랍비를 찾아갔다.

[우리 마을의 랍비가 당신 욕을 하던데요.]
[천만에! 그럴리가 없소!]
랍비는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내 이 귀로 똑똑히 들었단 말이요.]
남자도 같이 언성을 높이며 말하였다.

[그럴리가 없소, 당신과 이야기를 할 때 그 랍비에게는 말할 기회가 없었을 테니까요.]
이것은 유태인의 유머이다.

 새장으로부터 도망친 새는 붙잡을 수가 있으나 입에서 나간 말은 붙잡을 수가 없다.  
비밀을 누설하지 않고 지키는 것은 현인에게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떤 현인이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비밀을 어떻게 지키고 있습니까?]
그러자 현인은 대답하였다. [나의 마음을 내가 들은 비밀의 무덤으로 삼아 지키고 있소.]
비밀은 돈처럼 붙들어 두려고 하여도 잠시 방심하는 사이에 나가 버린다. 돈과 같이 사용하는 순간까지 잘 간직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비밀은 돈보다 위험하다.

비밀을 들었으면 항상 마음 속에 '주의를 요함'이라는 붉은 딱지를 붙이자.그리고 사람들을 만날때 그 비밀을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이 일거
든 마음속의 붉은 딱지를 상기하자.

남에 대한 욕이나 중상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만나서 얘기하는 것은 양쪽에 날이 선 칼로서, 자신을 다치게도 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
다.

 당나귀는 긴 귀로써 알아보고, 어리석은 사람은 긴 혀로써 알아본다.  
당나귀는 긴 귀를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듣 고 있지 않다고 한다. 당나귀에게는 좀 안된 이야기이지만 오랫동안 당나귀는 어리석
은 사람을 일컫는 대명사로 되어 왔다.
어리석은 사람에게 가장 큰 적은 자기 자신이다. 자신이 어리석다는 사실은 가만히 있을 때에는 알 수 없으나 당나귀 귀처럼 긴 혀로 이야
기하면서 곧 알려지게 된다.어리석은 사람의 혀는 날름거릴수록 길어 진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날름거리더라도 어진 사람이 이야기할
때와 달라서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다.

 당신의 혀에는 뼈가 없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라.  
이것은 수다장이에 대한 교훈이다.
혀에게 재주를 가르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수다를 떨지 말라, 비밀은 꼭 지켜라, 혀로 말하기 전에는 항상 생각하라 하는 것들을 아무
리 타일러도 혀는 곧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혀에는 뼈가 없다. 당신은 혀라고 하는 것이 연체동물임을 항상 의식해야 한다. 혀는 당신의 일생의 운명을 지배하는 중요한 몸의 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는 입을 잘못 놀려서, 해서는 안될 소리를 해서, 잠자코 있어야 할 때 입을 놀려서 인생에 큰 손해를 본 사람들이 많이 있다.

당신은 혀와 함께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혀는 자신의 의지를 가진듯 제멋대로 움직인다. 말이나 음성은 인간의 '제의 얼굴'이라고 한다. 입
을 오래 벌리고 있으면 자신이 거기서 도망쳐 버려 자기 자신을 잃을 수가 있다. 말 한마디 덧붙이는 것은 언제라고 가능한 일이지만 이미
해 버린 말을 주워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입보다 귀를 상석에 앉혀라  
인간이 입으로 망한 적은 있어도 귀로 망한 적은 없다 .
이 책을 모두 읽고 난 독자 여러분은 갑자기 무뚝뚝해질지도 모른다. 유태인의 속담에는 수다를 경계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그런 속담이
많다고 해서 귀찮게 여기지 말고 그만큼 그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여라.

입은 자신을 주장한다. 귀는 다른 사람의 주장을 듣는다. 물론 인간이 말이 없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다. 자신을 주장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에고(ego) - 자신을 남에게 강요하려는 것 - 는 강하다. 그래서 인간은 수다를 떨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튼 수다를 경
계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이 격언편의 처음에서 말했듯이, 동물에게 입이 하나 눈과 귀가 둘인 이유는 주위의 사물을 잘 보고, 소리를 잘 들어야만 생존할 수 있기 때
문이다. 잘 보고 잘 듣는 것이 동물을 지켜주는 것임을 생각할 때 우리의 일상 생활에도 교훈이 될 것이다.

 어리석은 수다는 초상집에 즐거운 음악이 울리는 것과 같다.  
유태인의 사회에는 언어가 난무하고 있다.그러나 유태 인은 말에만 힘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흔히 이스라엘을 삽과 괭이와 기
관총으로 만들어진 나라라고 한다. 또 이스라엘에서는 노인은 성서에 매달리고 젊은 사람은 소총에 매달리고 있다고 한다.
입으로 백만 마디의 말을 하여도, 말만으로는 눈앞의 담배 상자를 한치도 움직일 수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사막 위에 비닐을 깔고 그 위
에 흙을 얹어 과일과 야채를 재배하여 넓은 사막을 푸르른 옥토로 바꾸고 있다. 모든 면에서 말이 많고 수다스럽다고 한다. 그래서 특히 수
다에 대한 경구가 많은 것이다.

 인간이 말을 하는 것은 태어나면서 곧 배우나, 입을 댜무는 것은 어지간해서 배우기 힘들다.  
유태인은 의논이나 논쟁을 좋아하여 수다를 잘 떤다. 그래서 한 마디로 할 수 있는 것도 열 마디로 늘여서 하게된다. 그러므로 수다에 대한
많은 경구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유태인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인간이 가진 약점이다.
'지혜를 둘러싸는 담은 침묵이다'라는 말은 모두에게 교훈이 되는 세상을 살아가는 원칙이다.

자신의 지나간 생을 돌이켜 볼 때 , 입을 잘못 놀리거나 말을 덧붙여 후회한 일은 있어도, 침묵하고 있었던 것을 후회한 것은 별로 없을 것
이다.

듣는 것은 지혜를, 말하는 것은 후회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침묵도 일종의 언어이다. 그리고 그것을 배우면 어휘가 풍부해진다. 많은 어
휘를 알더라도 침묵하는 것을 모른다면 그것은 '예' 또는 '아니오', '좋다'든가 '싫다'든가 하는 기본적인 말은 모르는 것과 같다.

 겉치레 인사는 고양이처럼 핥는다. 그러나 모르는 사이에 남을 할퀸다.  
현인으로써 널리 알려진 랍비 슈말케는 어떤 마을로부 터 지도자가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그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들어가서 몇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마을 대표가 환영 잔치를 상의하기 위해 그를 찾아 갔다.

문 앞에 당도하여 보니 랍비는 방 안을 서성이며 큰 소리로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다. [랍비 슈멜케, 그대는 위대하다!]
[랍비여, 그대는 천재이며, 인생의 지도자다.] 하고 자신에게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10분쯤 밖에서 듣고 있던 마을 대표가 방 안으로 들어가서 그런 이상한 행동을 한 이유를 물어 보았다. 랍비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내 자신이 겉치레 인사나 칭찬해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소. 오늘밤 당신들은 내게 최상의 말로써 칭찬할 것이오. 그래서 지금 그것에
익숙해지려고 한 행동이오.당신들도 자기가 자신을 칭찬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 알 것이오. 그러나 오늘밤 내가 한 말과 같은 것을
또 들으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오.]
'사람을 앞에 두고서 지나치게 칭찬하면 안 된다. 사람을 칭찬하고자 할 때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라.' 이것은 남을 칭찬하는 사람들에
게 필요한 격언이다.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진실 중에도 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귀 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진실은 당당하게 말해야 한
다고 배웠다.
그런데 진실 중에서도 말해서는 안될 것이 있다.

그 하나는 사람을 다치게 하는 진실이다. 진실에도 거짓말과 같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얼굴이 못생긴 여자에게
'당신은 못생겼군요'하고 말해서는 안되며, 종기를 앓고 있는 사람 앞에서 부스럼 이야기를 해서는 안된다. 또 남편의 회사가 도산한 부인
에게 도산한 회사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 하나 이야기하면 안 되는 진실은 <비밀>이다. 자신의 비밀이나 남의 밀을 말해서는 안된다. 진실도 거짓말과 같이 위험한 것이다. 진실
도 면도칼처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거짓말쟁이는 뛰어난 기억력을 가져야 한다.  
유태교는 '율법의 종교'이다. 계율을 지키는 충실한 유태인이라면 율법은 신의 명령인 바 모두 옳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유태인은 옛부터
매우 현실적이고 타산적이었다.
그래서 모세가 시나이 산정에서 하나님에게 받은 '십계명'도 그것이 옳기 때문인 것보다 죽이지 말라, 훔치지 말라 등의 가르침을 지키는
것이 좀 더 살기 쉽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발견했기 때문에, 성스러운 가르침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사실 성서에는 의학이나 섹스의 구체
적인 방법들이 많이 있다. 성서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지침서이다.

<탈무드>에도 거짓말쟁이는 이익될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반대로 말하면 '진실을 말해서 얻는 것은 무엇을 말했는가? 기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라는 속담도 있다.

도덕이란 것도 어느 세상에서나 불타는 정의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생활의 편리를 찾기 위해서 생긴 것이다. 그리고 유태인은 매우 현실
적이고 타산적이었으므로 기독교인처럼 추상적이고 애매한 도덕보다는 율법에 대한 구체적인 인간의 행동을 정했던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편리했던 것이다. 거짓말을 하게 되면 당장은 이익이 생기는 일이 있겠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경제적 효과는 없다.

 가장 큰 고통은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속담은 두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남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우월감을 갖게 한다. 그리고 그 정보가 상대방과 관계있을 때 상대방이 그것을 모르고 자신만 알고 있
다면 더욱 우월감을 갖게 된다. 인간은 우월감에 젖고 싶은 강한 욕망을 가졌으므로 인간이 비밀을 지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또 한편, 인간은 고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있다. 남에게서 따돌림받는 것만큼 괴로운 것은 없다.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얘기해서는 안되는 것을 누설하거나 털어놔 버리는 것은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얘기함으로써 자기와 같이 경험을 하
게 하고 고독으로부터 해방되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은 사물을 직접 경험하기도 하고 듣고 읽고 하는 간접적인 것을 통해서도 경험을 하게
되므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도 상대방과 함께 경험을 나누는 것이 된다. 인간에게 있어 가까운 사람과 말할 수 없는 것만큼 큰 고통
도 없다. 인간은 시간 또는 자기가 가진 물건이나 정보를 서로 나누면서 친해지게 마련이다. 친하다는 것은 곧 서로 나누어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누에이다. 그들은 항상 입을 놀리고 있다.  
지도를 보게 되면, 이스라엘은 지중해 연안에 한 마 리의 누에가 길게 누워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고대의 이스라엘도 비슷한 모양이었다.
여기서 '항상 입을 놀리고 있다'는 것은 '항상 기도하고 있다'라는 뜻이다. 경건한 유태인일수록 열심히 기도한다. 유태인의 배움이라는 것
은 신에게 봉사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태인은 배움 즉 교육에 많은 열성을 보였다. 다른민족들이 무조건 신들을 경배하고만 있을
때 유태인들은 배우고 있었다. 수천년에 걸쳐서 배움이 유태인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해 왔으므로 유태인의 교육 수준은 언제나 높았다.

이같이 교육에 힘써 온 결과 지금은 비록 유태교로부터 떨어져 나간 유태인일지라도 배움이란 것이 몸에 익히는 습성이 되어 버렸다. 그래
서 '유태인은 머리가 좋다'고들 하게 되었다. 그것은 항상 배우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당신의 친구는 친구를 가졌고, 그 친구도 다른 친구가 있으며, 그 친구의 친구도 다른 친구가 있다. 그러므로 당신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것
을 조심하라.
자기가 들은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은 충동은 대단히 참기 어렵다. 성서의 잠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자는 가까운 친구를 잃는다.' 비밀은 꼭 지켜야 한다. 당신의 입은 금고이다. 금고는 쉽게 자주 열면 안된다. 입을 금
고에 비ㅇ라면, 열릴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금고일수록 정교하고 좋은 것이다.

이 경구는 남의 소문을 이야기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남을 헐뜯는 중상이나 비방은 친구로부터 친구에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마련
이다. 그리고 당신은 조심성 없는 행동으로 인하여 그 사람의 원한을 사게 된다.

 물고기는 언제나 입으로 낚인다. 인간도 역시 입 때문에 걸려든다.  
'이스라엘은 누에이다. 항상 입을 놀리고 있다 ' 라는 속담은 유태인이 항상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나쁘게
말하면 유태인은 수다를 잘 떤다는 것을 가리킨다. 틀리지 않는 말이다. 이와 같은 경구는 <탈무드>에 많다. <탈무드>는 또 이 속담 뒤에
'한번 입으로 낚인 물고기는 다시 바늘에 걸리지 않으나 어리석은 인간은 금방 또다시 입 때문에 걸려든다.'고 말한다.

입과 혀에 대한 격언  
* 어진 사람은 자기 눈으로 직접 본 것을 남들에 게 이야기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만 들은 것을 이야기한다.

* 귀로 무엇을 들을 것인가, 눈으로 무엇을 볼 것인가는 자기 의지대로 하기 어렵다. 그러나 입은 의지대로 할 수 있다.

* 혀는 마음이 붓이다.

* 남의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을 잘 들어야 한다.

* 자기가 하는 말을 자신이 건널 다리라고 생각하라.그리하면 튼튼한 다리가 아니라면 당신은 건너지 않을 것이다.

* 고약한 혀는 고약한 손보다 나쁘다.

* 현명한 말은 현명한 행동보다 못하다.

* 하나의 예를 드는 것은 단지 하나의 예를 든 것뿐이다.

* '이를테면' 하는 말을 듣거든, 그것은 예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하는 편이 낫다.

* 말은 약과 같은 것이다. 신중히 생각해 말해야 한다.

* 한대 맞은 아픔은 언젠가는 없어지지만, 모욕당한 말은 영원히 남는다.

* 바른 말(直言)은 귀에 쓰다.

* 급하게 대답하는 사람은 급하게 잘못을 저지른다.

* 말이 당신의 입 안에서 돌고 있을 때 그 말은 당신의 노예이지만, 일단 밖으로 튀어나왔을 때에는 당신의 주인이 된다.

* 밤에 이야기를 할 때는 소리를 낮추고, 낮에 이야기를 할 때는 주위를 살펴보아라.

* 당신이 비밀을 지키고 있을 때는 비밀은 당신의 포로이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을 말해 버린 순간부터 그대는 비밀의 포로가 된다.

* 주위가 다 보이는 들판이라도 흙이 조금 부풀어올라 있거든 비밀 이야기를 하지 말라.

* 여자에게 비밀 이야기를 하기 전에 여자의 혀를 잘라버려라.

* 자기 자랑을 하는 것은 남을 욕하는 것보다 낫다.

* 중상은 어떤 무기보다도 무서운 것이다. 화살은 보이는 곳까지만 쓸 수 있지만, 중상은 멀리 이는 마을까지 망하게 한다.

*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중매가 되지 않는다.

* 선인일지라도 입이 더러운 자는 아름다운 궁전 옆에 무두질 하는 곳이 있는 것과 같다. 아무리 화려하고 장엄한 궁전이라도 이 한가지 결
점으로 인해 아름다움을 상실한다.

* 홀거짓말은 거짓말이고 겹거짓말도 거짓말이며, 세겹의 거짓말은 정치이다.

* 모든 거짓말은 금지되어 있으나 한 가지 예외가 있다. 그것은 평화를 가져오는 거짓말이다.

* 그 어머니의 말을 믿어서는 안된다. 이웃의 말을 믿어라

* 지나친 질문을 하지 말라, 성가시게 물으면 신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렇게 알고 싶으면 천국으로 오라.'

* 아무리 아름다운 소리로 우는 새라도 먹을 때에는 조용해 진다.

* 침묵도 하나의 대답이다.

* 웅변의 침묵도 있을 수 있다.

* 침묵은 어진 사람을 더욱 어질게 한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는 침묵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 어리석은 자가 어진듯이 하기는 간단하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된다.

* 어리석은 사람을 어떻게 분별할 것인가? 어리석은 사람은 수다스럽다.

* 지껄이기를 잘하는 어리석은 자는 엉뚱한 시간을 가리키므로 시계와 같고 말없이 가만히 있는 어리석은 자는 고장나서 움직이지 않는 시
계와 같다. 둘 중에 후자가 후자가 훨씬 낫다.

* 영혼까지도 휴식이 필요하므로, 인간은 잠을 자는 것이다. 입에도 휴식을 주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 싸움을 잠재우는 가장 좋은 약은 침묵이다.

* 즐겁게 오래 살고 싶으면 코로 숨을 쉬고 입을 다물어라.

 <14>유태인의 격언-교제하는 방법
아무리 친한 벗이라도 너무 가까이 하지 말라.  
'친구는 석탄과 같다.'라고 <탈무드>는 말하고 있다. 친구는 불타고 있는 석탄이다.
적당한 거리까지 접근해야 몸을 따뜻하게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가면 몸을 덴다. 그리고 이 경우는 아내도 마찬가지이다. 인
간은 인간을 혼자서 모두 독차지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이고 가까와지면 작아지게 된다.  
18세기 이스라엘의 벤 엘라이더는 폴란드에 살았던 이 름난 유태인의 사상가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사람이 물가에 서서 물속을 들여다보면, 처음엔 자기 모습이 크게 보인다.그러나 차츰 허리를 굽혀서 보면 모습은 점점 작아져 보인다.

어떤 인간이라도 가까와지면 작아지기 마련이다."

왕이고 독재이고 알고 보면 보통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 자신을 남과 비교하였을 때 작아 보이는 것은 자기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애매한 친구보다는 차라리 분명한 적이 낫다.  
우리가 가장 대하기 힘든 것이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친구이다.진정한 친구인가 아니면 적인가를 도무지 구별할 수 없는 사람은 상대하기
곤란하다. 인간은 친구를 만나면 누구나 속마음을 털어 놓게 된다. 그런데 그 친구가 적인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 그 적이 자기에게 요구
하는 것과 요구하지 않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상대와 사귈 때에 애매모호한 자세로 친구인 양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확실한 적이 낫다.

 술집 여자와 키스를 하였거든 꼭 당신의 이빠를 세어 보아라.  
산양한테는 앞쪽에서 다가서지 말고, 말한테는 뒤쪽 에서 다가서지 말라, 술집 여자에게는 어느 쪽에서도 접근하지 말라.
다음과 같은 교훈이 있다.

인간은 주위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고 산다. 인간의 마음 한편에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그래서 남의 입장에 서보려는 생각이 있다. 그
러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이 지닌 선한 마음도 양쪽 날이 선 칼과 같아서 자기를 다치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쁜 사람이나 나쁜 여자와 사귀게 되면 반드시 잃는 것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속담은 좀더 단순한 것을 말하고 있다. 나쁜 곳에 가서는 돈주머니를 잘 단속하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선한 마음에 의해
서 가끔 경계심을 풀게 된다. 이빨을 빼앗기고 나서는 때는 이미 늦었다. '술집 여자'는 나쁜 사람을 비유한 것이다. 비록 그 중에 선한 사람
이 있다 하여도 나쁜 환경에 있는 자에 대해서는 항상 경계하여야 한다. 조심에 조심을 거듭할 뿐이다.

 술집에 간다고 하여 선인이 악하게 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악인이 예배당에 간다고 해서 달라지지는 않는다.  
이 속담은 앞의 속담과는 모순되는 점이 있다.
흔히들 속담을 예로 하여 설교를 하지만 이런 속담을 진리로 착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자기가 하는 말을 정당화하는 데에 속담을 인용하는
것만큼 편리하고 쉬운 것은 없다. 그래서 결혼식이나 설교에서는 속담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유태의 꽁트 하나를 보자

어느 마을에 독실한 신자인 듯이 예배당에 나가고 있는, 그러나 품행이 좋지 않은 사나이가 있었다.

랍비가 하루는 그를 불러서 품행을 단정히 하라고 주의를 주자 그 사나이는 말했다. [나는 정해진 날은 하루도 빠짐없이 예배당에 나가는
충실한 신자인데요.]
랍비는 그에게 다시 말하였다.

[이보게, 사람이 동물원에 매일매일 간다고 해서 동물이 되는 것은 아니잖나.]

 늑은이가 젊은 아내를 맞으면, 늙은 이는 젊어지고 아내는 늙는다.  
이 속담은 '향수 가게에서 일을 하다 보면 향수 냄새를 풍긴다'라든가 '꿀을 치다보면 조금은 꿀맛을 볼 수 있다'고 하는 속담과 비슷하다.
인간은 같이 생활하는 사람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늙은 남편이 젊어지지 않고, 아내가 항상 어린아이처럼 새파랗다면, 이 결혼은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동양의 속담에는 '먹을 가까이 하는 자는 검어진다'는 것이 있는데, 부모는 자식의 친구 중에 '공산주의'가 있는지 항상 주의해야 할 것이
다.

'사상의 흐름'이란 말이 있다. 인간이 어느 시대에 태어나면 그 시대 사상의 흐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사람들은 시대 속에 사
는 시대의 포로이다. 누구든지 주위 환경과 보조를 맞추지 않고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그러한 사람도 없다. 자기가 소속한 그룹도 마
찬가지이다.

'시대의 사조'라고 하듯이 이것을 '친구의 사조'라고 할까. 인간은 태어난 시대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교제하는 범위 내 사람들의 포로가 되
는 것이다. 친구를 택할 때에는 항상 깊이 생각해야 한다.

 꿀을 치다보면 조금은 꿀맛을 볼 수가 있다.  
나쁜 환경에 던져진 사람은 그 환경의 영향을 받기가 쉽다. 또한 좋은 환경을 접하게 된 사람도 그러하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서로 어울
리려는 성질이 있으며, 적응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과 귀를 사귀게 됐을 때에는 그 사람의 환경이나 지나온 이력들을 고려해야 한다. 그 사람은 그가 자라온 세계나 처해 있
는 환경을 척도로서 몸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본성이 착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세상 모든 사람이 착하다고는 할 수 없다.

절에서 자라온 사람이나 수도원에서 생활한 사람이 신을 믿지 않거나 나쁜 사람이 되기가 어렵듯이, 술집 여자나 카지노에서 일하는 사람
이 정직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기가 꿋꿋하고 올바르게 살고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면 자신부터 확고히 세
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을 단단히 지켜야 한다.

 향수 가게에 가면 향수 냄새가 옮는다.  
이 속담은 '좋은 친구를 선택하라. 인간은 누구든 지 영향을 받으므로' 하고 말하는 것이다.아이들을 보면 그 부모를 알 수 있고, 친구를 보
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어질고 고결한 랍비라고 하여도 악인을 선도하려는 의도에서 그와 교제하는 중에 얼마쯤은 이상하게되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물며 보통 사람이라면 친구를 사귈 때에 좋지 못한 것이나 나쁜 것에 물들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을 선도하려고 해도, 그 뜻을 이루기보다는 자기마저 악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손님과 생선은 사흘만 지나면 악취가 난다.  
남의 일에 초청받아 갔을 때 그 집 사람들이 환영한다 고 해도 너무 오래 머물러서는 안된다.<탈무드>에서는 '손님은 비와 같은 것이어서
적당하게 뿌리면 기뻐하지만, 장마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씌어 있다.
이와 같은 속담은 얼마든지 있다.'손님은 첫날에는 닭고기를 대접받고, 이틀째는 달걀을 대접받고, 사흘째는 콩을 대접받는다.

현대는 스피드 시대라서 옛날의 하루가 지금은 두어 시간쯤으로 되어 버렸다.

주인에게도 어려운 점이 있다. 찾아오는 손님에게 문을 열어 주는 것은 쉬우나 돌아가 주었음 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기는 쉽지 않다. 그러
는 사이에 그 집 사람들의 표정이 시계를 대신하게 된다. 그러나 너무 일찍 돌아가서도 안된다. 그래서 '중용'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아무튼 극단적인 것은 피해야 한다.

 소문은 가장 좋은 소개장이다.  
위대한 랍비 아키바가 임종할 무렵에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 친구분들께 제가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아들은 꽤 우수한 젊은이었다. 아키바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들아, 나는 너를 추천할 수 없다. 왜냐하면 너에 대한 소문이 가장 좋은 소개
장이니까 말이다.]
평판이란 것은 수천 장의 소개장을 세상에 뿌리는 것과 같다. 그리고 업적을 소문만큼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것도 없다. 그 소리는 넓고 높
게 퍼지는 것이다.

 밀가루 장수와 굴뚝 청소부가 싸움을 하면 밀가루 장수는 검어지고 굴뚝 청소부는 희어진다.
현명한 사람은 싸움을 하지 않는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재산은 친구이다. 인간은 누구나 일생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 사람
의 수가 한정되어 있다.
싸움은 자신의 재산을 줄이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서로가 득이 되는 것이 없다. 싸움은 졸렬한 자기 주장이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주장
할 때 좀더 사리에 맞는 방법을 택한다. 감정에 끌리어 자기를 주장하려고 할 때 싸움이 일어난다. 지혜로써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자는 감
정을 나타내 보이지 않는다. 이쪽에서 감정을 내보이면 상대방도 감정으로 맞서게 되기 때문이다.

현명한 사람은 상대방의 감정적으로 될지라도 자신은 감정을 눌러버린다.

 서로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고전으로서<탈무드>에 있는 가르침이다. 화해를 하려고 할 때에 한쪽만이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화해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왜냐하면 타협으로부터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양쪽이 모두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
하여, 대립 관계에서 벗어나 대등 관계로 바뀌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싸움을 한 사람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설령 자기에게 잘못이 없다고 해도 무엇인가를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화해의 원칙인 것이다.

한쪽의 잘못만은 인정하고 화해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결국 그 한쪽의 잘못을 비난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으로는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로가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을 비는 것이 가장 좋은 화해의 방법이다.

 낯선 사람의 백 마디의 모략보다도 친구 한 마디의 말이 깊은 상처를 남긴다.  
사회하는 것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 것일까?가장 상 식적인 대답이라면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 많은 사람들
을 이리저리 나누어 생각해 보면 자기의 사회는 친구들에 의해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들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음도 알 수 있
다. 그런데 만일 인간에게 친한 친구가 없다면, 아마 인간은 사회를 살아나갈 자신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에게서 중상당하는 것은 그다지 큰 상처가 되지 않으나, 친한 사람에게 들은 한 마디 말은 그것이 사소한 것일지라도 큰
상처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친구는 비판할 때는 조심스러워야 하며, 친구를 중상모략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만일 조심성없이 지나치게 비판하거나 또
는 중상하면, 그것은 스스로 자기의 사회를 파괴하는 꼴이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해 웃을 수 있는 사람은 남의 웃음을 사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 대해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를 객 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을 외부로부터 냉정한 눈길로 살필 수 있는 것
이다. 즉, 자기 자신이 우스꽝스럽다는 것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는 셈이 된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자기 자신을 남과 같이 냉정한 입장에서 바라보지를 못한다.밖을 보는 눈은 있어도 안을 볼 수 있는 눈은 없는 것이
다. 이런 사람은 남을 보고는 웃어도 남이 자기를 보고 웃으면 화를 낸다.

자기의 어디가 우스운지를 모른다.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점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고칠 수 있고 또한 남에게 웃음을 사더라도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사람은 누구나 웃음의 대
상이 될 수 있으며, 그 대상은 즐거운 것이다.

웃는 것은 여유이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는 일은 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해 웃을 수 있는 사람은 타인에 대해 웃을 때도 점잖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 대해 웃었다고 해도 그로 인해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자기를 철저하게 궁지로 몰아넣지도 않는다.

 신 앞에서는 울고, 사람 앞에서는 웃어라.  
큰 소리로 내어 웃는 다는 것은 분명히 즐거운 일이다 .
웃음은 유태인에게 있어 힘을 솟게 하는 샘물이다. 웃음을 모르고서는 지혜나 지식은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유태 민족은 '책의 민족'이자
'유머의 민족'이라고 불린다. 웃음은 희망이며 여유이다. 웃을 만한 여유가 없는 사람은 궁지에 몰려 몸을 움츠리게 된다.

웃음은 유태인에게는 지성을 갈고 닦는 숫돌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웃음은 서로서로 크게 나누어 가져야 한다. 그러나 만약에 울
어야 할 경우가 생긴다면 신 앞에서 혼자 조용히 울어야 한다.

슬픔은 남에게 나누어 줄 만한 것이 못되기 때문이다.

 표정은 분명한 밀고자다.  
고대 이스라엘 때의 일이다. 어떤 군사령관에게 연락 병이 급히 당도하여 주요한 요새를 적에게 빼앗겼다고 보고하였다. 군사령관은 몹시
화가 나 눈에 쌍심지를 돋구고 있었다. 그러자 부인이 사령관의 방으로 불러들여 말하였다.
[나는 지금 당신보다 더 안좋은 일을 당했어요.]
[대체 그게 무슨 말이오?]
[당신 표정에서 당신의 당황한 기색을 읽을 수 있어요. 요새야 다시 싸워 빼앗으면 되지 않아요. 하지만 사령관인 당신이 용기를 잃는다면
그것은 군대 전부를 잃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입니다.]

 음식은 냄비 속에서 만들어지나, 사람들은 접시를 칭찬한다.  
이 속담은 사람들이 종종 무언가를 잘못 생각하여 엉 뚱한 것을 칭찬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최근에 내가 이스라엘에서 들은 조크도 그런
경우의 하나이다.
예루살렘에서 한 남자가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에는 매우 살이 찐 부인이 강아지를 한마리 데리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개는 한 사람이 앉
을 수 잇는 좌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남자 승객은 몸이 지친 상태여서 부인에게 영어로 [미안합니다만, 이 좌석을 재게 비워 주시지 않겠습
니까?]
하고 말했다.그러나 부인은 일부러 못 들은 척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한번 더 말하였다.

[부인, 이 개대신 제가 앉도록 해 주시지요.]
이번에는 부인이 머리를 옆으로 저으며 거절하였다. 사나이가 화가 치밀어서 그 강아지를 버스 창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
람이 말했다.

[나쁜건 강아지가 아니라 부인이잖소?]
이 이야기는, 사람이 엉뚱한 것에 화내는 것을 경계해야 된다는 교훈이 깃들어 있다.

 투박한 항아리 속에도 귀한 술이 들어 있다.  
이 속담은 사람을 겉모앙새나 가진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옛날에 가난한 옷차림을 한 젊은 학자 두 사람이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니며 여행하고 있었다. 그들이 로디미일이라는 고장에 도착했을 때,
그 마을에서 부자인 집의 문을 두드려 하룻밤 재워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부자는 그들의 행색이 보잘 것 없음을 보고 거절하였다. 그래
서 두 사람은 그 마을의 랍비 집에서 유숙하였다.

일년이란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은 이름이 높이 알려진 학자가 되었다.
두 사람은 또 여행을 떠나 그 로디미일 지방에 이르게 되었다.그래서 그들은 일년 전에 머물렀던 랍비 집에서 유숙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마침 거기서 그 부자를 만나게 되었다. 부자는 두 사람이 타고 있는 말이 훌륭하고, 두 사람이 매우 고명한 학자라는 것을 알고는 스스로 청
하여 자기집에 머물라고 청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두 사람이 그것을 거절하였다. 그러자 부자는 자기 집이 그 마을에서 제일 좋으며 언제
나 마을을 대표해서 손님을 접대하고 있다고 자랑하였다. 그러자 두사람은 이렇게 말하였다.

[정 그러시다면, 이 말을 재워주십시오.]
[말을요? 당신들은 왜 머물지 않겠다는 겁니까?]
[사실은, 우리들은 가난하고 이름없던 시절에 이 마을을 지나며 당신 집에 문을 두두렸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들
이 좋은 옷차림과 훌륭한 말을 가지고 있으니까 우리를 재워 주겠다고 하는군요. 그러니까 이 말 두 마리를 하룻밤 재워주십시오.]

 지성만으로 사람들에게 존경받으려 하는 것은 마치 사막에서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과 같다.
사막에서 물고기를 잡으려고 하는 것은 헛수고이다. 그리고 지성이 있다는 것은 지식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성을 많이 쌓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소중한 대접을 받는다. 왜냐하면 식자를 알고 있으면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그는 그가 알고
있는 지식 때문에 소중히 여겨지는 것이지 인간으로서 사랑받고 존경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인간으로서 사랑을 받는다. 언뜻보면 지성을 가진 사람이 마음씩 고운 사람보다 소중히 여겨
지는 것 같다. 그러나 결국은 마음씨 고운 사람이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씨 고운 사람이 맡은 지식까지 겸비하고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런 사람은 지도자감으로 매우 좋다. 그런 사람은 사막에서도 사
람들이 물고기를 구해다 줄 것이다.

 교제에 관한 격언  
* 세 부류의 친구가 있다. 첫번째 부류는 음식과 같아서 매일 필요하다. 두번째 부류는 약과 같아서 가끔씩 필요하다. 세번째 부류는 질병과
같은 것으로 항상 피해 다녀야 한다.

* 바늘귀도 두 사람의 친구와 빠져 나가기에는 그리 좁지 않으나 서로 원수가 된 친구에게도 천하도 좁게 느껴진다.

* 두 사람이 싸웠을 때, 먼저 타협하는 사람이 인격을 높인다.

* 싸움이란 냇물과 같다. 한번 작은 냇물이 생기면 큰 냇물이 되어서 다시는 작은 냇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는 사람은 친구를 잃지 않는다.

* 친구가 꿀을 가지고 있다고해서 그 친구까지 핥아먹어서는 안된다.

* 상대를 물어뜯을 수 없다면 이빨을 보이지 말라.

* 친구의 결점을 먼저 찾으려 애쓰는 사람은 친구 복이 없다.

*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이 낫다.

* 파리와 같은 인간은 남의 상처에 모여들고 싶어한다.

* 사람을 한쪽 손으로 밀 때에는 다른 한쪽 손으로 그 사람을 끌어당겨 주어라.

* 적에게 숨겨야할 것은 친구에게도 숨겨라.

* 나쁜 친구는 당신의 수입에 대해 신경쓰고 헤아려도 당신의 지출은 생각하지 않는다.

* 위대한 인간에게는 반드시 위대한 적이 있다.

* 사람을 사랑하려거든, 사람에게 걸치레 인사를 할 줄 알아야 한다.

* 말을 부리겨거든 채찍보다 먹이로 다루는 것이 낫다.

* 누구든 애교를 떠는 자에게는 조심을 하여라.

* 친구인 체하는 사람은 마치 철새와 같아서 날씨가 추워지면 당신 곁을 떠난다.

* 인간은 혼자서 식사할 수는 있으나, 혼자서 일할 수는 없다.

* 동료가 없더라도 자기 혼자서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동료가 없으면 혼자서 해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다. 또 자기가 없으면 동료가 해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욱 큰 잘못이다.

*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깍듯하게 경의를 표하라. 그러나 그만큼 의심하여라.

* 모두가 서 있을 때 앉아서는 안된다. 모두가 앉아 있을 때 서 있어도 안된다. 모두가 웃고 있을 때 울어서는 안된다. 모두가 울고 있을 때
웃어서도 안된다.

* 사람을 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랍비처럼 존경하고 도둑처럼 의심하는 것이다.

* 좋은 손님은 도착하자마자 환영을 받고 나쁜 손님은 도둑처럼 의심하는 것이다.

* 손님은 비와 같은 것이어서 가끔 오면 좋지만 장마처럼 오래 끌면 곤란하다.

* 현명한 적은 사람을 현명하게 만들지만 어리석은 적은 사람을 어리석게 만든다.

* 어리석은 자를 업신여겨서는 안된다. 어리석은 자가 있기 때문에 당신은 현명해지는 것이다.

* 한 사람의 오랜 친구가 역시 열 사람의 새로운 친구보다 낫다.

* 자기에 대한 평판을 듣고 싶거든 평소 이웃 사람들의 소문에 귀를 기울여라.

* 한번 사람에게 속았거든 그 사람을 저주하고, 만일 같은 사람에게 두번속았다면 자기 자신을 저주하라.

* 이웃은 소중한 존재이므로 사랑해야 한다. 설령 트럼펫을 불며 시끄러운 이웃이더라도.

* 마늘을 먹을 때에는 두 개를 먹어라.

* 무릇 훌륭한 예의범절이란 남의 좋지 않은 예의범절을 용서해 주는 것이다.

* 물고기는 물이 없어지면 죽고, 사람은 예의가 없어지면 죽는다.

* 예의범벌을 깨달은 사람은 예의 범절을 모르는 사람에게 마음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 세상에서 의견을 물어서는 안되는 세가지가 있다. 그것은 여자에게 그녀 친구에 대해서 묻는 것, 겁장이에게 전쟁에 대해서 묻는 것, 장사
꾼에게 에누리에 대해서 묻는 것 등이다.

*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존경을 받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 가장 바람직스러운 것은 지성이다.그러나 지성이 모자란다면 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가 돈은 없지만 착한 아내를 가지고 있으면 결점을 숨길 수 있다.

 <15>유태인의 격언-삶의 지혜
꽃양배추에 사는 벌레는 꽃양배추를 자기 세상으로 생각한다.  
이 세상은 무한히 넓다. 제아무리 제트기로 뉴욕까지 열 시간만에 갈 수 있다 하여도, 세게는 역시 크고 넓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칫 자신이
속한 작은 세계가 전세계인줄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일을 자기 세계의 습관이나 관점으로 판단한다.
사람은 어떤 마을이나 나라와 같은 제한된 지역에만 갇혀 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성장이나 회사, 직업, 계급 같은 것에도 갇혀있게 된다.
꽃양배추는 각처에 있는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그러한 것에 갇혀 지냄으로써 자유를 잃게 된다.

유태인은 세계로 흩어져서 방랑했기 때문에 한 세계의 포로가 되는 일은 적었다. 그러나 이러한 격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태인의 세게에
도 꽃양배 추가 적지 않게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꽃양배추 속에 안주하는 것도 인생이다. 떨치고 일어서는 데에는 무한한 용기가 필요하다. 당신이 노인이라면 예상 밖으로 안주하는 것이
좋을 지도 모른다.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책의 앞면과 뒷면같은 것이다.  
유태 사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내려 주 위에 2대째나 3대째로 보기에 역겨운 자가 있거든 한번 써 먹어 보아라.
옛날에 가문이 매우 좋은 여우와 천한 집안에서 태어난 여우가 길을 가다가 서로 마주쳤다. 여기서 가문이 좋은 여우와 나쁜 여우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서는 안된다. 진짜로 혈통이 좋은 인간이나 그렇지 않은 인간도 없을 테니까.

어찌되었건 가문이 좋은 여우가 그렇지 않은 다른 여우에게 자기의 집안을 자랑하였다. 그러자 그 천한 집안의 여우가 말하였다.

[너의 집안은 너로 끝나겠지만 우리 집안은 나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태어남과 죽음은 그다지 큰 의미를 지닌 것이 못된다. 마치 장식과 같은 것이다. 진정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으로 살고 있는
가. 그리고 어떻게 살았는가이다.사는 방법의 내용이 중요하다.

 길을 열 번 물어보는 것이 한 번 길을 헤매는 것보다 낫다.  
이 속담은 인생의 기본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흔히 유태인을 '율법의 민족'이라고 하는데, 그 율법이란 것은 누구라도 납득할 수 있는 인생의 기본적인 법칙이다. 그러나 인간은 의외로
기본을 가법게 여기기 일쑤이다.

걷는 법, 먹는 법, 앉는 법, 달리는 법으로부터 사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가 하는 것은 예로부터 별다른 변함이
없다.

대개 한 번 일어났던 일과 같은 일은 두 번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이 없는 것이며, 기나긴 인류의 역
사속에서 같은 일들이 형태를 바꾸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옛부터 내려오는 값진 교훈을 지킨다는 것은 수천 년에 걸친 인간의 행동을 관찰한 결과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에 도
달한 것이므로, 그러한 가르침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현명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정확한 시장 조사 회사나 여론 조사 기관이라 할 지라도 과거 수천년을 거슬러 올라가서 그 옛사람들과 만나서 통계를 낼 수는 없
다. 유태의 율법이나 가르침도 그러한 것이다. 수천만 달러의 조사 비용을 들인다하더라도 결코 해낼 수 없는 것이 그것들이다.

기본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이야기가 <탈무드>에 있다. 어떤 마을에 머리가 영리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닭이 알을 부화시킨
다면, 그와 똑같은 온도를 만들어 주면 얼마든지 병아리를 부화시켜서 많은 돈을 벌 수가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였다.

드디어 연구를 끝내고 장치를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달걀을 사서 장치에 넣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자칫 부주의로 인해서 달
걀 상자를 떨어뜨렸다. 그는 달걀을 떨어뜨리면 안된다는 기본적인 상식을 잠깐 잊었던 것이다.

'소가 아무리 젖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다 짜낸 후에 젖이 든 통을 차버리면 아무 소용도 없다.' 높은 지혜와 깊은 생각에서 이루어지는 것
이라도 항상 기본을 잊어서는 안된다.

 휴일이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지, 사람이 휴일에 주어진 것은 아니다.  
20세기의 말에는 세게는 더욱 풍족해지고 휴가도 늘어 날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쉬기 위하여 일한다는 생각이 늘어가고 있다. 그리고 노동이나 일은 자기 자신을 잃
게 하는 것이므로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쉬고 즐겨야 한다는 사고방식도 널리 번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이 열심히 놀기는 하지만, 그 쉬는 방법이나 즐기는 방법을 보면 자기를 되찾고 재창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소모하고
상실하려고 쉬는 것같이 보인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일이건 놀이건 인간은 무엇을 하느냐(What I do) 보다는 어떤 인간(what I am)이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일에 떠밀려 가듯 여가에도 떠밀려 가고 있다.인간은 일이라는 괴수에게 던져진 먹이가 아니듯이 휴일이라는 괴수에게
먹이도 아니다.

휴일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계발하기 위해서 쓰여져야 한다. 우리가 한번쯤 휴일로부터 해방된 휴일도 생각해 봄직하다.

 단번에 바다를 만들려고 해서는 안된다. 우선 냇물부터 만들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한번에 바다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신뿐이 다.
인간이 바다를 만들고 싶으면 우선 작은 냇물부터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단번에 바다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냇물은 지류를
가지면 많은 지류가 큰 내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

작은 내라 업신여기고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바다를 만들 수 없는 법이다. 이것은 인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근면함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검약이라는 것도 필요한 것이다.

세상에는 운좋게 행운을 타고 단번에 바다를 만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자신이 그런 행운을 바라는 것이 허용된다 하더라도, 그것
을 기대하는 것은 마치 자동차에 치이거나 항공기 사고를 당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하여 두려워한 나머지 목을 매고 자살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자동차 사고나 항공기 사고 쪽이 일확천금하기보다는 훨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0에서 1까지의 거리가 1에서 100까지의 거리보다 길다.  
사람들 중에는 1000을 구하려 한 나머지 1을 대수롭게 여거 0 밖에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단번에 많은 재물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1을 만드는 데에는 인내력이 필요하다. 에서 1을 만들고 이를 소중히 여긴다면, 1000을 만들
기도 생각보다 쉬울 것이다.

성공한 상인들을 보면, 모두 0에서 1을 만드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1000, 1만, 10만, 100만을 만들 수가 있다.

절약, 절약, 절약....

 매일을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라. 매일을 당신의 첫번째 날이라고 생각하라.  
<탈무드>에 나오 는 말로서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준다. 대개의 인간은 60년, 70년, 80년, 100년을 산다. 그러나 100년을 산다하더라도 한
꺼번에 100번을 사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나아가서 시간시간, 1분1분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루하루가 인
생의 전부이며, 나아가서는 1분 1처가 전인생인 것이다.
인간이 오늘을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한다면 가장 충실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하루를 보내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최초의 날
이라고 생각한다면, 활기차고 희망찬 하루를 보낼 것이다.

당신이 살고 있는 것은 지금 한순간이다. 단지 한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오래 앉아 있으면 치질에 걸리고, 오래 서 있으면 심장에 나쁘다. 또 너무 걸으면 눈에 나쁘다. 그러므로 이 세가지를 적당히 조절해야 한
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다.
'너무 걸으면 눈이 나쁘다'는 말이 동양인들에게는 이해가 안 갈지도 모르겠다. 원래 이스라엘은 사막의 나라여서 너무 오래 걸으면 모래가
눈에 들어가 버린다. 유태인의 처세술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무엇이든 알맞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도 이 책을 쓰면서 느낀 것
인데, 이 점이 바로 이 책의 정수인 것이다.

유태인의 저력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자주 이와 같은 질문을 접하게 된다. 이에 대한 답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모든 것에 균형잡힌
생활을 하는 것이 힘의 원천이라는 것도 하나의 타당한 답이다. 이것은 하나의 비결이고 양식이다.

 유태 민족이 안식일을 지켜온 것이라기보다는 안식일이 유태인을 지켜온 것이다.  
유태인은 옛부터 너무 완고하다 싶게 제사나 자기들의 습관을 지켜왔다. 그러나 유태인이 여러 곳에 흩어져서 이민족들 사이에 살아오면서
유태인다움을 상실하지 않았던 것은, 유태교의 규칙을 굳게 지켜왔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습관이 없었고, 머리속으로만 유태인임을 생각해 왔다면 그들은 벌써 유태인다운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유태인답게 죽는 것은 대단한 것이 못된다. 하지만 유태인으로 산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설사 온 세상의 바다가 잉크로 가득 차 있고,
온 세상의 갈대가 붓이며 그리고 온 세상 사람들이 글을 쓸 수 있다 하더라도 1년간에 유태인이 받은 박해를 다 기록할 수는 없다.'

* 유태인을 올리브나무에 비유한다. 왜냐하면 올리브 열매는 누를수록 기름이 많이 나오는 것처럼 ㅇ태인은 박해 당할수록 큰 것을 이루어
내기 때문이다.

* 유태인을 박해하는 나라는 오랫동안 번영하지 못한다.

* 세상이 잘 안돌아갈 때 유태인은 제일 먼저 그것을 느낀다. 세상이 잘 돌아갈 때에는 맨마지막으로 그것을 느낀다.

* 흔히 유태인은 비둘기에 비유된다. 다른 새들은 지치면 나뭇가지에 앉아서 쉬지만, 비둘기는 한쪽 날개로 날고, 한쪽 날개에 의지하며 쉰
다.

* 한왕국이 흥했다가 망하면 또 새로운 왕국이 흥했다가 망하세 된다. 그러나 유태인은 역사 속에서 결코 망하는 일이 없다.

 이상주의란, 장미 향기를 맡고서 그 향기에 취하여 장미꽃으로 양배추 스프보다 맛있는 스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극단적인 것과 과격한 경계하는 말이다. 인생 에는 중용의 도가 중요하며 그것이 양식이면 안전이다. 무의미한 모허을 함부로 해서
는 안된다.
인간의 현실 세계나 생활은 여러 가지 요소로 성립되어 있으며 어느 하나의 요소에 치우쳐 있지 않다. 그러므로 장미를 먹고자 하는 이상주
의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사는 것이다.

젊은 사람 가운데서 이상주의자가 많고 늙은 사람들 중에서 보수주의자가 많은 것은 경험의 양에 비례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태인들이 <탈무드>나 유태의 고전들을 곰팡이 난 고서 정도로 취급하지 않고 지금 씌어진 책처럼 신선한 맛으로 읽는 것은 오랜 역사의
겨험에서 얻어진 교훈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우물에 침을 뱉는 자는 언젠가 반드시 그 물을 마시게 된다.  
<탈무드>에는 다음 과 같은 얘기가 기록되어 있다.
어떤 랍비가 길을 가고 있는데 한 사나이가 자기 집안의 돌을 길 밖으로 던져 버리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랍비는 '왜 그런 짓을 하시오?'하
고 물었으나 사나이는 웃기만 하였다.

20년이란 세월이 흘러서 이 사나이는 자기 땅을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 땅을 남의 손에 넘기고 다른 고장으로 가려고 첫발을 떼는 순간 전
에 자기가 버렸던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이것은 자기가 한짓을 설사 잊고 있었더라도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오고 만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와 비스한 속담에, '자기가 마실지도 모르는 우물에 돌을 던지지 말라'는 것과 '화살을 만드는 자는 그로 인해서 죽는다'는 말이 있다.

 기적을 바라는 것은 좋지만 그 기적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탈무드>에 기록되 어 있는 가르침이다. '흔히 랍비가 바라던 것을 신이 이루면 기적이라고 하는데, 신이 바라던 것을 랍비가 이루는 것이
진짜 기적이다'라고 하는 조크가 있는데, 유태 사회에서는 랍비를 조롱하는 속담이 많다. 겉으로는 고상하고 준엄한 표정을 하면서도 뒤로
는 나쁜 짓을 하는 랍비도 적지 않게 있었을 것이다.
유태 민족은 합리적이어서 기적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기적과 같은 행운을 바라고 기도한 것은 좋지만 행운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는 것이
있다. 이것이 조금 더 현실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행운에 모든 것을 맡긴 채 의지해서는 안된다. 행운을 붙잡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세상을 떠들면서 유태인만큼 행운을 구하려 했던 사람 들도 없었을 것이다.
한땅에 오랫동안 정착하여 확고한 그들의 사회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그다지 행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박해받고, 차별당하고,
가난했기 때문에 일정한 직업조차 갖지 못했던 유태인들은 행운이 찾아들어도 그것은 나비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 그것을
붙잡으려해야 한다. 행운을 나비에 비유한다면, 곱고 아름다우며 희귀한 나비가 가까이 온 것이다.

행운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행운이 찾아온 것을 확인하는 데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그저 앉아서 행운을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된다. 행운은 많은 사람에게 찾아들지만, 저절로 손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금방 스쳐 지나
가 버린다.

유럽의 가난한 유태인 지역의 사람들은 행운을 어떻게 붙잡을 것인가 생각하고 조급히 걱정하며 속을 태웠다.

이런 속담이 있다. '육감이 둔하면서도 행운을 잡으려 하는 것은, 뚫어진 그물로 고기를 잡는 것과 같다.'

 운없는 사람은 높은 곳에서 떨어져 등을 쳐도 코가 부러진다.  
등이 치였는데 코가 부러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 는 이야기이다. 만일 그런 일이 있다면 피카소의 그림처럼 괴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유태인의세게에는 어떤 일을 하이 나쁜 '시레밀'이라는 사나이가 있었다. 시레밀은 채플린의 영화에 나오는 사나이처럼 무슨 일을 하더라
도 잘못된다. 예를 들어 그가 빵을 바닥에 떨어뜨리면 반드시 잼이나 버터를 바른 쪽이 바닥에 붙어 버린다.시레밀이 우산을 들고 나가면
하루 종일 햇볕이 내리쬔다. 그가 초를 팔면 그날부터 해가 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도 운이 없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위로할 수가 있다.

'나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지'라고 아무튼 이 속담은 운이 나쁠 때에는 인간은 정말 운이 나빠서 어떤 것도 잘 되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유태인은 오랜 동안 유럽에서 가난하고 박해받는 생활을 하고 있었으므로, 유태인은 거리에는 수많은 시레밀로 가득차 있었다. 그래서 유
태인 이야기에는 시레밀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 유태인은 참으로 운이 없다. 부스럼이 났을 때에는 약이 없고, 모처럼 약이 생기면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

* 시레밀은 영락없이 뜨거운 스프를 흘린다. 다른 시레밀의 옷 속에다가,

 선행에 대한 가장 큰 댓가는 무엇인가? 또다른 선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죄악을 두려워하던 사람도 한 번 악을 저지르고 나면 그 다음은 쉬운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아주 간단하게 악의 포로가 되어서 악의 구렁
텅이로 빠져 버린다. 인간의 적응력은 높다.
잠시동안 못 보는 사이에 사람이 갑자기 변해 버리는 수가 있다.

[아니, 자네가 그럴 수가 있나?]
[설마... 그 사람이.]

이런 대화는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종종 듣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악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처럼 선에 대한 두려움도 갖고 있다.
당신도 한번 시험해 보라.

 선보다는 악이 빨리 번진다.  
<탈무드>에는 다음 과 같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어느날 랍비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
[항상 신에게 경건한 사람이 주위의 사람들에게, 신에게 기도하고 착한 행동을 하도록 강력하게 권하지 않는 건 무슨 이유입니까?]
이에 랍비는 반문하였다.

[그러나 우리들은 항상 착한 일을 행하고 올바르게 살 것을 사람들에게 권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악한 자들은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하도록 강한 힘으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또 그들은 자기네들의 패거리를 늘여 나쁜 짓을 하려고
할 때, 우리들보다도 훨씬 열심히 사람들을 설득합니다.]
랍비는 다시 대답했다.

[그것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혼자서 걷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나쁜 짓을 하려는 자들은 혼자 걷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 말은 성서에서 나온 말이다.
한 유태인이 가튼 유태인을 속였다고 하자. 가령 1만 파운드를 속여서 빼앗았다면 오늘날에도 유태인은 재판소에 가기보다는 둘이 함께 랍
비에게로 갈 것이다(아니면 피해를 입힌 자가 랍비에게 소환당할 것이다).

랍비는 자기가 믿고 있는 지역 사회의 재판관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랍비는 당연히 1만 파운드를 돌려주라고 할 것이다.

일단 반환만 하면 가해자의 죄는 없어져 버린다. 정신적으로 흰 옷감처럼 하얗게, 완전히 결백하게 된다. 그는 옛날의 그로 돌아가고 아무
도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반환하기만 하면 죄는 없어진다. 이것이 유태의 전통적인 정의이다.

그러나 많은 외국인들에 의해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잔인한 말이라고 왜곡되어 전해지고 있다. 결코 그렇지는 않다. 가령 어
떤 사람의자동차 헤드라이트를 깨뜨렸으면 그에 상당하는 것으로 반환하라는 것이 ㅇ태의 율법이다. 오토바이의 헤드라이트를 깼는데 값
비싼 자동차 한 대를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고대에는 이발사가 잘못하여 손님의 귀를 자르게 되면 손님이 이발사의 팔 하나를 요구하기로 하고, 밭의 올리브나무가 하나 잘리게 되면
상대의 재산 전부를 빼앗으려는 일이 많았으므로 배상이 타당해야 된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다.

이것은 복수를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으로 복수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돈을 시간보다 소중하게 여기는데 그로 인하여 잃는 시간은 금전으로도 사지 못한다.  
평생 동안 인간이 쓸수 있는 가장 귀중한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그 이유를 <탈무드>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은 돈이나 부는
마음껏 손에 넣을 수 있으나 일생에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탈무드>에는 '한정되어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이며 시간이다. 돈보다 시간이 훨씬 귀중한 것이다. 그런데
도 사람들은 돈을 쓸때에는 매우 조심스러우면서도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또한 인간은 남의 돈을 맡아서 쓸 때에는 특히 신경을 써서 규모있게 돈을 쓴다. 그리고 남에게 금전적인 신세를 지는 것에도 매우 신경을
쓴다.

그러면서도 약속 시간에 늦거나 쓸데없는 일로 남의 시간은 빼앗는 것에는 무신경하다. 이것은 사람들이 시간보다도 돈을 더욱 소중히 여
기고 있음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시간과 돈 모두가 중요하다. 그러나 둘 중에서 시간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시간의 부자, 시간의 가난뱅이, 이런 관념을 가지
고 있는 것은 나쁘지 않다. 금전적으로 가난한 사람도 시간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시간으로 돈을 살 수 있지만 돈으로 시간을 살 수는 없다.

 정원을 보면 그 집의 정원사를 알 수 있다.  
인간은 모두 한평생을 살아가며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 와같다. 정원에는 갖가지 수목이 우거지고, 계절마다 어김없이 꽃을 피우는 꽃밭이
있다. 또 연못이나 냇물을 만들수도 있다. 그리고 항상 나무나 잔디같은 것을 관리해야 한다.
입으로 자기의 공적을 자랑하고 자신을 능력있고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정말로 인간의 가치를 증
명하는 것은 실제로 쌓아놓은 업적밖에 없다. 정원은 실제로 쌓아놓은 업적이다.지금 막 만들기 시작한 정원이라도 한번만 보면 믿을 수 있
는 정원사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악한 사람은 눈과 같아서 처음 만났을 때는 순결하고 아름다와 보이지만 금새 흙투성이가 된다.
악인들은 사람들 앞에서 처음에는 매우 아름다운 세계를 그려낸다. 온 세상이 은으로 덮인 순결한 설경처럼 말이다. 그러나 현실이라는 태
양이 비치면, 눈은 녹아 사라지고 온통 진흙투성이의 나쁜 세게가 펼쳐지게 된다. 악인이 당신에게 아름다운 세계를 그려 보이더라도 속아
서는 안된다.다음날 눈을 뜨면 진흙투성이의 세계로 변해 있을 테니까 말이다. 고대의 랍비인 리치나는 말하고 있다.
[나는 자신을 눈처럼 순결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눈이란 금새 녹아서 진창이 되기 때문이다.

 위대한 학자가 장사치가 될 수 없듯이 위대한 장사치가 또한 학자가 될 수도 없다.
이것은 한가지 일에 뛰어나다고 해서 반드시 다른 일에도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이를 테면 <탈무드>에 훤히 통한 랍비일지라도 금고의 열쇠를 잘못 간직할 수 있다. 그리고 온 세상의 부를 독차지한 듯이 보이는 큰 부자
도 학문에는 아주 어두울 수가 있다.

인간에게는 모두 한계가 있는것이다. 한 가지를 잘 한다고 해서 다른 것도 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나의 전문적인 것에는 뛰어나도
전문 밖의 것에는 전혀 백지인 경우도 허다하다. 자기가 어느 한 가지에 뛰어다니고 \f0 해서 지나치게 자신감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이
다.

 아무리 길고 훌륭한 쇠사슬이라도 고리 하나가 망가지면 못 쓴다.  
이것은 유태인에게 가장 중요한 속담 가운데 하나이다 .
유태인들은 성서의 가르침을 수천 년 동안 계속 지켜왔다. 따라서 지금도 수천년 전과 같은 유태인이 있을 수 있다. 이 말은, 각 세대들이
쇠사슬의 고리처럼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만일 유태인이 유태인이기를 포기한다면, 이 쇠사슬은 제아무리 훌륭한 것일지라도 쇠사슬로서
쓸모가 없을 것이다.

또 다른 뜻은 유태인은 모두가 한 가족이며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더라도 유태인의 대가족으로서 산다는 것이다. 이것도 유태인의 크고 훌
륭한 사슬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만약에 한 유태인이 유태인임을 포기한다면 이미 유태의 대가족은 성립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유태인
은 어릴 적부터 이 격언을 많이 듣고 자란다.

 사람은 자기 고장에서는 평판에 의하여 판단되고, 다른 고장에서는 입고 있는 옷에 의하여 판단된다.
다음은 <탈무드>에 있는 이야기이다. 하루는 랍비 히야바 아바가 랍비 앗시에게 물었다. [어째서 바빌로니아 학자들은 화려한 복장을 하
고 있을까요?]
랍비 앗시는 대답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훌륭한 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그들은 화려하고 좋은 옷을 입어서라도 사람을 압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랍비 요나한이 말했다.

[당신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오. 저 사람들이 좋은 곳을 입고 있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 온사람들이기 때문이오. 둘이 살던 고장에서는 평
판에 의해서 사람이 평가되었지만, 다른 고장에서는 옷차람에 의해서 판단되니까.]

 술이 들어가면 비밀은 밖으로 나온다.  
<탈무드>에는 다음 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노아가 포도나무을 심고 있었다. 악마가 와서 '무엇을 심고 있소.'하고 물었다. 노아는 포도나무라고 대답하였다. 악마는 또 '포도나무는 어
떤 나무요?'하고 물었다. 노아는 '포도는 과일인데 매우 달면서도 새콤한 맛이있소. 그리고 이것을 발효시키면 사람을 즐겁게 해 주는 술이
된다오.'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악마는 그렇게도 좋은 것이라면 자기도 거들고 싶다고 하였다.

악마는 양과 사자, 돼지, 원숭이를 데리고 와서 그것들을 죽여 그 피로 거름을 했다. 그 때문에 노아가 술을 마시면 처음에는 양처럼 순해지
고, 좀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나와지고, 더 마시면 돼지처럼 추악해지고, 더욱 더 마시면 원숭이처럼 소란을 피우게 되었다.

신이 가장 올바른 사람으로 생각하던 노아까지도 이런 상태가 되었는데 보통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지 상상이 가는 일이다.

 식사는 자기의 기호에 맞추고 옷차림은 사회의 풍조를 따르라.  
누구에게나<남들과 같은> 생 활을 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여기에는 적어도 평균적인 생활 수준에 맞게 살고 싶은 소망과, 남과 같은 생활
을 하는 것이 좋다는 본능적인 타산이 작용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의 비슷한 집, 가구, 가전제품, 자동차 등을 소유하는 것이다.
혼자서 남과 다른 행동을 하면, 사회에서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소외당하게 된다. 그래서 자기를 지키려면 되도록 유별난 짓은 해서는 안된
다. 괴짜라는 꼬리표가 붙여지면 남들로부터 툭 삐어져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 - 답다'라든가 성실하다는 것은 덕목으로서 강조되지만 실제 로는 자기를 지키기 위한 처세술인 것이다.

개성은 옷차림이나 멀리 모양같은 말초적이고 시시한 것에 니타내고 만족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개성이 없는 사람들이 은 방법으로 개성적
인 듯이 꾸미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상한 옷차림이나 겉모양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경계를 당하거나 소외당하는 것에 신경쓰기보다는 좀더
중요한 자기의 개성을 살리려고 애써야 한다. 그런데 왜 그런지 인간들의 식사에 대한 기호가 다른 것에 비해 관용적이다.

 자물쇠는 정직한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  
사람들은 집을 비울 때 왜 자물쇠로 잠그는 것일까? 이것은 정직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왜냐하면 만일 나쁜 사람이 그 집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려고 한다면 문이 잠겼던 그렇지 않던 간에 집 안으로 들어갈 것이니까. 하지만 문
이 열려 있다면 정직한 사람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유혹이 한번쯤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집을 비울 때나 차에서 내릴 때에 자물쇠를 잠그는 것은 정직한 사람에게 못된 유혹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사람을 유혹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을 꼭 잠글필요가 있다.

 아무리 비싼 시계라도 바늘이 가르키는 한 시간은 같으며, 아무리 훌륭한 인간에게도 한 시간은 60분이다.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처음 만든 것은 유태인이다.
유태인은 대개 평범한 복장을 즐긴다.이스라엘에서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사람들은 정부의 고위 관리 중에서 그리 만지 않다. 모세 다얀은
6일 (1967년 6일 간에 주변의 아랍 여러 나라를 격파한 전쟁)의 영웅이며 국방상이었다.

바로 그가 매일 아침 집을 나와 국방성에서 맞으러 나온 자동차에 타면 젊은 병사인 운전병은 이렇게 묻는다.

[장군님, 오늘은 어디로 갈까요?]
유태인들은 권위주의적인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흔히들 유태인은 예의가 없다가 한다. 그러나 유태인들은, 인간은 모두가 비슷하게 존엄
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전통이다. 더군다나 외부로부터 격리된 유태인 거리에서는 해방될때까지 서로 공동 운명체로서 영주도 지주도 자
라지 못하였던 까닭인지도 모른다.

 따분한 사람이 방을 나가면 누군가 방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든다.  
따분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고대의 랍비들은 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과연 어떤 겨론을 얻었을까? 따분한 사람이란 교양, 학문 그리고 얼마나 박식
한가 하는 것들과는 관게가 없다. 누구나 겪어 보았듯이 학식이 풍부한 사람도 지독하게 따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을 따분하게 만드는 사람이란 남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랍비들은 따분한 사람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남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에 대해서 상관하지 않고, 남의 기분을 살피려고 하지 않으므로 남과 어울릴 수 없는 자'라고.

아인시타인은 대학자라고 하여도 남의 기분을 살피지 않는다면 따분한 인간이 될 수 있다. 그가 물리학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농부를 만
나서 상대성 원리에 대해선 혼자서만 일방적으로 몇 시간 동안 얘기 했다고 하자. 아마도 농부는 그가 나갔을 때 누군가 들어온 듯한 기본
이들 것이다.

이 속담은 '좋은 손님은 들어사면서부터 즉시 집안을 밝게 하지만 나쁜 손님은 나가면서부터 집안을 밝게 한다'는 것과 통한다. 당신도 이
와 같은 경험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성공의 절반은 인내심이다.  
유태인은 이 격언을 이렇게 이해한다.
'성공하는 데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인내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음을 가르쳐 준다'라고. 유태인은 지적으로는 솔직하지 못하
다. 유태인은 항상 호기심에 불타고 있어서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보려고 노력한다. '헤브라이'의 뜻은 '또다른 한편에 선다'는 뜻이다.

유태인은 질문을 비교적 많이 한다.

[유태인은 왜 그렇게 꼬치꼬치 캐묻지?]
[왜 그렇게 자세하게 캐물으면 안 되나?]
사실 유태인에게는 어떤 질문을 하면 그것은 다시 질문이 되어 돌아오기가 일쑤이다. 참을성 있게 하나하나 묻지 않고서는 성공하지 못한
다.

 성공의 문을 열려면 밀거나 당기거나 해야 한다.  
빌딩의 문이 자동이 아닌 경우에는 밀거나 당기거나 해야 한다. 성공의 문도 그저 앞에 서 있기만 해도 자동적으로 열리지 않는다. 인간이
성공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자기가 직접 밀거나 당겨야 한다.

삶의 지혜와 격언  
* 한 척의 배에는 한 사람의 선장만이 필요하다.

* 이미 좋은 지도자가 있거든 지도자가 되려고 하지 말라. 그러나 좋은 지도자가 없는 곳에서는 자신감 있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라.

* 세상은 둘 이상의 사람이 협력해서 만드는 것이다.

* 개가 두 마리 모이면 사자도 죽일 수 있다.

* 말은 수레를 끈다. 소도 수레를 끌 수 있다. 그러나 말과 소를 한 수리에 매어서 끌게 해서는 안된다.

* 신이 내린 것을 거절하는 것은 큰 죄이다.

* 마음은 신의 은총을 받고, 몸은 푸줏간의 은혜를 입고 있다.

* 신이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네가지 죄가 있다. (1) 같은 일에 대하여 몇 번이고 후회하는 것. (2) 같은 죄를 다시 반복하는 것. (3) 다시 한
번 되풀이하기 위하여 죄를 짓는 것. (4) 신의 이름을 모독하는 행위.

* 레스토랑에 들어가서는 되도록 웨이터쪽에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아라.

* 땅바닥에 엎드려 있으면 넘어지는 일이 없다.

* 너무 높이 오르지 않으면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일이 없다.

* 어떤 끈이라도 너무 세게 당기면 끊어진다.

* 무턱대고 멀리 가면 안된다. 돌아오는 길이 멀어지므로.

* 배가 고플때에는 노래하고, 상처를 입었을 때에는 웃어라.

* 술, 자신감, 반성, 섹스는 지나치지 않으면 득이 된다.

* 비싼 유리잔은 너무 찬 것을 넣어도 깨지고, 너무 뜨거운 것을 넣어도 깨진다.

* 너무 많이 있으면 부족함이 있다.

* 물고기가 낚이는 것은, 낚시꾼이나 낚시대 때문이 아니다.낚시 바늘에 붙은 미끼 때문이다.

* 법은 존경하되 재판관은 존경하지 말라.

* 쥐를 원망하지 말고 먼저 구멍을 막아라.

* 사태가 호전되지 않거든 기다려라. 더욱 나빠지는 것을 볼 것이다.

* 나쁜 짓을 할 때에는 남의 도움을 받지 말라. 그러나 좋은 일을 할 때에는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 인생은 마치 어더운 밤과 같다.

* 어두워지면 인간은 빛을 갈망하기 마련이다.

* 촛불을 앞에 들고 있어야지.뒤에 들고 있으면 소용이 없다.

* 속도가 필요한 때는 파리를 잡을 때 뿐이다.

* 시계는 일어날 시간을 알기 위해서 쓰여야지, 잠잘 시간을 알기 위해서 쓰여서는 안된다.

* 잠꾸러기는 이불을 덮고 사회에 살고 있는 곳과 같다.

*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계획하라.그리고 저승을 위해서는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고 계획
하여라.

* 무엇이 선인가를 아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선을 행하여야 한다.

*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처음엔 가시밭길이지만 결국은 평탄한 길로 들어서게 된다. 나쁜 일을 하는 것은 처음엔 평탄한 길이지만 곧 가시밭
길로 들어사게 된다.

* 사람이 죽어서 신 앞에 갔을 때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이 있다. 돈과 친구와 친척과 가족이 그것이다. 하지만 선행만은 가지고 갈 수 있다.

* 인간은 세 가지에 의해서 지탱된다. 지식과 재산과 선행이다.

* 어떤 오르막 길에도 내리막 길은 있게 마련이다.

* 천사의 장점은 결점이 없는 것이며, 단점은 더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장점은 결점이 있다는 것이다.

* 인간은 사람이 말하는 것보다 낮고,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높다.

* 천사도 두 가지 것을 동시에 할 수는 없다.

* 작은 불도 큰 것을 태울 수 있다.

*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것은 하나를 선택한 것이다.

* 하늘을 날고 있는 천 마리 새보다도 새장 속의 한 마리 새가 낫다.

* 1온스의 행운은 1파운드의 황금보다도 낫다.

* 행운이 찾아오는 데에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다.그러나 행운을 붙잡을 때에는 지혜가 필요하다.

* 신은 아버지이고 행운은 어머니이다.

* 지혜가 없는 사람에게 행운이 깃드는 것은 구멍 뚫린 자루에 가루를 담아서 짊어진 것과 같다.

* 건강만큼 귀중한 것은 다시 없다.

* 저녁밥을 먹지 않으면 잠이 잘 오지 않는다.

* 위장의 3분의 1은 먹을 것으로 채우고, 또 3분의 1은 마실 것으로 채우고, 나머지 3분의 1은 비워 두어라. 위장은 두뇌와 달라서 한없이 채
울 수 없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이 '당신은 당나귀이다'라고 말해도 상관이 없다. 두 사람이 그렇게 말하거든 걱정하라. 그리고 세 사람이 그렇게 말하거든 자신을
위하여 안장을 사도록 하라.

* 한 사람이 '당신은 지금 취했소'하거든 주의하라. 두 사람이 그렇게 말하거든 마시는 속도를 늦추고, 세 사람이 그렇게 말하거든 누워라.

* 술에 취한 사람이 물건을 팔았다고 해도 그 매매 행위는 효력이 발생한다. 술에 취한 사람이 물건을 샀더라도 그 매매 행위는 효력이 발생
한다. 그리고 취한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해도 그 행위는 마땅히 벌을 받는다.

* 브랜디는 고약한 심부름꾼이다. 위장으로 가라고 했는데도 머리쪽으로 간다.

* 알콜은 육체와 정신을 하나고 만든다.

* 세상에는 잘못 살고 있는 세 부류의 인간이 있다. 빨리 화를 내는 인간, 사람을 쉽게 용서하는 인간, 너무 완고한 인간이 그것이다.

* 인생이란 것은 현인에게는 꿈이요, 어리석은 자에게는 게임이요. 부자에게는 희극이요, 가난한 자에게는 비극이다.

* 현명한 사람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다.

* 보다 강한 사람은 감정을 억누르는 사람이다.

* 보다 풍족한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

* 남들에게서 사랑받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칭찬하는 사람이다.

* 살고 있어도 사는 맛이 없는 인생이 세가지가 있다. 첫째 남의 동정으로 사는 인간, 둘째 아내에게 속박당하고 있는 사람, 셋째 항상 육체
에 고통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