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와이어링 위아래 어디 - baiwaieoling wialae eodi

스피커케이블,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미국 오디오퀘스트(AudioQuest)의 Dragon Zero & Bass(드래곤 제로 & 베이스) 바이와이어링 스피커케이블은 기분이 얼얼할 정도로 새로운 세계를 필자에게 들려줬다. 값도 비싸다. 물린 스피커(B&W 802 D3)와 인티앰프(매킨토시 MA9000)를 합친 가격보다도 2000만 원 가량 더 비싸다. 이번 리뷰 글을 여느 때보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쓰려는 이유다.

개인적으로 오디오퀘스트의 바이와이어링 스피커케이블 리뷰는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해 7월 윌리엄 텔 제로 & 베이스(William Tell Zero & Bass)는 필자에게 바이와이어링의 존재 이유를 소리로 증명해줬다. 이 케이블 덕분에 고역용과 중저역용 스피커케이블은 반드시 동일 제품이어야 한다는 선입견도 완전히 깨져버렸다. 말 그대로, 평소 바이와이어링에 대한 생각을 제로베이스(zero base)에서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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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 Zero & Bass,

오디오퀘스트의 플래그십 스피커케이블

오디오퀘스트는 지난해 1월 CES를 통해 새 스피커케이블 시리즈 2종을 선보였다. 포크 히어로(Folk Hero. 민간 영웅) 시리즈와 그 상위 라인업인 미씨컬 크리처(Mythical Creatures. 신화 속 동물) 시리즈다. 미씨컬 크리처 시리즈에는 위부터 드래곤(Dragon. 용)과 파이어버드(FireBird. 불새), 썬더버드(ThunderBird. 천둥새) 모델이, 포크 히어로 시리즈에는 윌리엄 텔(William Tell)과 로빈 후드(Robin Hood) 모델이 포진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두 시리즈 모두 제로(Zero)와 베이스(Bass) 케이블로 또 세분된다는 것. 이는 두 시리즈가 모두 바이와이어링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즉, 제로는 풀레인지, 그러니까 단품 싱글와이이어링 스피커케이블로도 쓸 수 있지만 바이와이어링의 경우 고역을 담당하고, 베이스는 중저역을 담당한다. 가격도 제로와 베이스, 단품 케이블 2개를 합친 것과 똑같다.

새 미씨컬 크리처와 포크 히어로 시리즈의 핵심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1) 스피커케이블의 특성 임피던스(Character Impedance)를 제거하는 제로 테크놀로지(Zero Technology), 2) 접지 노이즈를 제거하는 GND(Ground-Noise Dissipation) 테크놀로지, 그리고 3) 이 두 기술이 각각 적용된 풀레인지/고역 케이블(Zero)과 중저역용 케이블(Bass)로 바이와이어링 조합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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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 Zero & Bass 바이와이어링 스피커케이블 외관

이번에 시청한 드래곤 제로 & 베이스 스피커케이블은 3m짜리다. 플랫하면서도 두툼한 케이블을 만져보면 의외로 딱딱하다. 각 케이블의 두 하우징(스플리터)을 자세히 보면, 좌우(L, R) 표시, 방향 표시와 함께 ‘Dragon Zero’와 ‘Dragon Bass’라고 씌어있다. 스피커 커넥터에 꽂는 두 단자(스페이드 플러그)에는 ‘SPEAKER’, 앰프 커넥터에 꽂는 두 단자(스페이드 플러그)에는 ‘AMP’라고 씌어 있다. 스피커 쪽 하우징 바로 밑에는 오디오퀘스트 상위 모델에 어김없이 들어가는 배터리팩 72V DBS가 달려있다.

이처럼 바이와이어링 2개 케이블이 완전히 분리된 점이 이번 드래곤 제로 & 베이스 케이블과 미씨컬 크리처 시리즈의 특징이다. 이에 비해 포크 히어로 시리즈는 앰프 쪽에서는 하나의 케이블로 시작, 스플리터를 지나고 나서야 2개 케이블(제로, 베이스)로 나눠진다. 물론 스피커 바인딩 포스트에 연결하는 단자는 고역용(제로) 한 쌍(+,-)과 중저역용(베이스) 한 쌍(+,-)으로 나눠진다. 한마디로, 드래곤 제로 & 베이스는 엄연히 독립된 두 개의 단품 스피커케이블을 바이와이어링용으로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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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 Zero 스피커케이블

드래곤 제로 스피커케이블은 독자적으로 풀레인지(싱글 와이어링)로 쓸 수도 있고, 드래곤 베이스 케이블(중저역)과 함께 고역 전용 케이블로도 쓸 수 있다. 베이스 케이블에 그라운드 노이즈를 제거하는 GND 기술이 투입됐기 때문에 제로와 베이스로 바이와이어링을 할 때 더욱 큰 효과를 낸다는 게 오디오퀘스트의 설명. 이에 비해 베이스 케이블은 GND 기술을 통해 RF(라디오 주파수) 같은 고주파 에너지를 제거하므로 단독(싱글 와이어링)으로 쓰는 것은 권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드래곤 제로는 기본적으로 음악 신호가 흐르는 도체에 단선(Solid) 형태의 은선과 동선, 쉴드에 카본을 쓴 스피커케이블이다. 배터리팩 72V DBS가 스피커 쪽 스플리터 부근에 매달려 있고, 구리 단자(바나나, 스페이드 플러그 선택 가능)와 선재(도체) 접합은 다른 오디오퀘스트 케이블과 마찬가지로 냉간 용접(cold welding)으로 이뤄졌다. 길이는 2.5m와 3m짜리가 준비됐다.

좀 더 들어가 보면, 도체는 플러스(신호선), 마이너스(리턴선) 모두 오디오퀘스트에서 PSS(Perfect Surface Silver)라고 명명한 은선과 PSC+(Perfect Surface Copper+)라고 명명한 동선을 함께 썼다. PSS는 오디오퀘스트 최상위 도체로, 바로 아래 모델인 파이어버드 제로보다 50% 더 많이 투입됐다고 한다. 이에 비해 썬더버드 제로와 포크 히어로 시리즈의 윌리엄 텔 제로는 PSC+ 선재만 쓴다. 한편 연선(Strand) 대신 단선(Solid)을 쓰고, 단선 표면을 매끄럽고 깨끗하게 마감했을 때(Perfect Surface) 음질이 더 좋아진다는 것이 오디오퀘스트의 주장이다.

이렇게 은선과 동선으로 이뤄진 선재의 직경은 4.73mm2를 보인다. 미국 전선 규격(AWG)에 따르면 이는 10AWG(5.26mm2)와 11AWG(4.17mm2) 사이의 굵기. 드래곤 제로와 베이스 케이블이 플랫하면서도 두툼한 것은 이러한 굵기의 선재(+신호선, -리턴선)가 나란히 달리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쉴드는 멀티 레이어 형태의 카본. 여기에 독자 개발한 카본 네트워크를 추가해 RF 노이즈를 열로 바꿔준다고 한다(NDS. Noise Dissipation System. 노이즈 제거 시스템). 오디오퀘스트에서는 고조파 하모닉스와 공간 정보를 담고 있는 로우 레벨 신호를 망가뜨리는 주범으로 RF 노이즈를 주목하고 있다. 72V 배터리 팩에 새로 RF 트랩(trap) 기술이 투입된 것도 이 때문이다.

배터리 팩은 원래 1) 케이블 인슐레이터(절연체)에 강한 DC 전압을 가해(바이어싱), 2) 강력하고 안정적인 전자기장을 만들고, 3) 절연체가 유전체(dielectric)로 변질되는 것을 막음으로써, 4) 인슐레이터로 인한 시간 및 위상 지연 같은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14년에 도입됐다. 배터리 팩에 DBS(Dielectri Bias System)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다.

끝으로 짚고 넘어갈 것은 미씨컬 크리처와 포크 히어로 시리즈에 새로 투입된 ‘제로 테크놀로지’(Zero Characteristic Impedance Technology)다. 오디오퀘스트에 따르면 스피커케이블에 고유한 특성 임피던스(character impedance)를 말 그대로 ‘제거’함으로써 케이블의 고역쪽 트랜지언트 특성과 저역의 다이내믹스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일종의 고정 값인 특성 임피던스가 정말로 제거될 수 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오디오퀘스트 수석 엔지니어 가스 파웰(Garth Powell)에 따르면 신호선(+)과 리턴선(-)을 각각 철저하게 쉴딩함으로서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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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 Bass 케이블

외관만 놓고 보면 저역용 드래곤 베이스 케이블은 DC 배터리 팩과 피복, 단자 등이 제로 케이블과 똑같다. 제로와 마찬가지로 PSS(은선)와 PSC+(동선)를 도체로 쓰고, 카본 쉴드와 네트워크를 통해 RF 노이즈를 제거하는 NDS 테크놀로지도 그대로 투입됐다. 하지만 제로 케이블은 단독으로 싱글 와이어링(풀레인지) 케이블로 쓸 수 있지만, 베이스 케이블은 오로지 바이와이어링 시스템에서 제로 케이블의 파트너로 투입, 중저역만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트리와이어링에서는 드래곤 베이스가 중역과 저역을 담당한다.

이는 베이스 케이블의 선재 지오메트리가 제로와 다르고, 위에서 잠깐 언급한 GND(Ground Noise Dissipation) 테크놀로지가 단독으로 투입된 것과 관련이 있다. 오디오퀘스트에 따르면 GND 테크놀로지는 원래 파워케이블의 접지 선재에 적용됐던 기술로, 접지 노이즈뿐만 아니라 RF나 EMI(전자기장 간섭) 노이즈까지 없애준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10kHz 이상의 오디오 대역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즉 앰프 출력 성분 중 고주파 에너지를 제거하기 때문에 베이스 케이블을 단독 싱글 와이어링으로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다시 짚어보는 바이와이어링의 음질적 이득

지난해 윌리엄 텔 제로 & 베이스 스피커케이블을 리뷰하면서 ‘스피커 바이와이어링’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바이와이어링(bi-wiring)은 2개의 케이블이 각각 스피커 고역(FH) 단자와 중저역(LF) 단자에 물림으로써, 고역과 중저역 신호가 한 케이블에 흐를 때 발생되는 인터모듈레이션(IMD. 혼변조)을 감소시켜준다. 외국 측정 결과에 따르면 중저역 케이블보다는 고역 케이블에서의 IMD 완화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바이앰핑(bi-amping)은 2개 케이블이 각각 스피커 고역과 중저역 단자에 점퍼선 없이 물리는 것은 바이와이어링과 동일하지만, 앰프도 고역용과 중저역용, 2채널이 동원되는 점이 다르다. 때문에 중저역 우퍼에서 발생하는 역기전력(counter electromotive force)으로 인한 폐해도 싱글 와이어링은 물론 바이와이어링 때보다 더 크게 줄일 수 있다. 싱글 와이어링은 고역과 중저역을 하나의 신호선(+)에서 동시에 보내기 때문에 역기전력 피해가 가장 크고, 바이와이어링은 싱글 와이어링보다는 역기전력 차단 효과가 높지만, 역기전력이 결국 케이블을 타고 ‘1채널’ 앰프로 들어가기 때문에 바이 앰핑보다는 그 효과가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오디오퀘스트의 제로, 베이스 케이블이 여느 바이와이어링 케이블이나 동일한 케이블을 2조 동원했을 때보다 체감상 음질이 나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에 그 핵심은 두 케이블 선재의 지오메트리가 다른 데다, 리턴선(-) 특성까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즉, 한 케이블 신호선(+)에 고역과 저역 신호가 모두 전송되는 것은 싱글 와이어링과 같지만, 트위터와 미드우퍼 보이스코일을 지나 앰프 쪽으로 되돌아가는 리턴선(-)이 각각 고역과 중저역으로 나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싱글 와이어링은 리턴선에도 고역과 중저역이 동시에 흐른다.

때문에 바이와이어링 케이블은 이론상 고역과 중저역 담당 케이블의 물성이 서로 다른 게 음질 면에서 유리하고, 이는 오디오퀘스트의 드래곤 제로 & 베이스 두 조합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GND 기술을 통해 접지 노이즈와 고주파 RF 노이즈를 제거한 베이스 케이블이 저역 전송에서 강점을 발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제로와 베이스 케이블의 선재 지오메트리를 다르게 설계한 것은 베이스 케이블의 중저역 리턴선에서 제 몫을 했을 것이 확실하다. 오디오퀘스트에서는 제로 케이블 2조로 바이와이어링을 할 경우에는 RF 노이즈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달에 인터뷰를 한 윌리엄 로우(William Low) 오디오퀘스트 CEO는 이에 대해 "제로 케이블을 2조 쓸 경우 와이드레인지가 겹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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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시청에는 소스기기로 린(Linn)의 네트워크 플레이어 Klimax DS, 인티앰프로 매킨토시(McIntosh)의 MA9000을 동원했다. 소스기기와 인티앰프는 오디오퀘스트의 Earth XLR 인터케이블로 연결했다. 스피커는 B&W의 802 D3. MA9000은 300W 출력의 솔리드 스테이트 인티앰프로, 디지털 입력단과 DAC이 내장됐지만 시청에서는 클라이맥스 DS의 내장 Katalyst(카탈리스트) DAC을 활용했다. 시청은 주로 룬(Roon)으로 타이달과 코부즈 스트리밍 음원을 들었다.

우선 요즘 자주 듣는 음악 2곡을 들어봤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베를린필을 지휘한 모차르트 레퀴엠 중 'Tuba Mirum'에서는 '이것이 바이와이어링의 신세계인가' 싶을 만큼 아주 단정하고 차분하며 깨끗한 음이 흘러나온다. 배경이 이렇게나 조용하면 음악 듣기가 이렇게나 편안해지나 싶다. 에사-페카 살로넨이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페르귄트 중 '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은 어디 하나 상처받지 않은 음, 순결하고 무구한 음들이 즐겁게 뛰어논다. 다이내믹스를 순간적으로 팍 터뜨려주는 맛도 대단하다. 큰 기대를 갖고 본격 시청에 들어갔다.

Jacintha - Moon River

Autumn Leaves

야신타의 날숨이 훅 밀고 들어온다. 녹음실 벽에 부딪히는 메아리 같은 잔향이 일품이다. 보컬 고음이 듣기에 좋다고 메모를 하는 순간, 무릎을 치고 말았다. 바로 '실버'였던 것이다. 이 순결하고 화사하며 거침이 없고 매끄러운 감촉, 예쁘게 다림질한 듯한 이 음의 감촉이야말로 지금까지 들어봤던 실텍과 크리스탈 케이블의 은선 케이블, 바로 그 느낌이었던 것이다. 피아노의 오른손 터치음은 똑 부러지고 잡내가 없다. 색 번짐은 1도 없고 흐트러지거나 맹한 구석도 없다. 음들이 자유롭게 난무하는 모습이 마치 자신들이 알아서 스피커에서 뛰쳐나오는 것 같다. 그러니 802 D3가 처음부터 사라질 수밖에. 10월 도루묵에 알이 꽉 찬 것처럼 음들이 탱글탱글 살아있다. 이렇게 이 곡에 푹 빠져 듣다 보니 어느새 다음 곡 'The Boulevard of Broken Dreams'까지 듣게 됐다. 리뷰를 하면서 이런 적은 거의 없었다.

Boyz II Men - Silent Night

Christmas Interpretations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보컬 4명의 위치가 잘 파악된다. 그만큼 사운드스테이지의 공간감과 음상의 레이어감이 뛰어나다. 4명이 합창을 하는 대목에서는 음수가 폭발적이라 할 만큼 많다. 그러면서 그 음들 사이사이에 공기가 꽉 들어찬 느낌. 이러다 보니 폭신한 소파에 앉은 것처럼 편안하고 안락하다. 이 곡이 끝나자 룬이 알아서 들려준 다른 곡도 그냥 듣게 됐다. R 켈리의 'Home for Christmas'다. 킥드럼이 시종 가슴을 저격하는 곡이다. 그러면서도 음들이 경직되지 않았고, 심지가 단단한데도 그 표면은 상당히 부드럽다. MA9000이 인티앰프인데도 무대가 앞뒤, 좌우, 위아래 가리지 않고 쫙 펼쳐지는 것은 결국 바이와이어링 스피커케이블 덕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Lamb Of God - Ashes of the Wake

Ashes of the Wake

고역과 중저역이 제 갈 길을 선명히 가면 이렇게나 조화로운 음, 자연스러운 음이 나오는다는 역설 아닌 역설에 흠칫했다. 그러고 보니 3웨이 4유닛의 802 D3가 마치 1웨이 풀레인지 스피커가 된 듯하다. 이 곡의 백미인 드럼 솔로에서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 인티앰프 한 대로 이런 음이 나올 수 있나, 싶다. 정확히 이해가 된 것은 아니지만 케이블의 특성 임피던스를 제거하면 이 정도 레벨이 되는지 다시 한번 감탄했다. 어쨌든 체감상 앰프에서 스피커로 음들이 그 어떤 열화도 없이 바로 꽂히는 것 같다. 은선이 들어간 스피커케이블인데도 저역이 묵직한 것을 보면 솔리드 은선 자체의 게이지도 굵은 것을 썼음이 틀림없다.

Nils Lofgren - Keith Don't Go

Acoustic Live

맞다. 지금은 풀레인지 스피커를 듣는 것 같다. 바이와이어링을 하니 풀레인지로 통한다는, 전혀 예상치 못한 체험을 했다. 기타와 보컬의 아래/위 차이도 확실하고, 보컬의 발음이 평소보다 분명하게 들리는 등 은선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지난해 들었던 포크 히어로 시리즈의 윌리엄 텔 제로 & 베이스와의 결정적 차이도 바로 이 음의 감촉이 매끄럽고 무대가 보다 탁 트였다는 느낌이다. 음과 무대의 색채감과 깨끗함도 몇 발자국 앞선다. 이어 자동 선곡된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Walk of Life'도 저절로 듣게 됐는데, 역시나 음들이 즐겁게 나온다. 억지로 앰프에 이끌려 나오는 그런 음이 아니다. 현장감이 대단한데, 드래곤 제로 & 베이스는 라이브 음원에서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Chick Corea(Return To Forever) - Sometime Ago/La Fiesta

Return To Forever

오래간만에 찾아 들은 곡이다. 역시나 디테일이 돋보인다. 음들이 여리고 작은데도 모두 펄펄 살아있다. 고역 정보가 손상이 안되니 좌우 채널 스테레오 분리도와 안 길이로 대표되는 공간감도 덩달아 살아난다. 이 모든 것이 음악 신호에 담긴 마이크로 디테일이니까. 이 곡에서는 무엇보다 플로어 노이즈가 거의 휘발된 점이 도드라진다. 스피커를 빠져나온 음이 아니라 그냥 악기가 제 목소리를 연주해 내는 것 같다. 계속해서 네트워크 회로가 없는 풀레인지 스피커, 저역의 단단함은 마치 밀폐형 스피커를 듣는 듯한 착각에 빠진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무대의 홀로그래픽한 면도 역대급 수준. 콘트라베이스가 어찌 이리 리얼하게 들릴 수 있는지, 또 드럼은 어찌 저 멀리 뒤로 빠져서 신나게 연주를 할 수 있는지 감탄, 또 감탄했다. 8분 25초 무렵에 등장한 여성 보컬은 비 그친 후 개인 맑은 하늘을 바라보는 듯했다. 상쾌하고 개운하다.

총평

신세계였다. 마음 한구석에는 '내가 도저히 쓸 수 없는 넘사벽 가격대의 스피커케이블'이라는 반발심이 계속 똬리를 틀고 있는데도, 한 번 길들여진 귀는 좀체 그 마력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그토록 냉정하게 시청기를 쓰려 했지만, 낯부끄러울 정도로 찬사 일색이 되어버린 까닭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드래곤 제로 & 베이스 케이블이 선사한 그 화사하고 선명하며 자연스럽고 리얼한 음과 무대가 생생하다. 고백컨대, 802 D3에서 이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오디오퀘스트 스피커케이블은 미씨컬 크리처와 포크 히어로 시리즈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드래곤 제로 & 베이스는 그 오디오퀘스트 2.0 시대의 맨 앞에 선 걸작이다.

※이 글은 2020년 1월 하이파이클럽에 실린 제 졸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