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국어교육과 - seouldae gug-eogyoyugg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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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교육과는 ‘국어교육’분야와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이하‘한국어교육’)’분야의 교사 및 연구자를 양성하고 국어교육과 한국어교육의 이론을 연구하는 학과이다.

국어교육과에서는 이론 연구와 실제 교육을 위해, 국어학과 국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인접학문의 배경 이론을 토대로 (한)국어 활동 이론의 기반이 되는 내용을 다루게 된다. 국어교육과에서 공부하고 연구하는 동안 다양한 (한)국어 활동의 양상과 이론에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며, 이를 통해 (한)국어가 우리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한)국어교육의 연구와 실천에 대한 사명감을 지니게 된다.

국어교육과의 졸업생은 주로 일선 중고등학교의 국어 교사나 언어교육원의 한국어 강사로 활동하거나 국어교육학 및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 분야의 연구자로서 각 대학의 국어교육과, 국어국문학과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 외 각종 연구기관, 교육행정기관 및 신문, 방송 등 언론기관에 종사하거나 기타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있어 가장 큰 선물이 된다는 것

사범대학 이유진

우리는 초・중・고등학교 12년을 거치며 매년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새로운 추억을 한 폭씩 쌓아나간다.
그 추억 속에 빠질 수 없는 ‘선생님’이란 기억의 요소는 나의 추억 한 폭의 성격을 좌우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서로 간 애정을 기반으로 한 ‘관심’이 오갔다는 것이 명확하게 떠오를 때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에 남지 않을까 싶다.
사람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진학한 국어교육과에서 공부해, 현재는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시는 이유진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울대 국어교육과 - seouldae gug-eogyoyuggwa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대학교 11학번,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교사 6년 차가 되는 이유진입니다. 현재는 교직 생활과 함께 동 대학원 19학번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기자 분과 학번으로는 동기라고 볼 수 있겠네요.(웃음)

국어교육과에 진학하신 계기와 과정이 궁금합니다.

국어교육과에 온 가장 큰 계기는 제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 선생님들이 다 국어선생님이셨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후 질문에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풀 기회가 있을 것 같아서, 입시 이야기로 방향을 틀어서 이야기를 드릴게요. 원래 학창 시절 언론계열을 꿈꾸기도 해 기자나 아나운서에도 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당시 사회과학 계열과 국어교육과의 진로를 고민하다가 언론 쪽에도 나아갈 수 있는 국어교육과를 택해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꼭 언론 계열 학과를 진학하지 않아도 방송계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는 생각을 했었고, 국어교육과 출신 아나운서분과 기자분들도 계시니까요.

대학에 입학하셨을 때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이나 목표가 있으셨나요?

‘중간은 하자’였습니다. 언제나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염두에 두고 뒤처지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죠. 항상 입학 때도 수능 점수와 내신으로 끊어서 결과를 내고, 서울대학교 전형도 2배수로 끊는 것을 보며 이 절반 안에는 들어가야 가겠구나 싶었어요. 목표를 항상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결국 대학 마지막까지도 반 안에 들어서 숨마쿰라우데로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입학 전에 대학생이 하는 커뮤니티를 잠깐 둘러보며 ‘대학생이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은 리스트’ 같은 내용의 게시물을 본 기억이 있어요. 학점을 잘 챙기기, 연애를 해 보기,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기, 평생 친구를 만들기 같은 항목들이 있었죠. 지금 보면 재밌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지만 꽤나 알찬 내용이었고, 신입생이 나름 목표로 삼을 만한 내용이지 않았나 싶어요. 1학년 때 만난 애인과 인연을 계속 이어오고 있고, 동아리에도 많은 정을 쏟아서 지금까지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답니다. 학점도 만족하고, 지금도 연락하는 친구들도 있는 제 자신을 돌아보면 ‘후회하지 않을’ 대학 생활을 보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더불어 언제 어디서든 삶에 있어서 밸런스를 잡고자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선배님께서는 학창 시절 어떤 학생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지방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왔어요.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 없는, 하지만 약간의 열등감을 지닌 학생이었습니다. 제가 살던 곳에서 공부를 곧잘 했지만, 제가 지닌 실력으로 서울에 진학할 수 있을까, 좋은 고등학교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항상 제 주위를 맴돌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열등감이 동력이 되기도 하고 무엇이든지 열정을 갖고 성취하려는 자세로 이끌었던 것 같아요. 장학금을 받고자 공부도 열심히 하고, 무엇이든지 이루어내려고 했거든요. 요약하자면 부정적인 열정맨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학창시절 언론과 국어교육 진학을 고민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 고민이 학부 시절에 계속 이어졌나요?

말씀드린 대로, 제 꿈은 언론 쪽 아니면 국어교사였어요. 그런데 막상 학교에 와서 보니 로스쿨을 진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래서 법학과 수업을 몇 개 들어보기도 했는데, 저에게는 조금 어렵게 느껴져서 깔끔히 포기했답니다. 이후에 아나운서 아카데미를 다녀보기도 하고, 기자 준비 스터디도 같이 해봤어요. 그런데 인턴 경험 기자 언니가 해주셨던 말을 듣고는 생각이 바뀌어서 고학년 될수록 국어교사가 되고자 하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고학년이 되어서 교육 실습을 다녀오고 나서 확실히 나의 길은 국어교사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답니다. 적성에 잘 맞았고, 애정을 갖고 들었던 교직 수업이 가장 재밌기도 했었고요.

그렇다면 교사라는 길을 선택하신 결정적인 계기는 교육 실습이었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어요. 기본적으로 저는 사람들과 함께 눈을 마주보며 관심을 주고받는 것을 굉장히 좋아해요. 실습을 나가니 아이들이 저를 바라보며 관심을 쏟아주더군요.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연예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학생들이 제가 진행하는 수업도 열심히 듣는 것은 물론이고, 옷을 무엇을 입고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등등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도 다 집중하는 것이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사실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던 여러 이유 중에 이목이 집중된다는 점에서 원했던 것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 같은 사람들의 관심이 교직에서 실시간으로 정말 잘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운 좋게 서울사대부여중에 학구열이 뛰어나고 친화력이 좋은 멋진 학생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저에게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다, 수업이 너무 재밌었다’ 같이 마음이 따뜻해지는 말들을 자주 해주곤 했어요. 교육 실습을 진행해보면서 교직이 나의 적성에 맞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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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가신다면 어떤 것을 가장 해보고 싶으신가요?

사실 하고 싶었던 것을 거의 다 이뤘어요. 굳이 더 열심히 해봐야 한다면 동아리에서 기타를 더 열심히 배우고 싶네요. 한때 인생에서의 밸런스를 잡는 것을 깊게 생각하다 보니 동아리에 다소 소홀했던 것 같은 부분이 있어요. 다시 돌아간다면 동아리 활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 싶습니다.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주요 경로인 교육공무원 임용후보자 선정경쟁시험(일명 임용고시)를 치러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해당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은 어떠셨나요?

임용고시는 공립학교 선생님이 되는 시험입니다. 먼저 필기를 볼 때 각자의 전공이랑 교육학 시험을 봅니다. 1차를 붙으면 수업 시연을 하고, 시연 후에는 면접을 치릅니다. 시연은 지도안이랑 실연이 있고, 면접은 구술을 하는 문제와 즉답하는 문제가 있어요.
저는 앞서 언급한 대로 교육 실습을 다녀와서야 교직이 내 길이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다른 친구들보다 준비가 늦었죠. 여기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합격 수기를 읽어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여러 수기들을 모아 책자로 만들어서 이를 정독하는 것으로 준비를 시작했는데요, 공통적으로 이 교재를 읽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한다 등의 생각을 정립할 수 있었답니다.

임용고시 준비 시절 힘든 부분을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꼭 임용고시가 아니더라도, 저는 학창시절 때부터 밸런스 잡는 문제를 언제나 고민해왔어요. 제 좌우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지덕체를 갖추자는 것인데요, 주변에서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공부 시기에 너무 공부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임용고시 준비 시절 때도 마찬가지로 언제나 운동을 병행했던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을 해요. 고등학교 때는 달리기, 농구를 즐겨 했고, 임용 시절 때는 포스코 체육관에서 스쿼시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죠. 시험을 준비하는 기간에는 머리를 정말 열심히 쓸 수밖에 없기에 몸 쓰는 일이 마음을 활기차게 해주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해줬던 것 같네요.

교직 첫 해에 인상 깊었던 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첫 담임 때의 여러 에피소드가 떠오르네요. 저는 첫 해에 대림중학교 발령이 났습니다. 대림중은 약 30퍼센트가량 넘게 중국 다문화 가정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는 학교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모국어 대상 국어교육을 4년 내내 공부해왔지만, 막상 교편을 잡고 나니 한국어 교육 현장이 펼쳐졌죠. 중학교 생활과 한국 생활이 처음인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님들도 가정 통신문을 전혀 이해하실 수 없는 경우가 빈번했어요. 또, 글자를 아직 못 쓰기에 한자로 써서 보여준 친구, 보이스 메시지로 궁금한 것을 녹음해서 여쭤보시는 학부모님들도 계셨어요. 교육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특수교육학, 다문화 이해도 배웠지만, 현실에서 마주해보니 지금껏 좁은 영역에서 생각을 해왔구나 하는 생각을 첫 해 때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현재 교사로 재직 중이신데, 교사로서 지니는 가장 큰 보람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원피스 대사 중에 ‘사람이 죽는 때는 사람들에게 잊혀졌을 때이다’라는 내용의 말이 있어요. 아직 교직 기간이 길지는 않지만, 아이들은 짧더라도 같이 했던 활동, 수업했던 시간들을 세세히 잘 기억해주더라고요. 졸업 후에도 저를 기억해서 찾아오거나 카톡을 보내오는 일들이 제일 큰 보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제 말에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줄 때 너무 감동적이에요. 제가 감명깊게 읽은 책을 같이 읽어준다든가 할 때 뭉클하기도 해요. 그리고 제가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 ‘마법의 이유진 선생님’이라는 시화가 있어요. 다른 수업시간에는 학생들이 졸려 하는데, 이유진 선생님 시간에는 아무도 자지 않아서 마법을 부린다는 내용의 귀여운 글을 써 주어서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마법’같은 수업의 비결이 궁금합니다.

첫 해 때부터 모든 학생이 한 마디, 한 글자라도 칠판이나 공책에 써보는 것을 목표로 삼았어요. 예를 들면 출석 부를 때 이름을 부른 후 ‘네’가 아니라 오늘의 기분, 느낌을 활용해 말하도록 하는 출석을 불러서 시작하여 모든 아이들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어요. 수업 중 활동 학습지는 제가 온전히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칠판에 큰 화면을 띄우고 학생들이 쓸 수 있게 해주었죠. 제가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만큼 학생들도 관심을 받고 싶어한다고 생각을 해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답니다. 이것이 제 수업의 장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싫어하는 친구들도 물론 있었지만 나중에는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감동적인 기억으로 남기도 했습니다.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에 정신적, 체력적으로 힘든 지점이 없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 부분을 극복할 수 있는 과정이나 계기가 궁금합니다.

항상 교사로서의 자아와 또 다른 이유진의 자아를 분리하는 균형을 고려했습니다. 직장인 밴드를 하거나, 지금은 폴댄스를 열심히 해오고 있어요. 교사로서가 아닌 좋아하는 음악, 취미를 배우는 ‘나’ 자신을 설정하는 것이 인생 전반에서 건전하고 좋은 것 같아요. 사회 여러 활동을 통해 굳이 학생과의 관계를 넘어, 다른 직장, 나이대의 사람들과 교류를 해보면서 감정과 체력 면의 소모를 완화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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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은사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꿈도 선생님들의 영향을 받았다 보니 엄청 많이 계십니다. 다양한 측면으로 기억에 남는 분들이 많이 계시죠(웃음). 제게 있어서는 제일 최악도 국어, 최고도 국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국어 선생님은 별명이 ‘책 읽어주는 남자’셨어요. 수업시간에 자습서를 말 그대로 읽어주십니다. 저희는 이를 받아 적고, 질문을 드리면 그건 친절하게 받아주신 기억이 없어서 특이한 방향으로 기억에 남아 있네요.
가장 기억에 좋게 남으신 분은 제가 아직도 형광펜으로 글을 읽는 버릇을 들게 해주신 분이십니다. 글을 짚어나가며 같이 중요한 부분, 인상적인 부분을 찾아 밑줄을 긋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셨어요. 그 방법을 아직도 이어오고 있답니다. 제가 교단에 서서도 학생 친구들에게 독서 시간에 기억에 남거나,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을 찾아보라는 등 응용하고 있는 저의 핵심적인 수업기술을 가르쳐주신 분이십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먼저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아준 학생은 첫 해 담임을 맡았을 때, 스승의 날 기념으로 그림을 그려준 친구인데요, 저에게 너무 감동적인 말을 많이 해주었어요. 선생님을 중1에 처음 만나고 계속 알게 되었다는 점이 대림중학교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이라고 하는 등 가슴이 따뜻해지는 말들을 해준 것이 기억에 남아요. 그림 옆에 돌려보면 편지도 조금 써준 고마운 친구랍니다.
그리고 올해 만났던 학생 중에 문제 행동이 다소 많았던 친구가 있어요. 다른 학교 체육관을 몰래 들어가 절도하는 등의 일로 경찰서에 갔던 경험이 있어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연도에 코로나로 인해 어차피 많이 안 오는데도 불구하고, 출석 정지를 받아 어영부영 흘러 간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여러 사유로 저와는 직접적 마찰은 없었던 것 같아요. 상황이 상황인지라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많지는 않지만, 세월이 잘 흘러 모난 학생도 모가 깎여 둥글둥글한 학생이 될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진행하신 수업 중에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나요?

교과서에 실린 ‘동백꽃’을 읽고 줄거리랑 감상문을 쓴 다음에, 모둠의 내용에 알맞게 개사를 해보고 제작물을 만든 수업이 기억에 남습니다. 음악과 기술을 연계해서 음악에서는 노래, 기술가정에서는 ucc 만들기를 나누어서 진행했어요. 학생들이 자기들 손으로 직접 작업해야 하니까 더 집중하고 호응도가 높았어요. 직접 개사를 해보고, 음악 시간에 노래를 녹음하고, 뮤직비디오를 찍는 ‘PD가 되어 본’ 셈이니까요. 예를 들어 어떤 모둠에서는 점순이랑 동백꽃에 폭 쓰러지는 것을 애정 신으로 마무리하거나, 감자를 주는 장면을 바탕으로 트와이스 노래 가사인 ‘시그널 보내’를 ‘감자를 보내’로 개사한 내용도 참신했던 것 같아요. 마침 해당 학년이 자유학기제였기에 가능했던 것 같네요.

학부 시절부터 현재까지 영향을 주는 인상 깊었던 수업은 무엇이었나요?

체육 쪽 교양 유도 수업을 들었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수업 내용이 체력 단련을 하고, 준비운동으로 강당 몇 바퀴를 뛰고 엎어치기 몇 번 하는 등 몸을 열정적으로 썼던 것이 가장 기억납니다. 그리고 현재 남자친구를 만났던 ‘언어의 세계’ 수업도 기억이 납니다. 그 수업에서 ‘아, 나는 국어나 언어를 참 좋아하는구나’하는 적성과 흥미를 확인할 수 있었죠. 나만의 암호 만들기 이집트 상형문자 해석하기 같은 참신한 퀴즈 형식의 수업이 많았어요. 여기서 저도 퀴즈 형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려는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수업 시간에 퀴즈로 진행하는 것이 독특한데, 어떤 방식으로 구성하셨나요?

저는 꽃을 좋아하는데요, 그래서 설명 방식을 수업하면서 귀화식물에 대한 설명문을 찾아 함께 읽어봤어요. 내용이 주로 이 식물은 어떤 경로로 들어오고 어디서 찾을 수 있고 등등의 내용이 교과서에 부합하는 설명 방식과 함께 잘 나타나 있어요. 인과, 예시 같이 말이죠. 이에 더해서 꽃 퀴즈를 냈었는데, 학생들은 아마 알쏭달쏭했을 것 같아요. 사진과 설명을 주고 이 꽃을 설명할 방식을 고민해보고 이 꽃은 무엇일까 함께 맞혀보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날씨가 따뜻할 때 학생들과 꽃 사진을 같이 찍으러 나들이를 가기도 했고요.

국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지니는 가장 큰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국어는 학생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문학 수업의 목표는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과 세계를 이해하는 눈을 넓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삶에서 많은 것을 얻어가며 느끼고, 쓰기도 하고 말도 해 볼 수 있죠. 문법은 정확한 언어 생활을 넘어서서 언어 생활을 성찰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며, 체계를 갖고 있다는 점을 발견해나가 사고력 증진 측면에서도 좋다고 생각해요. 이 외에도 모든 삶 전반에는 국어가 안 묻어 있는 곳이 없는 것 같아요. 읽든 쓰든 생각하든 느끼든 모든 삶에서 국어가 묻어 있기 때문이죠. 각 영역에 맞게 나름대로 목표를 세워서 학생들이 유용하고 뜻깊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배님의 향후 계획과 목표가 궁금합니다.

단기적으로는 현대 문법 전공 대학원 석사과정에 다니고 있어, 졸업을 어서 하고 싶네요. 그리고 지금은 중학교에 6년째 근무를 하고 있지만, 고등학생들도 가르치고 싶어요. 중, 고등 각각 저만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임용고시와 대학원 공부할 때는 굉장히 깊게 배우는 편인데, 중학교에서는 다소 쉽고 얕은 내용을 가르치다 보니 고교 교사에 관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나아가, 저는 사람들의 관심과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수업 노하우가 점점 쌓인다면 EBSi쪽으로도 생각을 해보고 있어요. 교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장학사, 수석교사. 교장, 교감으로 나아가는 다양한 계획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있는 중이에요. 아마 어느 순간 제 인생의 길을 이끌었던 교육 실습처럼 무언가가 저를 흔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학생들이 진로를 선택하는 데 있어 추구해야 할 삶의 가치나 기준이 있다면 무엇을 말씀해주시고 싶나요?

자신이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좋아하지만 잘 못할 수도 있고 잘하지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어요. 여기서 균형이 중요해요. 저는 국어교사 적성이 잘 맞다고 생각한 것도 사람들과 함께 관심을 주고 받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제가 잘한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말하는 능력이었고요. 여기서 균형을 잘 이루다 보니 국어교사의 길을 택하게 되었죠. 어찌 되었든 결국 좋아하는 것은 잘하게 되고, 잘하는 것은 좋아하게 될 것은 확실해요. 그렇게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다 보면 결국 균형을 찾게 되겠죠?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질문을 듣고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다른 고교 친구나 또래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생각났습니다. 꼭 여러분들이 모두 후회하는데 시간을 많이 안 보냈으면 합니다. 그때가 최선이었을 것이에요. 과거의 나가 최선이라는 말이에요. 저는 후회한 시간도 많고, 항상 열등감 같은 것이 있어 왔던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사실 과거의 나는 최선의 삶을 살아왔을 것이고 뒤돌아보면 다 방황했던 시간들조차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항상 최선이었을 것이에요. 후회하지 말고 앞을 내다보며 균형을 잘 잡는 지덕체를 잘 갖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장효준 사진 장효준, 이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