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 들개 새끼한테 어떻게 하라 - molla deulgae saekkihante eotteohge hala

지난 1월 중순 서울 모처에서 데뷔를 앞둔 그룹 ‘제주탠져린즈’의 팬미팅이 있었다. 이토록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연습생은 EBS 펭수 이후 처음이다. 멤버들의 현장 사진과 MBTI 등 개인정보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뜨겁게 달궜고, 마침내 ‘데뷔 꽃길’을 밟는 서울투어 데뷔 1호가 탄생했다. 지난해 11월18일 길거리 캐스팅으로 이들을 발탁해 엄격한 트레이닝을 거쳐 데뷔까지 이끈 귤엔터테인먼트의 구낙현 대표로부터 풀 스토리를 들었다.

몰라 들개 새끼한테 어떻게 하라 - molla deulgae saekkihante eotteohge hala

지난 1월 팬미팅 차 상경한 제주탠져린즈 멤버들과 구낙현 대표를 만났다. 멤버들의 이름은 귤 족보를 보고 지었다. 김영민 기자

■황금빛깔 금배, ‘귤엔터’의 서막

구낙현씨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해 “집에는 거의 안 붙어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금배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머니가 동네 산에서 고양이 밥을 주시는데 어느 날 숨붕숨붕 밥이 줄더래요. 길고양이가 늘었겠지 했는데 순박하게 생긴 황색 강아지가 있었어요. 불쌍한 자식 주인이나 찾아주자, 칩을 확인하려고 목뒤를 만졌더니 그만 배를 홀라당 까버리는 거예요. 영업을 한 거죠(웃음).”

구조 후 한 차례 파양당한 누렁이를 ‘내 강아지인가보다’ 하고 집으로 들였다. 2018년 여름에 만난 인생 첫 반려견 금배. “이갈이가 있을 수 있고 활동량이 많이 필요하다”는 점잖은 가이드 뒤에는 “엄청난 액션”이 동반된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아침저녁 산책을 해도 금배는 더 놀아달라고 했다. 긍정적으로 기운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장애물 경주의 일종인 어질리티에 도전했다. 승마의 마장마술처럼 핸들러와 반려견의 팀워크가 중요한 경기다. “장애물을 하나하나 성공하는 동안 교감이 쌓이는 게 느껴졌다.” 금배는 3개월 만에 나간 대회에서 초보 부문(비기너2 레벨) 1등을 차지했다. 작년 3월 금배네 세 식구는 3년을 예정하고 제주도로 이주했다.

몰라 들개 새끼한테 어떻게 하라 - molla deulgae saekkihante eotteohge hala

지난 11월 길거리 캐스팅되어 데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탠져린즈 멤버들. 아트레이블 스튜디오 제공

“금배 아니었으면 생각지도 못했을 일이에요. 매일 저녁 늦게 퇴근하는 게 금배한테 미안했거든요. 인간보다 아주 짧은 삶을 살다 가는데 ‘이렇게 일만 하다가 보낼 순 없다. 더 넓은 세상을 함께 경험해보자’ 했죠.”

지난해 11월18일, 여느 날처럼 금배를 앞세운 아침 산책길이었다. 목줄도 없는 꾀죄죄한 강아지가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홀린 듯 쫓아간 곳에 쓰레기를 장난감 삼아 놀고 있는 7마리 강아지가 있었다. 발톱이 빠지거나 부상을 입은 녀석도 있었다. 묶여 있는 성견들의 상태도 온전치 않았다. 중성화 수술을 받지 않고 방치된 개와 들개 사이에서 태어난 일곱 꼬물이가 자꾸 눈에 밟혔다. 마침 시청 직원이 다녀간 상황. 보호소로 옮겨진 유기견은 일정 기간 입양되지 못하면 안락사 처리된다.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은 개 주인은 쉽게 소유권을 포기했다. “단, 다시 돌려주면 안 된다”는 조건이었다.

몰라 들개 새끼한테 어떻게 하라 - molla deulgae saekkihante eotteohge hala

하루 빨리 가족을 찾아주고 싶은 마음에 뚝딱 제작한 ‘제주탠져린즈’의 첫 홍보 포스터. 귤엔터테인먼트 제공

■과몰입을 부른 반려견 데뷔 프로젝트

‘전격 반려견 데뷔 준비 중! 제주탠져린즈, 언니들의 심장을 저격하러 왔다.’

귤모자(실은 당근!)를 쓰고 망토를 두른 일곱 강아지의 데뷔 홍보 포스터는 바로 다음날 완성됐다. 한라봉, 풋귤, 황금향, 천혜향, 레드향, 금귤, 영귤. 이름은 귤 족보를 참고해 지었다. 포스터가 SNS에 배포되자마자 뜨거운 응원이 쇄도했다. 탠져린즈의 데뷔를 열렬히 바라는 랜선 누나들의 ‘과몰입’이 판을 점점 키웠다. 천혜향과 영귤 사진을 올리면 ‘유닛 활동 가나요?’라는 반응이 나왔고, 멤버별로 “픽미픽미”를 외치는 팬이 생겼다. 문자 그대로 하루아침에 구씨는 귤엔터테인먼트(귤엔터)의 대표가 됐고, 연습생들의 배변 및 사회화 트레이닝을 맡은 금배는 이사로 승격됐다.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전 회장과 보아 이사 못지않은 라인업의 세계관이 구축됐다.

몰라 들개 새끼한테 어떻게 하라 - molla deulgae saekkihante eotteohge hala

▲천혜향 : “동그란 눈과 펄럭이는 덤보 귀, 본투비 아이컨택의 귀재, 어디있지? 찾아보면 언제나 바로 당신 곁에. 자다가도 눈 마주치면 꼬리 흔들며 다가오는 스위트 보이.” 아트레이블 스튜디오 제공

광야에 우뚝 선 SM과 달리 현실 금배네는 아수라장이었다. 연습생들의 대변에서 기생충이 사라지고, 집사들이 더 이상 소변에 젖지 않은 베갯잇에서 눈을 뜨는 날, 작은 원룸에도 평화가 깃들었다. 예방접종을 하고 영양상태가 좋아진 연습생들은 실내외 배변도 잘하는 의젓한 강아지로 자라났다. 그사이 풋귤이와 금귤이는 성공적으로 데뷔를 완료했다. 슬슬 각 멤버의 개성도 드러났다. 구씨는 이를 놓치지 않고 MBTI를 패러디한 ‘멍BTI’를 분석해 적극 홍보에 반영했다. 조용하고 엉뚱한 매력의 한라봉, 놀 땐 놀고 잘 땐 자는 계획형 인재 레드향, 눈 마주치면 꼬리 흔들며 다가오는 ‘스위트보이’ 천혜향, 고창석 배우 닮은꼴로 소문난 황금향, 화려한 리액션의 골목대장 영귤의 명성이 높아갔다. 황금향이 부상에서 회복하자 귤엔터 식구들은 서울 팬미팅 채비에 들어갔다. ‘넓은 물에서’ 한시라도 빨리 데뷔하기 위해서였다.

몰라 들개 새끼한테 어떻게 하라 - molla deulgae saekkihante eotteohge hala

▲레드향: “아기사슴같은 롱다리와 디즈니 눈. 놀 땐 놀고 잘 땐 자는 계획형 인재. 사람무릎 좋아하는 애교쟁이 무릎멈. 귀를 점점 들어올리는 중!” 아트레이블 스튜디오 제공

■한국의 기괴한 품종견 집착

반짝이는 기획력과 놀라운 추진력 덕분에 구씨는 ‘대체 뭐하던 사람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는 아이들의 프로필 사진을 근사하게 찍은 것도, 아이돌 콘셉트를 따온 것도 다 빠른 입양을 위한 고육책이었다고 말했다.

“탠져린즈 아이들 보면 아시겠지만, 사실 그렇게 예쁜 아이들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활동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들이 왜 밖에 있었대요’라는 얘기도 들었는데, 제주도에 이런 애들 수두룩하거든요. 이런 강아지들이 문제가 있거나 더러워서 밖에 있는 게 아니고, 여러분의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당신의 집에 있는 게 더 자연스러운 생명이라는 걸 잘 전달하고 싶었어요.”

천진난만한 ‘시고르자브종’(시골잡종) 강아지 사진은 언제나 환영받는다. 그러나 15㎏ 이상 자라면 더 이상 그 애칭으로 불리지 않는다. 중대형 ‘믹스견’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금배의 종을 묻는 질문에 “믹스인 거 같아요”라고 하면 떨떠름해하는 사람들을 맞닥뜨리면서 구씨는 우리 사회의 품종견 신봉 문화를 실감했다. 같은 유기견이라도 품종견과 믹스견을 달리 취급하는 현실을 두고 구씨는 “기괴하다”고 했다.

몰라 들개 새끼한테 어떻게 하라 - molla deulgae saekkihante eotteohge hala

▲영귤: “동그란 몸과 얼굴, 걸어다니는 동그라미. 매력적인 주근깨와 왕발. 넘치는 텐션과 화려한 리액션의 소유자. ENFP 활발한 골목대장.” 아트레이블 스튜디오 제공

“영귤이를 보고 ‘골든레트리버 같다’고 많이 말씀하시는데 전 그걸 칭찬이라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품종견 같다는 게 칭찬이 되면 안 되잖아요. 마치 비품종견은 비정상적이거나 안 좋은 상태라 표현되는 것 같으니까요.”

구씨가 반려견 훈련사 시험을 준비할 때, “보더콜리나 셸티(셰틀랜드시프도그) 같은 똑똑한 강아지를 빌려서 하라”는 조언이 있었다. 하지만 구씨는 금배와 팀을 이뤘고 보란 듯이 자격증을 취득했다.

■유기견 확산의 악순환 끊어야

귤엔터의 또 다른 식구 김윤영씨가 햇님이 얘기를 들려줬다. 햇님이는 보호소 구조대를 피해다니는 와중에도 좋아하는 수컷을 찾아가는 순애보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런 사연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흔한 들개 한 마리에 지나지 않는다.

“들개 하면, 위협적이라 포획해 처분해야만 하는 존재로 묘사되거나, 포인핸드(전국 보호소의 유기동물 입양 플랫폼)에 올라왔다가 금세 안락사되는 공고번호로 남거든요. 저희가 이야기를 부여해서 기록하면 그들을 달리 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시작한 활동이에요.”

몰라 들개 새끼한테 어떻게 하라 - molla deulgae saekkihante eotteohge hala

▲한라봉: “무슨 색이든 잘 받는 패션퍼피 블랙멈. 눈에 별 박은 것 같은 빛나는 까만 눈. 조용하고 엉뚱한 매력. 손을 잘 쓰고 학구열이 높은 모범연습생. INTJ 추정 강아지.” 아트레이블 스튜디오 제공

들개에 대한 인식을 바꿔보고자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스토리를 올리는 ‘들개 아카이브’ 계정을 만들었다. 매년 전국에서 10만마리 이상의 유기동물이 보호소를 통해 구조되지만, 절반은 가족을 찾지 못해 안락사 혹은 자연사한다. 구씨는 최근 제주에서 들개를 유해동물로 지정해 총기 사용 포획을 논의 중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제주도 내 들개는 2000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뭍에서 온 관광객들이 유기하고 간다는 ‘괴담’도 있지만, 구씨가 지켜본 바로는 마당에서 묶어 키우던 개가 탈출하거나 목줄이 끊어진 경우가 많았다. 평소 산책을 하지 못하고 묶여 있으니 길을 몰라 헤매고, 들개를 만나 길에서 새끼를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포인핸드에 저희 동네에서 발견된 흰색 진도 믹스견 사진이 올라왔어요. 어르신들이라면 포인핸드를 모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제가 전단을 만들어 동네에 붙였는데, 전화가 왔어요. ‘목줄을 보니 내 강아지 같은데 어디서 찾을 수 있느냐’는 어르신이었죠.”

‘설마’ 하면서 붙인 전단 덕분에 보기 드물게 ‘귀가 처리’된 이 사례를 통해 구씨는 온라인에 취약한 어르신들에게는 반려견 인식표나 보호자 연락처가 기재된 목걸이가 소소하지만 큰 안전장치가 될 수 있음을 실감했다. 무작위 교배를 막는 마당개 중성화 수술 지원사업을 어르신들에게 널리 알리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몰라 들개 새끼한테 어떻게 하라 - molla deulgae saekkihante eotteohge hala

▲데뷔3호 황금향(활동명: 창석): “잘 먹음. 속 편한 스타일. 고창석 배우 닮은꼴로 유명세를 떨치며 고창석 배우님 본인까지 등판시킴. 묶여있는 큰 개들 간식을 주워먹다 물려 골절상 입었으나, 수술 후 무사히 회복 중! 보고 있으면 웃음나는 행복전도사.” 아트레이블 스튜디오

■3호 데뷔견 ‘창석이’

귤엔터는 “반려견과 입양자의 행복한 반려생활을 위해” ‘반려견 전속 계약서’를 만들었다. 산책, 교육, 중성화 수술 등 관리에 대한 의무를 꼼꼼히 기재했다. 무엇보다 “무례한 표현을 쓰지 않기 위해” 애썼다.

“기존 단체 입양 양식을 보면 이성애자 정상가족을 기준으로 질문이 구성되거나 결혼하지 않은 동거가구, 1인 가구에게만 수입증명이나 부모와의 통화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가족 중에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입양 자격이 안 되는 곳도 있었는데, 소수자를 포함해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는 방법을 찾고 싶었어요. 저희는 입양을 원하시는 분이 생명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중점적으로 봅니다.”

몰라 들개 새끼한테 어떻게 하라 - molla deulgae saekkihante eotteohge hala

지난 1월20일 서울 종로구의 애견동반카페 ‘슬로우 포레스트’에서 만난 구낙현씨는 “탠져린즈 멤버들이 데뷔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입양이 힘든 믹스견도 잘 살 수 있다는 ‘증명’이 될 것”이라며 “동물권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소망도 전했다. 김영민 기자

구씨는 현재까지 3장의 전속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배우 고창석씨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데뷔를 응원해준 ‘황금향’이 세 번째로 연습생 꼬리표를 뗐다. ‘창석(脹奭)’이라는 정식 활동명도 얻었다. 한라봉(여·7㎏)은 귤엔터 동작지부에 임시 소속돼 데뷔 준비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천혜향(남·7.8㎏)도 서울에서, 레드향(여·7㎏)과 영귤(여·7.8㎏)은 제주에서 데뷔를 위한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탠져린즈의 접종과 치료에 도움을 준 트레져진도(진도 및 믹스 유기견 입양 단체)와 함께 멤버들의 해외 진출도 염두에 두고 있다.

몰라 들개 새끼한테 어떻게 하라 - molla deulgae saekkihante eotteohge hala

‘국내 최초 강아지 아이돌’ 제주탠져린즈 멤버들. 김영민 기자

이번 데뷔 프로젝트(인스타그램 @imkeumbae·트위터 @jeju_tangerines) 를 통해 구씨는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났다. 팬미팅 공간을 기꺼이 내어주고 프로필 사진을 찍어주며 사료와 배변패드, 우유를 보내주면서 시골강아지의 입양 레이스에 응원을 아끼지 않은 많은 사람들. 그 애정과 더불어 구씨의 세계도 확장됐다. 경차에 온 가족을 태우고 무리해서 서울행을 감행한 이유도 “시골잡종이라 불리는 모든 개들이 더 나은 삶을 사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몰라 들개 새끼한테 어떻게 하라 - molla deulgae saekkihante eotteohge hala

SM에 보아 이사가 있다면, 귤엔터에는 금배 이사가 있다. 연습생들의 트레이닝을 담당한 의젓한 선배 금배. 아트레이블 스튜디오

이 유쾌한 도전은 인터뷰 내내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의젓하게 곁을 지킨 한 반려견으로부터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금배 이사에게 협조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세상에 좋은 개는 정말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