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집정부제 나라 - iwonjibjeongbuje na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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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혁을 둘러싼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원집정부제(Double Executive)가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이원집정부제를 낯설어 하는 국민들이 많지만 이미 우리나라 정부형태에는 이원집정부제적 요소가 있다. 대통령제이면서 국무총리를 둔 것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제 · 내각제 절충 혼합정부

우리나라에 이원집정부제가 소개된 것은 1980년이다. 유신체제가 무너진 뒤 개헌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헌법학자 김철수 교수가 '권력분산형 대통령제'라는 명칭으로 처음 소개했다.
반(半)대통령제, 신대통령제, 제어(制御)된 내각제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요소를 절충한 일종의 혼합정부이다. 이원집정부제는 평시에는 내각제처럼 운용되다가 비상시에는 대통령제처럼 운용된다. 평시에는 수상을 수반으로 하는 내각이 행정권을 행사하며 의회해산권이 있고 입법부에게 책임을 진다. 그러다 비상시에는 입법부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 대통령이 수상 및 각료의 임면권과 비상대권(또는 국가긴급권)을 갖고 행정권을 전적으로 행사하게 된다.

이원집정부제의 대표적인 형태는 드골 헌법하의 프랑스 제5공화국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원래 이원집정부제는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발달했고 오스트리아, 핀랜드, 아이슬랜드, 아일랜드 등이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원집정부제의 기본원리는 첫째,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은 입법부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다. 대통령은 국가비상시에 비상대권을 발동, 직접 행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둘째, 내각은 내각불신임권을 갖고 있는 입법부에게 연대 책임을 진다. 수상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입법부의 동의를 받아 임명해야 하고, 입법부가 내각을 불신임하면 대통령은 입법부를 해산할 수 있다. 셋째, 국가비상시에는 대통령의 권한이 확대되고 수상의 권한이 축소된다.

비상시엔 대통령 권한 확대…안정적 위기관리 장점

이원집정부제의 특성은 권력분산체제라는 점에 있지 않고 유연한 가변적 체제라는 점에 있다. 평시에는 내각제처럼 운용되어 입법부와 정부의 대립에서 오는 정국불안을 막을 수 있다. 그러다 비상시에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해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위기를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장점은 동시에 약점이 되기도 한다. 대통령이 국가 위기를 내세워 비상대권을 발동해 독선적으로 국정을 운영해도 입법부나 내각이 이를 효율적으로 견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국민의 대표기관인 입법부의 권한이 축소 제한되어 국민주권주의에 충실하지 못하고 독재화할 위험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직접선거로 선출되는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력을 주었던 바이마르 공화국의 이원집정부제를 들 수 있다. 대통령은 국가긴급권, 수상임명권, 의회 해산권, 국군통수권을 지닌 국가원수였다. 입법부는 정부불신임권이 있었으며 강력한 입법권을 가졌다. 그러나 히틀러가 수상이 된 뒤 수권법(授權法)을 통과시켜 대통령제를 총통제로 대체시키고 국가 원수가 됨으로써 바이마르 공화국은 독재국가가 되고 말았다.

프랑스 제5공화국의 이원집정부제도 내각제 요소를 채택하면서 수상 임명권과 수상의 제청에 따른 각료 임명권, 법률안 거부권, 하원 해산권 등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한을 주었다. 또 중요한 법률안에 관한 국민투표 실시와 비상대권을 수상 동의 없이 행사할 수 있는 등 대통령은 지위의 장기성, 불가침성, 무책임성을 바탕으로 통치했다. 수상은 정부의 활동을 지도하고 행정 각 부 및 군대를 지휘감독하고 대통령이 정한 정책을 시행하고 이에 대해 입법부에 책임을 지도록 했다. 대통령 권한이 막강하고 수상 권한은 약하며 입법부의 지위와 권한도 약했다. 정부의 안정성과 능률성을 존립근거로 내세운 이런 집행부제의 이중 구조를 오를레앙형 내각제라 불리기도 했다.

실질적으로 대통령제보다 내각제의 성격을 더 많이 갖고 있는 이원집정부제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아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그 대통령이 임면권을 갖고 있는 총리 사이에서 어떻게 권력분산이 가능하겠는가. 권력분산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역시 국민이 뽑은 국회 사이에서 이뤄져야 한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충실하도록 만드는 것이 올바른 권력분산이다. 나아가 국민을 통치(government)의 수혜 대상이 아니라 협치(governance)의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분권과 자유의 취지에도 맞는 것이다.

◎ 손혁재 교수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성공회대 NGO대학원 교수로, 방송사 진행자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 외부 칼럼은 국정브리핑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 권한 더 강해질 수도

국민회의와 자민련 사이 합당론의 이면에는 ‘내각제 개헌 시기 조절’이라는 뜨거운 감자가 숨어 있다. 합당론자들은 올 연말로 예정된 내각제 개헌 약속을 모양 좋게 늦추려면 양당이 한 몸이 되는 것이 낫다고 본다. 하지만 개헌 시기말고도 양당 사이에는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있다. 내각제 형태다. 지금은 개헌 시기 논쟁에 밀려 있지만, 이 문제는 머지않아 정치권 최대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현재 자민련이 주장하는 내각제 형태는 독일식 순수 내각제다. 의회에서 선출하는 대통령은 영국 국왕처럼 상징성만 지니고, 국정 운영의 전권을 의회 다수당 출신 총리에게 맡기자는 것이다.

이에 반해 국민회의는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 제도는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이 외교·국방 등 외치를 담당하고, 의회 다수당이 추천하는 총리가 내정을 관할하는 권력 분점의 한 형태이다. 이미 자민련 박태준 총재가 내각제 대안 가운데 하나로 거론해 주목되고 있는 이원집정부제는, 90년 3당 합당 때도 대통령제의 대안으로 유력했던 인기 메뉴다.

프랑스 대통령, 의회 해산해 ‘동거’ 파기 가능

그렇다면 프랑스의 이원집정부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인가? 이 제도의 역사는 58년 프랑스 제 5공화국 탄생 시점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부패한 권력을 청산하라는 국민 여망에 따라 정치에 복귀한 드골은 그 전까지 의회가 선출하던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쪽으로 헌법을 바꾸었다. 의회 내에 기반이 취약했던 그가 직선 대통령으로서 힘을 얻으려 한 것이다. 이때부터 직선 대통령과 다수당 총리가 어정쩡하게 권력을 나누는 이원집정부제가 시작되었다. 애초부터 권력의 황금 분할을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 쟁탈전의 와중에서 타협안으로 나온 셈이다.

드골·퐁피두·지스카르 데스탱·미테랑 그리고 지금의 시라크까지 대통령 5명을 거치는 동안 프랑스의 이원집정부제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대통령과 총리가 같은 당에서 나올 때와 그 반대의 경우다. 대통령이 속한 정당이 의회 다수당이 될 경우에는 한국의 대통령제와 비슷한 성격을 띤다. 즉, 총리가 대통령 밑에 들어가 수직적 관계가 되는 것이다.

반면 의회 소수당에서 대통령이 나올 경우 그는 다수당이 요구하는 총리를 임명해야 하고, 그 총리가 내각 구성에 전권을 행사하게 된다. 이같은 권력 분점 형태를 프랑스에서는 코아비타시옹(co-habitation), 이른바 동거 정부라고 부른다. 현재 우파 출신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좌파 출신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권력을 분점하는 형태가 바로 동거 정부이다.

한국인은 이원집정부제 하면 주로 이 동거 정부를 떠올린다. 이 제도가 대통령제와 순수 내각제의 장점을 결합한 이상적인 권력 분점 형태라고 천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에 대해 간과해서는 안될 대목이 있다. 우선 대통령과 총리가 같은 당일 경우 프랑스 대통령은 대통령제를 택한 어느 나라 대통령보다 강력한 권력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프랑스 대통령 임기는 7년이나 되고 연임 제한도 없다. 게다가 대통령은 총리 임명권과 의회 해산권, 국민투표 발의권, 국영 기업 및 공공 기관장 임명권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프랑스 하면 대통령이었던 드골이나 미테랑을 떠올리지 총리였던 발라뒤르나 쥐페를 떠올리는 사람은 드물다.

동거 정부일 때는 대통령 권한이 상당 부분 제한된다. 하지만 이때도 대통령은 의회 해산권을 발동해 동거를 중단할 수 있다. 81년 좌파 출신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미테랑은 우파가 다수당을 차지한 의회를 해산해 좌파를 다수당으로 만들었고, 88년 재선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5공화국 41년간 실제 동거 정부가 지속된 기간은 86∼88년, 93∼95년, 97년∼현재까지에 불과하다.

프랑스 헌법에는 대통령과 총리 사이의 권한 배분이 뚜렷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다. 드골 대통령 시절, 드골이 자신은 주로 외교·국방 같은 ‘큰 정치’를 하고 나머지 내정을 총리에게 맡긴 것이 관행처럼 내려오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놓고 맞부딪칠 경우 심한 갈등이 생긴다. 실제로 2002년 대선에서 맞붙을 것으로 예상되는 현 시라크 대통령과 조스팽 총리측은 서로 “국제 관계의 주요 사안을 책임지는 것과 동시에 동거 정부의 국내 정책에 대한 경계도 늦추지 않을 것이다”(시라크 대통령), “국가 원수인 시라크는 정부 여당이 통치하는 대로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조스팽 총리)라며 견제구를 던지고 있다. DJ, 9년간 대통령직 유지?

물론 한국식 이원집정부제를 창출할 경우 프랑스와는 다른 형태의 권력 분점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대통령과 총리가 같은 당 출신이든 아니든 외치·내치의 뚜렷한 영역을 가지도록 명시하는 식이다. 국민회의가 대통령을 의회에서 뽑는 이원집정부제를 검토하는 것도 대통령에게 권한이 쏠릴지 모른다는 자민련의 우려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국민회의측이 이원집정부제를 적극 검토하는 데는 권력 연장에 대한 나름의 포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각제 개헌 후 총리를 자민련에 내주더라도 국민회의 출신 대통령이 가능한 한 많은 권한을 차지할 수 있도록 미리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게다가 양당 합당이 성사될 경우 이원집정부제는 국민회의에 더 유리해진다. 프랑스의 경우를 대입하면 총리보다 대통령이 더 많은 권력을 휘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호사가들은 김대통령이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통해 4년간 집권을 연장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 임기 말에 이원집정부제로 개헌하면 이론적으로 9년 대통령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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