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사귀기 어려움 - chingu sagwigi eolyeoum

당신은 언제 마지막으로 친구를 사귀었는가? 여기서 말하는 친구는 일할 때 지인이나 동료에 그치지 않고 위급할 때 연락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한 사람이다. 특히 30대에 접어들게 되면 그런 평생의 친구를 찾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된다고들 말한다. 왜 그런 것일까?

최근 미국의 생활정보 사이트 라이프해커가 예전에 뉴욕타임스에 실렸던 기사를 일부 인용해 왜 나이가 들수록 친구를 사귀기 어려운지 그 이유를 소개했다. 또한 친구를 사귀고 싶을 때 필요한 조언도 덧붙이고 있다.

◆ 흔히 하는 변명: 직장과 가정 때문에 시간이 없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 사귀기를 그만두는 이유는 30대라면 이미 알 것이라고 뉴욕타임스의 알렉스 윌리엄스는 말한다. 주 50시간 일해야 하고 결혼 생활은 물론 육아도 해야 하는 등 책임이 늘어가면서 이와 반비례하게도 다른 일에 충당할 시간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미국 생활잡지 ‘리얼심플’과 가족·근로 연구소의 공동 조사에 따르면 25~54세 성인 여성이 갖는 하루 여가는 과반수가 90분 안쪽이며, 29%는 45분 미만이다. 이는 TV 드라마 한 편을 보기에도 촉박한 것.

윌리엄스는 “인생은 중년에 접어들면 젊은 시절에 (무언가에 대해) 탐구하던 나날이 사라지고, 출구가 없는 긴 하루를 보내는 것과 같다”면서 “계획은 줄어들고 우선순위도 바뀌며 친구들에게 바라는 점은 점점 늘어나게 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친구를 만들려고 애쓰다가도 어느새 포기하는 마음이 생긴다. 10대와 20대 초반, 절친한 친구를 사귀려던 행동은 어느새 제한돼 이제 상황에 따라 ‘아는 친구’로 만족하는 나이가 된다는 것이다.

그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수년간 이웃이나 직장, 사친회 등을 통해 많은 사람과 만났다. 대부분 사람과 잘 지냈고 그중에는 “언젠가 모이자”며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모임이 성사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이런 현실에 그는 “깊은 우정을 키울 때까지 친해지려는 것을 꺼리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는 듯하다”면서 “이는 오랜 친구와 연락을 계속하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새로운 사람과 그렇게까지 친한 관계가 진전되도록 노력하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州)에 있는 스탠퍼드대학 노화센터(SCL)의 연구소장인 로라 카르스텐센 심리학 교수는 자신의 동료들을 관찰한 결과, 나이를 거듭함에 따라 더 적은 사람과 사귀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미 친구인 경우에는 친밀도가 높아지는 경향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히고 있다. 카르스텐센 교수의 말로는 기본적으로 인간은 30세라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면 ‘내적’인 알람 시계가 울리게 된다. 자신의 한계가 고개를 넘을 시기라는 것을 자신에게 전해 이것저것 탐구하던 시절에서 무언가에 집중하는 전환점이 된다고 한다.

◆ 더 이상 친구 사귀기는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아니다항상 간단하진 않아도 젊은 시절에는 상대적으로 친구를 사귀기 쉬운 것은 서로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인 점도 있다고 한다. 유치원 입학부터 대학 졸업까지 친구 사귀기는 사회적·개인적 성장의 중요한 일부이며,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친구들과 어느 곳에서 어울릴지, 사회적 방향을 어디로 잡을지, 불량 친구를 대처하거나 인간 관계에 있어 오해가 발생하는 등 인간으로서 성장에 힘든 상황에서 누가 도와줄 것인지 등을 알기 위해서는 친구를 사귈 필요가 있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물론 학교에서 친구를 사귈 때에는 이런 사항을 생각하지 않고 친구를 사귀게 된다. 그러나 수년간 현실 세계에서 어른으로 살아가게 되면 동료 간에 인맥을 맺는 방법에 대해 잘 알게 되므로 새로운 친구를 만들 필요가 없어진다. 또한 순수한 상황 등에서 강한 유대 관계를 맺게 될 계기도 적다.

◆ 나이가 들수록 친구를 사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이사나 전직, 지금까지의 동료와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친구를 찾는 사람에게는 특히 성가신 문제가 될 수 있다. 사회학자에 따르면 친한 친구를 사귀기 위한 필수 요소는 ‘거리가 가까울 것’ ‘몇 번이나 우연히 교류할 것’ ‘서로 경계심을 풀고 신용할 수 있는 상황이 될 것’까지 총 세 가지를 들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누구라도 거의 매일 바쁜 일상에서 이런 요소를 갖추는 것은 드문 일이다.

30세가 되면 진정한 친구를 사귀는 것을 바랄 수 없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트레이시 무어는 라이프해커의 자매지 제제벨(Jezebel)에서 “우정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면서 “새로운 도시로 이사하거나 자신도 왜 몇 년째 사귀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건방진 친구가 있다면 새 친구를 사귀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라이프해커는 밖에 나가서 자신과 같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미트업’(Meetup.com) 등의 사이트를 통해 하이킹, 독서 토론, 요가, 댄스, 사진 등 공통된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취미활동과 인맥 확장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또한 그루폰과 리빙소셜 등 쿠폰 서비스를 사용해서 그날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는 클래스나 활동에 참여할 수도 있다. 라이프해커의 앨런과 토린은 리빙소셜의 위스키 시음회를 통해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음식의 장이야말로 사람들이 친해지기 쉬운 계기일지도 모른다. 이 밖에도 특정한 운동을 통한 모임이나 개 등의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끼리의 모임도 친구를 사귀는 데 한 걸음 다가가는 방법이라고 한다.

친구가 될 것 같은 사람을 만났을 때에는 약간의 요령으로, 라이프해커의 독자 에밀리 아담스는 다음과 같은 요령을 소개하고 있다. “따뜻하게 대접하라. 친구를 집에 초대해 상대방이 편안하고 경계심을 풀 것 같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저녁을 먹거나 담소를 나눠라”

친구 만들기는 이른바 데이트와 같다. 많은 노력과 감정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은둔형인 사람이라도 새롭게 우정을 키울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인생의 어느 단계에 있든 친구 사귀기는 행운과 화학반응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즉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지만, 그것을 기대하고 있으면 언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 성인이기에 구축할 수 있는 우정의 형태성인이기에 친구를 사귀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장점도 있다. 구체적으로는 공통의 관심사에 의해 우정이 싹트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학창 시절에는 별로 없던 것이다. 또한 인터넷 등으로 이어져 현지에서 알게 된 친구는 더는 또래에 국한되지 않는다. 친구 사귀는 데 부담이 적고 더 편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 역시 서로 바쁜 일상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어는 “‘아는 친구’는 성인이기에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친구의 모습일 수 있다”면서 “그런 친구끼리 서로 의무를 질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특히 아무것도 할 수 없던 학창 시절보다 아는 친구들과 보내는 소중한 시간을 고맙게 여길지도 모른다.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을까라고 마음 뛰던 어린 시절과 어른이 된 지금은 친구가 되자고 말하는 것도 우정을 나누는 방법도 할애하게 되는 물리적인 시간도 크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월리엄스는 지적하고 있다.

사진=ⓒ포토리아

윤태희 기자

섣불리 속마음을 다 보여줬다가 친구의 차가운 반응에 실망한 기억, 괜스레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에게 다가가려 했다가 후회한 경험, 누군가 가까스로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내 기분에 무거운 우울감을 지웠던 기억… 이제 타인과 만나는 자리는 가볍게 시간의 표면을 뜨는 자리여야 대체로 후회가 없었다. 각자의 원 안에 들어앉은 채로 시간을 보내면 그만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어른이 된 다음에 새롭게 친구를 사귀는 일은 얼마나 이상한가. 몇 해 전 겨울, 나는 어느 문화원에서 강의를 듣고 나와 건물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밤공기는 차가웠고 수강생들은 외투를 여미며 저마다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그런데 몇 차례 함께 강의를 들은 한 수강생이 내 앞을 어딘지 어색한 동작으로 지나가는 것이었다. 잠시 후 그녀가 다시 이쪽으로 되돌아오는 게 보였다. 나는 눈이 마주쳐서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나는 여자다) 그녀는 내 시야를 거의 벗어났다가 다시 내가 서 있는 곳 가까이로 불쑥 다가왔다. 그리고 급작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녀도 어쨌든 타인에게 다가가는 일에 서툰 사람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대여섯 마디 어색한 대화를 주고받았고, 그럼 다음 시간에 뵈어요, 하고 그녀는 반대쪽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섰던 자리에는 아직 어색하고 흥분된 공기가 남아 있었다.

담배를 채 다 피우기도 전에 그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제야 나는 그 말이 어떤 제스처였을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나는 예의상 ‘아녜요, 충분했는걸요’ ‘아니 괜찮아요, 제가 사서 볼게요’ 따위의 바보 같은 말을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건 어쩌면 내게 손을 내미는, 다음을 기약하고자 하는 제스처였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전화번호 교환이나 그런 것 말이다.

실은 나도 친구를 사귀고 싶었다. 수강생 중에는 내가 학교나 사회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던 비슷한 정서와 취향을 가진 이들, 그래서 어쩌면 더 가깝게 지내보고 싶은 이들이 몇몇 눈에 띄었다. 내게 말을 걸었던 그녀도 조용하고 좀 이상한, 그런 이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어른인 채 친구를 새롭게 사귀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나는 그때 집으로 가면서 ‘다음 시간에는 내가 말을 걸어봐야지’ 하고 여고생처럼 실실 웃었지만, 그 수업이 다 끝날 때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내가 했던 말이 선을 긋는 것처럼 느껴진 걸까? 내 원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신호처럼? 결국 그녀와는 어떤 개인적인 이야기도, 다른 곳에서 만남을 기약하는 말도, 하다못해 에스엔에스(SNS) 계정이나 전화번호도 나누지 못했다.

몸에 새겨진 방어기제

학교와 직장을 다닐 때는 몰랐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혼자서 일하게 된 뒤에야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희귀해졌다는 걸 알았다. 돈을 주고 문화원의 강의를 듣거나, 어느 워크숍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무슨 소셜 클럽이나 동호회 같은 데를 적극적으로 기웃거리지 않는 한 우연히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때로 친구의 친구를 만나거나, 여럿이 함께 모이는 술자리가 생기기도 했지만 그런 자리를 즐기는 것도 이제는 먼 과거의 일이 되었다. 외향적이지 않은 성격에 낯선 사람들에게 치이는 시간은 그 자체로 엄청나게 에너지를 빼앗기는 일이란 걸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렇게 낯선 자리를 피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 기본값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우연히 누군가 다가와도 닫힌 문을 열 생각을 못 하게 된 것인지도 몰랐다.

이런저런 관계 속에서 몸에 새겨진 경험은 방어기제를 발동시킨다. 섣불리 속마음을 다 보여줬다가 친구의 차가운 반응에 실망한 기억, 괜스레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에게 다가가려 했다가 후회한 경험, 모르는 사람에게서 친절하지만 폭력적인 언사를 들은 일, 무의식중에 쌓인 생채기가 돌이킬 수 없이 큰 상처가 되어 있었던 일들. 반대로 누군가 가까스로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내 기분에 무거운 우울감을 지웠던 기억, 내 반응에 습관처럼 수동적 공격성을 보였던 사람들… 이제 타인과 만나는 자리는 가볍게 시간의 표면을 뜨는 자리여야 대체로 후회가 없었다. 각자의 원 안에 들어앉은 채로 시간을 보내면 그만이었다. 실망하기 싫으면 섣불리 타인의 원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야 했다.

앤드루 포터의 소설 <어떤 날들>에는 일정 한계치 이상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는 여자가 나온다. 그녀는 아주 오랜만에 제 가게를 찾아온 친구가 심각한 고민을 털어놓자 차를 끓이겠다고 방을 나가서는 아예 돌아오지 않는다. 친구는 영문도 모르고 멍하니 그녀를 기다리는 거다. 하지만 여자는 이미 길 건너 어딘가 카페 같은 데 들어가서 태연하게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다. 말하자면 이 여자는 ‘스트레스 한계점이 엄청 낮거나 해서 극도로 자극을 받으면 그냥 내빼버리는’ 그런 인간이다. 알바생은 혼자 가게에 남겨진 친구에게 말한다.

“근데 어떤 줄 알아요? 영감은 더해요. 그 남편 있죠! 그 아저씨, 정상이 아니에요. 사소한 일로 누가 불평이라도 하면 그 아저씨는 방에서 나가버리든가 아예 무시해버려요. 있잖아요, 혼자 콧노래를 부른다든가 잡지 같은 걸 뒤적인다든가. 엄청 이상해.”

500쪽이 넘는 두꺼운 소설에서 단 몇 페이지에 걸쳐 등장하는 것이 전부인 저들이 유독 떠오르는 이유는, 실은 저 ‘엄청 이상한’ 부부가 그리 이상한 사람들이 아닌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이 너무 유약해서 조그마한 자극에도 무너져버릴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남이야 어떻든 최대한 편의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나는 나이가 들고 어엿한 혼자로 독립한 어른이 되면, 상처의 경험도 많아져 단단하고 무덤덤해지고 타인을 받아들일 품도 넓어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정확히 그 반대인 것 같다. 나는 이제 내가 ‘스트레스 한계점이 엄청 낮은’ 이상한 인간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어수룩하게 손 내밀기

대부분의 사람이 저 부부와 다른 점은, 그들이 실제로 내빼버리지 못한다는 점뿐인지도 모른다. 대신 그들에게 ‘내뺌’은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날 것이다. 허용 가능한 범위에서 딴청을 한달지, 최대한 인위적이고 피상적으로 누군가를 대한다든지. 어쩌면 ‘내빼지 않는다’는 의례적인 태도가 진심이야 어찌 됐든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데는 더 중요한 사실일 것이다. 그게 사회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인간의 어떤 마지노선 같은 것인지도.

내가 ‘어른이 된 다음에 새롭게 친구를 사귀는 일은 얼마나 이상한가’ 하고 말한 것은, 그러함에도 나를 포함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어수룩하게 손을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받은 어른인 우리는 그래도 선을 넘어보려고 망설이는 일을 우스꽝스럽게 계속한다. 나는 지금도 동네 카페에서, 슈퍼에서, 처음 간 어느 모임에서, 여고생처럼 배시시 웃음 짓게 하는 작은 제스처들과 마주친다. 그럴 때는 언제나 ‘나도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불가능한 욕망이 생겨난다. 다음번에는 크리스마스카드를 써서 건네볼까, 언젠가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하면 김장날 서로 모르는 친구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아야지, 뭐 그런 상상을 하면서. 실제로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겠지만 말이다.

다이나믹 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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