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키코아합 히브리어찬양 כי כה אהב אלוהים Ki Ko Ahav For God so Loved Ki (인해서) ko(그렇게) ahav(사랑하셨다) Elohim(하나님) et(을) Ha-olam (세상) For God so loved the world Ad(까지) ki (그렇게) natan(그가 주셨다) Et B'no(아들을) yechido(유일한) That He gave His only Son L'ma'an(위하여) lo(않게) yovad(멸망하다) Kol(모든이) hama'amin(믿는자) bo(그를) So that all who believe in Him Ela yin-chal(망하다) Chayei(가지다) olam(영생) Will not perish, but have everlasting life Chorus: Halleluyah, halleluyah Halleluyah Halleluyah, amen! 쉐마이스라엘 원어성경읽기
<창세기 개관> 창세기 1장 1절(창 1:1)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엩 핫솨마임 웨엩 하아레츠 히브리어구약BHS,1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새번역,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 ㉠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또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기 시작하셨을 때에' 개역개정,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태초에(בְּרֵאשִׁית - 베레쉬트) ‘베레쉬트’는 '베'와 ‘레쉬트’의 합성어이다. '베'는 명사들과 결합하여 그 명사와 관련된 특정한 때를 가리키는 불분리 전치사로서 영어의 ‘IN’에 해당한다. 그리고 레쉬트는 '근원'(2:10), '머리'(3:15), '꼭대기'(왕상 18:42) 등의 의미를 가진 어근 '로쉬'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시작'(10:10), '근본'(시 111:10), ‘으뜸’(욥 40: 19) 등의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베’ 와 ‘레쉬트’의 합성어인 ‘베레쉬트’는 직역하면 시간이 막 흐르기 시작한, 시간의 시작인 '시초에'라는 뜻이며 인간 역사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태초에'는 시간의 시작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주 공간 자체와 우주 만물의 구성 재료가 될 모든 기본 물질들을 '무'에서 '유'로 한 순간에 생겨나게 하신 ‘때’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요한복음 1:1에도 '태초에'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헬라어 '엔 아르케'를 번역한 말로 '영원부터'라는 뜻이다. 즉, 요한복음 1:1의 '태초에'인 '엔 아르케'는 시간이 시작되기 이전의 영원한 때를 가리키는 반면 창세기 1:1의 '태초에'인 '베레쉬트'는 시간이 시작되었던 때, 즉 영원과 시간의 시작이 접촉되는 때를 가리킨다. 따라서 두 단어 모두 한글로는 '태초에'로 번역되었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근본적인 의미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면 '태초에'는 하나님이 천지 창조를 개시함으로 시작된 '역사적 시간의 출발점'을 가리킨다. 이는 창세기가 영원 전 사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주 및 인류가 탄생하는 시점으로부터 시작되는 역사에 관한 서술임을 보여준다. * 하나님이(אֱלֹהִים - 엘로힘) 앞의 '태초에'는 천지가 언제 창조되었는지를 밝힌 것이고, '하나님'은 천지를 누가 창조하였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이 엘로힘은 ‘권세 있다’, ‘강하다’란 뜻을 가진 '울'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권세 있고 힘 있는 뛰어난'이란 뜻을 가진 '엘로아흐'의 복수형이다. 즉, 엘로힘은 '두려워해야 할 강하고 능력있는 자', '경외해야 할 최고의 존재'라는 의미이다. '여호와'란 명칭이 '언약을 지키시는 자', '택한 백성을 구속하는 자'란 의미로 쓰였다면(출 6:3), 이 '엘로힘'이란 명칭은 성경에서 주로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강조할 때 쓰였다(출 20:1; 신 6:4; 삼하 22:32). 한편 일부 학자는 '엘로힘'이 '엘로아흐'의 복수형인 점을 들어 이를 다신론적 사상의 반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엘로힘'이라는 단어는 비록 형태는 복수형이나 실질적으로는 단수로 사용되었다. 왜냐하면 이 '엘로힘' 뒤에 나오는 '창조하시니라'란 동사가 단수 형태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엘로힘'으로 표현한 것은 삼위이시나 일체이신 하나님의 존재 양식에 대한 암시로 볼 수 있다(26절). 그리고 존귀하거나 장엄한 것을 표현할 때 복수형을 쓰는 히브리인의 독특한 관습에 따라 이를 장엄의 복수형으로도 볼 수 있다. * 천지를(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 엩 핫솨마임 웨엩 하아레츠) 이제 창조의 대상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힌다. 히브리어 '엩'는 우리말 '~을', '~를'이고 '핫솨마임'은 복수로 '그 하늘들'이라는 뜻이다. '그리고'에 해당하는 접속사 '웨'와 '엩'가 결합하여 '웨엩'가 되었고 '하아레츠'는 '그 땅'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 문장을 직역하면 '그 하늘들을 그리고 그 땅을'이다. 여기서 하늘이 복수형으로 표기된 것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하늘 개념이 반영된 것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하늘을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다. 새들이 날아다니는 우리 눈에 보이는 공중인 첫째 하늘, 그리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을 반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해, 달, 별 등이 붙어 있는 궁창(Firmament)과 그 위에 보관된 엄청난 양의 물로 구성된 둘째 하늘, 그리고 그 너머의 순수한 영적 존재들인 천사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현현을 매일 보며 거하는 셋째 하늘. 이렇게 히브리인들은 하늘이 모두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늘을 표현할 때에 복수로 표현했다. 또한 여기서 '땅’을 표현하는 ‘아레츠’도 하늘과 대조된 의미에서의 ‘온 땅’ 곧 우리들이 발붙이고 사는 이 '지구' 뿐만 아니라 넓게는 땅 아래의 ‘지하 세계(the Underworld)’까지 가리킨다. 그리고 여기서 천지를 만드셨다는 뜻은 문자적으로 하늘과 땅만 만드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만드셨다는 의미이다. 성경에는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시 113:3),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삼하 17 :11) 등과 같이 양 극단을 사용하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그 양극단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드셨다는 표현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창조하셨다는 뜻이다. 히브리인들의 하늘 개념(그랜드종합주석 p.194)* 창조하시니라(בָּרָא - 바라) 창세기 1장 1절에서 '태초에'는 '언제(when)'를, '하나님이'는 '누가(who)' 를, ‘천지를’은 ‘무엇(what)'을, 끝으로 ‘창조하시니라’는 ‘어떻게(how)'를 보여 준다. ‘창조하시니라’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어는 ‘바라’인데 이 단어의 어원은 불명확하다. 그러나 용례상 대략 '자르다(cut)', '새기다 (carve)' 그리고 '낳다' 또는 '출생하다(bear or be born)', 그리고 '먹다(eat)', '양육하다(bring up)', '살이 오르다(get weight)' 등의 뜻으로 쓰였다. 그런데 이 '바라'가 '만들다', '지어 내다'라는 뜻으로 쓰일 때에는 오직 하나님과만 관련되어 쓰였다. 그리하여 그 이전과는 자르듯이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드시고 또 있게 하시는 하나님만의 절대 주권적 행위를 나타낸다(신 4:32; 시 89:12; 사 43:1; 렘 31:22). 따라서 '바라'는 이전에는 전혀 없었던 일을, 이전의 그 어떤 것과도 상관없이 새로이 있게 하는 절대적 창조 행위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 활동은 그분의 자유로운 의지에서 기인한 단독 사역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 능력은 제한적이거나 부차적이지 않고 완전한 무에서 유에로의 창조를 가능케 하는 새롭고 신비한 성격의 것이다. 또한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존재인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주인으로서 그 모든 것을 자신의 기쁘신 뜻에 따라 말씀으로 만드셨다(시33:6-9; 렘10:12). 이와 같은 절대적 창조 행위는 만물을 초월하여 자존하시는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인 우리 인간도 우리의 능력을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있으나 그것은 과거와의 연속성 안에서, 이미 있는 것을 활용해서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바라'는 '만들다', '지어내다'라는 뜻으로 구약에서 총 44회 쓰였는데, 이 때에는 오직 ‘하나님’을 가리키는 단어와만 짝을 이루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절대적 창조 행위를 가리키고 있다. 그리하여 여기 창세기 1장 1절의 '창조하시니라' 곧 '바라'는 무에서 유로 광대한 우주 공간은 물론 그 안의 천하 만물을 구성할 재료가 될 모든 기본 물질들을 동시에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의 절대적 창조 행위를 가리킨다. * 성경의 창조 이야기와 다른 신화들의 차이를 알고 싶으면 참고하세요^^ 2021.06.28 - [GOODWILL CHURCH/Christianity] - 세계 주요 이방 창조 신화들과 성경 창조 기사의 비교 연구 2022.01.05 - [GOODWILL CHURCH/Christianity] - 아트라하시스의 태초 이야기 - 수메르 신화 2022.01.05 - [GOODWILL CHURCH/Christianity] - 사람이 태어난 이야기 - 수메르 신화 2022.01.05 - [GOODWILL CHURCH/Christianity] - 지우수드라의 홍수 이야기 - 수메르 신화 2022.01.05 - [GOODWILL CHURCH/Christianity] - 길가메쉬의 홍수 이야기 - 수메르 신화 2022.01.05 - [GOODWILL CHURCH/Christianity] - 바빌로니아 창조 서사시(에누마 엘리쉬) - 수메르 신화 2022.01.05 - [GOODWILL CHURCH/Christianity] - 길가메쉬 서사시 - 고대근동문화선집 / 고대근동문학 창세기 1장 2절(창 1:2) 웨하아레츠 하예타 토후 와보후 웨호쉐크 알 페네이 테홈 웨루아흐 엘로힘 메라헤페트 알 페네이 함마임 히브리어구약BHS,2 וְהָאָרֶץ הָיְתָה תֹהוּ וָבֹהוּ וְחֹשֶׁךְ עַל־פְּנֵי תְהֹום וְרוּחַ אֱלֹהִים מְרַחֶפֶת עַל־פְּנֵי הַמָּיִם׃ 새번역,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 ㉡또는 '하나님의 바람' 또는 '강한 바람' 개역개정,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 땅이(וְהָאָרֶץ - 웨하아레츠) 여기 '땅이'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어 '웨하아레츠'는 '그런데' 또는 '그리고'를 의미하는 접속사 ‘웨’와, 앞절에서 말한 ‘바로 그 땅'임을 강조하는 ‘그’ 라는 뜻의 정관사 '하',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땅' 곧 이 '지구'를 가리키는 '아레츠'가 합쳐진 말이다. 따라서 이를 직역하면 ‘그런데 바로 그 땅’이란 뜻이 된다. 여기서 '바로 그 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가리키는데 이는 곧 하나님의 주요 관심과 앞으로의 서술 대상이 지구로 좁혀 졌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 혼돈하고 공허하며(הָיְתָה תֹהוּ וָבֹהוּ - 하예타 토후 와보후) 여기의 '하예타'는 '~이다', '~하다'라는 뜻의 '하야'의 완료형이다. '토후'는 '성읍이 무너져 뒤범벅이 된 상태'(사 24:10) 또는 '아무렇게나 버려진 황무지'(신 32:10), '공허', '헛된 것'(삼상 12:21; 사 40:17)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전혀 형체가 없거나 아무것도 없거나 황량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와보후'는 '그리고'를 뜻하는 '와'와 '보후'가 합쳐진 말인데 '보후'는 여기에서처럼 '공허'라는 말로 쓰인 경우(렘 4:23)와 '황폐'로 쓰인 경우(사 34:11) 등 성경에서 단 세 번 나타나는 말이다. 여기 '토후'와 '보후'는 뚜렷하게 구분이 되는 상이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뜻과 음이 비슷한 두 단어를 연이어 사용함으로써 특정 내용을 강조하는 수사학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 용례에 있어서 '토후'가 실체가 없는 것, 또는 결과나 가치가 없는 허망한 것, 곧 '공허함'을 나타내는 말로 '보후'보다 더 많이 쓰였다(사 29:21; 45:19). 따라서 '토후'와 '보후'가 큰 의미의 차이가 있다기 보다는 두 단어를 함께 사용함으로써 혼돈스럽고 공허하던 원시 우주의 상태를 극적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면 '혼돈하고 공허하였다'란 의미는 지구가 아직 조화된 모습을 갖추고 있지 않았고, 따라서 아무런 생명체도 살고 있지 않은 무질서하고 텅빈 상태였다라는 뜻이다. *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וְחֹשֶׁךְ עַל־פְּנֵי תְהֹום - 웨호쉐크 알 페네이 테홈) '흑암'으로 번역된 '호쉐크'는 '캄캄하다'(암 8:9), '어두워지다'(욥 18:6)란 뜻의 동사 '하솨크'에서 나온 명사형으로 '빛이 없음'(출 10:21) 또는 '밤'(욥 24:16)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 이 '호쉐크'는 단순히 빛의 결핍이 아니라 빛이 생기기 이전의 근본적 암흑 상태를 가리킨다. '깊음'으로 번역된 '테홈'은 '넘실거리다', '부글거리다'라는 뜻의 '훔'에서 나온 말로 큰 파도가 치며 일렁거리는, 그 밑을 알 수 없는 심연, 곧 깊은 바다(시 42:7)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공동 번역은 이를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로 번역하였다. 따라서 이 구절은 창조된 원시 지구의 구성 물질이 모두 함께 뒤엉켜 녹아서 그 깊이를 잴 수 없는 깊은 바다와 같은 상태로 있었으며, 그 위에 칠흑 같은 어둠이 뒤덮여 있었음을 뜻한다. 이는 원시 지구가 완전한 정적과 혼돈과 공허의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 하나님의 영(וְרוּחַ אֱלֹהִים - 웨루아흐 엘로힘)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어를 그대로 직역하면 '하나님의 숨' 또는 '하나님의 바람'이다. 그러나 히브리어에서는 인격의 실체를 이루는 '영' 또는 '영혼'이 이처럼 호흡 또는 바람을 나타내는 ‘루아흐’로 표현된다(욥 7:11; 시 143:7). 이는 아마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호흡(Breath)이나 바람(Wind) 등의 속성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인격의 실체를 이루는 영혼의 속성을 잘 상징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이 '루아흐'는 문맥에 따라 자연 현상으로서의 '바람', 또는 생명체의 '숨'이나 '호흡'을 의미하기도 하고 때로는 한 인격체의 실체인 '영혼'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구절에서 나오는 '루아흐'는 '영'으로 이해해야 하며 본문은 당연히 '하나님의 영' 곧 제 삼위 하나님이신 '성령(the Holy Spirit)'을 가리킨다. 이처럼 성부 하나님이 주도하신 천지 창조 사건에 제 삼위 성령 하나님도 처음부터 관여하셨음을 분명히 밝혀주는 이 본문은 제 이위 성자 하나님께서 말씀 곧 '로고스(the Logos)'로서 그 역시 창조 행위에 동참하였음을 밝혀주는 요한복음 1:1-3과 아울러 성삼위(The Trinity) 하나님 모두가 실로 모든 존재와 역사의 기원을 이루는 천지 창조 사역에 다함께 참여하셨음을 알게 해준다. * 수면에(עַל־פְּנֵי הַמָּיִם׃ - 알 페네이 함마임) 원어를 그대로 직역하면 '그 물들의 얼굴 위에'이다. 먼저 '물들'이란 표현은 앞서의 '깊음'과 같이 원시 지구가 액체 상태로 한데 뒤엉켜 있었던 사실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 '물들'을 가리키는 '마임' 앞에 '바로 그' 라는 뜻의 정관사 '하'가 붙어서 여기의 '물들'이 다름 아닌 바로 앞서 설명한 흑암으로 덮여 있는 '깊음' 즉 깊은 바다를 의미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 운행하시니라(מְרַחֶפֶת - 메라헤페트) 이는 '움직이다' 또는 '흔들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라하프’의 분사형으로 '알을 품다', '새가 자신의 새끼 위에서 날개짓을 하다', '부드러이 활공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신 32:11). 즉 이는 단순히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대상의 주위를 맴도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영어 성경들은 대부분 이를 '선회하다'는 뜻을 가진 'Hover'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운행하시니라'는 개역 성경의 번역도 혼돈과 공허의 상태로 흑암이 뒤덮여 있는 액체 상태의 원시 지구의 표면 위를,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부드럽게 휘돌고 계시는 성령님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창세기 1장 3절(창 1:3) 와요멜 엘로힘 예히 오르 와예히 오르 히브리어구약BHS,3 וַיֹּאמֶר אֱלֹהִים יְהִי אֹור וַיְהִי־אֹור׃ 새번역,3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 개역개정,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 하나님이 이르시되 ... 하시매(וַיֹּאמֶר אֱלֹהִים - 와요멜 엘로힘) 이를 직역하면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이다. '엘로힘'은 성경에 2250여 회 나오며 1절 이후 본장에서만 32회 나오는데, 이는 창조의 주체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빛이 있으라(יְהִי אֹור - 예히 오르) 이는 성경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명령형이다. 여기서 '예히'는 영어의 be 동사와 같이 '있다', '존재하다'는 뜻을 지닌 '하야'의 3인칭 단수 단축형(Voluntative)이다. 히브리어에서 단축형은 간접 명령을 나타내므로 본절에서는 '있으라' 로 번역할 수 있다. 한편 여기서 '빛'에 해당하는 '오르'는 '광선'(삼하 23:4), '불'(사 31:9) 등으로도 번역되는데, 여기서는 어두움을 밝히며 열을 내는 '빛'(욥 22:18)을 가리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창조 제 4일째 비로소 지구를 비추는 해와 달과 별을 만드셨다. 따라서 본절의 빛은 천체의 태양이나 별들이 발하는 빛과는 다른 원리에 의해 비춰지는 빛 혹은 에너지원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빛의 발산 원리를 통해서 나타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편 성경에서 '빛'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르'는 물리적인 빛 외에도 생명의 빛(욥 3:16-20), 번영의 빛(사 9:1; 시 97:11), 진리의 빛(사 49:6) 등을 묘사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본절의 빛을 피조물들에게 생명과 번영을 주는 신적 은사와 능력을 상징하는 영적인 빛으로 보았다. * 빛이 있었고(וַיְהִי־אֹור - 와예히 오르) 이 문장은 원어 성경으로 볼 때 바로 앞에 나오는 '빛이 있으라(예히 오르)'에 단지 '와'만 덧붙여진 형태이다. 여기서 '와'는 계속적 '와우'로서 본문이 바로 앞 문장의 결과이며 바로 연속하여 이루어진 사실임을 나타낸다. 즉 이는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명령하신 후 바로 즉시 '빛이 있었던' 결과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말씀은 지체하지 않고 즉시 이루어진다. 창세기 1장 4절(창 1:4) 와야르 엘로힘 엩 하오르 키 토브 와야브델 엘로힘 벤 하오르 우벤 하호쉐크 히브리어구약BHS,4 וַיַּרְא אֱלֹהִים אֶת־הָאֹור כִּי־טֹוב וַיַּבְדֵּל אֱלֹהִים בֵּין הָאֹור וּבֵין הַחֹשֶׁךְ׃ 새번역,4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셔서, 개역개정,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 그 빛이(אֶת־הָאֹור - 에트 하오르) 한글 개역 성경은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이지만 히브리어 원어는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셨다'라는 뜻이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표현이 모두 7회 나오는데(4, 10, 12, 18, 21, 25, 31절), 본절에서만 그 창조된 대상을 언급하고 있다. 즉,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께서 보셨다. 그런데 그것이 좋았다'라고 되어 있지만 여기서만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셨다. 그런데 그것이 좋았다'라고 되어있다. 이처럼 히브리어 본문이 특별히 첫째 날 창조된 '그 빛'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창조하셨다는 의미에서도 중요하지만 그 빛은 분명 모든 창조 생명의 근원이었을 것이며 또한 시간 질서의 근원이었을 것이다. 그 빛을 통하여 낮과 밤이 생겨났고 이후의 모든 자연계와 생물계가 생겨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빛'을 보시고 기쁨을 느끼셨을 것이다. *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וַיַּרְא אֱלֹהִים...כִּי־טֹוב - 와야르 엘로힘...키토브)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그러자 하나님은 보았다...그런데 그것이 좋았다'이다. 여기서 '보다'라는 뜻을 가진 '라아'는 '감찰하다'(31:42), '진찰하다'(레 13:3), '방문하다'(왕하 8:29), '권념하다'(출 2:25) 등의 뜻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본절에서 하나님이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히브리어 '토브'도 '좋다'라는 뜻 외에 '선하다'(26:29), '충실하다'(41:5), '아름답다'(출 3:8), '존귀하다'(대상 29:28), '복되다'(욥 7:7) 등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본문에서는 이 단어가 완료형으로 사용되어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라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히 좋다'란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은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과 위대하심도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나 일반계시인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지만물을 통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본문 전체의 주어는 '하나님(엘로힘)'이다. 즉 보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좋다고 평가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이는 모든 최종적인 평가는 바로 하나님에 의해 내려져야 하며 이러한 평가만이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인간이 보기에 좋은 것 가운데 실제로 좋지 않은 것이 너무나 많이 있다. 인류 최초의 범죄인 선악과를 따먹는 데 있어서도 그 선악과 열매는 인간 하와가 보기에는 너무나 좋았다(3:6).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니라 인간을 파멸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판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 빛과 어둠을 나누사(וַיַּבְדֵּל אֱלֹהִים בֵּין הָאֹור וּבֵין הַחֹשֶׁךְ׃ - 와야브델 엘로힘 벤 하오르 우벤 하호쉐크) 하나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나누셨다. 이는 5절에 나오는 낮과 밤의 분리를 가리키는데 빛이 비추는 부분이 낮이 될 동안 빛이 비추지 않는 부분은 밤이 되어 주야가 나누어지게 된 것을 보여 준다. 이로 보아 창조 첫째 날 원시 지구도 자전하였으며,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낮과 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후에 이 빛의 기능을 태양이 대체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여기서 '나누다(빠달)'는
'구별하다'(대상 23:13), '분별하다'(레 10:10; 11:47)란 의미가 있다. 즉 이 단어는 특성이 다른 것들이 서로 섞이지 않도록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을 가리킨다. 특히 본문에는 '사이'를 뜻하는 전치사 '벤'과 '우벤'이 등장하여 그 분리가 아주 철저하게 이루어졌음을 잘 보여 준다. 그런데 본장에 나오는 천지 창조의 사역 중에는 본절에 기록된 빛과 어두움의 분리 뿐 아니라 모두 3번의 분리가 나온다. 즉 하나님께서는 창조 제 1일에 빛과 어두움을 분리하셨고(4절), 창조 제 2일에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을 나누셨으며(7절), 창조 제 3일에 바다와 땅을 분리하셨다(9 절). 창세기 1장 5절(창 1:5) 와이크라 엘로힘 라오르 욤 웨라호쉐크 카라 라일라 와예히 에레브 와예히 보켈 욤 에하드 히브리어구약BHS,5 וַיִּקְרָא אֱלֹהִים לָאֹור יֹום וְלַחֹשֶׁךְ קָרָא לָיְלָה וַיְהִי־עֶרֶב וַיְהִי־בֹקֶר יֹום אֶחָד׃ ף 새번역,5 빛을 낮이라고 하시고, 어둠을 밤이라고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다. * 낮...밤(יֹום...לָיְלָה - 욤...라옐라) 하나님께서는 처음으로 친히 만드신 창조물에 이름을 지어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셨다. 여기서 '낮'(욤)은 빛이 있는 상태를, 그리고 '밤'(라옐라)은 빛이 사리지고 난 이후의 어둠을 가리킨다. 이 '밤'이라는 단어는 후에 다른 곳에서 상징적으로 사용되어 '재해', '재난', '불행'(사 21:11; 미 3:6)등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한편 하나님께서 빛과 어두움을 나누시고 이를 각각 낮과 밤이라 칭하셨던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이렇게 이름을 부여하는 행위는 그것을 만든 존재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낮' 뿐만 아니라 '밤'도 만드신 분이시다. 따라서 우리는 낮이나 밤이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 부르다(קָרָא - 카라) '카라'는 '부르다'(16:14)는 뜻 뿐 아니라 '선언하다'(신 20:10), '반포하다'(출 33:19), '축하하다'(시 49:12; 잠 20:6)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낮과 밤이라고 부르셨을 뿐만 아니라 창조주의 권위를 가지고 공적으로 그 이름을 선포하셨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이 이렇게 이름을 부르고 공적으로 선포하는 행위는 자신이 낮과 밤을 창조하셨음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것이다. *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וַיְהִי־עֶרֶב וַיְהִי־בֹקֶר - 와예히 에레브 와예히 보케르) 이를 직역하면 '그리고 저녁이 있었다 그리고 아침이 있었다'이다. 이는 창조 첫째 날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저녁'이 있었고 '아침'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란 동일한 표현을 창조의 기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계속해서 반복하여 사용하는 것은 시적인 운율을 살리기 위한 문학적 장치라고도 할 수 있다. 한편 오늘날 우리들이 하루를 아침부터 저녁까지로 표현하는 것과 달리 본장에서는 모두 '저녁'(에레브)이 먼저 언급되고 '아침'(보케르)이 후에 언급된다. 이것은 원시 어둠의 상태에서 하나님이 제일 먼저 창조하신 것이 빛이므로 낮이 먼저 있었다가 지구의 회전에 따라 저녁이 오고 다시 아침이 옴으로 하루의 순환이 끝나고 새로운 하루가 온 것이다. 본 구절은 이러한 과정을 간략하게 묘사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 이는 첫째 날이니라(יֹום אֶחָד - 욤 에하드) 이와 같이 동일한 표현을 창조 6일 동안 사용하면서 본장 전체에 리듬감을 주고 있다. 한편 본절에서 '날'로 번역된 히브리어 '욤'은 성경에서 2225번이나 나오는 단어로서 매우 다양한 용례를 지닌다. 그 중 대표적인 용례는 '밤시간'과 대조되는 '낮시간'이다. 이러한 실례는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라고 기록된 본절 앞부분에서도 발견된다. 또한 '욤'은 24시간 즉 '하루'를 가리킬 때도 있다. 따라서 성경 가운데는 이 단어가 '종일(a full day)'이나(시 10:13) '매일(every day)'(39:10)로 번역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욤'은 '일정한 시간'을 가리킬 때도 있다. 성경 가운데는 이 단어가 일 년(삼상 1:21; 2:19), 네 달(삼상 27:7), 한 달(왕하 15:13) 등을 나타낼 때도 사용되었다. 또한 '욤'은 기간이란 의미를 배제한 '특별한 날'을 가리킬 때도 있다. 성경에서 '주께서 말씀하신 그 날'(출 6:28), '주께서 만드시던 날'(2:4), '회복의 날'(암 9:11), '지금'(사 58:4) 등을 가리킬 때도 '욤'이란 단어가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욤'은 어떻게 사용되었을까? 전통적으로 다음의 세 학설이 있다. 첫째, '욤'은 곧 한 시대를 가리킨다는 학설이다(Day-Age Theory : 요세푸스, 이레니우스, 오리겐). 그러므로 이들은 5, 8, 13절의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말이 하나의 상징적 표현으로서, 한 시대의 끝과 다른 한 시대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 주장의 근거는 창조주 하나님에게는 시간적 요소가 초월되어 있다는 점이다(시 90:4; 벧후 3:8). 그러나 이 학설에는 두가지 난제가 있다. 첫째, 창세기 1장의 주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출 20:8-11의 안식일 계명 문제에 위반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분명히 안식일 계명에 나타난 창조의 6일은 문자 그대로 6일이지, 장구한 6시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창세기의 1일이 오늘날과 같은 하루가 아니라면 제7일의 안식일 문제를 설명할 길이 없다. 둘째, 성경의 분명한 어법으로 표현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5, 8, 14, 19절)라는 말을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한 시대의 교체로 보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둘째, '욤'을 문자 그대로 24시간으로 보는 학설이다(루터, 칼빈).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성경 해석상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원어의 일차적인 뜻을 따라야 한다. 둘째, 실제적인 제7일을 안식일로 하나님께서 정하셨다면 다른 6일도 당연히 같은 24시간을 가진 하루이어야 한다. 셋째, 창조 사역에 있어서 마지막 3일은 분명히 오늘날과 같은 태양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24시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최초의 3일도 같아야 되지 않겠는가?라는 주장이다. 셋째, '욤'의 기간이 서로 다르다고 보는 절충적인 학설이다(어거스틴, 바빙크). 즉 태양이 창조된 제4일 이전의 3일은 오늘날의 하루와 다른 장구한 기간으로, 그리고 이어지는 3일은 24시간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 세 가지 학설은 각기 나름대로의 타당성과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어느 학설을 완전히 수용하거나 혹은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는 두번째 학설이 보수적인 사람들의 많은 지지를 받는다. 창세기 1장 6절(창 1:6) 와요멜 엘로힘 예히 라키아 베토크 함마임 위히 맙딜 벤 마임 라마임 히브리어구약BHS,6 וַיֹּאמֶר אֱלֹהִים יְהִי רָקִיעַ בְּתֹוךְ הַמָּיִם וִיהִי מַבְדִּיל בֵּין מַיִם לָמָיִם׃ 새번역,6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물 한가운데 창공이 생겨, 물과 물 사이가 갈라져라" 하셨다. * 물 가운데(בְּתֹוךְ הַמָּיִם - 베토크 함마임) 여기서 '물'로 번역된 '함마임'은 '그 물'이라는 뜻으로 '물'을 뜻하는 '마임'은 성경에서 항상 복수형으로 나온다. 그런데 본문에서 '마임' 앞에 정관사 '하'가 쓰인 것은 여기에 나오는 '그 물'이 2절에 나오는 '수면'의 '물'을 뜻하기 때문이다. '베토크'는 '~안에', '~사이에'를 뜻하는 전치사 '베'와 '절단하다'라는 말에서 유래하여 '중앙'(3:3), '중간'(15:10)이란 뜻이 있는 명사 '타웨크'의 합성어로서 '베토크'는 '~의 중앙에'(KJV, in the midst of)를 뜻한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그 물 중앙에'라고 할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물의 중앙을 분리하여 궁창을 만드신 것이다. * 궁창이 있어(יְהִי רָקִיעַ - 예히 라키아) 여기서 '있어'는 3절에 나오는 '빛이 있으라'에서 '있으라'와 동일한 '하야'의 단축형(Voluntative)인 '예히'이다. 따라서 직역하면 '궁창이 있으라'가 된다. 그리고 물(마임)과 물(마임)을 나누는 것으로 묘사한 '궁창'은 '탕탕 쳐서(민 16:39) 넓게 펴다(욥 37:18; 시 136:6)'란 의미를 지닌 '라카'에서 유래하여 문자적으로는 '두들겨 넓게 펼친 판(firmament)'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히브리인들은 하늘 위에도 땅과 마찬가지로 물이 있으며 이 물이 바로 넓은 판인 궁창에 의해 떠받쳐져 있기 때문에 이 금속판에 있는 창문이 열리면 하늘의 물이 쏟아져 이 땅에 '비'가 내린다고 생각했다. 본문의 궁창은 바로 이러한 히브리인의 하늘 개념을 반영하는 표현이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궁창'이란 단단한 금속성 물질로 된 하늘의 지붕을 의미한다(잠 8:27, 28). 이는 높은 산을 기둥 삼아 지탱되는(욥 26:11), 물을 담고 있는 다락방과 같으며(시 104:13; 암 9:6), 창과 문들이 있어서(7:11; 8:2; 왕하 7:2, 19) 하나님께서 이것을 열 때(시 98:23) 땅에 비가 내린다고 생각했다. 하늘 위에 실제로 넓게 펼쳐진 금속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늘 위에도 이 지상과 마찬가지로 많은 물들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대기권에는 많은 물이 있으나 노아 홍수 이전,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지구의 궁창 위에는 지금보다 물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두꺼운 수증기 층은 강력한 태양의 빛을 완화시키며 우주로부터 오는 모든 유해한 광선이나 소립자를 막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과거 초기 인류가 수백 년을 장수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와 같은 두꺼운 수증기층이 있어서 인류가 살아가는 자연환경이 훨씬 더 좋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노아 홍수 때에 엄청난 양의 물이 하늘로부터 지상으로 쏟아져, 이후에는 이 수증기 층이 상당히 큰 손상을 입게 되었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지구의 환경도 완전히 변화되고 악화되어 인간의 수명이 짧아지는 등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 나뉘라 하시고(וִיהִי מַבְדִּיל - 위히 맙딜) '위히'는 '그리고'란 뜻이 있는 접속사 '와우'와 '하야'의 단축형 '예히'가 합쳐진 것으로 직역하면 '그리고 그것은 나누이라 하라'란 간접 명령이다. 여기서 '나누다(맙딜)'의 원형 '빠달'은 4절에서 설명한대로 섞이지 않도록 엄격하게 구분함을 의미한다. 창세기 1장 7절(창 1:7) 와야아스 엘로힘 (에트) 하라키아 와얍델 벤 함마임 아쉐르 밑타하트 라라키아 우벤 함마임 아쉐르 메알 라라키아 와예히 켄 히브리어구약BHS,7 וַיַּעַשׂ אֱלֹהִים אֶת־הָרָקִיעַ וַיַּבְדֵּל בֵּין הַמַּיִם אֲשֶׁר מִתַּחַת לָרָקִיעַ וּבֵין הַמַּיִם אֲשֶׁר מֵעַל לָרָקִיעַ וַיְהִי־כֵן׃ 새번역,7 하나님이 이처럼 창공을 만드시고서, 물을 창공 아래에 있는 물과 창공 위에 있는 물로 나누시니, 그대로 되었다. * 만드사(וַיַּעַשׂ - 와야아스) 직역하면 '그리고 그가 만들었다'이다. 여기서 '만들다'는 1절에 나오는 '창조하다'의 '빠라'와 다르게 '아사'란 단어가 사용되었다. ‘아사’는 완전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빠라'와는 조금 다르게 기존 재료를 사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드는 행위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בֵּין הַמַּיִם אֲשֶׁר מִתַּחַת לָרָקִיעַ וּבֵין הַמַּיִם אֲשֶׁר מֵעַל לָרָקִיעַ - 벤 함마임 아쉐르 밑타하트 라라키아 우벤 함마임 아쉐르 메알 라라키아) '궁창'으로 번역된 '라라키아'에서 처음 '라'는 전치사 '레'와 정관사 '하'가 결합된 형태로 '그 궁창에'란 뜻이다. 그리고 '아래의'로 번역된 '밑타하트'는 '~로부터'라는 뜻의 전치사 '민'과 '~아래에'란 뜻의 전치사 '타하트'가 결합한 것으로 직역하면 '~아래로부터'란 뜻이다. 또한 '위의'로 번역된 '메알' 역시 전치사 '민'과 '~위에'란 뜻의 전치사 '알'이 결합한 것으로 '~위로부터'라는 뜻이다. 한편 '벤'은 '~사이(between)'란 뜻으로 어떤 대상들을 명확하게 분리할 때 쓰이는 전치사이며 대체로 본문과 같이 두 번 겹쳐서 사용된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그 궁창에서 아래로부터의 물과 그 궁창에서 위로부터의 물 사이를’ 이다. 이처럼 히브리어 원문은 궁창을 중심으로 물이 분명하게 둘로 나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궁창 아래의 물은 지구의 표면을 덮고 있는 바다를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물이고 궁창 위의 물은 대기권 속에 떠 있는 구름이나 수증기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응집되어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것이 곧 비나 눈, 우박이다. 6절에서 설명했듯이 노아의 홍수 이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물이 하늘에 있어서 지구의 환경을 지금보다 더 좋게 만들었을 것이다. * 그대로 되니라(וַיְהִי־כֵן - 와예히 켄) 직역하면 '그러자 그것이 그렇게 있었다'이다. 여기서 히브리어 '켄'은 부사로서 '올바로, '정확히', '잘', '그와 같이', '그렇게', '즉시'란 다양한 뜻을 지닌다(왕상 20:40; 왕하 7:9; 시 1:4). 따라서 본문은 창조의 일이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창세기 1장 8절(창 1:8) 와이크라 엘로힘 라라키아 솨마임 와예히 에레브 와예히 보케르 욤 쉐니 히브리어구약BHS,8 וַיִּקְרָא אֱלֹהִים לָרָקִיעַ שָׁמָיִם וַיְהִי־עֶרֶב וַיְהִי־בֹקֶר יֹום שֵׁנִי׃ ף 새번역,8 하나님이 창공을 하늘이라고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튿날이 지났다. * 하나님이...부르시니라(וַיִּקְרָא אֱלֹהִים - 와이크라 엘로힘) 이 부분은 와우 계속법이 포함된 동사 '카라'가 문장의 서두에 오고 그 뒤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엘로힘'이 나옴으로써 천지 창조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하나님의 주도하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 궁창을 하늘이라(לָרָקִיעַ שָׁמָיִם - 라라키아 솨마임) '라라키아'는 '궁창'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라키아'의 앞에 정관사 '하'가 포함된 전치사 '레'가 붙은 형태로서 '그 궁창을'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솨마임'은 '하늘들'이라는 복수형이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그 궁창을 하늘들이라'가 된다. 즉, 하나님께서는 '궁창'을 '하늘들'이라고 부르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셨다는 것은 그 대상의 창조사역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둘째 날에는 궁창(하늘)을 중심으로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이 분리되는 하늘의 창조사역이 이루어졌다. 창세기 1장 9절(창 1:9) 와요멜 엘로힘 이카우 함마임 밑타하트 하솨마임 엘 마콤 에하드 웨테라에 하얍바솨 와예히 켄 히브리어구약BHS,9 וַיֹּאמֶר אֱלֹהִים יִקָּווּ הַמַּיִם מִתַּחַת הַשָּׁמַיִם אֶל־מָקֹום אֶחָד וְתֵרָאֶה הַיַּבָּשָׁה וַיְהִי־כֵן׃ 새번역,9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늘 아래에 있는 물은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은 드러나거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 천하의 물이(הַמַּיִם מִתַּחַת הַשָּׁמַיִם - 함마임 밑타하트 하솨마임) 여기서 '함마임'은 '그 물들'을, '밑타하트'는 '~아래의'를, '하솨마임'은 '그 하늘들'이다. 그래서 직역하면 '그 하늘들 아래의 물들'이다. 이처럼 '물들'과 '하늘들'에 정관사 '하'가 붙어 있는 이유는 본절의 앞에서 언급된 물과 하늘을 가르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언급된 천하의 물은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 중에 궁창 아래의 물이다. * 한 곳으로(אֶל־מָקֹום אֶחָד - 엘 마콤 에하드) 여기서 '한'으로 번역된 '에하드'는 '서로'(출 36:10), '동일하게'(레 24:22), '일제히'(삿 20:1), '일일이'(사 27:12), '함께'(사 65:25) 등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본절에서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였다는 것은 지구 전체가 육지와 바다로 양분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물은 물끼리 서로 함께 모이게 되어 육지가 드러나게 되었고, 바다와 육지가 서로 경계를 이루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바다나 강물이 자기 영역을 벗어나 범람하여 육지에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하셨다(시 104:6-9). * 모이고(יִקָּווּ - 이카우) '이카우'는 '함께 묶다', '튼튼하게 하다'란 원뜻이 있는 '카와'의 수동의 뜻을 갖는 단순 재귀형(Niphal)이므로 '함께 묶이다'란 의미가 있다. 또한 이는 미완료형으로서 앞으로도 계속하여 물이 멋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한곳에 모여 일정한 범위를 이루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 뭍이 드러나라(וְתֵרָאֶה הַיַּבָּשָׁה - 웨테라에 하얍바솨) 여기서 '뭍'(얍바솨)은 '마르다'(8:14)란 말에서 유래하여 물기가 없는 '마른 땅'(KJV, the Dry Land)을 의미한다. 그리고 '드러나라'(테라에)는 '보이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 '라아' 의 수동의 의미를 지닌 단순 재귀형(Niphal)이다. 따라서 본문은 지금까지 물에 덮여서 보이지 않았던 땅이 물이 한 곳으로 모임에 따라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처럼 물과 뭍이 제각기 적절한 위치에 자리를 잡게 됨으로써 지구는 마침내 각종 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곳으로 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창세기 1장 10절(창 1:10) 와이크라 엘로힘 라얍바솨 에레츠 우레미크웨 함마임 카라 얌밈 와야르 엘로힘 키 토브 히브리어구약BHS,10 וַיִּקְרָא אֱלֹהִים לַיַּבָּשָׁה אֶרֶץ וּלְמִקְוֵה הַמַּיִם קָרָא יַמִּים וַיַּרְא אֱלֹהִים כִּי־טֹוב׃ 새번역,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고 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고 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개역개정,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뭍을 땅이라(לַיַּבָּשָׁה אֶרֶץ - 라얍바솨 에레츠) 여기서 '뭍'은 9절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물을 한 곳에 모음으로 드러난 마른 땅을 가리킨다. 그리고
본절의 '땅'(에레츠)은 1절의 '천지'에 나오는 '지'와 동일한 단어인 '에레츠'이다. 그러나 1절의 '에레츠'와 본절의 '에레츠'는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 *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וּלְמִקְוֵה הַמַּיִם קָרָא יַמִּים - 우레미크웨 함마임 카라 얌밈) 직역하면 '그리고 그 물들의 모임을 바다들이라 부르다'이다. 여기서 '그 물들'(함마임)은 9절에 나오는 '천하의 물'을 가리킨다. 그리고 여기서 '바다'(야밈)는 지중해와 같은 큰 바다(sea) 뿐만 아니라 나일강이나 유프라테스강과 같은 강(river) 및 내륙의 호수(lake) 등을 가리킬 때도 사용된 히브리어 '얌'의 복수형이다. 따라서 본문의 '바다들'은 단순히 바다(sea) 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바다를 이루는 근원이 되는 모든 강들이나 바다의 파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지구상의 모든 호수들까지도 포괄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창세기 1장 11절(창 1:11) 와요멜 엘로힘 타드쉐 하아레츠 데쉐 에세브 마즈리아 제라 에츠 페리 오세 페리 레미노 아쉘 자르오 보 알 하아레츠 와예히 켄 히브리어구약BHS,11 וַיֹּאמֶר אֱלֹהִים תַּדְשֵׁא הָאָרֶץ דֶּשֶׁא עֵשֶׂב מַזְרִיעַ זֶרַע עֵץ פְּרִי עֹשֶׂה פְּרִי לְמִינֹו אֲשֶׁר זַרְעֹו־בֹו עַל־הָאָרֶץ וַיְהִי־כֵן׃ 새번역,11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움을 돋아나게 하여라. 씨를 맺는 식물과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가 그 종류대로 땅 위에서 돋아나게 하여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개역개정,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 땅은...내라(תַּדְשֵׁא הָאָרֶץ - 타드쉐 하아레츠) '하아레츠'는 '그 땅'이라는 의미로 앞에서 이야기한 '마른 땅' 즉, '뭍'을 가리킨다. 그리고 '타드쉐'는 '싹이 돋다, '움이 트다'라는 뜻이 있는 '따솨'의 사역 능동((Hiphil)형으로 '싹을 내게 하라'(KJV, Let bring forth)'란 권유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본문에서 이 단어가 미래에 계속 반복되는 현상을 나타낼 때 쓰이는 미완료형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땅에 여러 과목들이 자라게 될 것을 보여 준다. *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דֶּשֶׁא עֵשֶׂב מַזְרִיעַ זֶרַע עֵץ פְּרִי עֹשֶׂה פְּרִי לְמִינֹו אֲשֶׁר זַרְעֹו־בֹו עַל־הָאָרֶץ - 데쉐 에세브 마즈리아 제라 에츠 페리 오세 페리 레미노 아쉘 자르오 보 알 하아레츠) 하나님께서는 이제 땅에 식물이 나게 하셨다. 여기에 보면 그 종류가 '풀'(떼쉐), '채소'(에세브), '열매 맺는 나무'(에츠 페리) 이렇게 세 가지로 등장한다.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과 영어 NIV는 이를 '풀 즉 씨 맺는 채소들과 그 안에 씨 가진 열매 맺는 땅의 나무들(vegetation : seed-bearing plants and trees on the land that bear fruit with seed in it)'이라고 번역하며 식물이 두 가지 종류라고 보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 종류로 보든 세 가지 종류로 보든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식물을 각기 종류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각기 종류대로'를 뜻하는 히브리어 '레미노'는 '종류'(kind), '종'(species)을 뜻하는 히브리어 '민'에서 파생된 말로, 성경에서는 이 말을 매종류와 까마귀 종류, 개 종류와 고양이 종류 등 제각기 독특하게 구별된 종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이 처음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종류대로 만드셨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창세기 1장 12절(창 1:12) 와토체 하아레츠 데쉐 에세브 마즈리아 제라 레미네후 웨에츠 오세 페리 아쉘 자르오 보 레미네후 와야르 엘로힘 키 토브 히브리어구약BHS,12 וַתֹּוצֵא הָאָרֶץ דֶּשֶׁא עֵשֶׂב מַזְרִיעַ זֶרַע לְמִינֵהוּ וְעֵץ עֹשֶׂה־פְּרִי* אֲשֶׁר זַרְעֹו־בֹו לְמִינֵהוּ וַיַּרְא אֱלֹהִים כִּי־טֹוב׃ 새번역,12 땅은 푸른 움을 돋아나게 하고, 씨를 맺는 식물을 그 종류대로 나게 하고,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를 그 종류대로 돋아나게 하였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개역개정,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땅이 내니(וַתֹּוצֵא הָאָרֶץ - 와토체 하아레츠) 직역하면 '그러자 그 땅이 내었다'이다. 여기서 '내니'(토체)는 11절에 나오는 '내라'(따솨)와 달리 히브리어 '야차'의 사역형(Hiphil)이 쓰였다. 싹이 돋는 것을 나타내는 다소 정적인 단어인 '따솨'가 아니라 '나아가다'(수 16:7), '솟아나다'(시 73:7), '분출하다'(2:10; 신 8:7) 등으로도 번역되는 '야차'란 조금 더 동적인 단어가 사역형으로 쓰인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신속하게 순종하는 역동적인 땅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 풀(דֶּשֶׁא - 데쉐) 하나님이 창조하신 식물 가운데 가장 먼저 언급되는 '풀'은 11절에 나오는 '내다', '움이 돋다'라는 뜻을 지닌 '따솨'에서 유래한 단어로 '채소'나 '과목'과는 구별되는 동물들의 먹이가 되는 '풀'로 볼 수도 있고 모든 식물을 총칭하는 단어라고 볼 수도 있다. * 각기 종류대로(לְמִינֵהוּ - 레미네후) 여기에 나오는 히브리어 '레미네후'는 '~에 따라서'란 의미를 갖는 전치사 '레'와 '종류'(레 11:14; 신 14:14)를 의미하는 명사 '민'과 여기에 3인칭 남성 단수형 어미가 붙은 형태이다. 따라서 이를 직역하면 '그의 종류에 따라서(According to his kind)'이다. 이는 11절에 이어 본절에서도 2번이나 사용되었고,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있어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표현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처음부터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음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나타내는 것이다. * 씨 맺는 채소(עֵשֶׂב מַזְרִיעַ זֶרַע - 에세브 마즈리아 제라) '씨'(제라)는 식물의 씨 뿐 아니라 사람의 '정액'(레 15:17), '후손'(3:15) 등으로도 번역되는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 용어이다. 또한 '맺다'(마즈리아) 역시 앞선 '씨'와 동일한 어근의 단어로서 '맺다'란 의미 뿐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파종하다’(레 25:22), '농사하다'(23:10), '거두다'(출 23:16)란 의미도 있다. 우리말로 '채소'는 보통 사람이 식용으로 사용하는 식물을 가리키지만 채소로 번역된 히브리어 '에세브'는 사람 뿐만 아니라 동물의 먹이를 가리킬 때에도 사용된다(1:30). * 열매 맺는 나무(וְעֵץ עֹשֶׂה־פְּרִי - 웨에츠 오세 페리) 여기서 '맺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세'는 '창조하다'(5:1), '만들다'(출 20:11), '베풀다'(19:19), '시행하다'(출 21:11) 등과 같은 다양한 뜻을 지니는 히브리어 '아사'의 능동태 분사형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열매 맺는 능력을 나무에 부여하셨기에 나무는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조금 더 확대해서 해석을 하자면 우리 인간 역시도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삶의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창세기 1장 13절(창 1:13) 와예히 에레브 와예히 보켈 욤 쉐리쉬 히브리어구약BHS,13 וַיְהִי־עֶרֶב וַיְהִי־בֹקֶר יֹום שְׁלִישִׁי׃ ף 새번역,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사흗날이 지났다. 개역개정,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 이는 셋째 날이니라(יֹום שְׁלִישִׁי - 욤 쉐리쉬) 날을 의미하는 '욤'과 서수로 '셋째'를 가리키는 '쉐리쉬'가 연결되어 직역하면 '셋째 날'이 된다. 이 표현은 각 날들의 창조가 끝날 때마다 반복이 되는데 우리로 하여금 리듬감과 운율감을 느끼게 해준다. 창세기 1장 14절(창 1:14) 와요멜 엘로힘 예히 메오로트 비르키아 핫솨마임 레합딜 벤 하욤 우벤 하라옐라 웨하유 레오토트 우레모아딤 우레야밈 웨솨님 히브리어구약BHS,14 וַיֹּאמֶר אֱלֹהִים יְהִי מְאֹרֹת בִּרְקִיעַ הַשָּׁמַיִם לְהַבְדִּיל בֵּין הַיֹּום וּבֵין הַלָּיְלָה וְהָיוּ לְאֹתֹת וּלְמֹועֲדִים וּלְיָמִים וְשָׁנִים׃ 새번역,14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늘 창공에 빛나는 것들이 생겨서, 낮과 밤을 가르고, 계절과 날과 해를 나타내는 표가 되어라. 개역개정,14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 하나님이 이르시되(וַיֹּאמֶר אֱלֹהִים - 와요멜 엘로힘) * 하늘의 궁창에(בִּרְקִיעַ הַשָּׁמַיִם - 비르키아 핫솨마임) * 광명체들이 있어(יְהִי מְאֹרֹת - 예히 메오로트) 직역하면 '광명들이 있으라'(RSV, Let there be light)이다. 본문의 '예히'는 '존재하다'라는 뜻이 있는 '하야'의 단축형 (Voluntative)으로서 간접 명령형이다. 그리고 히브리어 '메오로트'는 복수형으로 하늘에 있는 해, 달, 별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첫째 날에 창조하신 빛은 히브리어로 '오르'이고 광명체는 히브리어로 '메오로트'이다. 이 '메오로트'는 그 원형이 '마오르'인데 이는 빛을 의미하는 '오르'에 '마'가 붙은 형태이다. 이렇게 단어 앞에 '마'가 붙으면 그 뜻이 '~하는 장소', '~하는 도구'가 된다. 따라서 '마오르'는 '빛을 내는 곳', '빛을 내는 도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첫째 날에는 빛을, 그리고 넷째 날에는 그 빛을 비추는 도구인 광명체들을 창조하신 것이다. *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לְהַבְדִּיל בֵּין הַיֹּום וּבֵין הַלָּיְלָה - 레합딜 벤 하욤 우벤 하라옐라) 여기에 나오는 '레합딜'은 '~을 하기 위하여'란 뜻을 가진 전치사 '레'와 '구별하다'(대상 23:13), '갈라내다'(사 56:3)라는 뜻을 가진 '빠달'의 부정사 연계형인 '합딜'이 결합되어 '구별하기 위하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벤'과 '우벤'은 일반적으로 함께 사용되며 '~사이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낮과 밤 사이에'라는 뜻이다. *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וְהָיוּ לְאֹתֹת וּלְמֹועֲדִים וּלְיָמִים וְשָׁנִים - 웨하유 레오토트 우레모아딤 우레야밈 웨솨님) 하나님께서는 광명체들을 만들고 그들에게 역할을 부여하신다. '징조와'로 번역된 '레오토트'는 '징조', '표적'을 가리키는 '오트'의 복수형 '오토트' 앞에 '~을 위하여'란 뜻을 가진 전치사 '레'가 결합하여 '징조들을 위하여'라는 뜻이다. '계절과'로 번역된 '우레모아딤'은 '시간', '기한', '절기' 등을 가리키는 '모에드'의 복수형 '모아딤'에 '우'와 '레'가 결합된 형태이다. 따라서 직역하면 '그리고 계절들을 위하여'라는 뜻이다. '날과'로 번역된 '우레야밈'은 '욤'(날)의 복수형 '야밈'에 '우'와 '레'가 결합된 형태이다. 직역하면 '그리고 날들을 위하여'라는 뜻이다. '해를'이라고 번역된 '웨솨님'은 '연'을 나타내는 '솨네'의 복수형 '솨님'에 '웨'를 결합한 형태이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그것들은 있으라 징조들을 위하여 계절들을 위하여 날들을 위하여 그리고 해들을'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광명체들을 통하여 낮과 밤을 나누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셨다. 창세기 1장 15절(창 1:15) 웨하유 리메오로트 비르키아 핫솨마임 레하이르 알 하아레츠 와예히 켄 히브리어구약BHS,15 וְהָיוּ לִמְאֹורֹת בִּרְקִיעַ הַשָּׁמַיִם לְהָאִיר עַל־הָאָרֶץ וַיְהִי־כֵן׃ 새번역,15 또 하늘 창공에 있는 빛나는 것들은 땅을 환히 비추어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개역개정,15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추라 하시니(וְהָיוּ לִמְאֹורֹת בִּרְקִיעַ הַשָּׁמַיִם לְהָאִיר עַל־הָאָרֶץ - 웨하유 리메오로트 비르키아 핫솨마임 레하이르 알 하아레츠) 직역하면 '그리고 그 광명체들은 그 땅 위에 비추기 위하여 그 하늘들의 궁창 안에 있으라'이다. 이는 광명체들이 존재하는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그 땅' 즉 지구를 비추는 것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의 표현을 통해 성경이 지구와 인간을 중심으로 서술되었음을 알 수 있다. * 그대로 되니라(וַיְהִי־כֵן - 와예히 켄) 창세기 1장 16절(창 1:16) 와야아스 엘로힘 엩 쉬네 함메오로트 학게도림 엩 함마오르 학가돌 레멤쉐레트 하욤 웨엩 함마오르 하카톤 레멤쉐레트 하라옐라 웨엩 하코카빔 히브리어구약BHS,16 וַיַּעַשׂ אֱלֹהִים אֶת־שְׁנֵי הַמְּאֹרֹת הַגְּדֹלִים אֶת־הַמָּאֹור הַגָּדֹל לְמֶמְשֶׁלֶת הַיֹּום וְאֶת־הַמָּאֹור הַקָּטֹן לְמֶמְשֶׁלֶת הַלַּיְלָה וְאֵת הַכֹּוכָבִים׃ 새번역,16 하나님이 두 큰 빛을 만드시고, 둘 가운데서 큰 빛으로는 낮을 다스리게 하시고, 작은 빛으로는 밤을 다스리게 하셨다. 또 별들도 만드셨다. 개역개정,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וַיַּעַשׂ אֱלֹהִים אֶת־שְׁנֵי הַמְּאֹרֹת הַגְּדֹלִים - 와야아스 엘로힘 엩 쉬네 함메오로트 학게도림) 여기서 말하는 두 큰 광명체는 해와 달을 의미한다. *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אֶת־הַמָּאֹור הַגָּדֹל לְמֶמְשֶׁלֶת הַיֹּום וְאֶת־הַמָּאֹור הַקָּטֹן לְמֶמְשֶׁלֶת הַלַּיְלָה וְאֵת הַכֹּוכָבִים - 엩 함마오르 학가돌 레멤쉐레트 하욤 웨엩 함마오르 하카톤 레멤쉐레트 하라옐라 웨엩 하코카빔) 하나님께서는 큰 광명체인 '해'가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인 '달'이 밤을 주관하게 하셨다. 그리고 수많은 별들을 만드셨다. 한편 본문의 '주관하게 하시고'(레멤쉐레트)는 '다스림'(왕하 9:19), '관할'(렘 51:28) 이란 뜻을 갖는 명사 '멤솰라'의 연계형에 '~을 위하여'란 뜻의 전치사 '레'가 결합된 형태이다. 따라서 본문은 '(낮, 밤)을 주관하기 위한 (큰, 작은)광명체'라는 뜻이다. 여기서 주관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해와 달을 낮과 밤을 다스리는 신과 같은 존재로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다. 이들은 단지 하나님께서 만드신 비인격적인 피조물로서 낮과 밤을 구분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다. 창세기 1장 17절(창 1:17) 와이텐 오탐 엘로힘 비르키아 핫솨마임 레하이르 알 하아레츠 히브리어구약BHS,17 וַיִּתֵּן אֹתָם אֱלֹהִים בִּרְקִיעַ הַשָּׁמָיִם לְהָאִיר עַל־הָאָרֶץ׃ 새번역,17 하나님이 빛나는 것들을 하늘 창공에 두시고 땅을 비추게 하시고, 개역개정,17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וַיִּתֵּן אֹתָם אֱלֹהִים בִּרְקִיעַ הַשָּׁמָיִם לְהָאִיר עַל־הָאָרֶץ - 와이텐 오탐 엘로힘 비르키아 핫솨마임 레하이르 알 하아레츠) 여기서 '그것들'은 앞절에 나온 해와 달과 별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셨다. 이와 같이 광명체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들로, 땅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비롯한 생명체들을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해와 달과 별들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만드시고 그들을 통해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계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창세기 1장 18절(창 1:18) 웨리메숄 바욤 우바라옐라 우라합딜 벤 하오르 우벤 하호쉐크 와야르 엘로힘 키 토브 히브리어구약BHS,18 וְלִמְשֹׁל בַּיֹּום וּבַלַּיְלָה וּלֲהַבְדִּיל בֵּין הָאֹור וּבֵין הַחֹשֶׁךְ וַיַּרְא אֱלֹהִים כִּי־טֹוב׃ 새번역,18 낮과 밤을 다스리게 하시며, 빛과 어둠을 가르게 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개역개정,18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וְלִמְשֹׁל בַּיֹּום וּבַלַּיְלָה וּלֲהַבְדִּיל בֵּין הָאֹור וּבֵין הַחֹשֶׁךְ - 웨리메숄 바욤 우바라옐라 우라합딜 벤 하오르 우벤 하호쉐크)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해와 달과 별들(천체들)을 통해 낮과 밤, 빛과 어둠을 주관하신다. *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וַיַּרְא אֱלֹהִים כִּי־טֹוב - 와야르 엘로힘 키 토브) 이 표현은 총 6일간의 천지 창조가 진행되는 동안 7번이나 반복되었다(4, 10, 12, 18, 21, 25, 31절). 둘째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이 말이 나오는데, 특히 셋째 날(10, 12절)과 여섯째 날(25, 31절)에는 각각 두 번씩 이 말이 나온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하늘의 천체들(해, 달, 별들) 역시도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창세기 1장 19절(창 1:19) 와예히 에레브 와예히 보케르 욤 레비이 히브리어구약BHS,19 וַיְהִי־עֶרֶב וַיְהִי־בֹקֶר יֹום רְבִיעִי׃ ף 새번역,19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나흗날이 지났다. 개역개정,19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 이는 넷째 날이니라(יֹום רְבִיעִי - 욤 레비이) 천지 창조의 넷째 날은 태양이 지고 달이 떠오르며, 별이 밤 하늘에 빛난 최초의 날이었다. 즉 이때로부터 지구는 비로소 오늘날과 같이 태양이 지고 달이 떠오름으로써 저녁이 되고, 다시 태양이 떠오름으로써 아침이 된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혼돈하고 공허했던 이 세상이 조금씩 지금의 모습과 같은 형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혼돈에서 질서를 세워가시는 분이시다. 창세기 1장 20절(창 1:20) 와요멜 엘로힘 이쉬레추 함마임 쉐레츠 네페쉬 하야 웨오프 예오페프 알 하아레츠 알 페네이 레키아 핫솨마임 히브리어구약BHS,20 וַיֹּאמֶר אֱלֹהִים יִשְׁרְצוּ הַמַּיִם שֶׁרֶץ נֶפֶשׁ חַיָּה וְעֹוף יְעֹוףֵף עַל־הָאָרֶץ עַל־פְּנֵי רְקִיעַ הַשָּׁמָיִם׃ 새번역,20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물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고, 새들은 땅 위 하늘 창공으로 날아다녀라" 하셨다. *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יִשְׁרְצוּ הַמַּיִם שֶׁרֶץ נֶפֶשׁ חַיָּה - 이쉬레추 함마임 쉐레츠 네페쉬 하야) 직역하면 '물들은 물에서 생활하는 호흡하는 것들로 가득하게 하라'이다. 본절에서 '번성하게 하라'에 해당하는 '이쉬레추'의 기본형 '솨라츠'는 '번식하다'(출 1:7), '무수히 생기다'(출 8:3), '득실거리다', '가득하다'(7:21; 시 105:30)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그리고 '쉐레츠'는 '기는 것'(7:21; 레 11:29)으로도 번역되는 단어로서 '파충류'(레 11:40) 혹은 '수중 동물'(레 11:10)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네페쉬'는 '혼'(25:18), '목숨'(12:13), '생기'(겔 47:9) 등으로도 번역되나 여기서는 특히 '호흡'이란 측면이 강조된다. 또한 '하야'는 '살아있다'(23:1), '생활하다'(레 25:35, 36), '활발하다'(시 38:19) 등의 뜻을 지닌다. 따라서 이를 종합하면 본문의 '생물'(쉐레츠 네페쉬 하야)은 '물에서 생활하는 호흡하는 것들'로 직역할 수 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식물과는 달리 동물만이 호흡을 하며 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기서 '네페쉬 하야'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וְעֹוף יְעֹוףֵף עַל־הָאָרֶץ עַל־פְּנֵי רְקִיעַ הַשָּׁמָיִם - 웨오프 예오페프 알 하아레츠 알 페네이 레키아 핫솨마임) 여기서 '새'(오프)는 '날다', '날개치다', '춤추다' 등으로 번역되는 '우프'에서 유래하여 단순히 '새' 뿐만 아니라 '곤충'(레 11:20)까지도 포함하는 모든 날짐승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날으라'(예오페프)는 앞에서 언급한 '새'(오프)가 유래된 동사 '우프'의 미완료형으로서 계속 날개짓하며 하늘을 날아다니라는 뜻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다섯째 날에 물과 하늘의 생물들을 창조하셨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창세기 1장 21절(창 1:21) 와이브라 엘로힘 엩 하타니님 학게돌림 웨엩 콜 네페쉬 하하야 하로메세트 아쉘 솨레추 함마임 레미네헴 웨엩 콜 오프 카나프 레미네후 와야르 엘로힘 키 토브 히브리어구약BHS,21 וַיִּבְרָא אֱלֹהִים אֶת־הַתַּנִּינִם הַגְּדֹלִים וְאֵת כָּל־נֶפֶשׁ הַחַיָּה הָרֹמֶשֶׂת אֲשֶׁר שָׁרְצוּ הַמַּיִם לְמִינֵהֶם וְאֵת כָּל־עֹוף כָּנָף לְמִינֵהוּ וַיַּרְא אֱלֹהִים כִּי־טֹוב׃ 새번역,21 하나님이 커다란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는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고, 날개 달린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개역개정,21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큰 바다 짐승들(הַתַּנִּינִם הַגְּדֹלִים - 하타니님 학게돌림) 여기서 '큰'(학게돌림)은 '크다'(신 6:10), '강하다'(신 2: 10), '존귀하다'(삼하 7:9), '강대하다'(18:18)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짐승들'(하타니님)은 '펼치다', '뻗치다' 라는 뜻의 동사 '타난'에서 파생된 복수 형태로 '길게 뻗은 것들'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이를 '용'(사 51:9), '뱀'(출 7:9), '악어'(겔 29:3) 등과 같이 길이가 긴 동물을 가리키는 말로 주로 번역하였고, 고대 가나안 신화 속에 나오는 어떤 괴물을 지칭할 때도 사용되었다(욥 7:12; 시 74:13; 사 27:1; 51:9). 그러나 여기서는 물에 사는 몸집이 크며 힘이 강한 동물 즉 고래, 상어, 악어 등을 가리킨다.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과 '날개 있는 모든 새'는 20절의 설명을 참고하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다섯째 날에 바다의 생물들과 날아다니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창세기 1장 22절(창 1:22) 와예바레크 오탐 엘로힘 레모르 페루 우레부 우밀레우 엩 함마임 바얌밈 웨하오프 이렙 바아레츠 히브리어구약BHS,22 וַיְבָרֶךְ אֹתָם אֱלֹהִים לֵאמֹר פְּרוּ וּרְבוּ וּמִלְאוּ אֶת־הַמַּיִם בַּיַּמִּים וְהָעֹוף יִרֶב בָּאָרֶץ׃ 새번역,22 하나님이 이것들에게 복을 베푸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여라. 새들도 땅 위에서 번성하여라" 하셨다. 개역개정,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 복을 주시며(וַיְבָרֶךְ - 와예바레크) 직역하면 '그러자 그분께서 복을 주셨다'이다. 하나님께서 창조사역을 진행하시며 처음으로 피조물에게 복을 주시는 장면이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복을 주다'(바라크)는 삶의 모든 상황 가운데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잘 되도록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성경은 주로 성공, 번영, 다산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라고 이야기한다(9:1; 12:2; 27:27). 따라서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섯째 날에 창조하신 동물들에게 다산과 번성의 복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에 이 세상이 생명으로 충만하기를 원하신다. 따라서 이 세상이 생명을 가진 존재들로 가득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인 것이다. * 생육하고 번성하여...충만하라(פְּרוּ וּרְבוּ וּמִלְאוּ - 페루 우레부 우밀레우) 원어 성경에는 이 세 단어가 모두 2인칭 복수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 '생육하다'(파라)는 열매가 주렁주렁 맺어지는 상태를 뜻하고, '번성하다'(라바)는 풍성히 늘어나 증가하는 상태를 뜻하며, '충만하다'(말레)는 온 땅에 가득 차 만족할 정도로 풍부한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이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를 세 번이나 명령형으로 반복한 이유는 그만큼 생명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이 땅에 충만한 것이 하나님의 중요한 뜻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그리고 생명이 이 땅에 충만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창세기 1장 23절(창 1:23) 와예히 에레브 와예히 보켈 욤 하미쉬 히브리어구약BHS,23 וַיְהִי־עֶרֶב וַיְהִי־בֹקֶר יֹום חֲמִישִׁי׃ ף 개역개정,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개역개정,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 다섯째 날이니라(יֹום חֲמִישִׁ - 욤 하미쉬) 다섯째 날은 이 땅에 생명력이 가득한 하루였다. 지금까지의 땅이 적막하고 정적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물 속에서 물고기가 역동적으로 헤엄치고 공중에는 각종 새들이 날아다니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계속해서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도록 복을 더해 주셨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을 보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다. 창세기 1장 24절(창 1:24) 와요멜 엘로힘 토체 하아레츠 네페쉬 하야 레미나흐 베헤마 와레메스 웨하예토 에레츠 레미나흐 와예히 켄 히브리어구약BHS,24 וַיֹּאמֶר אֱלֹהִים תֹּוצֵא הָאָרֶץ נֶפֶשׁ חַיָּה לְמִינָהּ בְּהֵמָה וָרֶמֶשׂ וְחַיְתֹו־אֶרֶץ לְמִינָהּ וַיְהִי־כֵן׃ 새번역,24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어라. 집짐승과 기어다니는 것과 들짐승을 그 종류대로 내어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개역개정,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 가축과(בְּהֵמָה - 베헤마) 이 단어는 새, 물고기, 파충류를 제외한 네 발 달린 짐승을 가리키는데 주로 사용이 되며 사람이 아닌 모든 동물을 가리키는 매우 포괄적인 의미로도 쓰인다(출 9:9). 여기서는 소, 양, 짐 싣는 짐승과 같은 집 짐승 즉, '가축'을 의미한다. * 기는 것(וָרֶמֶשׂ - 와레메스) '기어 다니다'(9:2; 레 11:44, 46)란 의미가 있는 '라마스'에서 유래한 말로 다리가 없거나 많은 다리를 갖고 있어서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곤충이나 파충류를 가리키는데 지렁이, 거머리, 구더기, 지네, 뱀 등을 가리킨다(6:7; 7:14, 23; 호 2:20). * 땅의 짐승(וְחַיְתֹו־אֶרֶץ - 웨하예토 에레츠) '짐승'(하이)은 '살다'(하야)라는 동사에서 유래하여 '생명'(1:30; 신 28:66), '생물'(욥 30:23; 겔 1:3)로도 번역되는 용어로서 원래는 살아 있는 모든 동물을 가리킨다. 그러나 많은 경우 본문에서와 같이 '짐승'(8:19; 레 11:27; 시 50:10)으로 번역되며 특히 집에서 사육하는 가축과 구별되는 야생 '들짐승'(7:14; 레 25:7; 시 68:30)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도 앞에 나온 '가축'(베헤마)과 구별되는 들짐승을 가리키고 있다. 특히 여기서 '땅'(에레츠)이라는 말이 포함된 것은 어류나 조류와 구별이 되는, 땅 위에 사는 야생 동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여섯째 날에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창세기 1장 25절(창 1:25) 와야아스 엘로힘 엩 하야트 하아레츠 레미나흐 웨엩 하베헤마 레미나흐 웨엩 콜 레메스 하아다마 레미네후 와야르 엘로힘 키 토브 히브리어구약BHS,25 וַיַּעַשׂ אֱלֹהִים אֶת־חַיַּת הָאָרֶץ לְמִינָהּ וְאֶת־הַבְּהֵמָה לְמִינָהּ וְאֵת כָּל־רֶמֶשׂ הָאֲדָמָה לְמִינֵהוּ וַיַּרְא אֱלֹהִים כִּי־טֹוב׃ 새번역,25 하나님이 들짐승을 그 종류대로, 집짐승도 그 종류대로, 들에 사는 모든 길짐승도 그 종류대로 만드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개역개정,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그 종류대로(לְמִינָהּ - 레미나흐) 여기에 나오는 히브리어 '레미나흐'는 '~에 따라서'란 의미를 갖는 전치사 '레'와 '종류'(레 11:14; 신 14:14)를 의미하는 명사 '민'이 결합된 형태이다. 따라서 이를 직역하면 '종류에 따라서'이다. 이번 절에서는 이 표현을 땅의 짐승, 가축, 땅에 기는 모든 것에 각각 사용함으로써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하나님에 의해 종류대로 창조되었음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성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창세기 1장 26절(창 1:26) 와요멜 엘로힘 나아세 아담 베찰메누 키드무테누 웨이르두 비데가트 하얌 우베오프 핫솨마임 우밥베헤마 우베콜 하아레츠 우베콜 하레메스 하로메스 알 하아레츠 히브리어구약BHS,26 וַיֹּאמֶר אֱלֹהִים נַעֲשֶׂה אָדָם בְּצַלְמֵנוּ כִּדְמוּתֵנוּ וְיִרְדּוּ בִדְגַת הַיָּם וּבְעֹוף הַשָּׁמַיִם וּבַבְּהֵמָה וּבְכָל־הָאָרֶץ וּבְכָל־הָרֶמֶשׂ הָרֹמֵשׂ עַל־הָאָרֶץ׃ 새번역,26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 ㉢히, '아담' *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בְּצַלְמֵנוּ כִּדְמוּתֵנוּ - 베찰메누 키드무테누) 여기서 '형상'(첼렘)은 '그늘지다'라는 말에서 유래하여 일차적으로는 '그림자'(시 39:6)를 가리킨다. 그러나 그 뜻이 더욱 확장되어 그림자가 그 실체의 모양을 반영하듯 실체의 모양을 반영하는 '형상'이란 말로 주로 번역되었다(5:3; 9:6; 삼상 6:5; 겔 23:14). 또한 '모양'(데무트)은 '닮다'(따마)에서 유래하여 어떤 실체와 유사한 상태를 가리킨다(대하 4:3; 사 40:18). 초대 교회 교부들은 '형상'과 '모양'을 별개의 단어로 취급했다. 즉, '형상'은 구체적인 닮음으로서 신체와 관련된 것으로 보았고, '모양'은 추상적인 유사성으로서 영적이고 도덕적인 본성으로 보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물질적인 요소가 없으시다. 따라서 '형상'을 신체와 관련된 것으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성경의 일반적 용례상 '형상'과 '모양'은 상호 융통성 있게 사용되는 단어로서 엄밀히 구별하기 보다는 유사한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함으로써 강조의 효과를 노리는 문학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사람의 전인격이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닮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닮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크게 세 가지의 관점이 있다. (1) 실체적인 관점 - 어거스틴, 루터, 칼빈 등 고전적인 신학자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어떤 '실체적인 요소'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았다. 즉, 어거스틴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이성과 자유의지가 사람과 짐승을 구별해 주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보았고, 루터와 칼빈은 어거스틴의 입장을 수용하되 에베소서 4장 24절과 골로새서 3장 10절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부여하신 의와 진리와 거룩함과 지식 등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주장했다. (2) 관계적인 관점 -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에게 부여된 어떤 실체가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 및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데 있다는 주장이다. 즉, 사람이 경험하는 관계성이 곧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의미이다(Emil Brunner, Karl Barth). 특히 바르트는 하나님의 세 위격 간의 관계성이 곧 하나님의 형상이며, 사람은 이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 및 다른 사람들과의 인격적인 관계성 속에서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3) 기능적 관점 -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어떤 본질도 아니고 관계성도 아니고, 오히려 사람이 수행하는 어떤 기능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부여하신 근본적인 과업과 관련이 있는데, 하나님은 창세기 1장 28절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만물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 대신에 만물을 다스리는 대리 통치 행위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주장이다. 이 세 가지의 관점은 서로 상충된다기 보다는 상호 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닮았다는 것은 사람이 이성과 자유의지와 의와 진리와 거룩함과 지식을 가진 존재라는 뜻이고, 하나님 및 다른 사람들과의 인격적인 관계성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이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리 통치 행위를 수행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 우리가…만들고(נַעֲשֶׂה - 나아세) 이는 '만들다'는 뜻을 가진 '아사'의 1인칭 복수형으로, 기존 재료를 사용하여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사람을 흙이라는 재료로 만드셨지만, 그 결과로 만들어진 사람은 이전의 그 어떤 창조물과도 구별이 되는 완전히 새로운 창조물임을 의미한다. 또한 여기서 '우리'라는 1인칭 복수형이 사용되었는데, 이렇게 하나님이 자신을 복수형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서는 크게 네 가지의 견해가 있다. (1) 하나님이 하늘 보좌에서 천사들과 의논하신 사실을 가리킨다는 견해이다(Skinner, Von Rad, Kline). (2) 장엄의 복수로써 하나님의 왕적 위엄을 나타낸다는 견해이다(Keil, Dillmann). (3) 하나님이 스스로를 격려하여 인간 창조를 고무시키고 있는 표현이라는 견해이다(Westerman, Steck). (4)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구약적 증거라는 견해이다(Barnabas, Justin Martyr). 여기서 가장 합당한 견해는 마지막 네 번째 견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의 창조에 있어서 '우리'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최고의 걸작품인 사람을 창조함에 있어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의 밀접한 협의와 상호 협조가 있었음을 나타낸다. * 사람(אָדָם - 아담) 창조 사역의 절정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의 창조이다. '사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담'은 이중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보통 명사로서 일반 사람을 가리키며, 둘째는 고유 명사로서 최초의 사람인 아담을 가리킨다. 한편 '아담'이란 말의 기원에 대해서는 5가지의 견해가 있다. (1) '붉어진다'라는 말에서 유래하여, 인간의 피부 빛을 반영하고 있다는 견해이다. (2) '빛이 난다'라는 뜻의 아람어에서 유래하여, 아담을 빛나는 자로 만들었음을 뜻한다는 견해이다. (3) '데리고 온다, '결합시킨다'는 뜻의 아람어에서 유래하여, 아담이 인류의 조상이며 모든 인류를 하나로 결합시키는 자임을 뜻한다는 견해이다. (4) '모양'이란 어원에서 유래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음을 뜻한다는 견해이다. (5) '땅'(아다마)에서 유래하여, 인간이 흙으로 만들어졌음을 반영한다는 견해이다. 모두가 일리가 있지만 마지막 다섯 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 다스리게 하자(וְיִרְדּוּ - 웨이르두) 직역하면 '그리고 그들로 다스리게 하자'이다. 여기서 '다스리다'(라다)는 '사로잡다'(사 14:2), '치리하다'(사 41:2), '거느리다'(왕상 5:16), '취하다'(삿 14:9, 19), '통치하다' 등과 같은 다양한 의미가 있다. 이는 사람이 다른 피조물들을 주관할 수 있는 권위와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존재이며, 다른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을 대신하여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는 사람이 마음대로 자연을 지배하고 파괴해도 되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게 잘 관리해야 함을 의미한다. 창세기 1장 27절(창 1:27) 와이브라 엘로힘 엩 하아담 베찰모 베체렘 엘로힘 바라 오토 자카르 우네케바 바라 오탐 히브리어구약BHS,27 וַיִּבְרָא אֱלֹהִים אֶת־הָאָדָם בְּצַלְמֹו בְּצֶלֶם אֱלֹהִים בָּרָא אֹתֹו זָכָר וּנְקֵבָה בָּרָא אֹתָם׃ 새번역,27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 ㉣히, '아담' * 남자와 여자를(זָכָר וּנְקֵבָה - 자카르 우네케바) '남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자카르'는 '여성'과 대조되는 '남성'을 가리키는 데 쓰이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성인 남자 뿐만 아니라 남자 아이를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으며 심지어는 수컷 짐승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다. 반대로 '여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네케바'는 여성 사람(5:2) 혹은 암컷 짐승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앞서 나온 '사람'(아담)이 최초의 사람 '아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모든 사람을 가리키듯이 본문의 '남자'와 '여자'도 '아담'과 '하와'라는 특정 인물이 아니라 일반적인 '남성'과 '여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본절에서 남자와 더불어 여자의 창조를 특별히 언급한 것은 창조시부터 남녀 간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뜻이며, 둘 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동등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창세기 1장 28절(창 1:28) 와예바레크 오탐 엘로힘 와요멜 라헴 엘로힘 페루 우레부 우미레우 엩 하아레츠 웨키베슈하 우레두 비데가트 하얌 우베오프 핫솨마임 우베콜 하야 하로메세트 알 하아레츠 히브리어구약BHS,28 וַיְבָרֶךְ אֹתָם אֱלֹהִים וַיֹּאמֶר לָהֶם אֱלֹהִים פְּרוּ וּרְבוּ וּמִלְאוּ אֶת־הָאָרֶץ וְכִבְשֻׁהָ וּרְדוּ בִּדְגַת הַיָּם וּבְעֹוף הַשָּׁמַיִם וּבְכָל־חַיָּה הָרֹמֶשֶׂת עַל־הָאָרֶץ׃ 새번역,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셨다. * 복을 주시며(וַיְבָרֶךְ - 와예바레크) 하나님께서는 동물들에게 복을 주신 것과(22절)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도 복을 주셨다. 22절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우리 삶의 모든 상황 가운데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잘 되도록 인도하시는 것으로 주로 성공, 번영, 다산을 의미한다. 여기서도 하나님께서는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주셨는데 거기에 더 나아가 다른 존재를 정복하고 다스리는 권한까지 주셨다. * 정복하라...다스리라(וְכִבְשֻׁהָ וּרְדוּ - 웨키베슈하 우레두) 여기서 '정복하다'(카바쉬)는 '발로 밟다'(슥 9:15; 미 7:19), '복종케 하다'(민 32:22)라는 뜻으로 이 세상의 여러 곳을 다니며 그 곳을 자신의 발로 밟고 삶의 터전으로 삼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다스리다'(라다)는 26절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절대 주권을 행사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명령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것으로 이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역할을 부여받은 청지기이자 대리 통치자임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이 세상을 잘 관리하고 개발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하고 아름답게 다스려야 한다. 창세기 1장 29절(창 1:29) 와요멜 엘로힘 힌네 나타티 라켐 엩 콜 에세브 조레아 제라 아쉘 알 페네이 콜 하아레츠 웨엩 콜 하에츠 아쉘 보 페리 에츠 조레아 자라 라켐 이흐예 레오크라 히브리어구약BHS,29 וַיֹּאמֶר אֱלֹהִים הִנֵּה נָתַתִּי לָכֶם אֶת־כָּל־עֵשֶׂב זֹרֵעַ זֶרַע אֲשֶׁר עַל־פְּנֵי כָל־הָאָרֶץ וְאֶת־כָּל־הָעֵץ אֲשֶׁר־בֹּו פְרִי־עֵץ זֹרֵעַ זָרַע לָכֶם יִהְיֶה לְאָכְלָה׃ 새번역,29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땅 위에 있는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들이 너희의 먹거리가 될 것이다. 개역개정,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 너희에게 주노니(הִנֵּה נָתַתִּי לָכֶם - 힌네 나타티 라켐) 한글 성경에는 번역이 안 되었지만 원어 성경에는 '보라'(힌네)란 표현이 있다. 이는 본문에 관심과 초점을 더욱 집중시키는 표현이다. 여기서 '주다'(나탄) 라는 단어는 '주다' 외에도 '위임하다'(39:4), '용납하다'(민 21:23), '허락하다'(에 8:11), '채워 주다'(미 3:5) 등의 뜻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식물을 주시되, 부족함 없이 넉넉하게 채워 주신다는 뜻이다. *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לָכֶם יִהְיֶה לְאָכְלָה - 라켐 이흐예 레오크라) 최초 에덴 동산에 거주한 사람과 동물들에게는 각 종류의 채소와 과일만이 먹을 것으로 주어졌다. 성경에서 육식이 공식적으로 허락된 시기는 노아 홍수 사건 직후의 일이다(9:3). 그리고 이후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육식을 하되 가려서 하라고 하셨다(레 11장). 아마도 사람의 건강과 관련된 문제라고 보이는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좋은 음식을 먹고 건강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먹을 것을 통해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것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창세기 1장 30절(창 1:30) 우레콜 하야트 하아레츠 우레콜 오프 핫솨마임 우레콜 로메스 알 하아레츠 아쉘 보 네페쉬 하야 엩 콜 예레크 에세브 레아케라 와예히 켄 히브리어구약BHS,30 וּלְכָל־חַיַּת הָאָרֶץ וּלְכָל־עֹוף הַשָּׁמַיִם וּלְכֹל רֹומֵשׂ עַל־הָאָרֶץ אֲשֶׁר־בֹּו נֶפֶשׁ חַיָּה אֶת־כָּל־יֶרֶק עֵשֶׂב לְאָכְלָה וַיְהִי־כֵן׃ 새번역,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위에 사는 모든 것, 곧 생명을 지닌 모든 것에게도 모든 푸른 풀을 먹거리로 준다"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개역개정,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 모든...모든...모든...모든(וּלְכָל...וּלְכָל...וּלְכָל...כָּל - 우레콜...우레콜...우레콜...콜) 히브리어 '콜'은 '어느 하나의 제외됨도 없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앞선 여러 구절에서도 이 단어가 여러 번 반복되었으나 본절에서는 무려 4번이나 반복되며 운율감을 더해주고 있다. *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אֶת־כָּל־יֶרֶק עֵשֶׂב לְאָכְלָה - 엩 콜 예레크 에세브 레아케라) 이를 통하여 우리는 타락 이전에는 인간 뿐 아니라 모든 동물도 식물만을 먹이로 삼았으므로 약육강식의 피흘림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회복될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이와 같이 육식 동물이 모두 변하여 초식 동물이 되는, 즉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고 인간을 더 이상 해치지도 않으며(사 11:7; 65:5) 인간과 동물이 어울려 사는 평화로운 나라가 될 것임을 노래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이 땅에서 그러한 평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창세기 1장 31절(창 1:31) 와야르 엘로힘 엩 콜 아쉘 아사 웨힌네 토브 메오드 와예히 에레브 와예히 보켈 욤 핫쉿쉬 히브리어구약BHS,31 וַיַּרְא אֱלֹהִים אֶת־כָּל־אֲשֶׁר עָשָׂה וְהִנֵּה־טֹוב מְאֹד וַיְהִי־עֶרֶב וַיְהִי־בֹקֶר יֹום הַשִּׁשִּׁי׃ ף 새번역,31 하나님이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참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샛날이 지났다. *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וְהִנֵּה־טֹוב מְאֹד - 웨힌네 토브 메오드) 이를 직역하면 '그런데 보라, 얼마나 좋으냐!'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6일간의 창조 사역을 마무리 지으면서 당신의 작품에 대해 크게 감탄하시고 만족해 하시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심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오드'는 '풍부하다'(13:2), '크다'(13:13), '심하다'(41:31), '강렬하다'(출 10:19), '무수하다'(사 47:9) 등으로도 번역이 되는데 양과 질에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창조 사역을 수행하시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10, 12, 18, 21, 25절)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하셨으나 여기서 특히 '심히'(메오드)란 말을 사용하신 것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대로 한 치의 오차나 흠도 없이 완벽하고 아름답게 성취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죄로 오염되어 심히 좋지 못한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모습과 같이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도록!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