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배우자 더쿠 - unmyeong-ui baeuja deoku

통하였느냐?

얼마 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눈에 띄는 기사 하나를 보게 되었다. 기혼 남성 23명이 자신의 배우자가 운명의 상대라고 느꼈던,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결정하게 된 결정적 순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경험담을 간략하게 적어 놓은 글이었다Hillin, 2014.

난 ‘이거 재미있겠다’ 생각하며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사랑에 빠진 순간, 또는 ‘바로 이 사람이 내 운명이야'라고 느낀 순간이라는, 어찌 보면 거창한 순간에 대한 묘사이기 때문에. 나는 어떤 엄청난 경험들이 적혀 있을지에 대한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경험담들을 하나 하나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나의 기대에 부응하는 엄청나고 대단한 경험담을 적어 놓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평범하다 못해 사소해 보이는 순간들이 대부분이었다. 23가지 이야기에는 몇 가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테마가 있었다. 바로 배려, 조건 없는 사랑 등이었다. 그런데 유독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테마가 있었으니 바로 '통하는 느낌'이었다.

운명의 배우자를 마주한 평범한 순간

Pierre-Auguste Renoi,1841–1919. ‘Dance at Bougival’, 1882-1883, oil on canva, 182×98 cm, Museum of Fine Arts.

남자는 여자친구와 함께 살기로 한 새 집에 이삿짐을 풀던 순간을 떠올렸다. 각자가 가지고 온 이삿짐을 정리해 보니 자신과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책들이 모두 똑같았다는 것이다. 이걸 본 남자는 ‘독서 취향이 이렇게 완벽하게 통하다니! 우린 천생연분이야!’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비슷한 경우로, 소설 ‘반지의 제왕’ 덕후이던 한 남자는 간달프의 검인 “글람드링”을 잘못 발음했을 때 여자친구가 발음을 교정해 주었다고 한다. 그 순간 그는 자기보다 더한 반지의 제왕 덕후인 여자친구가 운명의 상대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영화에 관련된 에피소드도 있다. 남자는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영화를 보러 갔다. 그저 그런 영화였다. 그런데 아무도 안 웃는 장면에서 유일하게 자신과 함께 웃음을 터트린 한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그 이후에도 (영화를 볼 때 뿐만 아니라) 삶 속에서 계속 자신과 같은 포인트에 웃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과 웃음 코드가 완전히 통하는 이 여자가 바로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여자가 25년째 함께 살고 있는 자신의 아내라고 했다.

더한 케이스도 있다. 당시 데이트 중이던 여자친구와 길거리를 함께 손 잡고 걸어가고 있던 한 남자. 이 남자는 보도블럭 끝에서 도로로 언제나처럼 폴짝 뛰어 내려갔다. 인도 끝에서 이렇게 폴짝 뛰어내리는 것은 어려서부터 이 남자가 항상 해 오던 행동이었다. 그런데 여자친구도 한 박자의 주춤거림도 없이, 완벽히 동일한 순간에 자신과 함께 인도 끝에서 차도로 폴짝 뛰어 내리는 것이다. 이 순간 이 남자는 “바로 이 사람이야”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이거다. 자신은 운전할 때 다른 운전자들이 갑자기 끼어들거나 답답하게 운전을 하거나 하면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지만 뒤끝은 없다고 말하는 한 남자. 어느 날 여자친구가 운전하고 자신이 조수석에 앉아 있었는데, 앞으로 차 한대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자신이 뭐라 말 한마디도 채 꺼내기 전에 여자친구는 대뜸 “지금 xx 장난해?” 라며 앞차에게 욕을 했다고 한다. 그 순간이 이 남자에게는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졌다. 이 외에도 여자친구가 자신처럼 미리 계획되지 않은 즉흥적인 여행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청혼을 결심했다는 남자도 있다.

찌찌뽕!

독서나 영화 취향이 비슷해서, 웃음 코드가 통해서, 여행 스타일이 똑같아서, 자기처럼 운전할 때 욕지거리를 하는 행동이 통해서, 또는 보도블럭에서 도로로 폴짝 뛰어내리는 '하잘것 없는' 행동을 똑같이 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과의 결혼을 결심했다니… 통하는 느낌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 남자들은 이 느낌 때문에 한 여자와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결정하게 된 것일까?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통하는 느낌’을 일컫는 용어가 있다. 바로 ‘I-sharing’ 이다. 즉, 나를 공유한다는 뜻을 갖는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경험하는 주체로서의 나’를 공유한다, 또는 경험과 취향이 유사하다는 의미이다.

‘찌찌뽕’이라는 말로 I-sharing의 정체가 잘 설명될 것 같다. 찌찌뽕은 완벽히 같은 시간에 같은 말을 누군가와 동시에 했을 때 서로를 바라보며 외치는 표현이다. 누군가와 함께 찌찌뽕을 외쳤던 순간을 떠올려 보자. 그 사람과 통했다는 기분에 신이 나고 때로는 경외감이 들 때도 있다. ‘어떻게 같은 순간에 똑같이 이 말을 했지?’라는 생각과 함께… 누군가와 ‘코드가 맞는다’ 또는 ’잘 통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사람과 I-sharing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마치 아이폰이 아이튠즈와 싱크되듯 내가 상대방과 싱크되는 듯한 느낌이다.

취향이 같은 사람을 만나는 황홀경

Pierre-Auguste Renoi,1841–1919. ‘Danse à la campagne’, 1883, oil on canvas, 180×90cm, Musée d'Orsay.

I-sharing의 완벽한 예를 보여주는 노래가 있다. 바로 에니메이션 <겨울왕국>에 등장하는 ‘사랑은 열린 문'Love is an open door 이라는 노래이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이 노래는 엘사 여왕의 하나뿐인 여동생 안나와 이웃나라 왕자 한스의 듀엣곡이다. 안나와 한스는 처음 만난 당일, 서로 상대방을 알아가며 서로 너무나도 유사한 경험을 갖고 있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렇게 상대방을 서로 알아가는 과정에서 서로 너무 잘 통한다는 것을 느끼며 사랑에 빠지게 되는 순간을 그린 노래가 바로 ‘사랑은 열린 문’이다. 이 노래의 가사 중에 이런 부분이 있다.

"I’ve never met someone who think so much like me. Zinx! Zinx, again! Our mental synchronization has only one explanation. You and I, were just meant to be.”

한국말로 풀이하면 “이렇게 서로 생각이 잘 맞는 사람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죠. 찌찌뽕! 또 찌찌뽕!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잘 통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뿐이에요. 바로 당신과 내가 천생연분이라는 거죠.” 정도가 된다.

심리학 연구들에 의하면 이처럼 주관적으로 누군가와 동일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 즉 “I”의 주관적 경험을 공유할 때 사람들은 상대방을 좋아하게 된다Pinel et al., 2006.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동성 간보다는 이성 간에 더 현저히 두드러진다이화령, 2009. 공유하는 경험이 객관적으로 동일할 필요는 없다. 사실 두 사람의 경험이 객관적으로 동일한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단지 주관적으로 나의 경험과 상대의 경험이 똑같다, 혹은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주관적 경험의 유사성이 상대방에 대해 호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 호감은 실로 강력한 파워를 발휘할 수 있다. 앞에서 보았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경험을 공유한다고 생각되는 상대를 자신의 운명의 상대라고 느끼고 결혼까지 결정할 정도이다.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결정적 순간

주말마다 열심히 소개팅을 하며 운명의 상대를 찾고 있는 싱글들을 위한 현실적인 조언으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소개팅에 나온 상대방이 마음에 든다면 그 사람과 내가 공유하는 취향은 무엇인지를 찾아 보자. 영화 취향은 어떤지, 책은 어떤 장르를 즐겨 읽는지, 어떤 종류의 음악을 좋아하는지, 여행은 좋아하는지, 좋아한다면 어떤 스타일로 여행하기를 좋아하는지, 넷플릭스에서 즐겨 보는 프로는 뭔지, 웃음 코드는 잘 맞는지, 어떤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고 즐겨 시청하는지 등… 살펴볼 수 있는 취향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소개팅 자리의 어색함을 날려 줄 풍성한 대화거리가 생길 것이다. 그러다가 유사한 취향을 가지고 측면을 발견한다면, 그래서 상대방과 내가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면 금상첨화이다. 앞에서 보았던 23인의 유부남의 경험담처럼 언젠가 당신이 이 소개팅에서의 대화를 '이 사람이야'라고 느꼈던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회고하고 있게 될지도 모른다. mind

   <참고문헌>

  • 이화령 (2009). 경험과 특성이 유사한 타인에 대한 호감의 상대성. 연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 Hillin, T. (2014). Twenty-three husbands describe the moment they knew they found 'the one'.  Retrieved from //www.huffpost.com/entry/inspiring-marriage-stories_n_5754710
  • Pinel, E. C., Long, A. E., Landau, M. J., Alexander, K., & Pyszczynski, T. (2006). Seeing I to I: A Pathway to Interpersonal Connectednes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0(2), 243-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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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낭연 경성대 심리학과 교수 성격및사회심리 Ph.D.

연세대에서 사회 및 성격 심리학을 전공하였으며, 행복에 관한 주제로 박사학위를 하였다. 현재 경성대 심리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2015년에 한국심리학회에서 수여하는 김재일 소장학자 논문상을 수상하였다. 행복 및 긍정적 정서 연구를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서로는 범죄피해 진술조력(2018), 범죄피해 조사론(2018), 심리학개론(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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