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은 좌 - sieun jwa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 가소서"(시 132:8)

 언약궤는 정금으로 안팍을 싸게 되어 있었다. 성경에서 금은 고귀한 것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물건이다(벧전 1:7;계 3:18). 따라서 궤를 금으로 도금한다는 것은 궤 자체의 귀중함을 나타낼 뿐 아니라, 나아가서 궤 속에 있는 율법은 더 귀한 것임을 가르쳐 준다(시19:10).

 "그 채를 궤 양편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라"(출 25:14).

 언약궤는 일단 채(pole)를 고리에 꿴 다음에는 뻬어내지 말고 고정시켜야 했다. 이는 사람들이 법궤를 운반할 때 채 외에는 아무것도, 곧 법궤의 고리조차도 만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법궤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극히 존엄하게 여겨졌다. 한편 후일성경은 여기에 잘못해서 손을 댔다가 죽은 경우도 증거하고 있다(삼하 6:6,7).

 •속죄소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출 25:17).

 "속죄소"란 법궤를 덮고 있는 법궤 뚜껑을 가리킨다. 이말은'덮는다'는 뜻의 '카파르(כּפר)'에서 유래했는데, 이 단어는 상징적으로 '속죄하다', '용서하다'는 뜻을 지닌다. 이밖에 '카파르'란 단어속에는 '칠하다', '제거하다'는 뜻도 있는데 이는 곧 죄를 덮어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마치 제거한 것인 양 간주하여 용서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속죄소(贖罪所)란 인간의 죄를 덮어(용서해)주는 장소란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이를 '자비의 자리'(a mercy seat)로 번역하고 있다. 동시에 속죄소는 그런 목적으로 하나님이 강림하시는 자리로도 언급되고 있다(22절; 레 16:2; 민 7:89). 이상과 같은 의미를 지닌 속죄소도 예수와 관련된 중요한 예표론적 의미를 지닌다. 곧 속죄소는 인간의 죄를 덮어 도말해 버리는 예수의 보혈을 예표하고 있다는 점이다(롬 5:9; 엡 1:7). 속죄의 크기는 각각 가로 114cm, 세로 68.4cm 가량이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

 이 말씀은, 속죄소의 설치된 목적을 밝혀 준다. 그 목적은, 하나님께서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서 모든 것을 계시하시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대표자인 대제사장을 통하여 하시는 일이었다. 거기서 너와 내가 만나고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성막 제도에 관하여 계시하시고 그것을 만들도록 지시하신 목적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당신의 신성과 영광을 드러내 보이며 또한 그들과 교통하기에 적절한 임재의 표상(表象)을 갖고자 하셨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실체 앞에 나아갈수 없는 인간을 위한 배려에서였는대, 그로인해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해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있었다.

1) 깨어진 십계명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출 25:21).

 이렇게 할 경우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나타내는 속죄소(17절)는 하나님의 공의를 상징하는 십계명 판, 곧 율법 위에 놓여지는 셈이 된다. 이러한 것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그분의 율법과 공의를 능가한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시 32:1).

 그리고 이곳에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희생제물의 피가 뿌려졌다. 언약궤에는 하나님의 공의를 상징하는 율법의 두 돌판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모세에 의해서 깨어진 것이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길 때 일어난 일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율법을 절대로 지켜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나 항아리리가 들어가 있었다.

2) 만나 항아리

"또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출 16:33).

 왜 하나님은 언약궤에 만나를 넣으라 하셨을까? 만나는 광야 40년동안 하늘에서 내린 이스라엘을 위한 음식이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상징하는 것이지만, 이스라엘은 이 만나를 통해 감사와 찬양보다는 불평과 원망을 하나님께 쏟아낸 적이 있었다.

 "만나 외에는...아무것도 없도다!"(민 11:6).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가장 완전한 건강식인 '만나'(출 16:15)를 팽개치고 과거의 얼큰하고 자극적인 음식물을 찾기에 급급한 이스라엘 백성의 저급한 불만이다. 실로 세상의 자극적인 향략과 얼큰한 탐욕에 취한 자들에게는 하늘의 순수하고도 담백한 신령한 음식이 눈에 차지 않는 법인가?(요 6:66-68). 이러한 사실을 주석가 바움가르텐(Baumgarten)은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이것은 정결하고 순수한 음식물의 은근한 맛을 계속 즐기지 못하고, 자신의 내적 탐욕으로부터 생겨나는 바 툭 쏘고 시큼한 맛이 뒤섞인 자극적인 음식물을 갈구하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 기인한다.

 하나님의 돌보심과 축복을 상징하는 만나가 인간의 끊임없는 탐욕을 상징하는 것이 되고 만 것이다. 이 만나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진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용서와 인간의 악함이 대조되는 곳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엿볼 수 있는 상징인 것이다.

3) 아론의 싹난 지팡이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패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민 17:10).

 언약궤 안에 간직될 이 아론의 지팡이는 아론및 그의 후손들에게 주어질 제사장직에 대한 하나님의 확실한 보증이었다. 아울러 이것은 하나님이 항상 살아 계셔서 이스라엘을 지켜보고 계심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상징물이 될 것이었다. 나아가 이것은 당신의 주권에 도전하는 자에게는 준엄한 심판, 당신을 온전히 섬기는 자에게는 생명의 상급을 허락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시로 이해할 수 있다.

 아마 이 싹난 지팡이와 만나 는 사사 시대를 거치면서 손실되었다고 보는 것이 무난하다. 왜냐하면 솔로몬 시대에는 이미 언약괘 안에 그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지팡이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왕상 8:9, 플핏 주석).

 이 지팡이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진 것은 하나님의 권위와 주권에 도전한 죄까지 용서하시는 크신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깨어진 십계명 돌판, 만나 항아리,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모두 인간의 어쩔 수 없는 깊은 죄성과 이를 아들 예수의 피로 덮으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알게한다.

• 속죄소의, 시은좌
"또 그 궤의 뚜껑을 속죄소라고 불렀는데 그룹이라는 영광의 천사들이 날개로 그 위를 내리덮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에 대해서는 일일이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히브리서 9:5)

법궤의 뚜껑을 속죄소 또는 ‘시은좌(施恩座, 은혜를 베푸신 자리)’라고 불렀다. 이는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번씩 이곳에 들어와서 제물의 피를 뿌려 인간의 죄를 덮었기 때문이다.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본질적인 죄를 덮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를 보시고 용서하셨다. 그 아들의 순결하시고 거룩하신 피가 우리의 허물을 가리고 죄악을 덮었다. 그래서 이 은혜를 누린 자는 행복자이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시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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