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피야트 죽음의 다리 - peulipiyateu jug-eum-ui dali

Kyiv

[우크라이나 여행기] Chornobyl(Chernobyl) #02. 시간이 멈춘 땅, 프리피야티(체르노빌 투어)

폭발 사고가 터졌던 체르노빌의 운명도 비극적이지만

체르노빌 바로 근처에는 체르노빌로 인해 즉각적인 비극을 맛본 도시가 있습니다.

'안전한 원자력'의 모토를 걸고 탄생한,

그렇지만 원전으로 인해 역사상 최악의 재앙을 입은 도시로 기록된 '프리피야티 Припять'가 그 곳이죠.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와 깊게 연관되어 있는 도시라 그런지

흔히 체르노빌과 프리피야티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엄연히 다른 곳입니다.

프리피야티를 알리는 이정표

'1970'이라는 년도에서 알 수 있듯, 1970년 처음 도시 설계가 계획되었습니다.

도시 설계 모토인 '안전한 원자력'에서 볼 수 있듯,

소련은 적극적이고 계획적으로 프리피야티를 키우는데 주력했죠.

그 결과 체르노빌 폭발 이전까지 49,360명이 거주하는 중소 규모의 도시로 발전했구요.

당초 계획에 따르면 체르노빌 원전과 프리피야티를 키이우에서 25km 떨어진 지역에 건설할 예정이었으나

우크라이나 과학 아카데미측의 우려로 인해 현재 위치에 지어졌다고 하네요.

행정상 위치로는 여전히 키이우 주(州)

시내 중심부의 아파트

투어 버스를 타고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를 지나 시내로 들어오게 되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텅텅 비어버린 아파트들입니다.

체르노빌 원전에 근무하던 노동자들과 과학자들의 거주 및 편의 도모를 위해 설계되었던 곳인 만큼,

아파트들과 각종 편의 시설들이 눈에 띄죠.

예를 들면 공중 전화기....?

사실 폐허가 되기 전의 모습만 놓고 상상한다면

지금 키이우 시내에 있는 공중 전화 부스보다 이게 낫다... 싶을 만큼

아기자기한 맛이 있죠.

물론 지금은 멀리하는 게 좋습니다.

폴리시야 호텔

프리피야티 내 가장 높은 건물들 중 하나인 폴리시야 호텔.

체르노빌 원전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을 위한 숙박용이자 각종 세미나를 위한 장소로 쓰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건물의 절반 정도가 폐허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구 쇼핑센터로 가는 길

계획 도시 답게 시내 중심에 핵심 건물들이 몰려 있습니다.

폴리시야 호텔을 포함, 쇼핑센터, 시청, 문화 궁전 등등.

폐허가 된 마트 내부

마트 내부로 들어가는 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바깥에서 거리만 유지하면서 구경할 수 있는데

놀라웠던 건 지금으로부터 약 40여 년 전 시설인데도

지금이랑 거의 흡사한 마트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거였죠.

'소련'의 이미지는 칙칙하고 회색빛인데, 그걸 비웃기라도 하듯 산뜻한 하늘색으로 각 상품 위치를 나타내고 있는 것도 그랬구요.

멈춰버린 관람차

프리피야티를 대표하는 상징물인 관람차입니다.

문화 궁전 뒤편으로 놀이 공원이 자리잡고 있는데, 완공 후 단 한 번도 놀이기구들이 운행된 적 없는 걸로 알려져 있죠.

놀이 공원 단장이 끝난 건 원전 사고 이전이었지만

노동절인 5월 1일에 맞춰 개장하기 위해 개장일을 연기했고,

노동절을 5일 앞둔 4월 27일 체르노빌 사고가 터지면서 그대로 폐쇄됐기 때문입니다.

범퍼카

놀이 공원에는 총 4개의 기구가 있습니다.

관람차를 포함, 범퍼카와 미니 바이킹, 회전 그네까지.

이 중 그나마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건 범퍼카랑 관람차 정도.

나무 판자가 썩어 무너진 회전 그네

닿는 건 물론이고 스치는 것조차 꺼려지는 놀이 공원이라니.

역설이다.

문화 궁전 내 노동절 맞이 행사 준비 용품들

놀이 공원과 관련한 이야기들 중엔

폭발 사고 이후 주민 대피령이 내리기 전에 운행이 되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프리피야티를 나타내는 유명한 사진 중 하나가

관람차 안에 있는 인형 사진인데 개관 전이라면 인형이 있을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그 누구도 어떤 게 사실인지 확실히 말해줄 수 없다는 거.

축구 경기장 입구

프리피야티는 3개의 실내 수영장과 2개의 경기장, 10개의 체육관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휑한 벌판에 나무들이 드문드문 서있길래 공원인가...? 싶었던 곳이

알고 보니 경기장이었죠.

폐허가 되긴 했지만 경기장 입구까지 전체적인 틀 자체는 유지하고 있는데

도로나 시설물들의 위치를 보면 정말 깔끔하고 정돈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약 5천 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경기장이었다고 하네요.

사고 이후엔 사고 진압을 위한 헬기 착륙장으로 사용되었고,

부상자들을 실어 나르는 대피소(?)의 역할도 같이 수행했습니다.

방사능에 그대로 노출된 헬리콥터들이 이착륙했기 때문에 경기장 자체의 방사능 오염도는 여전히 높은 상황.

그냥 텅 빈 아파트

시내 건물 내부의 대부분이 초토화된 이유는

대피령 이후 소련 정부가 기존 거주민들에게 생활 도구를 챙겨 나올 것을 임시적으로 허락했던 것도 있고,

체르노빌 사고 진압을 위해 투입된 작업부들이 남아있는 것들을 약탈해간 까닭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훔쳐간 가구나 생활용품들 - 방사능에 노출된 - 의 대부분은 키이우에서 팔렸다고 하네요.

실내 수영장 외관

프리피야트 내 3개의 실내 수영장 중 하나.

외국 블로그들을 둘러보다 보면 수영장 내부 모습 사진들도 있던데

당일 투어에서는 입장하지 않고 그냥 위치만 알려주는 걸로 끝... 쩝.

개보수 없이 방치되어 있던 건물들이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을 때 붕괴 위험이 있어 그렇지만

하. 뭔가 두고두고 아쉽다.

프리피야티와 연결된 철도

체르노빌 발전소는 자체 기차역(세미호디 기차역)을 보유하고 있었고

프리피야티에는 야노프 기차역이 있었습니다.

기차역으로 가려면 '죽음의 다리'라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데

일정에서는 빠져 있었으니 어디 박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외국 블로그들에 사진들이 올라와 있길래 궁금해서 읽어보니 특별 허가를 또 받아야 접근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취재나 외부 인사의 방문 정도나 되어야 갈 수 있을 듯.

체르노빌 발전소 전경(클릭하면 커집니다)

프리피야티까지 투어를 마친 뒤엔

체르노빌의 발전소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근처 강가에서 잠깐 시간을 갖습니다.

왼쪽이 사고가 났던 4호기.

그 주변에 1, 2, 3호기가 분명 있었는데 제대로 기억이 안 나네요.

사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여기가 사고가 났던 지역인지 분간이 안돼...

그리고 체르노빌 먹방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진행되는,

그것도 인당 169달러(주말)나 하는 투어이니만큼!! 식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름은 '점심 식사'인데 실제 식사 시간은 거의 3~4시 정도??

둘러보다 아사하는 줄 알았었죠.

 식사는 프리피야티와 체르노빌 지역에서 벗어난 곳에서 합니다.

물론 체르노빌 바깥 지역에서 난 재료들로 만들어진 음식들이구요.

별 거 없어 보이는데, 나름 '코스 요리'라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심지어 맛있어...!!!

메인인 밥, 구운 콩, 커틀렛, 모닝빵(?)

그리고 사진에는 없지만 수프가 곁들여 나옵니다.

근데 메인보다 샐러드와 디저트와 식전빵이 더 맛있던 걸 왜일까...?

메인 음식들이 뭔가 다 푸석푸석한 느낌이었는데.. 음.

디저트인 블린

그냥 무난평범이 폭발한 블린(안에는 고기).

옆의 흰색 소스는 스메따나.

이미 이전에 배가 터질만큼 먹은 후였지만 끝까지 우걱우걱 먹었습니다.

방사능 감지기

체르노빌 지역으로 들어갈 때와 나갈 때 모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입니다.

가이드가 말하는대로 따라서 잘 다녔다면 절대 걸릴 리 없죠.

사고 이후 출입 통제된 마을들

점심 식사를 했던 곳 앞쪽에는 사고 이후 출입이 불가능해진 마을들의 이름이 있습니다.

총 83개 마을이고 이 중에는 체르노빌과 프리피야티도 포함되어 있죠.

마을 푯말에 꽃들이 걸려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어떻게 보면 마을들의 무덤[..]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길을 따라 쭉 따라가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동상도 있습니다.

행복의 길!!

이건 뒤에서 찍은 거고, 앞에는 쵸르노빌 Чорнобиль 이 쓰여져 있습니다....만

왠지 느낌상 뒤에 적힌 이 말은 작위적이야...

인위적으로 역설을 강조하는 거 같애...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미 이전부터 지쳐서 가이드의 설명 따윈 귀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부터 이 자리에 있었는지 등등

하나도 모르겠네요.

그냥 저의 추측과 감상일 뿐.

이후 처음 체르노빌 지역(Chernobyl Zone)으로 들어올 때 통과한 검문소를 거쳐

다시 한 번 방사능 수치 측정을 마치고 완전히 체르노빌을 벗어났습니다.

예전에 셰브첸코 국립대 동양학부 학장으로 계시는 교수님을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

'교수'라고 하는 이미지 - 딱딱한 - 때문에

만나기 전부터 '하,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막상 만나뵙고 나니까 정말 친절하고 살갑게 대해 주셨죠.

나중에는 명함도 주시면서 자기 사무실로 찾아오라고까지 하셨었구요.

그때는 그냥 '아, 정말 좋은 분이시다' 싶은 생각에만 그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체르노빌 사고(혹은 그 후유증)로 아들을 잃으셨다고 하시더라구요.

(관련기사 : 누구도 편안하게 죽지 못할 것이다 시사인, 13.01.23)

어디까지나 단순한 '호기심'으로 체르노빌을 다녀왔지만

아직도 주변에는 사고로 인한 아픔을 간직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죠.

뒤늦게 교수님의 사람 좋은 인상과 미소에 아직까지도 아픔을 지니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구요.

그래도 삶이 계속된다는 건 사고보다 더 비극적인 거 같기도 하고.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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