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은 어떻게 티베트 를 침략 했나 - jung-gug eun eotteohge tibeteu leul chimlyag haessna

“원나라때 조공바치고 사신이 인사를 갔다고 티베트가 중국영토 일부라면 한국은 뭐냐?”
“티베트의 각민족은 중화민족 대가족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중국 정부가 3월을 맞아 세계 곳곳에서 티베트와 관련된 사진전을 개최하고 ‘티베트 백서’를 발간하는 등 ‘서안자치구’(티벳)의 안전과 발전상에 대한 홍보에 주력하는 가운데 한국에서도 이와 관련한 행사가 열렸다.

9일부터 재한중국문화원이 ‘티베트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이름의 사진전을 개최했다. 이에 맞서 티벳독립을 지지하는 공동체 모임에서는 문화원 바로 앞에서 반중국 시위에 나섰다.

중국 측이 3월 들어 티베트 관련 홍보에 나선 이유는 지난 1959년 3월 10일 티베트 전역에서는 중국의 침공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달라이라마는 인도로 탈출해 망명정부를 수립했기 때문이다. 이후 티벳에서는 1987년, 1989년, 그리고 지난 2008년에 대규모 항쟁이 일어나 중국 정부를 난처하게 했다.

이날 티베트독립을 지지하는 모임인 랑쩬(RANGZEN)은 중국에 대해 “자신들의 불법적인 침략행위를 은폐하고, 침략 이후 벌어진 티베트인들의 혁명적 저항과 중국측의 폭력적인 진압들을 왜곡하려 하고 있다”며 “티베트에 대한 그들의 왜곡된 선전전은 이제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랑쩬은 “티베트인들은 오랫동안 독립을 유지하며 고유의 문화를 유지하고 살아왔음에도 중국정부는 1951년부터 티베트를 무력 점령해 왔다”며 “중국이 티베트를 무력 점령한 지난 시간동안, 티베트인들은 중국의 강압에 의해 각종 인권침해를 당해왔을 뿐만 아니라 중국은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티베트의 자연을 파괴해왔다”고 주장했다.

이날 시위대는 시위허가를 받았으나 경찰로 부터 확성기와 구호를 금지당해 깃발과 피켓을 흔드는 ‘침묵시위’로 사진전에 항의했다.

집회에 참석한 한 참가자는 “중국 주장대로 원나라때 조공을 바치고 사신이 인사를 갔다고 티벳이 영토의 일부라면 한국은 뭐냐?”고 반문한 후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이런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참 눈치 없는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이날 행사에는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이날 개막된 중국문화원의 사진전에는 티베트의 풍광과 동물, 사회풍습을 담은 다양한 사진들을 전시했다.

전시장 입구에 ‘서언’에서는 “1951년 티베트는 평화적으로 해방되었는데, 1959년 반란평정 이후 민주개혁이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이 서언은 역사,정치,문화적으로 티베트가 중국의 한 지역임을 강조했고 전시자료 마지막에 배치한 ‘결언’에서도 이를 재차 강조하며 “티베트의 각민족은 중화민족 대가족의 중요한 구성원”이라고 설명했다.

중국문화원 측은 옛티베트의 봉건성을 비판하며 지배계층이 농노의 인피를 벗겨논 사진을 공개했다.

전시된 자료 중 한쪽 벽면은 중국 측이 ‘종교와 정치가 일치화 된 세습 봉건사회’로 비판해 온 티베트의 노예제도나 인피를 벗겨 놓은 모습 등 악습을 고발하는 내용을 주로 담았다.

<경향닷컴 손봉석기자 >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세계적 반공투쟁 기지’활용 위해 CIA 정보공작 벌이다 오히려 중국의 가혹한 침략만 촉진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한-미 관계사를 한마디로 규정하자면 ‘환상과 환멸의 역사’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환상이 큰 만큼 환멸도 컸기 때문이다. 1882년, 미국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조선이 미국을 끌어들여 러시아와 일본을 제지하려는 중국의 연미론(聯美論)에 끌려 최초의 조미조약을 체결했을 때, 고종은 “조선이 제3국으로부터 부당한 침략을 받을 경우 미국은 즉각 개입, 거중조정(居中調停·good offices)을 행사해 조선의 안보를 보장한다”는 조항에 큰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여태까지 믿고 살았던 중국의 위치가 약해지던 당시 고종은 러시아·일본의 야욕을 역외의 ‘정의로운’ 열강이 억제해줄 수 있으리라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 선교사들도 조언자로 삼아주고 미국 기업인들에게도 이권을 많이 나눠주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부시 대통령을 접견하는 달라이 라마. 중국을 압박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미국은 ‘티베트 카드’를 꺼내 인권을 들먹이지만, 중국 지도부도 그 속마음을 뻔히 알고 있다.

‘거중조정’이라는 미국의 빈말

조선의 외교권이 박탈당한 1905년 말에 러-일 전쟁에서 일본을 은근히 도와주었던 미국의 공사관이 맨 먼저 서울을 떠나버렸을 때에야 ‘거중조정’이 뜻없는 빈말인 줄 깨닫기 시작했을까. 그 뒤 오스트리아 등 제1차 대전 패전국의 속지들이 독립할 권리가 있다는 뜻의 미국 대통령 윌슨(1913~1921년 재임)의 듣기 좋은 ‘민족자결주의’를 식민지 해방의 촉구쯤으로 생각했던 3·1운동 지도자들의 실망도 있었고, 미군이 가져다준 ‘해방’이 분단과 친일파 재등용으로 이어졌을 때 김구나 여운형의 좌절도 있었고, 미국이 박정희의 반란군을 진압하기는커녕 은밀히 지지하고 궁극적으로 인정해주려는 것을 이해한 장면 총리의 절망도 있었지만, 우리에게 무엇보다 생생히 기억되는 것은 최근의 두 사건이다. 광주 학살에 대한 미국쪽 책임을 추궁하는 1980년대의 반미운동과, 미 자본에 대한 국내 시장의 전면적 개방을 추진한 뒤에 부시 정권의 ‘햇볕정책’ 지지의 일방적 철회로 곤혹스러운 처지가 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미 실망이 그것이다.

문제는 무엇인가? 민주·인권·정의 등 미국의 화려한 수사는 언뜻 보편주의로 보이지만, 실제 정책은 무자비하다 할 만큼 배타적인 이익 추구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고종이나 장면이 그 아름다운 수사들을 철석같이 신뢰했지만 한반도에서 미국 이익의 극대화에 그들이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미국쪽 판단이 섰을 때 그들은 매정하게 내팽개쳐지고 말았다. “사랑해요, 아메리카!”를 부르짖는 이들이 이것이 아메리카의 본모습인 줄을 과연 알 수 있었을까.

아메리카의 수사와 행동이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티베트 문제’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티베트와 조선의 운명이 흡사한 것은 둘 다 인접 아시아 국가로부터 침략을 당해 식민지가 된 상황에서 민주·인권이 배제된 억압적인 근대성의 이식을 겪었기 때문이다. 침략자가 이웃국가인 만큼 티베트 지배층도 조선 못지않게 역외의 구미 열강을 끌어들이는 것을 상책으로 삼았다. 1949년 “티베트를 조국과 통일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힌 중국 공산당이 중국 대륙의 통일에 성공했을 때, 티베트 정부는 중국이 조만간 침략해올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전통적 중화사상을 근대적인 민족주의로 전환시킨 중국 공산당으로서 티베트처럼 청나라 시절에 ‘중화’의 종주권을 인정하되 내정은 독립적으로 처리했던 주변의 ‘회색지대’들은 당연히 자기의 ‘민족 영토’였다. 티베트는 이웃의 제국주의적 야욕을 어떻게 면할 것인가? 티베트 정부로서 1904년부터 티베트의 후견인 역할을 해온 구패권국가 영국과 중공의 주적이었던 신패권국가 미국에 호소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1950년 당시의 달라이라마. 그 뒤 티베트 동부에서의 게릴라전에 대한 CIA의 지원과 지휘는 달라이라마의 ‘평화적 독립투쟁’ 명분을 손상시켰다

그러나 미국도 영국도 고립무원의 티베트에 대해 이중적 정책을 취했다. 한편으로는 티베트 대표자와 지속적으로 만났던 인도 주재의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들이나 1949년 말~1950년 초에 신장(新疆)에서 출발해 티베트의 수도 라싸를 거쳐서 인도를 통해 귀국한 프랭크 베사크(Frank Bessac)와 같은 중국·몽골어에 능통한 미국의 학자형 첩자들이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의 당국자들에게 ‘세계적 반공 투쟁의 일원’인 티베트가 요청만 한다면 미국으로부터 무기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대담한 약속을 했다.

“티베트 문제 유엔 상정”요구는 뿌리쳐

인도를 제외하고는 외국에 가본 적이 없고 미국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거의 없는 티베트 지도자들에게 이 달콤한 말들은 ‘확실한 보장’으로 들렸고, 그들 중에서 자진해 CIA에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나선 사람들도 많았다. 이 정보 공작에 대한 소문이 중국에까지 퍼져 결국 중국의 침략을 촉진하고 합리화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미국과 영국은 티베트를 독립국으로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았으며, 티베트 문제를 유엔에 상정해달라는 티베트쪽의 애원도 매정하게 뿌리쳤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수많은 식민지를 여전히 거느리고 있는 영국으로서 티베트 문제의 국제 공론화가 전례가 되면 식민지 독립운동가들에게 국제적 발언권을 주는 빌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매카시의 우군이자 후원자인 대만 장제스(蔣介石·1887~1975)의 “티베트는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중화민족주의적 주장을 거스르기가 힘들었다. 거기에다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터진 뒤로는 한반도가 ‘공산주의 억제 정책’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 미국 당국자들의 의식이었다. 남한이 패배하면 미국의 동북아 패권 정책의 중핵인 일본까지 위태롭게 되지만, 중국의 티베트 침략은 미국의 이해관계를 그리 위협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1950년 10월에 중국의 전위부대 4만명이 티베트를 침략한 뒤 미국이 달라이 라마에게 제시한 유일한 방안은 “스리랑카 같은 불교국가나 미국으로 망명하라”는 것이었다. 한국전쟁과 ‘적색공포’가 한창이었던 당시에 달라이 라마가 서방 언론에 ‘중국 빨갱이의 잔혹 행위’를 많이 고발해야 세계적 심리전에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티베트에 대한 일말의 관심도 없는 미국의 속셈이었다.

1940년대 후반에 중국 신강의 우룸치에서 미국 영사관의 부영사를 지낸 CIA요원(왼쪽) 두글래스 맥케르난 (Douglas MacKiernan). 달라이라마를 만나기 위해서 티베트로 넘어가는 중에 그는 우연히 티베트 수비병들에게 피살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대농장 소유자인 달라이 라마 측근의 귀족들로서는 농장·농노를 다 포기하고 망명하는 것보다는 “귀족·사찰의 특권을 다 인정해주겠다”고 약속하는 중국쪽과 타협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었다. 티베트 지배층과 중국 사이의 ‘밀월’이 그 뒤에도 몇년간 지속됐지만 결국 중국의 강압적 태도와 부역 강요, 자원 착취 등은 티베트인들을 소외시키고 1959년의 민중봉기와 달라이 라마의 인도 망명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면 그동안 ‘공산 지배하 소수민족의 보호자’를 자칭해온 미국은 무엇을 해왔는가? 그들은 달라이 라마의 친형으로 티베트 정계 실력자이던 투브텐 노르부(Thubten Norbu)를 미국으로 망명시키고 그를 중심으로 친미적 망명자 그룹을 키우는 한편, 1957년부터 티베트 동부의 반중국 무장투쟁의 일부 리더에게 게릴라 훈련을 시키고 첨단무기로 무장해 인민해방군을 상대로 교란·첩보수집 작전을 벌이게 했다. 1960년대 들어 1년에 70~80명씩 미국에서 훈련받는 티베트 게릴라들에게 네팔 정부는 미국·인도의 의사대로 무스탕(Mustang)이라는 국경 지역을 내주고 그 근거지로 삼게 했다. 1972년의 중-미 수교로 이 CIA 작전은 끝을 맺었지만 그 결과는 어땠는가? CIA로서야 중국 관련 첩보작전에 큰 보탬이 됐지만 ‘미제’의 지원을 받는 게릴라전인 만큼 중국의 토벌 작전은 더욱더 가혹했다.

결국 고통을 받는 쪽은 위협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게릴라전 지역의 민중이었다. 지난 30여년 동안 미국이 경제 등의 분야에서 중국의 주된 파트너가 됐지만 미국이 그토록 “보호해주겠다”는 티베트 민중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중국을 압박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미국은 ‘티베트 카드’를 꺼내 인권을 들먹이지만 미국에 막대한 이익을 주는 경제 관계가 티베트 문제로 손상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중국 지도부는 뻔히 알고 있다.

우리의 운명을 미국 판단에 맡기는 한…

처음부터 지금까지 미국이 냉정하게 잘 이용해오고 있는 ‘티베트 문제’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미국의 행동이 미국 지배층들의 이익을 철저히 따르는 만큼, 우리가 우리 운명을 그들의 판단에 한순간이라도 맡기면 절대 안 된다. 만일 미국의 군수기업과 네오콘들에게 필요하다면 북한 침략도 완전히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그때 가서 미국에 환멸을 느껴봐야 이미 늦을 것이다. 미군의 북침으로 한반도가 사막이 돼버리는,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참사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은 오직 남북의 다방면의 공조 강화와 반전과 평화 운동, 그리고 미군 철수를 위한 운동 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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