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 jong-gyo eotteohge sijagdoeeossneunga

기존의 종교 교단이 지탱해 오던 한 사회의 가치 질서가 붕괴되고 민중의 의식이 동요하게 될 때 새로운 종교가 발생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조선 말기에 민중은 정치적 부패에 시달리면서 각종 재난과 외세의 위협을 당했으며, 종교적으로는 유교 질서가 혼란해져 천주교가 사회 저변에서 지하 운동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당연히 현실에 대한 불안과 위기 의식이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유교·불교·도교 등 기존의 교리를 종합, 보완한 새로운 종교가 출현함으로써 민중의 좌절과 염원을 흡수, 극복하려 하였다. 사회 변혁의 측면에서 유토피아의 도래를 염원하는 후천 개벽 사상이 나왔는데, 이는 정감록적 민간 신앙의 구세주 사상과 택지(擇地, 十勝地)사상에 영향받은 바 컸다.

최제우(崔濟愚)의 동학을 시작으로 김항(金恒)의 정역(正易)과 강일순(姜一淳)의 천지공사(天地公事)가 그 대표적인 예들인데, 이들 종파의 교주들은 대부분 무교적인 체험인 신명 사상(神明思想)의 논리에 기초한 카리스마적 전능을 가지고 출현하였다. 이들은 크게 동학계·유교계·불교계·국조계(國祖系)·기타 등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① 동학계 : 동학은 우선 그 명칭에서부터 서학(西學, 天主敎)에 대응하는 의미로 붙여졌고, 당시 동양의 중심 사상인 유·불·도의 3교와는 그 운수[運]와 진리[道]는 같으나 그 이치[理]가 다르다고 하였다.

동학은 하느님(天主)을 내세운 점에서 오히려 서학과 유사한데, 세상이 이토록 어지러운 것은 우리 민족이 믿어 오던 하느님의 뜻(天命)을 따르지 않음이요, 그 뜻을 아는 길이 지성감천(至誠感天)의 방법이라 제시한다.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하느님을 진정으로 공경하게 되고, 최제우가 언급하였듯이 “나의 도에는 성(誠)·경(敬)·신(信)의 세 가지가 있으면 그만이다”라는 교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을 분명히 믿는다는 것이 마음[心]으로 그친다면 불충분하다. 역시 어떤 신체적인 것을 아울러 요구하는데, 이것이 기의 문제이다.

기는 생명을 가지고 운동하는 것이요, 신령한 기운이고 무궁하며 자존하는 것으로 본다. 또, 동학에서는 우주를 하나의 발전, 진화하는 것으로 보고 그 본체 생명을 기로 파악한다. 이 기가 발전하는 과정에 있다며, 현실 세계의 모든 만물의 번성하고 쇠퇴하는 교체를 필연적인 변화로서 조화라고 해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최시형(崔時亨)에 와서 사람뿐 아니라 천지 만물이 다 하느님을 모시고 있다는 범신관으로 확대되고, 손병희(孫秉熙)에 와서는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이라는 이론으로 확대되어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事人如天)’고 주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은 절대군주 체제 하에서 매몰된 개인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자각인 것이며, 한국적 인간 존중 사상의 한 결실인 것이다.

따라서,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세상을 제도하고 백성을 구한다는 제세구민(濟世救民)의 도는 면면히 동학 교도 사이에 흘러 들어 갑오 농민 운동의 지도 이념이 되었다.

동학은 손병희에 의하여 천도교로 개칭, 발전하였고, 시천교(侍天敎)·상제교(上帝敎, 天眞敎)·수운교(水雲敎) 등의 여러 갈래로 나뉘어졌다.

증산교(甑山敎)는 동학의 삼교 합일설 내지 인내천의 사상에 『정역 正易』의 후천 개벽론을 첨가하여 ‘천지공사’의 사상 체계를 세웠다. 즉, 말세의 운수를 뜯어 고치기 위해 이념이나 규범과 질서 등을 개혁해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 신(地方神·文明神·萬古逆神)의 부조화로 인한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통일 신단을 결성하고, 이들의 원한을 해소하기 위해 모든 신명(神明)을 보은(報恩) 줄로 이어 줘 화목 협동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선천 시대의 오류를 수정하여 후천의 새로운 세계를 이룩한다는 조화의 이념을 전개하고 있다.

따라서, 선·후천의 재난과 액운을 없애어 신명의 원을 푼다는 액운공사(厄運公事), 세계의 분쟁과 반목을 공동체의 이념으로 교화한다는 세운공사(世運公事), 그리고 유교·불교·기독교·민간신앙의 정수를 통일, 결집하여 종교적 합일을 도모한다는 교운공사(敎運公事)의 개혁이론을 내세웠다. 종교의 계열에는 보천교(普天敎)·태극도(太極道) 등이 갈라져나왔다.

② 유교계 : 정역 이론을 확립한 김항은 스승 이운규(李雲圭)에게서 『주역』을 공부하고 역(易)의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였다. 여기서 그는 선·후천의 개념을 원리적 의미로부터 역사적 의미로 설정하고, 중국의 원시 경전으로서의 『주역』에서 사상의 실마리를 끌어 오면서 우주의 새로운 질서와 원리를 규명하였다.

음양의 조화를 통한 사회적 평등과 평화를 제시하고 인간의 본성에서 신명성을 계발하여 신과 인간이 합치할 수 있는 경지를 제시한 것이다.

그의 제자 송철화(宋喆和)가 영가무도교(咏歌舞蹈敎)를, 하상남(河相男)이 대종교(大倧敎)를, 황대순(黃大淳)이 대동교(大同敎)를 각각 일으켰고, 증산교의 창시자인 강일순도 이 논리를 체득하였다. 또, 강대성(姜大成)이 개창한 일심교(一心敎)는 유교를 중심으로 제종교의 규합을 추구하고 있다.

③ 불교계 : 조선조 불교가 여러 종파로 분열과 통합을 거듭해 오면서 새로운 종교의 면모를 보이는 것도 많았으나 1916년 박중빈(朴重彬)이 개창한 원불교(圓佛敎)를 대표적인 것으로 들 수 있다. 그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를 내걸고 종교 신앙과 도덕 훈련으로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낙원 시대의 건설을 염원하였다.

인류 구원과 평화 세계를 건설하려던 성현들의 깨달음이 모두 하나의 진리라고 하여 법신불일원상(法身佛一圓相)의 진리를 신앙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고 사은(四恩)·사요(四要)·삼학(三學)·팔조(八條)로써 강령을 삼았다.

④ 국조계 : 1893년 김염백(金廉白)으로부터 시작된 단군 신앙은 단군이 신인으로서 이 배달 민족을 가르치고(敎化) 다스리기(治化) 위하여 강림하였다고 한다. “구름·비·바람·우뢰와 해·달·별들을 차지한 신장(神將)·선관(仙官)이 다 한배님의 부리심이며, 공자·노자·석가·예수 같은 이도 다 한배님의 나느심이다”라고 하면서, 이 땅의 인간들은 상제국조(上帝國祖)에 순응할 때 구원된다고 한다. 이런 계열로는 대종교·단군교 등이 있다.

⑤ 기타 : 관운장의 위엄을 믿고 관운장의 신명을 제사하는 관성교(關聖敎)가 있는데, 관우(關羽)의 묘(廟)는 서울의 동묘(東廟)와 계룡산의 무량천도(無量天道)에 있다.

그 밖에 도교 계통이나 무속 계통의 작은 종파들이 다양하게 발생하여 한정된 지역에서 성장하다가 소멸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근대에 접어 들면서 서구의 문화가 침투하기 시작하여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발전함에 따라 이전부터 내려오던 도교의 여러 속습들이 상당히 퇴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부 요소들은 여전히 풍습으로서 또는 신앙으로서 민간에서 행해졌다.

이 시기에는 정통적인 도가 또는 도교적 요소가 사회의 표면에서 대부분 사라져 버린 관계로 뚜렷한 문헌이나 기록은 찾아볼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 드물게 저술을 남긴 이는 1910년대를 전후하여 중국에서 활동하던 전병훈(全秉薰)이다. 전병훈은 그의 저서인 『정신철학통편 精神哲學通編』에서 당시에 전래한 서구 사상은 물론 유·불·도의 제 사상을 도교의 단학 사상하에 통합하려 하였다.

그는 자신의 도교 사상을 단군의 『천부경 天符經』과 연결시킴으로써 단군을 만세 학술의 조종이라 극찬하여 민족주의적 도교의 요소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의 도교 사상이 종래와 다른 특징은 신선학을 개인적인 선화(仙化)에서 나아가 사회적 대중 구원의 원리로 승화시키고 있는 점이다. 그는 도교의 교리를 서양의 의학설과도 연관시켜 도교의 원리를 현대적인 인식과 체계화로 나아가게 의도하였다.

또, 정신·심리·도가 하나로 일치함을 밝히면서 도교적 이념에 근거하여 세계 통일 공화 정부를 구상하기도 하였다. 그는 세계의 지도자들이 만약 도교의 신선학에 욕심을 두어 불로 장생의 선학을 익히게 되면 권력에 대한 욕구가 줄어 나라 간의 전쟁이 종식되고 세계에 평화가 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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